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학 제대로 서려면,

 지방과 지역 미학부터 바로 서야”

 

동래야류와 수영야류는 기층문화나 대중문화가 발달한 부산의 예술미를 대표한다. 사진은 동래야류. 부산일보 DB

 

로컬(local)지금이라는 시간성과 여기라는 장소성이 함께 작동하는 현재의 장소 곧 현장을 말한다. 국내에서 로컬이라는 말은 부산에서 지방과 지역을 아우르는 말로 집중적으로 사용됐다. 수도권 집중으로 식민지 현상을 넘어 지방소멸이 가속화하고, 세계화에 따른 식민성 문제는 지방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로컬, 로컬리티, 로컬학이라는 생경한 말들이 부산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임성원 부산일보 논설실장

자치분권 시대의 로컬미학출간

지방소멸 가속화 해결 위해

자치분권 통한 주체성 회복

로컬미학 정립 중요성 강조

 

임성원 부산일보논설실장은 최근 펴낸 자치분권 시대의 로컬미학(산지니)에서 로컬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학이 국내에 도입된 지 90년이 넘었지만 한국미학은 여전히 정립되지 않았으며, 지방과 지역의 미학은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제는 지방미학과 지역미학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국미학이 제대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한국미학이 입론 단계에 머문 것은 지방미학 지역미학이라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저자는 부산미학, 광주미학, 제주미학 등 대한민국의 로컬미학을 하나둘 쌓아 가다 보면 어느덧 한국미학의 퍼즐이 완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미학과 로컬미학은 상생의 관계에 놓여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언론과 자치분권의 실상을 전한다.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는 중앙의 논리가 서울 언론사를 통해 전국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지방 사람들은 먹고 살길을 찾아 자원이 풍부한 서울·인천·경기의 수도권으로 떠난다고 지적한다. 국토의 10%를 겨우 넘긴 수도권으로만 사람들이 몰리는 비정상의 극치가 나타나는 이유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이렇다. “지방과 지역은 자치와 분권을 통해 로컬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려면 안으로 자치, 밖으로는 분권이 필요하다. 분권이 중앙에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오는 지방복권이라면 지방자치는 되찾은 권리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주체성의 회복이다.”

저자는 지방자치제와 지방언론은 공동운명체라고 지칭하며 자치분권과 지방언론 자유가 완벽히 실현되려면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산미의 정체성을 분석한 대목도 흥미롭다. 부산미는 자연미, 예술미, 인간미, 도시미, 생활미로 드러난다. 부산의 자연인 드넓은 바다는 화통하고 박력 있고 개방적인 부산인의 기질과 연결된다. 귀족문화나 고급문화보다 기층문화나 대중문화가 발달한 부산의 예술미는 동래야류와 수영야류 등으로 대표된다. 부산의 인간미는 바다를 낀 숭고미에 영향을 받아 화통하며 야성을 지녔다. 부산의 도시미는 산, 하천, 바다가 이루는 지형의 영향을 받아 고개와 언덕, 굽은 도로의 불규칙한 시가지 형태를 보이는 게 특징이다. 또 부산은 바다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는 교두보 역할을 했기에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타협하는 개방성과 유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생활미를 지닌다. ‘변방과 경계의 땅인 기장미도 분석한다. 임진왜란 중 기장 민중들이 펼쳤던 눈부신 의병 활동과 일제강점기에 대거 등장한 항일독립운동가들에게서 기장의 저항성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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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분권 시대의 로컬미학

 

__

지금 여기,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곳에서

로컬미학을 생각하다

__

임성원 지음

 

 

 

'지방'과 '지역'이 '로컬'이 되기 위해

되찾아야 할 가치, '자치'와 '분권'

 

미학, 부산을 거닐다에서 부산문화와 부산를 그려냈던 부산일보 임성원 기자가 두 번째 저서 자치분권 시대의 로컬미학을 출간했다.

로컬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전 세계적으로 로컬 푸드’, ‘로컬 페이퍼’, ‘로컬 정부등 이른바 로컬의 재발견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로컬은 어떠한가. 한국에는 로컬보다는 여전히 지방지역이라는 말이 배회하고 있다. 지방과 지역은 지방소멸’, ‘지역감정’, ‘지역이기주의등 부정적이고 가치 없는 것을 뜻하는 접두사로 흔히 쓰인다. 아직 뚜렷이 나타나는 로컬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방과 지역이 로컬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치분권을 제시한다. 분권이 중앙에 빼앗긴 권리를 찾는 복권(復權)이라면, 자치는 되찾은 권리를 바탕으로 삶을 책임져 나가는 주체성의 회복이다.

 

 



'지금 여기'의 로컬미학

언론과 자치분권의 상관관계 

1장에서 저자는 로컬을 지금 여기로 정의한다. 지금이라는 시간성과 여기라는 장소성이 함께 작동하는 현재의 장소, 곧 현장(現場)이 로컬이라고 한다. 그는 특별히 국내에서 로컬이라는 말이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에 주목한다.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소멸이 가속화되고, 세계화에 따른 식민성 문제로 지방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현상이 구체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부산에서 로컬, 로컬리티, 로컬학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로컬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학이 국내에 유입된 지 90년이 넘었지만 한국미학은 여전히 정립되지 않았으며, 지방과 지역의 미학은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며 문제 제기한다. 저자는 이제 지방미학·지역미학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국미학이 제대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부산미학, 광주미학, 제주미학 등 대한민국의 로컬미학을 제대로 쌓아 가면 한국미학이 완성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2장에서 저자는 언론과 자치분권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한다. 디지털 시대에 지방 혹은 지역언론은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저자는 디지털 언론 환경에서 지방언론의 자치와 분권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뉴스를 접하는 주요 포털에서 지역 언론사의 기사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국내 디지털 뉴스 이용자의 77%가 포털을 통해 정보를 얻는 현실에서 한국 디지털 공론장은 서울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뉴스만이 활개를 치는 기울어진 여론 운동장인 셈이다.

저자는 지방자치제와 지방언론은 공동운명체라고 지칭하며 자치분권과 지방언론 자유가 완벽히 실현되려면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직 언론인이자 지역 언론의 일선에서 활동하는 저자가 바라보는 한국의 언론과 자치분권의 관계와 문제 제기 그리고 날카로운 해결 방안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부산美와 기장美의 정체성,

그리고 고향을 삶터로 삼아 살아가는 로컬 이야기

  3장과 4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저자가 발 딛고 살아가는 로컬, 부산과 기장의 를 소개한다.

  부산의 정체성은 자연미, 예술미, 인간미, 도시미, 생활미로 드러난다. 부산의 자연 하면 단박에 떠오르는 드넓은 바다는 화통하고, 박력 있고, 개방적인 부산인의 기질과 연결된다. 귀족문화나 고급문화보다 기층문화나 대중문화가 발달한 부산의 예술미는 동래야류와 수영야류 등으로 대표되며, 부산의 인간미는 바다를 낀 숭고미에 영향을 받아 화통하며, 야성을 지녔다. 부산의 도시미는 산, 하천, 바다가 이루는 지형의 영향을 받아 고개와 언덕, 굽은 도로의 불규칙한 시가지 형태를 보이는 게 특징이다. 또한 부산은 바다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는 교두보 역할을 했기에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타협하는 개방성과 유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생활미를 지닌다.

  ‘기장의 에서는 변방과 경계의 땅’, 기장의 를 살펴본다. 임진왜란 중 기장 민중들이 펼쳤던 눈부신 의병활동과 일제강점기에 대거 등장한 항일독립운동가들에게서 기장의 저항성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또 기장의 문화는 고급하고 세련되기보다는 실질적인 생활문화로 발달했고, 모든 길이 통하는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기장 사람들의 감성은 개방적이고, 진취적이고, 모험적이다. 이에 기장의 미는 저항성, 역동성, 실질성, 개방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마지막 5장에서는 고향과, 고향을 삶터로 삼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에게 지금 여기는 부산, 그리고 기장이다. 그에게 기장과 부산이라는 로컬이 없었다면 세계도 없었다고 말한다. 고향과 삶터가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 희귀한 일이 되어버린 오늘날. 고향과 삶터가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자가 전하는 로컬 이야기에 귀 기울여봄 직하다.

 

 

_저자 소개

임성원

부산에서 나고 자라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부산일보에 들어갔다. 기자, 선임기자 등을 거쳐 현재는 논설위원으로 있다. 부산대학교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 협동과정에서 美學을 공부하였다(예술학 박사). 저서로는 『미학, 부산을 거닐다』(2008), 『자치분권 시대의 로컬미학』(2019), 논문으로는 「한국미학의 정초를 위한 예비적 고찰」(2007), 「한국미학의 이론체계와 로컬미학론」(2016) 등이 있다.

 

_목차

1장 '지금 여기'의 美

2장 언론과 자치분권

3장 부산의 美

4장 기장의 美

5장 고향 그리고 삶터

 

지은이_ 임성원
쪽 수_ 272쪽
판 형_ 152*210
ISBN_ 978-89-6545-633-9 03600
가 격_ 20,000원
발행일_ 2019년 11월 8일
분 류_
사회과학 > 사회학
사회과학 > 언론학 
예술 > 미학

 

자치분권 시대의 로컬미학 - 10점
임성원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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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글동글봄 2019.11.14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이랑 배경이 잘 어울리네요^^

 

 

죽음의 마지막 문지방을 선하고 존엄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넘어가고 있다고 여기자. 아픈 몸들은 죽어야 낫지 않겠는가? 훗날 우리는 모두 ‘죽어야 낫는 병’에 걸릴 것이다. 그래서 죽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행운이다. _ 본문 중에서

 

 

 

*

행복한 인생 후반전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

 
죽음에 대한 에세이 『당당한 안녕: 죽음을 배우다』

이 책의 저자이자 한국다잉매터스 대표를 맡고 있는 이기숙 선생님과 함께 '잘 죽는 것(웰 다잉, well-dying)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우리는 왜 죽음을 생각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심리학자 카스텐바움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죽음 공부는 죽음이 아닌 삶을 다루는 것"

 

 

 

삶의 가장 마지막 과제인 죽음.
이기숙 선생님과 함께 노년기의 준비와 죽음을 통해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바랍니다.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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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요즘입니다.

겨울의 문턱, 여러분들의 11월은 어떤가요?

 

겨울하면 생각나는 것은 어떤 게 있을까요?

따끈한 어묵 국물?

김 모락모락 나는 호빵?

이불 속에서 만화책을 보며 까먹는 귤?

(그러고 보니 다 먹는 거네요. 허허허)

 

날이 추워진만큼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무언가'를 찾게 되는데요,

오늘은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줄

명랑음악극 <어중씨 이야기>의 공연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어중씨 이야기>의 주인공 한어중 씨를 소개합니다.

 

최영철 작가의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는 2014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중학교 교사였던 어중 씨가 도야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하루동안 겪게 되는 사람과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요, 

최영철 선생님께서 도요마을에 정착한 이후

실제 겪은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하네요. 

 

 

 

(더 자세한 책소개는 아래에 링크로 ▼)

 

 

지난 7월에는 안산에서,

8월에는 밀양에서 선을 보인 명랑음악극 <어중씨 이야기>!

드디어 부산에서도 공연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 일      시 : 2016년 11월 12일 / 11월 26일

예약문의 : 051-723-7203 

장      소: 부산 기장 차성아트홀 (기장군청 안)

 

 

 

 

(▼ 이전 공연 및 음악극<어중씨 이야기>에 대한 지난 포스팅입니다)

 

 

쌀쌀한 11월, 어중씨와 함께 마음을 데우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많이 놀러와주세요.

 

 

어중씨 이야기 - 10점
최영철 지음, 이가영 그림/산지니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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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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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수 2016.11.03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부산에도 왔군요! 연극으로 보고 싶네요:)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2화 ::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었다?! -부산 기장 죽성리·임랑포 왜성

 


 

 

“멀리 기차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며, 어쩌다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싹대는 갯마을.”

 

  난계 오영수(1909~1979)의 단편소설 <갯마을> 첫머리에서 이렇게 묘사한, 소설의 실제 배경이 된 마을은 부산 기장군 일광면 학리 또는 이을포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마을들과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이웃한 곳에 각각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와 장안읍 임랑포 마을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도시문명과는 거리를 둔 한적하고 외진, 그래서 더욱 평화로운 해안 포구죠.

 

  420여년 이런 마을에도 임진왜란의 광풍은 그냥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1592년 음력 4월 보름 부산 동래읍성을 함락한 왜군은 세 길로 나눠 북상하면서 이튿날 동쪽으로 기장을 거쳐 울산, 경주 등을 가차 없이 짓밟고 올라갔죠. 이후 왜군은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반격에다 조선 수군의 해상로 봉쇄 및 의병 봉기 등에 따른 배후 보급로 차단으로 수세에 몰리자 이듬해 4월부터 한강 이남으로 물러나 동남해안 일대에 성을 쌓고 장기전에 들어갔습니다. 이즈음 이곳 죽성리와 임랑포 마을에도 왜성을 남기게 됩니다.

 

■ 무명 조선 도공의 넋을 기리다

 

무명도공추모비(송중환 소름요 대표 제공) 

 

  죽성리 왜성 인근 서답골 또는 세답골이라 불리는 골짜기 한켠에 ‘소름요’라는 도자기 공방이 있다. 공방에서 해안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가마터 쪽으로 가면 ‘무명도공추모비’라고 새긴 비석이 서있다. 송중환 소름요 대표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 도공과 사기장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04년 5월 사비를 들여 세운 것이다. 송 대표는 이후 지역의 관심 있는 이들을 모아 조선사기장연구회를 만들고, 회원들과 함께 해마다 이 비석 앞에 차와 꽃을 올리는 추모제를 열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6세기부터 일본에선 차 마시는 풍습과 다도가 유행했다. 당시 100여년 동안 지속됐던 일본 전국시대의 내전을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휘하에 복속시킨 영주들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고 영토 확장의 야욕을 실현하려 조선을 침략한 전쟁을 일으킨 와중에도 나고야 진중에서 자주 다회를 열어 즐겼다고 한다. 이에 조선에 파병된 영주와 장수들은 조선 각지에서 수많은 도공과 사기장들을 경쟁적으로 붙잡아 일본으로 끌고 갔다. 이 때문에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도자기 파편

 

 

  황구 기장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에 따르면 기장지역은 오래 전부터 도자기 생산에 필요한 장인과 흙, 물, 가마 등 조건을 모두 갖춘 대표적인 생산지라고 한다. 황 소장은 “2000년대 초 기장군 장안읍 임랑포 바닷가에서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의 깨진 조각을 200여점 가량 수습한 적이 있다. 아마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도공들을 납치해가면서 도자기들도 함께 약탈해가다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사기장과 도공 등 포로들을 일본에 끌고간 왜군 영주와 장수들은 이들을 주로 자신의 고향에 강제이주시켜 평생 도자기를 구우며 살도록 했는데, 관련 기록이 주요 영주 집안에서 내려오는 가문서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다. 죽성리 왜성과 임랑포 왜성을 쌓고 주둔했던 왜군 장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와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는 모두 왜란 중 사기장과 도공들을 숱하게 붙잡아 끌고간 것으로 악명이 높다.

 

  7년 왜란 기간 동안 도공과 사기장 같은 장인 외에도 수많은 조선 민간인이 일본에 끌려갔다.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하나 일본 쪽 연구자들은 5만~6만명, 한국 쪽에선 10만~2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를 통해 포르투갈 노예상인들에게 팔려간 민간인까지 치면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 읍성·진성의 돌을 뽑아 왜성을 쌓다

 

두모포 진성

 

  “진중의 왜인들이 바야흐로 축성 공사를 일으켜 나무를 끌어오고 돌을 실어나르는 왜인이 도로를 메웠으며 옛 (기장)현의 성에서 돌을 반수 이상이나 뽑아내고 또 근처의 암석을 채취해 끊임없이 실어날랐다.”

 

  <선조실록>은 1595년 12월 죽성리 왜성 상황과 관련해 이런 기록도 남겼다. 왜군들이 죽성리 왜성을 증축하면서 조선 읍성과 수군 진성의 돌을 마구 뽑아다 썼던 것이다.

 

  성벽은 주로 화강암을 써서 70도 정도 경사지게 비스듬히 쌓았는데, 외성 일부 구간에서 수직으로 축조된 성벽이 드러나 이곳이 애초 조선 수군의 두모포 진성 남쪽 구간인 것으로 확인됐다. 왜군들이 조선의 진성 일부 구간을 편입시켜 왜성을 축조한 사례다. 왜성과 우리 고유 성곽의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전체적으로 죽성리 왜성은 청강천(신천천)의 자연지형과 해자를 통해 북서쪽의 외곽 방어망을 철저히 하면서 동쪽으로 죽성만 포구를 감싸안은 형태의 해안 요새로 보인다. 또 기존 조선 수군의 거점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그 거점을 파괴하는 이중효과까지 노렸다.

 

  부산 복천박물관은 2002년 도로개설 구간에 포함된 죽성리 왜성 본성 북쪽의 외성 일부분을 발굴조사했다. 여기서 띠 모양의 성곽터(4개)에 ‘스리바치’라는 일본 전국시대 조리기구와 상감청자·백자·도자 파편 등이 출토됐다.

 

■고리원전 이주단지에서 확인된 왜성 유적

 

 ▲ 임랑포 왜성

 

  2001년 중앙문화재연구원은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 일대 고리원전 주민 이주단지 예정터에서 발굴조사를 벌여 왜성 성곽터(3개)와 건물을 세우고 구덩이를 파냈던 흔적 등을 기와·도자기 파편 등의 유물과 함께 확인했다. 이 곳은 인근에 있는 고리원전의 추가 건설에 따라 장안읍 효암리 주민 50여가구가 집단 이주한 곳인데, 이주단지 터 조성 전 사전 지표조사에서 왜성 터 유구가 확인돼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임랑포 왜성 외곽부의 성터가 드러난 것이다.

 

  이주단지에 있던 외곽부 성은 고도가 높지 않고 임랑포 앞바다와 접해 있으나 해안 쪽으로 전망이 좋고 비교적 급경사를 이뤄 방어에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은 철도와 도로 건설, 이주단지 조성 등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고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왜성은 규모는 비교적 작지만 성곽과 해자, 왜성의 본 모습을 알 수 있는 여러 시설물의 기초가 아직 잘 남아 있는 편이다. 하지만 본성 일대조차 문화재나 공원구역 지정 등 어떤 보호장치도 없이 방치돼, 대부분이 잡목과 수풀 더미에 묻히고 주변의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되고 있어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더 이상 훼손을 막아 왜성 축성사를 이해하는 학술자료로서는 물론 아픈 민족사의 현장이라는 가치로 볼 때도 보존의 필요성은 충분해 보인다.

 

>> 3화에서 계속

 

*본 게시물의 순서와 책의 목차는 상이합니다.

*게시물의 내용은 책 본문의 내용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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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별과우물 2016.04.29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인에게 강제로 끌려 간 수많은 도공과 사기장이 평생을 도자기만 구웠다는 부분이 뭔가 마음 아픈 것 같습니다. 많은 민간인들이 노예상인들에게 팔려간 부분도 그렇구요. 잊지 말아야 할 역사네요 ㅠㅠ

  2. BlogIcon 잠홍 2016.04.29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이기도 했다는 것은 처음 들어봤어요. 왜성에 대해 배울수록 새로 알게 되는 점이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