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네에 있던 가게는 어디로 갔을까

 

  어린 시절부터 다니던 교회 앞에는 우정슈퍼라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예배만 마치면 그 곳으로 달려가 쌩(?)라면을 사서 부셔 먹곤 했다. 작은 크기에, 가게 안은 어두침침했지만, 그곳은 오랜 기간 우리에게 훌륭한 간식 조달처였다.

  그러다 교회 아래쪽에 큰 마트가 생겼다. 교회가 가파른 오르막길에 있어서 마트에 다녀오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점점 교회 앞의 작은 가게 대신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었다. 마트를 갈 때면 슈퍼 아저씨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다녀오곤 했다. 마트 봉다리를 들고 올라오다가 우정슈퍼 주인아저씨를 마주치면 왠지 모를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간의 정이고 뭐고 마트의 저렴한 가격이 우리의 죄책감을 이기곤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정슈퍼는 사라졌다. 주일마다 심심한 우리의 입을 책임졌던 그 슈퍼가 사라지고 한동안은 마음이 허전했다.

  중소상공인살리기운동 13년의 기록을 담은 골목상인 분투기를 편집하며, 사라진 우정슈퍼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글을 읽으며 동네 슈퍼마켓 한 곳에 도매유통상인들도 연관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가게가 사라지면 그 곳에 납품하던 도매업자도 거래처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다. 슈퍼마켓 주인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동네 슈퍼마켓 거래처를 잃게 된 납품업자들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골목상인 분투기의 이정식 저자는 부산 해운대에서 소매점에 식품을 공급하던 납품업자였다. 그러던 중 2000년 해운대에 이마트가 들어오고, 6년 후 홈플러스 SSM(기업형 슈퍼마켓)이 입점하자 주변 지역 상인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평범한 중소상인이었던 저자는 이대로 가만히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거리로 나섰다. 단식과 삭발, 거리 투쟁, 대형마트 앞 집회, 납품업체 차량 시위 등의 방법으로 철옹성 같은 대기업에 맞서 목소리를 냈다. 저자는,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보는 그 일들을 13년간 해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왜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이정식 저자의 글을 읽은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삭발을 해야, 단식을 해야 그제야 겨우 상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니, 중소상인들에게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원고를 읽으며 대형마트의 편리함을 몸소 누리고 있는 소비자로서 고민이 되는 시간이었다. 동네 상권의 유통 생태계가 대기업에 의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알게 되었지만, 일상에서 대형마트의 편리함과 가격의 유혹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모른 척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의식적으로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마트와 슈퍼마켓, 전통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겠다.

  크고, 싸고, 편리한 것만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지 않으면 좋겠다. 골목을, 지역 자본을, 작은 것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거대한 자본에 맥없이 모두가 굴복해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기대한다.

 

| 글 강나래 산지니 편집부

*출판저널 514호 2019년 송년호에 실린 글입니다.

 

 

 

 

골목상인 분투기 - 10점
이정식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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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디터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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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글동글봄 2020.01.02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본은 우리가 주인으로 살아가게 두지 않는 것 같아요. 작은 가게들이 많으면 그곳에 주인들이 살아가는데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그곳에 주인들 대신 직원들이 들어서니까요. 그렇지만 또 그 직원들도 우리 이웃이고, 복잡한 문제지만. 중소상인들이 튼튼해지길 바랍니다.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우리 시대의 민낯을 마주하다
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산지니 정선재 편집자

 

영화나 드라마는 편집이라는 과정이 있다. 극 중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마주한 시간들은 편집을 통해 ‘몇 년 뒤’라는 자막과 함께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이내 성공과 기쁨의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네 삶에도 이러한 편집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은 두 시간짜리 영화가 될 수 없다. 기쁨의 시간을 걸어가는 만큼 슬픔의 시간도 오롯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몫이다.

 

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의 소설들은 영화로 치자면 편집되거나 빠르게 지나갈 법한 고단한 삶의 이야기들로 이뤄졌다. 마치 ‘이게 진짜 우리 시대의 민낯이야’라고 이야기하듯 말이다. 이번 소설집은 총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된바 청소년, 청년, 중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현실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독일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오게 된 고급 프라이팬이 그것을 구입한(혹은 주운) 사람들의 기구한 사연을 목격하게 되는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은 세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돼 한국 사회의 그늘을 응시한다. 「황혼의 엘레지」는 공원의 노인들에게 박카스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안동댁의 이야기로, 한때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노인의 삶과 복지의 취약성을 고발하는 가운데 노인의 성(性)이라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단편「마왕」과 중편 「핑크로드」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상처가 한 인간의 삶을 서서히 얼룩지게 만들거나, 오랫동안 이어져온 사랑이 윤리적 금기를 넘어서 헤아릴 수 없는 심연 속에 놓이게 한다.

 

빛이 사그라지지 않는 도심의 밤, 그 화려한 불빛 속 현실의 그늘과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둡고 우울한 이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위로와 따뜻함을 얻는 건 왜일까? 나는 그것을 작가 오영이만의 독특한 관찰력과 문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원고를 봤을 때도 이 점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우리 사회의 음지를 바라보는 따뜻한 관찰력과 이를 풀어내는 재기발랄한 문체는 다소 무거운 주제들도 쉬이 읽히도록 하며 무겁지만 가벼운, 혹은 가볍지만 무거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결국 인생이란 주방의 사소한 요리 하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_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중에서 (p.12)

 

오늘도 손에 쥔 핸드폰 속으로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엄지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몇 번 내리다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 꺄르르 웃으며 쉼 없이 재잘거리는 여학생들, 부채로 휘휘 파리를 쫒는 과일가게 아저씨가 보인다. 크고 화려한 세상의 이야기 속에서 작고 소박한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이 전하는 사소하지만 진짜 삶의 이야기가 아닐까?

 

 

 

『출판저널』 2016년 9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 10점
오영이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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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수 2016.09.09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만든다고 수고했어요 짝짝^^!

  2. BlogIcon 별과우물 2016.09.12 0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 많으셨어요~ ^^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복잡해져가는 사회와 혼탁한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잡이

『한비자』, 『한비자,제국을말하다』

 

 정선재 | 산지니 편집자

 

 

 

 

 『맹자, 시대를 찌르다』가 나온 지 근 1년여 만에 산지니의 새로운 고전오디세이 시리즈가 출간됐다. 그것도 두 권이 동시에. 그동안 고전오디세이는 ‘논어’, ‘중용’, ‘삼국유사’, ‘맹자’ 등 현대 사회에 걸맞은 고전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번에 출간된 고전오디세이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책은 통치학의 영원한 성전으로 불리는 ‘한비자’로 채워졌다. ‘한비자’는 치열한 경쟁과 암투, 부정과 모순 따위가 빚어내는 인간의 갖가지 행태들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점점 복잡해져가는 사회와 혼탁한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고전이다. 무엇보다 유교적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고전 번역서인 『한비자』와 한비자로 한국 사회를 이야기한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 처음 이 두 원고를 받았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고전과 관련된 원고를 맡아본 적 없었던 나에게 500페이지가 넘는 『한비자』는 오르기 힘든 높은 산처럼 느껴졌고,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는 시의성을 가진 원고라 책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업이 진행될수록 이 두 권의 책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은 책에 대한 이유 없는 믿음과 역자이자 저자이신 정천구 선생에 대한 신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비자’는 원문에 담긴 함의가 넓고 깊어서 그 의미를 단박에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에 정천구 선생은 명료한 번역으로 원문과 주석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여 독자 누구나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는 한비자의 해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며 비판과 통찰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한비자’를 맹목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현재를 보는 꼬투리로 삼으며 재해석한 부분은 현 시대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더없이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졌으며 인간관계의 모순과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 이러한 시대에 ‘한비자’ 읽기를 권한다. 엄정한 기본과 원칙을 기반으로 부국강병을 논하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를 통해 인간사의 실상과 이치를 깨닫고,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를 통해 오늘을 진단하여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 초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난세의 시대를 유유자적 돌파할 수 있는 밑천을 마련하길 바란다.

 

 

『출판저널』 2016년 5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한비자 - 10점
한비 지음, 정천구 옮김/산지니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 - 10점
정천구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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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별과우물 2016.05.13 0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판 저널에 실리게 되었군요. 축하드려요! ^^

  2. BlogIcon 잠홍 2016.05.19 0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ㅎㅎ 공감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의 목소리를 통해 만나니 두 책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