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는 지난 3월 13일~18일 한국을 방문한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의 저자 무스토 교수의 강연에 함께했습니다.

3월 13일 (수) 진주: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및 SSK연구팀(정성진 교수)
3월 14일 (목) 부산: 오후 3시, 동아대학교 맑스엥겔스연구소(강신준 교수)

3월 18일 (월) 서울: 정치경제연구소 대안(곽노완 교수)

진주, 부산에 이어 서울에서 열린 강연회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초청 강연회-진주, 부산 편)

18일 당일 아침에는 <한국일보> 강윤주 기자와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한국일보> 인터뷰 현장

통역해주신 분의 종이가 빼곡히 채워졌네요. 인터뷰는 1시간 조금 넘게 진행되었습니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한국일보>에서 곧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두 가지 메세지가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노년에) 선택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존의 연구를 발행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공부를 좀 더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마르크스는 공부를 계속하는 걸 선택했는데요. 이건 마르크스의 자기 비판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기존 생각을 비판하고 생각을 확장하려고 하는 연구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맑스가 왜 이렇게 갔냐면 자본론을 공부하면서 자본주의라는 게 자본주의 표상을 영국이나 유럽뿐만 아니라 확장해서 좀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남북 전쟁 이후에 미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통계 자료를 모으고 거기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1861년 러시아의 공군주의가 끝나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마르크스는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절대적인 발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의 연구 영토를 확산시켜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전집이 있고 그걸 어떻게 읽고 도움을 받을까 하는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원고와 글들을 읽을 수 있고 기존에 글도 선험주의로 쓰인 게 많으니까 그게 아니란 게 분명해졌습니다. 마르크스가 자신을 의심하고 회의를 가지고 질문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20세기 장악했던 경제주의적인 마르크스를 오히려 우리가 비판해야 할 상황입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활짝 웃는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이날 오후 4시에는
<정체경제연구소 대안>에서 마르셀로 무스토 강연이 있었습니다. 

연구소를 찾아간 건 저도 처음이었는데요. 
정책연구와 정당 활동 등 다양한 활동 경력을 가지신 분들이 이곳 연구소를 거점 삼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셨습니다. 팟캐스트 "이럿타"도 한다고 하니 한 번 들어보길 추천드려요.

강연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자리는 꽉 찼고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금민 소장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이후 마르셀로 무스토의 열띤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은 청중 질문 포함해서 세 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요약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지금껏 마르크스는 생애 연구와 업적이 함께 병행되지 못한 점이 있었습니다. 교조주의(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역사적 정세를 무시하고 그 원칙론만을 고수하려는 공식주의를 일컫는 말)로 마크스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경향으로 지금껏 이루어져 왔습니다. 여러 텍스트를 섬세하게 다루지 못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투쟁적인 마르크스는 청년기에 해당합니다. 맑스의 노년의 시기를 조명한 이유는 마르크스는 노년기에도 연구를 활발히 하였고 청년기에 작업했던 연구를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본과 노동계급 투쟁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 폭넓게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를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노년의 시기를 연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첫 번째 예시로 1848년에 공산당선언은 마르크스의 청년기에 쓴 내용이고 이후 이건 역사적 사료로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본 1권은 실제로 불어로 번역할 때 많은 부분을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를 글을 읽을 때 최종적으로 남길 부분과 수정될 부분이 어떤 것인지 고려해서 읽을 부분이 필요합니다.


마르크스는 생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지구와 자연을 파괴한다고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현재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생태와 관련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기자였던 시절에 썼던 글은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청년기에 돈을 벌기 위해 미국 <트리뷴>지에 유럽중심주의 글을 짧게 쓴 일에 대해 맑스 전체 연구에 어느 정도 무게를 가질지 의문입니다(마르크스는 유럽중심주의의 백인유럽남성 학자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또 마르크스는 여성해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요. 자본주의가 여성을 억압하고 있지만 여성이 개별주체로 사회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사진제공: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강연 끝나고 책에 사인 받는 독자

오늘날 마르크스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으로 새롭게 마르크스를 만날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날 참석해주신 <노동자연대> 신문에 정선영 기자님의 서평 덧붙입니다.


서평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
풍부한 자료로 생생히 그린 마르크스의 마지막 2년

정선영 280호 | 2019-03-27 

기존 마르크스 전기들에서 그의 말년을 자세히 다룬 내용은 찾기 힘들다. 그가 말년에는 정치 활동을 거의 중단한 것처럼 서술하는 경우도 많다.

흥미롭게도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은 마르크스 말년의 삶과 투쟁을 다뤘다. 저자 마르셀로 무스토는 캐나다 요크대학교의 사회학과 부교수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기초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는 여러 책과 마르크스의 서신, 노트 필기 등을 종합해 마르크스의 말년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르크스는 이미 1880년 여름 의사에게서 “어떤 종류의 일도 삼가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신경계를 회복시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다. 그의 아내 예니 폰 베스트팔렌은 암으로 고통받았고, 마르크스는 자신보다 더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를 돌봐야 했다. 아내는 1881년 말에 먼저 세상을 뜬다.

이 책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르크스가 지적 호기심과 이론적 통찰력을 잃지 않고, 새로운 연구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마르크스는 인류학과 수학을 탐구했는데, 인류학 연구는 《민속학 노트》라는 책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서 여성 차별의 기원, 국가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인종차별적인 다른 인류학 보고서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확인할 수 있다. 《민속학 노트》는 엥겔스가 마르크스 사후에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쓰는 기초가 된다.

마르크스는 말년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주의 깊게 보며 러시아에 대한 탐구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무스토의 책에서는 특히 러시아 농촌 공동체(옵시나)와 관련한 내용이 꽤 자세하게 서술된다.

당시 러시아에서 혁명적 인민주의자들은 농촌 공동체가 사회주의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본 반면,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농촌 공동체는 해체돼야 할 운명이라고 주장해 논쟁이 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마르크스는 1882년에 러시아어로 출간된 《공산당 선언》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러시아에서의 혁명이 서유럽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호가 되고, 그리하여 양자가 서로를 보완한다면, 현재의 러시아적 토지 공동 소유는 공산주의적 발전의 시작점으로 봉사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은 마르크스가 스탈린주의 식의 기계적인 역사 발전 5단계설과 같은 도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마르크스는 진정 국제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혁명을 전망했던 것이다.

오해 걷어내기

일각에서는 마르크스가 ‘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이 있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례와 더불어, 마르크스가 건강을 위해 요양했던 알제리에서의 경험만 봐도 그런 주장이 오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알제리에서 쓴 편지들에서 아랍인들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묘사하지만, 유럽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과 학대에 대해서는 격한 분노를 표현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온갖 왜곡을 비꼬며 이렇게 말했다 “확실한 것은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거요.” 마르크스 사후에 마르크스에 대한 곡해는 더욱 발전했는데,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오해을 걷어 내는 데 도움을 준다.

미국의 언론인 존 스윈튼이 말년의 마르크스를 인터뷰한 내용은 유명하다. 그는 마르크스에게 “존재의 근본 법칙에 관해” 물었다. 마르크스는 잠시 고민을 한 후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답했다. “투쟁이죠!” 

마르크스는 기력이 존재하는 날까지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나는 내 뒤를 이어 계속 공산주의 선동을 할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말년의 마르크스에게서 영감을 얻고 싶다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런저런 왜곡에 맞설 근거들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참고로 이 책은 프랑스 사회주의노동당연맹의 선거 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과 벌인 논쟁을 소개한다. 이때 마르크스는 강령에 최저임금과 관련한 항목이 포함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데 혹여라도 당시의 논쟁을 맥락에서 떼어 내 오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임금 인상 요구를 중시했다. 그런데 이 강령에는 “상비군 해체, 인민 무장” 등과 같은 요구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런 혁명적 강령에 최저임금 제도를 포함시키는 것이 걸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에 반대했던 것이다.

<원문읽기>


 

책 소개 바로가기

Posted by 동글동글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서평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 풍부한 자료로 생생히 그린 마르크스의 마지막 2년

정선양

280호 | 2019-03-27 |

 

기존 마르크스 전기들에서 그의 말년을 자세히 다룬 내용은 찾기 힘들다. 그가 말년에는 정치 활동을 거의 중단한 것처럼 서술하는 경우도 많다.

흥미롭게도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은 마르크스 말년의 삶과 투쟁을 다뤘다. 저자 마르셀로 무스토는 캐나다 요크대학교의 사회학과 부교수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기초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는 여러 책과 마르크스의 서신, 노트 필기 등을 종합해 마르크스의 말년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마르셀로 무스토 지음| 강성훈, 문혜림 옮김 | 산지니 | 2018년 | 235쪽 | 20000원

 

마르크스는 이미 1880년 여름 의사에게서 “어떤 종류의 일도 삼가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신경계를 회복시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다. 그의 아내 예니 폰 베스트팔렌은 암으로 고통받았고, 마르크스는 자신보다 더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를 돌봐야 했다. 아내는 1881년 말에 먼저 세상을 뜬다.

이 책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르크스가 지적 호기심과 이론적 통찰력을 잃지 않고, 새로운 연구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마르크스는 인류학과 수학을 탐구했는데, 인류학 연구는 《민속학 노트》라는 책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서 여성 차별의 기원, 국가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인종차별적인 다른 인류학 보고서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확인할 수 있다. 《민속학 노트》는 엥겔스가 마르크스 사후에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쓰는 기초가 된다.

마르크스는 말년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주의 깊게 보며 러시아에 대한 탐구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무스토의 책에서는 특히 러시아 농촌 공동체(옵시나)와 관련한 내용이 꽤 자세하게 서술된다.

당시 러시아에서 혁명적 인민주의자들은 농촌 공동체가 사회주의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본 반면,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농촌 공동체는 해체돼야 할 운명이라고 주장해 논쟁이 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마르크스는 1882년에 러시아어로 출간된 《공산당 선언》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러시아에서의 혁명이 서유럽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호가 되고, 그리하여 양자가 서로를 보완한다면, 현재의 러시아적 토지 공동 소유는 공산주의적 발전의 시작점으로 봉사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은 마르크스가 스탈린주의 식의 기계적인 역사 발전 5단계설과 같은 도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마르크스는 진정 국제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혁명을 전망했던 것이다.

 

오해 걷어내기

일각에서는 마르크스가 ‘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이 있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례와 더불어, 마르크스가 건강을 위해 요양했던 알제리에서의 경험만 봐도 그런 주장이 오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알제리에서 쓴 편지들에서 아랍인들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묘사하지만, 유럽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과 학대에 대해서는 격한 분노를 표현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온갖 왜곡을 비꼬며 이렇게 말했다 “확실한 것은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거요.” 마르크스 사후에 마르크스에 대한 곡해는 더욱 발전했는데,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오해을 걷어 내는 데 도움을 준다.

미국의 언론인 존 스윈튼이 말년의 마르크스를 인터뷰한 내용은 유명하다. 그는 마르크스에게 “존재의 근본 법칙에 관해” 물었다. 마르크스는 잠시 고민을 한 후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답했다. “투쟁이죠!” 

마르크스는 기력이 존재하는 날까지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나는 내 뒤를 이어 계속 공산주의 선동을 할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말년의 마르크스에게서 영감을 얻고 싶다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런저런 왜곡에 맞설 근거들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참고로 이 책은 프랑스 사회주의노동당연맹의 선거 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과 벌인 논쟁을 소개한다. 이때 마르크스는 강령에 최저임금과 관련한 항목이 포함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데 혹여라도 당시의 논쟁을 맥락에서 떼어 내 오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임금 인상 요구를 중시했다. 그런데 이 강령에는 “상비군 해체, 인민 무장” 등과 같은 요구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런 혁명적 강령에 최저임금 제도를 포함시키는 것이 걸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에 반대했던 것이다.

 

원문읽기: <노동자 연대> https://wspaper.org/article/21847

Posted by 동글동글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