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 풍부한 자료로 생생히 그린 마르크스의 마지막 2년
정선양
280호 | 2019-03-27 |
기존 마르크스 전기들에서 그의 말년을 자세히 다룬 내용은 찾기 힘들다. 그가 말년에는 정치 활동을 거의 중단한 것처럼 서술하는 경우도 많다.
흥미롭게도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은 마르크스 말년의 삶과 투쟁을 다뤘다. 저자 마르셀로 무스토는 캐나다 요크대학교의 사회학과 부교수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기초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는 여러 책과 마르크스의 서신, 노트 필기 등을 종합해 마르크스의 말년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마르셀로 무스토 지음| 강성훈, 문혜림 옮김 | 산지니 | 2018년 | 235쪽 | 20000원
마르크스는 이미 1880년 여름 의사에게서 “어떤 종류의 일도 삼가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신경계를 회복시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다. 그의 아내 예니 폰 베스트팔렌은 암으로 고통받았고, 마르크스는 자신보다 더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를 돌봐야 했다. 아내는 1881년 말에 먼저 세상을 뜬다.
이 책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르크스가 지적 호기심과 이론적 통찰력을 잃지 않고, 새로운 연구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마르크스는 인류학과 수학을 탐구했는데, 인류학 연구는 《민속학 노트》라는 책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서 여성 차별의 기원, 국가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인종차별적인 다른 인류학 보고서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확인할 수 있다. 《민속학 노트》는 엥겔스가 마르크스 사후에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쓰는 기초가 된다.
마르크스는 말년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주의 깊게 보며 러시아에 대한 탐구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무스토의 책에서는 특히 러시아 농촌 공동체(옵시나)와 관련한 내용이 꽤 자세하게 서술된다.
당시 러시아에서 혁명적 인민주의자들은 농촌 공동체가 사회주의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본 반면,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농촌 공동체는 해체돼야 할 운명이라고 주장해 논쟁이 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마르크스는 1882년에 러시아어로 출간된 《공산당 선언》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러시아에서의 혁명이 서유럽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호가 되고, 그리하여 양자가 서로를 보완한다면, 현재의 러시아적 토지 공동 소유는 공산주의적 발전의 시작점으로 봉사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은 마르크스가 스탈린주의 식의 기계적인 역사 발전 5단계설과 같은 도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마르크스는 진정 국제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혁명을 전망했던 것이다.
오해 걷어내기
일각에서는 마르크스가 ‘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이 있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례와 더불어, 마르크스가 건강을 위해 요양했던 알제리에서의 경험만 봐도 그런 주장이 오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알제리에서 쓴 편지들에서 아랍인들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묘사하지만, 유럽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과 학대에 대해서는 격한 분노를 표현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온갖 왜곡을 비꼬며 이렇게 말했다 “확실한 것은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거요.” 마르크스 사후에 마르크스에 대한 곡해는 더욱 발전했는데,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오해을 걷어 내는 데 도움을 준다.
미국의 언론인 존 스윈튼이 말년의 마르크스를 인터뷰한 내용은 유명하다. 그는 마르크스에게 “존재의 근본 법칙에 관해” 물었다. 마르크스는 잠시 고민을 한 후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답했다. “투쟁이죠!”
마르크스는 기력이 존재하는 날까지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나는 내 뒤를 이어 계속 공산주의 선동을 할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말년의 마르크스에게서 영감을 얻고 싶다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런저런 왜곡에 맞설 근거들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참고로 이 책은 프랑스 사회주의노동당연맹의 선거 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과 벌인 논쟁을 소개한다. 이때 마르크스는 강령에 최저임금과 관련한 항목이 포함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데 혹여라도 당시의 논쟁을 맥락에서 떼어 내 오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임금 인상 요구를 중시했다. 그런데 이 강령에는 “상비군 해체, 인민 무장” 등과 같은 요구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런 혁명적 강령에 최저임금 제도를 포함시키는 것이 걸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에 반대했던 것이다.
'기타 > 언론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일보]-[문화] “마르크스, 정치적으로만 소비… 환경ㆍ여성 등 오늘날 문제에 맞닿아” (0) | 2019.04.02 |
---|---|
[부산일보]-[문화]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 정상천 국가균형발전위 과장 “유럽서 27년간 독립운동, 부산 출신 서영해 기억해주세요” (0) | 2019.04.02 |
[세계일보]-[문화] ‘파리의 잊힌 독립운동가 서영해’ 전기 나왔다 (0) | 2019.03.27 |
[OBS NEWS]-[문화] [새로 나온 책] 독립운동, 그 위대한 여정 (0) | 2019.03.27 |
[국제신문]-[문화] 조봉권의 문화현장 <49>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인터뷰 (0) | 2019.03.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