안녕하세요! 이서희90에서 다시 태어(?)난 희얌90입니다~

끝이 없을 줄 알았던 원고 수정 업무가 끝난 후, 드디어 고대하던 서평을 쓰게 되었습니다! 서평의 주인공은 바로!!!

고봉준 평론가님의 평론집  『비인칭적인 것』입니다.

 

 

제목에 맞춰 저도 사진의 프레임을 '비인칭적'으로 찍어 보았는데요. 이 책의 저자인 고봉준 평론가님은 1970년 부산에서 출생하셨고,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혁명적 담론에서 생성적 담론으로의 넘어서기 : 백무산론』이 당선 되면서 등단하셨습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고,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에서 활동하며 지식과 삶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평론집으로 『반대자의 윤리』, 『다른 목소리들』, 『유령들』을 출간했고, 첫 평론집으로 제12회 고석규비평문학상을 수상하셨고, 현재 계간 『포지션』, 『딩아돌하』, 『문학선』의 편집위원으로 열혈히 활동 중이십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누어져 보기 좋게 되어있습니다. 각 부마다 글의 성격과 주제가 다른데 "1부는 비교적 최근의 관심사를 드러낸 글들을 모았다. … 2부에는 동시대의 시와 소설을 대상으로 한 주제론 성격의 글을 모았다.… 3부에 실린 아홉 편의 글 모두는 개별 시인, 소설가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한 작가론과 시인론 원고이다.… 4부에 배치된 다섯 편의 글은 다소 논쟁적인 성격의 글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p.6) 라고 저자님께서 서두에 밝혀두셨습니다.

저도 책과 마찬가지로 4개로 나누어 서평을 적을까 합니다.

1부에 등장하는 글들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습니다. 바로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비인칭적인' 것입니다. 요즘 떠오르는 말 중 하나가 '탈-'입니다. 탈주체화, 탈자아, 탈영토화…. 골리앗과 같이 거대하지만, 그림자처럼 형태는 없는 무언의 권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인들의 정신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에 고정되지 않고 탈주하도록 하는 의미의 '탈-'은 현시대의 운동을 대변하는 가장 알맞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책에서는 이러한 탈-의 주제를 가진 글들을 긴밀한 관계에 놓아 이것들을 탈-에서 탈주하도록 하여 비(非)인칭적인 것으로 색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장 핫한 키워드로 여겨지는 거대한 담론으로부터의 탈주에 관한 글들은 한 편 한 편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문학을 전공한 저에게 '문학과 정치', '민주주의의 증언으로서의 현대시'와 같이 문학이 갖는 다양한 면면과 그것들이 암전된 방 안에서 서로 투쟁하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깊은 감탄을 했습니다.

리의 뇌, 신체, 감각은 비(非)표준적인 방식으로 사고하고 느끼도록 재발명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시적 경향이라고 칭하는 시인들의 글쓰기는 바로 이 재발명의 과정, 이미-항상 실패의 위험 노출에 있는 실험의 일부이다. (p.15)

 

2부는 시의 경계선이 어디인가의 물음으로부터 출발해 좋은 시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1부가 시가 어느 방향으로 변화했는지, 어떤 변화로 나아가야 하는 지의 제안이었다면 2부는 예전의 시가 아닌 현재의 시를 통한 구체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연 어디까지 시를 비인칭적으로 해체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물음은 시의 경계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경계선은 바로 시를 '언어'로만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 어떤 것의 결합도 인정할 것인가?  에 대한 것입니다.

 디지털 문화가 성행하는 요즘 사진으로 시적인 것을 표현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입니다. 그런 추세를 읽어 등장한 것이 바로 '디카시'라는 한 장르입니다. 수전 손택의 '캠프'적인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른바 하위 문화. 디카시는 시의 하위 문화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시를 시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 2부에 등장합니다.

 손종수의 디카시 <짝사랑>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러한 현상, 어떠한 시도들에 대해서 "시의 범주, 즉 시에 관한 현대적 실정성의 경게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심증 이상의 무엇이 필요할 듯 하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시와 사진/회화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가 요구하는 '시'의 실정성을 수락할 수밖에 없다."(p.120)고 말하면서 "시적인 것을 언어에 삽입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는가"(p.121)라고 결론 짓습니다.

 

3부는 비인칭적인 시에 대한 평론이 담겨있습니다. 다양한 시세계와 작가들의 내면에 따른 스타일의 변화를 면밀하게 따라가는 행적을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 중 <진흙이라는 추상>에서 오정국 시인의 진흙과 물에 대한 시어를 이용한 시세계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형상을 갖지 않는 시어의 잠재적 힘과 시의 주체적 장치들에 대한 시인의 강단 있는 해석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어 단숨에 읽었습니다.

오정국 시인의 시는 단순한 그리움에서 출발하여 시로 끊임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나'에 대한 행위의 시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나'라는 자아가 어떤 순간에 어떤 힘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사이의 갈등은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여기서 파이의 모습이 사라지고 호랑이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파이(이성적자아)가 아닌 호랑이(인간본능적 자아)의 엇갈림을 암시한다.

시인의 자아의 문제를 다룬 만큼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파이는 인간이지요.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이성'이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무기와 동시에 인간은 인간적 본능 다른 말로 하여 본능(짐승)적 자아도 가지고 있지요. 인간은 이 자아들의 갈등 속에 늘 놓여있습니다. 그러한 갈등을 극렬히 그린 것이 바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인데, 책 속에 등장하는 오정국 시인의 시세계에 대한 '몽상', '갈등', '실패'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4부입니다! 서평이 많이 길어졌는데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정말 이 하나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가 책 속에 담겨있어 어떤 것을 적어야 할까, 저도 많은 내적 갈등이 일어납니다. 숨이 차도 여기까지 달려온 만큼 마지막 4부의 이야기도 재밌게 들어주세요.

 

4부엔 현재의 흐름에서 달려와 '미래'의 문학 지평에 대한 글들이 겹겹이 쌓여있습니다. 그중 '노동시의 종언'은 과거-현재-미래의 노동시에 대한 깊은 고찰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 그리고 현재에서 성장할 미래의 한국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천차만별입니다. 과거의 한국 '노동'은 공장 시다, 미싱과 같은 단순 노동과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 놓인 '착취'의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 '노동'은 달라졌습니다. 다양한 분야로 나뉘었고, 그러면서 생겨나는 사이사이 직업들과 노동들. 세분화된 노동은 단순히 '노동'이라는 한 단어로 묶기에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노동자는 OOO다?

 

 요즘 중학생들이 생각하는 '노동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나아갈 미래에 '노동'은 또 어떻게 변해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80년대의 노동시의 탯줄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저자의 반문이 격한 공감을 일으킵니다. 4부의 내용은 단지 고급 노동자(코그니타리아트)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프레카리아트)들을 나누는 것의 문제가 아닌 노동자의 변화에 맞는 노동시의 등장. 아니 어쩌면 노동시라는 것이 이제 시에서 분화된 하나의 카테고리가 아니라 '시'로써 인정받는 작품성과 이야기들로 꽉꽉 채워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저자의 화살입니다.

 

또한 4부에선 '이방인'에 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기스의 일화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자문화를 기준으로 타자를, 타문화를 판단하는 데 익숙한지 반성하게 된다. 소위 지구화 시대의 정의가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에 인류는 대개 민족국가 형태를 유지하며 살았고, 따라서 '정의' 역시 국경 바깥을 고려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중략) 이방인, 타자, 이주노동자의 등장은 이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사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p.426~427)  

이방인의 등장으로 인한 '정의'에 대한 회의를 물음으로 던지고 있습니다. 정의라는 것은 어쩌면 한 사회내에서 약속된 거대한 법의 하나가 아닐까요? 그러한 정의는 사회에서 벗어난 이방인들에게 호모사케르적인 존재로 느끼도록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에서 저자는 앞서 최민석의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에서 등장하는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먼저 꼬집습니다. 이방인들은 현재 주권에서 탈출하면서 그에 이어 노동시의 '노동'을 떠안은 존재이며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이방인들의 등장으로 인하여 미래의 정의와 시의 방향에 대한 물음으로 책은 끝나고 있습니다.

 

 

400쪽이 넘는 평론집을 처음 읽으면서 느낀 점은, 정말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이 세계와 저 너머의 세계가 교차하기도하고, 다른 상념들의 충돌들로 머릿 속이 다이나믹하게 움직였습니다. 뇌운동을 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비인칭적인 것』은 평론집이면서 어쩌면 현시대와 미래에 대한 흐름을 알리는 동향서 같기도 했습니다. 정의가 직면한 어려움에 대한 글을 끝으로 마무리 된 이 책은 정말 건강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뇌가 눈을 뜨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고 나서 매우 뿌듯(!)한 적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뇌호흡하는 마음으로 어렵지 않게 이 책을 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 희얌90! 이었습니다~~

 

 

비인칭적인 것 - 10점
고봉준 지음/산지니

 

 이 책을 쓰신 저자 고봉준님의 저자와의 만남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독후의 감동을 풀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6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고봉준 『비인칭적인 것』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