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민련 부경연합 하태연 고문께서 지난 12일 향년 8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하태연 선생님은 한국전쟁 당시 경남도당 북부지구당 위원장을 하셨던 박판수 선생과 결혼하여 두 자녀와 함께 입산해 여성 빨치산 활동을 하시다 오랜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쳐온 선생님의 삶을 기리기 위해 장례를 '통일애국열사 조국통일장'으로 치룬다고 합니다. 오늘이 발인입니다. 장지는 양산 솥발산 묘역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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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버지 박판수』(안재성)해방과 더불어 5년여 동안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던 박판수, 하태연 부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이념의 옮고 그름을 떠나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뚫고 지나온 한 가족의 역사를 딸의 시각으로 바라본 책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10개월 동안 토벌대에 쫓긴 부인 하태연

1926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하태연은 개화된 유학자를 아버지로 두어 그 시대에는 드물게 보통학교까지 졸업한 여성이었다. 17세 꽃다운 나이에 박판수와 결혼하여 남편의 영향으로 민족의식, 사회주의 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전쟁 중 인민군 치하에서는 진성면 여성동맹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국군이 다시 들어오자 우익의 보복극을 피해 지리산으로 피난하였다. 이때 여섯 살짜리 딸과 세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함께 입산하게 되는데, 이후 10개월 동안 아이들과 함께 토벌대에 쫒기는 생활을 계속하면서 혹독한 겨울을 나기도 하였다. 결국 아이들을 맡아줄 곳을 찾아 하산하였다가 체포당하여 8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다.
 

출옥 후에는 흩어진 아이들을 되찾아 생계를 꾸리면서 남편의 옥바라지에 힘썼으며, 1994년 범민련 부산경남연합이 발족한 후에는 통일운동에 전념하였다. 1997년에는 범민련 활동을 하다가 71세 나이로 구속까지 당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였으나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요양 중이다. 산 생활과 감옥살이, 옥바라지 등으로 몸은 고생스러웠을지언정 하태연은 지금도 자신의 삶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한다.

 

“나는 존경하는 네 아버지를 만나 영광스럽게 살았다. 감옥살이를 했지만 내 생애는 영광뿐이다. 나 죽거든 우리 엄마 고생만 했다고, 불쌍하다고 절대 말하지 마라. 내가 살아온 길은 떳떳하고 영광스러운 길이었다. 수십 년 보따리장사를 하며 힘들게 살았지만 조금도 부끄럽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 죽거든 절대 엄마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하태연이 딸에게 들려준 말)

 

사천 고향집에서 가족과 함께. 앞줄 가운데가 하태연이다. 부자는 아니었으나 주변의 존경을 받는 화목한 가정이었다.

 

- 나의 아버지 박판수』 보도자료 중에서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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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치 못한 역사의 빈틈 메우고 싶었어요"
'부산·경남 빨치산' 관련 책 2권 출간한 안재성 씨

 

안재성 (출처 : 부산일보)

부산 경남에서 활약한 빨치산의 역사를 구술한 서적 두 권이 잇따라 나왔다. 하나는 지난 4월에 나온 '신불산'이고, 다른 하나는 이달 출간된 '나의 아버지 박판수'다.

두 책은 부산 출판사(산지니)에 의해 출간됐지만 정작 저자는 지역과 인연이 없는 작가, 안재성(51) 씨다. 지역에서조차 주목받지 못한 빨치산 구술서를 경기도 이천에서 농사 짓던 그가 애써 펴낸 까닭이 뭘까?

"노동운동사에 줄곧 관심을 뒀습니다. 특히 일제시대 노동운동을 오래 탐구했는데, 노동자들이 해방 후 심하게 탄압 받는 과정에서 빨치산이 된 경우가 많더군요."

그의 지적 호기심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구술 작업은 경기도∼부산의 거리감부터 좁혀야 했다. "고속철도 덕택에 반나절 거리가 됐다고 하지만 수시로 부산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신불산'의 주인공인 구연철 선생으로부터는 하루 2∼3시간씩 10여 차례 구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올 초에는 아예 한 달을 부산에서 보냈다. 현장 확인을 위해 구 선생을 따라 신불산을 찾은 것도 한두 차례가 아니었다.

"그래도 구 선생 작업은 수월했습니다. 발품만 팔면 됐으니까요." 문제는 '나의 아버지 박판수'의 박판수 선생이었다. "지난 1992년 작고하셨어요. 그의 아내인 하태연 선생도 치매에 걸려 구술을 받기가 불가능했습니다." 다행히 큰딸(현희)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딸의 기억만으로 책을 완성할 수는 없었다.

"대전의 국가기록원을 수시로 들락거렸습니다." 하지만 빨치산 기록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가족이 아니면 열람이 불가능했다. 가족을 대동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자료가 많지 않았어요. 빨치산 재판기록은 아예 남아 있지 않고, 그나마 수감 중 탈옥한 직후의 재판기록이 있었지요."

처음에는 4명을 선정했다. 그러나 작업이 너무 힘들어 두 명은 지금 포기한 상태라고 했다. "혹 여력이 된다면 지역에서 관심을 가져 주세요."

그는 빨치산 구술이 과거를 단순히 기록하는 차원과는 다르다고 했다. 이념 때문에 온전하지 못한 역사의 빈틈을 메우는 데 이들의 육성이 어느 정도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일생을 바친 현대사의 증인들 입니다. 지역사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고요." 그는 생존한 빨치산이 전국적으로 30여 명에 불과한 것도 구술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잘 팔리는'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쓴 10여 권 중 어떤 책도 절판된 것은 아직 없다. 그만큼 주제가 무겁고 오랫동안 곱씹을 책이라는 얘기다. 사실 노동을 주제로 그처럼 일관된 글쓰기를 해 온 작가도 드물다. 소설 '파업'(1989), '경성 트로이카'(2004), '한국노동운동사 1, 2'(2008), '이현상 평전'(2007), '박헌영 평전'(2009) 등이 죄다 그랬다.

"빨치산을 미화하려는, 그들의 사상에 동조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무엇인가를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지요."

그는 다음 주제로 한진중공업의 전 노조위원장인 고 박창수를 다룰 생각이라고 했다.

<부산일보> 백현충 기자 기사로 바로 가기


신불산 - 10점
안재성 지음/산지니

나의 아버지 박판수 - 10점
안재성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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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②] <나의 아버지 박판수>

안재성 씀, 산지니 펴냄, 2011년 10월, 246쪽, 1만3000원

'국민 여동생' 문근영. 하지만 그 이름과 함께 그녀를 쫓아다니는 것은 '빨치산의 외손녀'라는 낙인이다. 지금도 '빨갱이'라는 낙인은 시퍼렇게 살아 있다. 그 낙인 속에 자란 빨치산의 자녀들이 본 부모님은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빨치산 출신으로 부산지역에서 통일운동을 해온 박판수·하태연의 딸 박현희가 부모님의 삶을 증언한 일대기이다.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지리산에 들어가 총알 세례를 피해 다녔고, 7살 때 엄마가 체포당한 뒤로 남의 집살이를 전전해야 했던 그녀. 이들의 삶은 불행한 현대사의 한복판을 뚫고 살아온 한 가족의 역사이며, 지금도 분단과 이념갈등 속에서 크고 작게 반복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최규화 (realdemo)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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