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실버 편집자입니다.

여러분, 혹시 영화 좋아하시나요?

 

요즘 힘들고 지친 분들이 많아서인지 '리틀 포레스트' 같은 아름다운 영상미를 가진,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은데요.

 

 

류준열 배우님... 사,, 아니 좋아합니다♡

 

 

어마어마한 영상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와서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진재운 감독님의 '물의 기억'입니다!

 

사실 우연히 영화 '물의 기억'의 예고편을 보고 '영상미가 참 뛰어난 작품이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요, 감독님 이름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더라구요...?!

 

알고 보니 산지니출판사에서

<백두산에 묻힌 발해를 찾아서> <한반도 환경대재앙, 샨샤댐>

이렇게 두 권의 책을 내신 저자분이셨어요. (이런 우연이!)

 

 

'물의 기억' 포스터

 

'물의 기억'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비밀스러운 자연의 법칙을 따라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영화라고 해요.

 

"물은 모든 걸 기억한다"는 말 들어 보셨죠.

영화 속에서는 물의 기억에 담긴 자연과 생태계의 신비로운 기록들을 따라가고, 봉하 마을의 아름다운 사계절과 故 노무현 대통령의 원대한 비전을 마주치게 된다고 합니다.


고향으로 내려온 노무현 대통령이 ‘생명 농법’을 시작하며 꿈꿨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궁금하시다면 영화로 함께 만나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의 기억' 스틸컷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릴 때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복원시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것이 제일 좋겠다” 


 

- <물의 기억> 중 故 노무현 대통령

 

 

 

 


 

표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책 소개로 이동합니다!

 

 

물의 기억 예고편 바로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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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피학살자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하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와 유해발굴 사업을 주도해온 노용석 교수가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과정을 밝히고, 더불어 피학살자들의 유해발굴 과정과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국가폭력의 기원과 과정을 ‘뼈’와 ‘발굴’이라는 요소를 통해 접근한다는 것이다. 유해발굴은 법의학적 기술을 동원해 땅속에 묻혀 있던 유해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 이상으로, 한 사회의 기억과 기념 정치의 상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표상이 된다. 유해발굴의 주체와 구체적 방법이 국가폭력 사건의 본질과 위상을 해당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해발굴의 과정을 현장에서 얻게 된 풍부한 사례와 자료에 이론을 더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더불어 유해발굴의 의미를 단순히 가족의 시신을 발견하는 ‘좁은 단위’에서 국가와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하는 ‘넓은 단위’로 확장하고,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서 잊혔던 ‘비정상적 죽음’을 정치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상으로서 나타낸다.









민간인 학살의 개념과 과거사 청산의 의의부터

풍부한 피학살자 유족들의 증언, 생생한 유해발굴 과정까지…

발로 뛴 지식인의 기록


  노용석 교수는 2006년부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주관한 13개 유해발굴을 주도했고, 2011년부터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에 참여해 한국전쟁기 국가폭력의 진상 파악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연구범위를 한국 사회로부터 라틴아메리카 사회까지 확장하여 세계적 차원에서 국가폭력의 치유와 상징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간다. 「서론」에서는 죽음, 의례의 정의부터 과거사 청산의 의의와 유해발굴이 성행하는 이유까지 과거사 청산과 유해발굴에 대한 배경 지식을 소개한다. 1장「시체를 찾는 ‘귀신들’」에서는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 개요와 규모, 형태에 대해 상세히 밝힌다.  2장 「유해의 수습과 새로운 공포」와 3장 「약화된 ‘공공의 비밀’과 유해발굴의 다양화」에서는 민간인 학살 이후 이념의 대립으로 쉽지 않았던 유해발굴의 과정과 4.19 혁명 이후에 간헐적으로 일어났던 유해발굴의 과정을 다룬다. 4장 「국가와 유해발굴」, 5장 「사회적 기념으로의 전환」, 6장「위계화된 죽음과 사회적 기념의 국가주의화」에서는 노무현 정부 이후 국가 주도하에 이루어졌던 유해발굴과 유해발굴이 사회적인 행위로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 보론 「라틴아메리카 과거사 청산과 유해발굴」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유해발굴 사례를 들며 고민의 범위를 넓힌다.









왜 지금,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이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가?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게 과거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되었던 피해자들의 유해가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으며, 그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러한 ‘원한’을 사회에 그대로 남겨둔 채 우리는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또한 사회의 ‘원한’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항상 새로운 법적 장치의 보완과 같은 활동일까? 

_ p.13 「머리말」에서

 

 

 

 




  노무현 정부 이후 ‘과거사 청산’ 법 개정이 본격화되었고, 2005년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공권력의 남용으로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규명하였다. 이후 유해발굴 작업은 몇 년 동안 멈춰 있었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는 과거사 청산 작업이 다시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금 이 시점에 유해발굴의 필요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유해발굴을 위한 법적 장치의 보완도 중요하지만 유해발굴이 사회적 기념으로서 전환되는 행위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유해발굴은 국가만의 획일적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현재까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생각해보고,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역사와 그 회복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걸어갈 길을 찾을 수 있다.



[책 속으로]


 

 

 

 

p.45 ) 학살과 희생은 크게 ‘우연성’과 ‘고의성’이라는 측면에서 구분할 수 있다. 즉 학살은 ‘의도된 정책 하에서 자신들의 사상 및 정책과 반대되는 이들에 대한 살해’를 말한다. 주로 이러한 학살은 규모면에서 대량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의 ‘대량 학살(massacre)’의 개념과 일치하고, 국가와 같은 거대 권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53 )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사회의 학살에 대한 개념은 ‘양민’에 고정되어 있었다. 즉 ‘양민’과 ‘민간인’의 범주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때 ‘양민’이라 함은 ‘착한 백성’, 즉 좌익혐의가 전혀 없는 깨끗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전후해 학계 및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학살의 범주를 ‘민간인’으로 재규정했으며, 이때 ‘민간인’은 ‘무장하지 않은 비전투요원’의 범위로서 좌익 혐의자라 할지라도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참하게 학살된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다. 


p.208 ) 2006년부터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 이외 국가기관에 의해 수행된 다수의 유해발굴이 있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청산을 주요 개혁과제로 공포하면서 각종 과거사 청산 관련 유해발굴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발굴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과거사정리기본법 이외 독자적인 과거사 청산 법률을 가지고 있던 제주 4.3사건과 노근리 사건 등의 영역에서 실시되었다. 


p.220 ) 이와 같은 발굴 단계의 ‘과학화’ 및 ‘공식화’는 발굴된 유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다. 1960년도 유해발굴 당시 유족들은 발굴된 유해가 자신의 가족들이라 인식하였지만 사회적 ‘증거’나 ‘표상’으로 공감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유해발굴에서는 많은 발굴이 전문적 발굴팀의 주도하에 작업이 이루어짐으로써, 개인적인 연고를 주장하며 유해를 자의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개별적 지위에서 거리를 둔 ‘사회적 표상’으로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p.252 ) 이렇듯 사회적 기념을 완성하기 위해서 국가의 참여는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들도 과거사 청산의 마무리를 국가가 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국가주도 기념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국가주도의 사회적 기념은 자칫 또 다른 방식으로 개별적 기억을 억누르면서 국가주의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







[저자소개]






노용석

  2005년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논문 제목「민간인학살을 통해 본 지역민의 국가인식과 국가권력의 형성」)를 취득하였다. 이후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 사업을 총괄하였다. 현재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폭력과 소통』(공저)『트랜스내셔널 노동이주와 한국』(공저)이 있다.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노용석 지음 | 320쪽 | 25,000원 | 2018년 7월 31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연구와 유해발굴 사업을 주도해온 노용석 교수가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 전후기 국가폭력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전개과정을 밝히고, 더불어 피학살자들의 유해발굴 과정과 그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 10점
노용석 지음/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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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신청하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클릭!)

 

 

o 일시 : 1월 29일(목)~ 7월 9일(목) 매월 둘째,넷째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o 장소 : 노무현재단 강의실(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4번출구) 찾아오시는 길
o 인원 : 선착순 100명
o 신청 : 홈페이지 접수
o 참가비 : 18만원(후원회원 12만원), 총 12강좌

※ 후원회원은 홈페이지 로그인 뒤 신청하면 할인혜택이 자동적용됩니다. 강연 당일에는 취소, 환불되지 않습니다.

o 문의 : 시민학교(전화1688-0523 내선2번, 직통070-7931-0529, 메일 rohschool@gmail.com)

 

 

 

 

밤의 눈』조갑상 소설가의 제2강의 <국가가 빼앗아간 기억:보도연맹사건>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밤의 눈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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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묵 평전

-부산 민주화운동의 거목




중부교회의 최성묵 목사를 집중 조명한 『최성묵 평전』은 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어두운 시대 속에서 시련과 고초를 겪으며 신념을 지켜온 한 개인의 삶을 되살리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 안에 위치한 ‘중부교회’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곳으로 이 교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최성묵 목사를 중심으로 부산지역 유신 독재를 향한 민주화운동이 촉발될 수 있었다. 이처럼 기독교계의 지도자만이 아닌 재야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이기도 한 최성묵 목사의 삶을 통해 민중과 함께 호흡하며 사회운동의 길을 실천하는 종교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저자 차성환은 최성묵 목사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하기 위해 주위 인물들의 다양한 증언과 자료들을 통합하여 평전 속에 집대성하였다.




종교인으로서 현실 참여를 각성하다

6·25 전쟁 당시, 빨치산 대장의 손에 체포되어 총살의 위기에 처한 청년기의 최성묵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면서 만약 살게 된다면 남은 생을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맹세했고,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하였다. 평범한 교사이자 교회 전도사였던 최성묵을 각성하게 한 사건은 4월 혁명 이후였다. 그간 이승만 정권의 품 안에 있던 한국 기독교계가 4월 혁명 이후 일련의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정의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최 목사 또한 현실참여의 동인을 갖는다. 당시 진보적 기독학생운동을 이어가던 최성묵 목사는 부산의 대학생운동을 지도하던 이들로부터 부산행을 제안받아, 지역운동의 가능성을 품고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온다. 최 목사의 부산행 이후 대통령 박정희가 ‘10월 유신’을 선포하며 유신체제의 암울한 정치가 시작되었다.



양서협동조합과 부마항쟁
거리는 저항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최성묵은 이날 밤 늦도록 시위대의 함성과 구호 소리를 들으며 전율하기도 하고, 때로는 최루탄 가스에 괴로워하고, 경찰 차량이 뒤집혀져 불타는 광경을 놀라움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최성묵의 가슴은 주체하기 어려운 흥분으로 방망이질 쳤다. 권력의 압제에 짓눌려 있던 민중들이 일어서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그가 심취해 있던 민중신학이 현실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16일 밤 자정이 넘어 교회로 들어왔다. 잠을 청하기 위해 자리에 누웠지만 좀체로 잠이 오지 않았다. 거리에서 아우성치던 시민들의 함성이 귓가를 맴돌았다. _「부마항쟁의 불꽃이 타오르다」에서

제2의 도시라지만 너무나 외진 변방과도 같았던 부산에서 최성묵은 우여곡절을 거쳐 YMCA의 총무직을 맡게 된다. 1977년 이후에는 중부교회 목사로서 교회를 민주화운동의 소통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이때 중부교회의 스터디그룹에서 발기한 양서협동조합은 양서를 읽으며 시민의식을 고취시키자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초기에 정치색을 배제하고 시민들의 교양을 도모하기 위해 출범되었던 양서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점점 늘면서 세미나와 강연회, 학습모임 등 다양한 활동으로 조직되었다. 유신체제의 억압 속에서 양서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부산지역 학생들이 정치의식에 눈뜨는 등 훗날 이어질 민주화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유신 정권은 양서협동조합을 부마항쟁의 배후로 조작하고자 최성묵을 희생양으로 지목하였는데, 계엄합동수사단의 고문 조작이 이어지는 와중에 발발한 10․26 정변으로 박정희가 사망하면서 최성묵 목사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6월 민주항쟁 때 최성묵 목사(오른쪽에서 세번째) 모습. 가운데 영정을 들고 있는 사람이 故 노무현 대통령.



십자가를 지고 민주화의 길로, 실천하는 종교인의 모습
유신체제의 붕괴로 민주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전두환 정권 이후 다시 무너지게 된다. 신군부 세력은 광주학살의 피비린내를 풍기며 철권통치를 자행하였던 것이다. 부산의 경찰과 정보기관은 부마항쟁 당시 부산의 민주화운동 세력을 파악해 그들을 ‘부림사건’이라는 이름하에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만들고자 했다. 이때 최성묵 목사는 부림사건 구속자 가족에게 기도회 장소를 제공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전두환 정권의 경찰은 수시로 그에게 압박을 가했고 교인들 또한 당국의 압력을 받았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등 여러 활동을 이끌어가면서 군부독재에 맞선 최성묵 목사는 6월 항쟁에서 온몸을 던져 투사의 모범을 보였다. 그가 십자가 행진으로 민주화의 길을 걷는 동안, 대한민국 또한 독재 권력이 굴복함으로써 현재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요즈음, 그의 삶은 다시금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평생에 걸쳐 민중과 민주주의에 헌신했던 최 목사의 삶을 통해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실천하는 종교인’의 모습과 더불어 오늘을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글쓴이 : 차성환

1953년 마산 출생

1973년 부산고등학교 졸업

1989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조경학과 졸업

2009년 8월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박사학위 취득(학위 논문「참여노동자를 통해서 본 부마항쟁 성격의 재조명」)

2005년∼2007년 부산민주공원 관장

2006년∼현재까지 부산대, 해양대, 부산교대, 동아대, 경성대 등에서 강의

2006년∼현재까지 부마항쟁 및 민주화운동 관련 연구 및 구술 작업

현재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운영위원, 부산대학교 사회교육연구소 전임연구원

공저 : 『동아시아와 근대의 폭력』, 『1970년대 민중운동연구』, 『양서협동조합운동』, 『유엔기념공원과 부산』, 『작은이들의 벗, 김영수 목사』

저서 :『부마항쟁과 민중』





『최성묵 평전

차성환 지음

인문 | 신국판 | 384쪽 | 20,000원
2014년 3월 21일 출간 | ISBN : 
978-89-6545-243-0 03990

부산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부산 중부교회 고 최성묵 목사(1930∼1992)의 평전이다. 종교인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 참여의 길도 외면하지 않은 참 종교인의 삶을 그렸다. 평범한 전도사이자 교사였던 최성묵이 사회현실에 눈을 뜬 계기는 4·19 혁명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품에 안겨 있던 개신교가 4월 혁명 이후 사회정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최성묵도 현실참여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차례



+출판기념회의 모습


한울타리 중창단


한울타리 중창단의 공연으로 평전 출판을 기념했습니다. 책에도 언급되었지만, 최성묵 목사는 장애인 교육 사업 등 사회사업에도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습니다.


책의 저자이신 차성환 선생님


책의 저자이신 차성환 선생님이 그간 평전을 집필하기까지 경과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처음 평전 집필을 결심하시고, 사료나 증언이 부족해 생각보다 집필이 늦어졌다며 묵은 짐을 덜게 된 느낌이라 출간 소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최성묵 평전 - 10점
차성환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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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수입니까 2014.04.04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만든다고 고생했어요^^ 그 당시 부산의 민주화투쟁도 알 수 있어 좋았어요.

지난 토요일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이틀 앞둔이날 ‘사람 사는 이야기마당, 김제동의 노하우(knowhow)’라는 이름으로 김제동 토크콘서트가 저녁 7시부터 열렸답니다.
오후부터 많은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로 사람들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미리 서둘러서 3,4시간 전 일찍 갔는데도 마을 진입로는 벌서부터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네요. 다들 어떻게 알고 왔지?!

마을 초입부터 노란 바람개비가 맞아주네요.
작년에 와보고 간만에 왔는데 그새 많이 바뀌어 있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걸개그림도 볼 수 있고 추모의 집도 새로 생기고...

추모의 집 안

혹시나 식당이 너무 붐빌까봐 집에서 준비해간 김밥으로 벤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얼른 줄을 서러 갔습니다. 엥, 벌써 준비한 좌석에는 사람들이 다 차고 위쪽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김제동 씨 얼굴 보러 온 것은 아니고 이야기 들으러 온 거니까 이야기만 잘 들리면 되죠, 뭐.^^

고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며 한마디.

저녁 7시. “실제로 보니 그리 못생기지 않았지요?”라고 운을 뗀 김제동 씨는 2시간 동안 정말 사람들을 울렸다, 웃겼다 가슴 뭉클한 시간이었습니다. 풍자와 함께 군더더기 없는 멘트로 정말 말로만 듣던 김제동 어록의 2시간이었습니다.

“비가 와야 꽃이 피고, 사람이 자랍니다. 울어야 사람이 자랍니다. 하지만 올해부턴 좀 웃으세요. 오늘 이 자리에선 울면 구속입니다. 슬픈 노무현을 보내주고 기쁜 노무현을 맞이해야죠.” 울면 구속이라 해놓고 자기가 먼저 울컥 하더군요.

김제동 씨는 2년 전 노무현 대통령 노제 사회자로 참석했다가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강제로 하차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저는 잘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라 버렸죠.” 연애나 세상을 살 때도 먼저 다가가고, 아니면 먼저 자르면 된답니다. 맞습니다. 세상 살기 참 편하죠.^^

정부나 국회위원들이 “코미디를 하고 있다”며 “제 생계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미디를 못 하고, 지금은 윤도현 매니저를 하고 있습니다” 하며  또 한 번 웃기더군요. 코미디언답게 위트와 풍자는 끝이 없었답니다.

전 자리가 멀어서 실제는 보지도 못 하고 멀리서 화면만 봤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웃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동도 있더군요.
“제발 저한테 괜찮으냐는 질문하지 마세요. 부탁이자 경고입니다. 저는 잘삽니다. 여러분도 기죽지 마세요. 싸울 일 있으면 마음껏 싸우세요. 합의금은 제가 내겠습니다.”

“노무현 아저씨 잘 계시죠. 우리도 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또 뵙겠습니다.” 노무현 아저씨께 문안인사도 드리고 살아생전 즐겨 부르시던 상록수 합창 때는 모두가 촛불 대신 손전화기를 꺼내들고 흔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여기 오는 게 조금은 조마조마합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함께하는 게 조금 더 즐거우니까 오는 겁니다.”

빗방울이 간간이 오락가락 했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고 함께한 감동의 2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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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니카 2011.05.25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일요일 부산대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 다녀왔는데요,
    문성근 명계남이 나와서 잠깐 토크를 하더군요.
    문화제답게 노래, 춤, 사물놀이 등 볼거리가 풍성했답니다.
    안치환이 어찌나 열창을 하던지...
    내년에 또 와야겠다 생각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