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맞아 부산박물관서 11일부터 특별전

 

 

- 외교·소설로 일제의 침략 알려
- 서신·사진 등 130여 점 전시
- 강연회·음악 공연도 준비


오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부산박물관에서 뜻깊은 전시가 열린다. 임시정부의 주프랑스 대사로 유럽 전역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서영해 선생을 기리는 ‘파리의 꼬레앙, 유럽을 깨우다’가 이날 시작해 6월 9일까지 개최된다.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의 서영해 선생. 부산박물관 제공

서 선생에 관한 소식은 지난해 연말부터 적지 않게 알려졌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서 선생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이다. 밀정에게 총을 맞은 백범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사진을 통해 서 선생에 관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2월 서 선생의 독립운동기를 담은 책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가 발간돼 본격적으로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먼저 서 선생에 관해 소개하면 1902년 부산 초량의 한약방 집 아들로 태어나 3·1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정에서 활동했다. 1920년 프랑스로 간 뒤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본의 침략과 조선의 참모습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1934년 임시정부의 주불외무행서 외무위원, 1945년 2월 프랑스 대사로 공식 임명됐으며 1936년 9월 브뤼셀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국제 외교 활동을 펼쳤다. 그뿐만 아니라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한국 전래민담 ‘거울, 불행의 원인’, 단편소설 ‘구두장수의 딸’로 조국의 독립과 우리 역사·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서 선생의 작품은 프랑스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 그를 단지 독립운동가로 한정하기에 재능이 너무 많았다. 서 선생은 해방 후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지만 정치 혼란, 남한 단독정부 수립 등을 지켜보다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부인과 함께 경유지인 중국 상하이에 들렀다가 우여곡절 끝에 생이별했고 1956년 이후 소식이 끊겼다.


 

   
1937년 12월 서영해 선생이 김구 선생에게 보낸 편지.

서 선생에 관한 재조명 작업은 지난해 관련 유품이 부산박물관에 기증되면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이 담긴 앨범, 프랑스 언론 기고문, 임정과 주고받은 서신 등을 포함한 서 선생 유품 695점이 부산박물관에 기증됐고 이번 전시에 130여 점이 공개된다. 유품은 부인인 황순조 전 경남여고 교장과 류영남 전 부산한글학회 회장, 경남여고 역사관에서 관리하다 부산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번 특별전은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파란만장했던 일생과 치열했던 독립운동으로 구성됐다. ‘영해嶺海, 태산과 그 깊은 바다’로 시작해 ▷‘압록강 철교 넘어 상하이, 파리로’ ▷‘임시정부 주프랑스 특파위원 서영해’ ▷‘귀국 후의 활동’ ▷‘결혼 그리고 영원한 이별’ 순으로 진행된다. 테마별로 서 선생과 관련한 유물 영상 사진 자료 등이 입체적으로 연출된다.


개막식은 오는 11일 오후 4시 부산박물관 부산관 1층 로비에서 열린다. 이에 앞서 오후 1시30분 부산박물관 대강당에서 ‘3·1 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제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초청강연회와 부산시립예술단의 기념 음악회가 펼쳐진다. 특히 이날 서 선생의 손녀 수지와 스테파니가 박물관을 방문한다.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두 손녀는 서 선생과 파리로 유학 온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엘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스테판의 딸이다. 서 선생은 2차 대전 발발로 엘리자와 만날 수 없게 됐고 부산으로 돌아와 결혼한 황순조 씨와도 뜻하지 않게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손녀들은 2017년 할아버지의 나라를 처음 찾은 후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부산에 온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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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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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 정상천 국가균형발전위 과장

“유럽서 27년간 독립운동, 부산 출신 서영해 기억해주세요”

 

 

 

 

 

“미국에 이승만이 있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었습니다.”

 

정상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기획과장이 올해 펴낸 그의 저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잊힌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특히 부산 출신이기도 한 서영해 선생에 대한 재조명이 부산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서 선생, 3·1운동으로 수배 받아

파리로 건너가 임시정부 외교 활동

“市가 시민들에게 널리 알렸으면”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한 서 선생은 미국에서 활동한 이승만과 함께 ‘임시정부 외교의 양대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서 선생은 임정이 독립의 수단으로 외교를 염두에 두고 기획해 키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정 과장은 부산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지난 28일 부산을 찾아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서 선생을 이렇게 정의했다. 서 선생은 1902년 1월 13일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한다. 당시 서 선생의 나이 겨우 17세로 ‘임정의 막내’이기도 했다. 서 선생은 이듬해인 1920년 12월 임정의 외교활동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교육을 받았고, 1934년 4월 2일 임정의 주불외무행서에 임명된다.

 

 

 

서 선생은 파리에서 ‘고려 통신사’를 세워 언론활동을 하는 등 27년 동안 유럽에서 언론가, 문필가, 외교가로서 조국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해방 후 서 선생은 이승만이 아닌 김구의 노선을 추종한 데다, 정부 수립 후 상하이로 건너가 실종되면서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사람들에게 잊혔다.

 

 

정 과장은 2000년 파리에서 한-프랑스 경제 관계 연구를 위해 1년 동안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실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다가 서 선생을 처음 발견했다. 정 과장은 “당시 Seu Ring-Hai라는 명함이 첨부된 문서를 처음 보게 됐다”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대표로 표기된 서 선생의 명함을 봤을 때 전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정 과장은 이 때부터 프랑스 현지에서 서 선생 관련 자료를 수집하거나, 유족들과 연락하는 등 본격적인 서 선생 연구를 시작했다. 정 과장은 “오랜 기간 동안 서영해라는 인물에 빠져 있다 보니 가끔씩 서 선생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시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서 선생이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것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부산사람 DNA’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면서 “서 선생과 같은 훌륭한 분을 더 많은 부산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부산시 등에서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사진 정종회 기자 jj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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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출판도시 인문학당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저자 강연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은 최근에 들어서야 정상천 작가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외교로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서영해의 뜨거운 삶을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는 정상천 작가님과 함께 짚어가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일시: 3월 28일 (목) 저녁 6시 30분

 

장소: 산지니 X 공간

 

* 현장에서 도서 구입 가능합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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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디터날개 2019.03.26 14: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산에서도 선생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네요~ 기대 중입니다^^

 

 

공무원 역사학자 정상천 박사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펴내

 

 

정상천 작가(왼쪽)와 서영해 선생의 6촌 종손녀 서혜숙·김기영 부부. 서씨 부부는 저자가 서영해 전기를 집필하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다.

 

최근 출간 한 달도 되지 않아 2쇄 인쇄에 들어간 화제의 신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산지니)를 쓴 정상천(57) 작가를 만나 책을 쓰게 된 경위와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독립운동가 서영해(徐嶺海, 1902∼?) 선생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였다. 정 작가는 현직 공무원이다. 일반적인 전문 작가도 아니고 재야사학자는 더구나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15년,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통상업무를 담당하였으며, 현재는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말에만 공부를 한다고 해서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지만 스스로는 ‘역사 배달부’를 자처한다. 

 

 

저자 정상천은 공무원으로서보다는 지금까지 총 5권의 역사서 저술을 통해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배경에는 1994년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프랑스 파리1대학(팡테옹-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박사를 마친 튼튼한 학문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3년에 저술한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 프랑스 외교 사료를 통해 본 한·불 관계 비사’(국학자료원)는 그의 세 번째 저술로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120년 동안 일어난 사건들 중 역사적 의의가 있으면서도 독자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으로 집필되었으며, 관련 분야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부산에 있는 출판사 ‘산지니’가 올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하였다. 정 작가는 파리1대학 박사과정에 있을 때 수집한 서영해 관련 사료를 참조하여 2013년 출간한 그의 저서에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소제목으로 간략히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 신간에서는 서영해의 친척들로부터 받은 자료,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영해문고 자료, 부산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영해의 유품과 유고, 앨범 등 폭넓은 자료들이 참고 되었다. 촘촘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1902년 부산 초량동의 한약방 집 아들로 유복하게 태어난 서영해는 3·1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뜨고,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해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소위 ‘임정의 막내’가 된 서영해는 임정 요인들의 권유로 미국보다는 유럽의 중심지인 프랑스로 보내어져서 불어에 매우 능통한 외교관이자 언론인, 문필가로 육성되었다. 서영해는 임정이 ‘기획한’ 유학생이자 독립운동가로 성장하였으며, 20여 년간 유럽에서 임정을 대표한 유일한 외교관이었다. 그는 7개 언어를 구사했다. 그래서 ‘미국에 이승만이 있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었다’라는 유명한 표현이 나오게 되었다. 

 

 

 

 

서영해(가운뎃 줄 안경) 선생이 1956년까지 생존해 있었음을 확인하는 사진. 임시정부 부속학교였던 상해 조선인민인성학교 졸업 사진이다.

 

 

정상천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

 

 

-서영해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었음에도 국내에서는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는?

 

 

“서영해는 17세 나이에 부산지역 3·1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피해 상해임시정부로 망명하였습니다. 거기서 1년 정도 있다가 임정요인들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을 갔습니다. 1947년 5월에 귀국하기까지 27년을 해외에서 지냈고, 귀국 후에도 국내 체류기간이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그를 알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1956년까지 상해조선인민인성학교에 교사로 근무한 후 북한으로 갔기 때문에 우리 학계에서 의도적으로 그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애써 외면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임정의 열강에 대한 외교라면 우리는 모두 이승만 박사만 알고 있는데, 서영해는 유럽에서 어떤 외교활동을 하였는지?

 

 

“네,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합니다. 1929년 9월 28일 서영해는 파리 5구에 위치한 자신의 숙소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합니다. 물론 임정의 지시로 설립했지만, 재정적인 지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소개, 일본 상품 배척, 일본의 외교와 선전을 방해하는 활동을 목표로 파리를 중심으로 강연, 언론 기고, 책자 발간 등의 활동을 통해 외교독립운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개최된 많은 국제회의에 임정의 대표로 참석하여 우리나라 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일제의 한반도 침탈의 폐해에 대해서 낱낱이 고발하였습니다. 서영해는 1929년 7월 파리에서 개최된 제2회 반제국주의자 세계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 국제무대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때 도산 안창호 선생을 포함한 12명의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전격적으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임정은 서영해에게 프랑스 정부에 대한 항의와 더불어 석방교섭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언론에 배포한 호소문 ‘유럽의 자유양심에 고함’을 통하여 한국인들이 일본의 야만적인 억압에 신음하고 있음을 알리면서,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일어난 도산 안창호 등 한국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체포는 모든 프랑스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정치적 망명가들에 대한 환대의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하였습니다.

 

 

비록 상해임시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한 안창호의 석방을 달성하지는 못하였지만, 체포된 12명중 9명은 석방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33년 1월초에 이승만이 미국에서 제네바에 도착하여 국제연맹을 상대로 독립청원서 제출 등 외교활동을 전개할 때 그와 함께 6개월간 숙식을 함께하며 활동하였습니다.

 

 

그 후 서영해는 1936년 9월 3일부터 6일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1회 만국평화대회와 193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제2회 대회, 1935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문화 보호를 위한 반파시스트 작가회의’ 등에 참석하여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의 사정과 독립운동을 널리 선전하였습니다.

 

 

서영해는 유럽지역에 있어서 우리 임정의 유일한 공식대표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1934년 주불외무행서 외무위원, 1936년 9월 주법특파위원(駐法特派委員), 우리나라의 해방이 임박해 오면서 1944년 3월 주불특파원, 1945년 3월 12일에는 명실상부한 주프랑스대사의 직위인 주법대표(駐法代表)로 임명되었습니다.” 

 

 

 

 

정상천 박사가 2월 27일 교보문고 배움홀에서 열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북 콘서트에서 서명을 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서영해가 북한에 살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왜 그는 북으로 갔으며, 거기서 어떤 활동을 하였고,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는지?

 

 

“그는 1948년 말 유럽에서 다시 남북통일운동을 하겠다고 부인 황순조와 함께 상해를 거쳐 프랑스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상해에 머무는 동안 중국이 공산화되는 기막힌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여기서 중국 여권을 가진 서영해는 부인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최근 그가 상해 조선인민인성학교(임정의 부속학교)에서 1956년까지 근무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진을 찾았습니다. 6·25 때 납북되었던 임정요인들이 상해에 있던 서영해와 연락이 닿았을 것이고, 형식적이나마 김일성의 초청을 통해 당시 상해 조선인민인성학교 교장이었던 선우혁과 함께 북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북한 탈북자 중 어느 유력한 분의 증언에 의하면 서영해는 6·25 전쟁 때 납북된 임정 요인들이 살고 있던 평양 창광산 자락에 거주하였으며, 임정 요인들이 만든 잡지의 편집장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울러 노동신문에도 기고를 자주 하였고, 민주여성동맹위원장이던 박정애·허헌의 딸 허정숙과 가깝게 지내는 등 당시 북한에서도 대단한 엘리트로 추앙받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적인 자료에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고, 그가 언제 어떤 이유로 숙청당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의 대쪽 같은 성격에 미루어 볼 때 김일성을 비판하다가 1963년~1965년 사이에 숙청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이나 삼석 특설묘지 등 다른 애국지사들이 묻힌 곳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어 여전히 그의 마지막은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서영해와 관련 어떤 일들을 추진할 계획인지?

 

 

“우리 역사교과서에 서영해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임정 외교의 양대 축 중의 하나를 담당했던 서영해가 유럽에서 펼쳤던 활동을 평가해서 역사 기록에 남기는 작업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정부는 1995년에 서영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는데, 그가 1926년부터 유럽에서 임정을 대표하여 단신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노고에 비하면 전체 5등급으로 된 건국훈장 중에서 4등급인 애국장을 받은 것은 격에 맞지 않은 포상입니다.

 

 

최소한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 정도는 새로이 추서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최근에 제가 한국외교협회에서 발간하는 ‘외교’지에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유럽에서의 외교활동 평가 및 의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하였습니다. 오는 4월 발간될 예정인데, 거기에 자세한 외교활동과 평가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등 각종 자료에 그의 사망연도가 1949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사망년도 미상’으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서영해의 유가족과 협의해서 ‘서영해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 관련 자료 발굴과 학술적 연구를 지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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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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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죠.
새로 나온 책, 오늘은 독립운동의 위대한 여정을 따라가봅니다.

【리포트】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정상천 / 산지니]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펜과 종이를 들고 독립에 앞장선 이도 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외교관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 선생인데요.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그 동안 숨겨져 있던 서영해의 삶을 조명했습니다.

독립운동의 불모지였던 유럽에서 식민 통치의 부당함을 알리며 항일투쟁에 일생을 바친 서영해 선생.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을 겁니다.

 

 

 

<영상취재:한정신/영상편집:김영준>

김희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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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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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 (3월 25일) 'OBS뉴스 새로 나온 책'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소개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광복을 외쳤던 서영해의 삶을 조명하였는데요.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를 시작으로

 

그동안 숨겨졌던 독립운동가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지음ㅣ316쪽ㅣ16000원ㅣ2019년 2월 28일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정상천 저자와 함께하는 인문학당이

이번 주 목요일 (3월 28일)에 있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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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MBC 다큐멘터리 방영!

 

 

MBC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았습니다. 그중 다큐멘터리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에서는 서영해의 잊혀졌던 삶을 되짚어보고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선조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시청해 봅시다!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 - 100년만의 귀향 통해 해외의 독립운동사 정리


오는 4월 1일(월)부터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머나먼 타국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영웅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특집 다큐 4부작 ‘백년만의 귀향, 집으로’가 찾아온다. 머나먼 타국에서 독립을 외쳤던 수많은 영웅들은 결국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타지에 외롭게 잠들고 말았다.

그렇게 숨겨진 영웅의 후손들을 찾아,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선조에 대한 기억을 공유해보고 선조들이 다시 밟지 못했던 땅, 대한민국으로 초대한다. 배우 손현주와 허일후 아나운서를 주축으로 각 분야의 다양한 샐럽들이 사절단이 되어 직접 초대장을 전달하고, 잊고 있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촬영 중 만난 후손들과 세계 각지에 흩어진 독립운동 유적지를 촬영한 사진은 4월 10일(수)부터 MBC 1층 로비에 전시되어 감동을 더할 예정이다.

 

iMBC 김미정 | 사진 MBC

원문 바로가기

 

 


* 방송일자 : (1부) 4월 1일 오후 8시 55분 

 

 

 

< 정상천 저자, 영해문고 >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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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샨샤댐의 최우선 목표는 홍수 조절이었습니다. 10년에 한번꼴로 닥쳐 엄청난 사망자와 이재민을 만드는 양쯔강의 물난리를 막아보자는 거였지요.

양쯔강 가운데 가장 험난한 협곡인 샨샤의 허리를 가로질러 건설된 샨샤댐의 모습. 샨샤댐은 그 높이만 185m로 그 속에 갇히는 물의 무게는 세계 최대인 393억 톤에 달한다. 이것은 한반도 전체 담수를 합친 양의 두배이다.


신해혁명의 주역이자 중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이 1919년 처음 댐 아이디어를 냈고,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이 이 엄청난 토목공사에 계속 관심을 보여왔지만 실행하지는 못했지요. 결국 수많은 전문가와 환경론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993년 중국 최고 실력자인 덩샤오핑의 막후 도움과 러시아에서 토목 학위를 받은 리펑총리의 합작품으로 샨샤댐의 첫삽을 뜨게 됩니다.

레이헝순 충칭대 명예교수. "샨샤댐 건설에 많은 반대 논의가 있었지만 투표 과정에서조차 이 자료들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중국 정부는 샨샤댐 건설 과정을 두고 가장 민주적이며 과학적인 방법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샨샤댐은 가장 비민주적이고 비과학적인 중국 정부의 정치공정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제강네트워크와 국제감시>는 샨샤댐을 두고 '스탈린주의의 산물'이라는 논평까지 내놨다. (본문 67p)

샨샤댐은 댐을 건설한 후 물을 가두는 데만 몇 년이 걸린 어마어마한 댐입니다. 물이 갇힌 댐 위쪽은 더이상 양쯔강이 아니라 양쯔호가 되어버렸습니다. 한반도 두 배의 면적이 호수가 돼버린 것이지요. 중국 총 발전량의 11%가 샨샤댐에서 생산된다고 합니다. 115만 명의 이민자와 샨샤 협곡의 비경, 수많은 문화재를 모두 포기한 댓가입니다. 엄청난 인구와 성장 속도로 자원의 블랙홀이 돼버린 중국으로서는 구미가 당길 만한 양입니다. 중국정부가 '샨샤댐은 토사로 무용지물이 된 황하 싼먼샤댐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기에는 목전의 이익이 너무 컸습니다.

다시 볼 수 없는 샨샤협곡의 비경들


국가의 이익에 희생당하는 것은 수몰된 마을의 짐꾼, 농사꾼에서 하루아침에 어부가 되어버린 수몰지역 농민들, 말없는 양쯔강의 생태계입니다. 더 넓게 보면 양쯔강과 접하지 않은 중국 내륙 지역도 50년만에 최악의 가뭄과 폭염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합니. 샨샤댐이 북쪽 만주 지역의 사막화를 부채질하여 베이징은 해마다 더워지고 있으며, 앞으로 황사도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하네요. 양쯔강이 내뿜는 담수에 의존해 왔던 황해의 생태계도 변하고 있습니다. 바닷물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열대어가 잡히기도 하고 어업에 큰 해를 끼치는 해파리가 이상번식하고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수몰되면서 펑두시는 강 건너 고지대로 신도시를 건설해 이주해갔다. 샨샤댐을 배경으로 변화하는 중국 현대사회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 '스틸라이프'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이다.


중국인들에게 샨샤댐은 만리장성 이후 세계 최대를 고집하는 중화사상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규모가 큰만큼 부작용도 엄청나서 일각에선 댐을 다시 허물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샨샤댐 유역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샨샤댐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네요. 양쯔강의 홍수조절을 위해 만들어진 샨샤댐이 오히려 홍수를 촉발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최대 토건사업중 하나였던 샨샤댐에서 요즘 우리 정부가 '낙동강을 살리기' 위해 벌이고 있는 4대강사업의 미래가 보이는건 왜일까요.

중국 싼샤댐, 대홍수 견뎌낼까? (한겨레기사 링크)

『한반도 환경대재앙 샨샤댐』 
| 교양 | 정치 사회

진재운 지음
출간일 : 2007년 4월 25일
ISBN : 9788992235167
신국판 컬러 | 288쪽 

세계 최대 규모인 샨샤댐이 그 규모만큼이나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까지도... 풍부한 사진과 함께 탐사보도 형식으로 샨샤댐에 대한 부작용을 자세히 밝힌다.

 한반도 환경대재앙이 될 수 있는 거대한 샨샤댐 완공되다

중국 정부는 80년간의 논란 끝에 3개의 거대한 협곡인 샨샤(三峽) 계곡에 거대한 샨샤댐을 1993년 착공을 시작하여 13년 만인 지난 2006년 5월에 완공하였다. 총 21조 원이 투입된 샨샤댐은 길이 2,309미터 해발 185미터 제방 두께 15미터로 세계 최대 규모이다. 홍수로 빠르게 흘러내리던 양쯔강은 샨샤댐의 공사가 시작된 지 10년 만인 지난 2003년 물을 가두기 시작하면서 역류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다.

샨샤의 첫 관문인 취탕샤 입구에 있는 백제성. 천혜의 요새로서 삼국지의 주요 무대였다.



샨샤댐은 이미 완공되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도 아직 국내에선 샨샤댐의 심각성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으며 그 영향에 대한 우려는 걸음마 수준이다. 샨샤댐의 환경 영향에 대한 연구도 그렇고 정부차원의 그리고 정부 간 대응도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샨샤댐의 심각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여론 환기는 필수적이며 『한반도 환경대재앙 샨샤댐』은 그 역할을 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취재기자가 발로 쓴 최초의 중국 환경보고서

이 책은 저자가 2005년 여름 중국 베이징을 시작으로 중국 내륙 최대도시인 청두(성도)에서 상하이까지 두 달여 동안 5,000km를 달리면서 취재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직접 두 발로 중국 현지 구석구석을 다니며 취재한 내용을 탐사보도 형식으로 담고 있어 내용이 쉽고 현장감이 높다. 또한 국내에선 아직 선보이지 않은 사진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어 샨샤댐의 심각성을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으며 덤으로 중국 내륙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중국사람들의 생활상도 많이 볼 수 있다.

충칭에서 샨샤 협곡이 시작되는 지역에는 소수민족인 투자족의 집성촌이 몰려있다. 하지만 투자족은 샨샤댐으로 민족성 자체가 가장 크게 위협받고 있는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가 돼버렸다. 샨샤 협곡의 양쯔강 주변에 산재해 있던 투자족 마을 대부분은 물에 잠겼다. 이들은 난생 처음으로 도시라는 곳에 이주를 해야 했고 이로 인해 자신들만이 가졌던 고유한 무화는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중국은 양쯔강 홍수 조절을 위해 샨샤댐 건설

중국인들에게 치수(治水)는 중국문명의 근원이다. 세계 3대 하천인 양쯔강은 평균 10년마다 한 번 꼴로 홍수가 발생하여 많은 이재민과 막대한 피해를 내었다. 4천 년 전 요순(堯舜)시대 이래 중국에서는 ‘치국선치수(治國先治水), 즉 나라를 다스리려면 먼저 물을 다스려야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역대 왕조의 흥망의 열쇠는 양쯔강의 홍수 조절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샨샤댐의 첫 번째 목표도 양쯔강의 홍수조절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전력난 해소와 홍수 피해 예방, 양쯔강을 이용한 물류운송능력 확대가 샨샤댐 건설의 주목적이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찮다. 중국 정부는 애써서 부정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댐이 가져다 줄 풍요에만 초점을 맞춘 긍정적인 면만을 보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샨샤댐 그 부작용도 세계 최대

샨샤댐의 공사가 시작된 지 10년 만인 지난 2003년 물을 가두기 시작하면서 양쯔강은 역류하기 시작했다. 역류한 물은 어린 아기의 걸음마 속도로 계속 차오르면서 모든 것이 잠겨갔다. 마을이 사라지고 도시까지 집어 삼켰다. 삼국지의 주무대였던 샨샤 협곡의 많은 문화재가 물에 잠기고 샨샤 주변 생태계는 고스란히 수장되었다. 수몰 지역 이주민만 공식적으로 115만 명에 달한다. 이 중 90만 명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으나 이들 중 상당수가 적응을 하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오는 등 부작용도 만만찮다.

‘단장(斷腸)’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애끓는 사연’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 고사성어는 샨샤의 원숭이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샨샤의 깊은 협곡 나무에 앉아 있는 샨샤 원숭이


진나라, 정확히는 동진시대 환온(桓溫)이 촉(蜀)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샨샤 협곡을 지날 무렵 병사 한 명이 원숭이 새끼를 사로잡아 왔다. 이때 어디선가 어미 원숭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샨샤의 험준한 협곡을 건너뛰며 타고 있던 배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애절한 울음소리를 멈추지 않은 채 어미 원숭이의 처절한 추격은 물살을 헤치며 삼 일 밤낮 동안 계속됐다. 100여 리를 더 갔을까 배가 협곡에 다다르자 기어이 어미 원숭이는 배 위로 뛰어 올라왔다. 하지만 그 순간 어미 원숭이는 곧바로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다. 한 병사가 죽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자식을 잃지 않으려는 애절한 모성이 창자를 끊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모성이 이보다 더한 어떤 어미 원숭이도 이제 더 이상 새끼 원숭이를 쫓아 갈 수가 없어졌다. 샨샤의 물이 차오르면서 이들 원숭이의 수영 실력으로는 너무 넓어지고 깊어진 양쯔강의 물을 건널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샨샤댐으로 불어 난 물이 원숭이들에게는 무리 사이에 교류를 할 수 없는 생태계의 단절을 불러온 것이다. 이로 인해 그 무리 내에서만 번식이 이루어져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샨샤댐 주변은 호수에서 생겨난 안개 때문에 맑은 하늘 보기가 더 어려워졌다. 정체된 공기 때문에 피부와 호흡기 질환자들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무거운 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반은 잦은 산사태로 이어져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샨샤댐에 갇힌 물의 무게는 400억 톤! 일각에선 이 무게가 한 곳을 지속적으로 누르면 지구의 자전축에도 영향을 미쳐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주변 생태계 변화도 심각하다. 황해와 동중국해는 초당 3만여 톤에 이르는 양쯔강 유출수량에 맞춰 생태계를 유지해 왔지만 샨샤댐으로 유출량이 줄면서 생태계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유입되는 수량이 줄어들어 해양오염과 어족자원이 감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퇴적물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갯벌마저 침식당하고 있다. 양쯔강 삼각주의 침식은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한반도 서해와 남해안 갯벌도 영향권에 들어갔다고 한다. 해류의 흐름마저 방해하면서 바다 오염을 부채질하고 더 나아가 바다 온도를 끌어 올려 태풍 등 자연재해의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03년 태풍매미와 2005년 봄 서해안 이상 폭설 등이 이미 시작된 환경 재해의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더욱이 샨샤댐은 북쪽 만주 지역의 사막화를 부채질한다는 연구도 나왔다. 앞으로 황사는 더욱 강해지고 심각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환경재앙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 지 알 수 없다. 중국 내륙, 그것도 수천 킬로 떨어진 곳에 건설된 샨샤댐은 불행히도 나비효과 이론을 증명하면서 한반도로 다가오고 있지는 않는지 늦었지만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교보생명환경문화상 환경언론부문 수상

이 책의 내용은 2005년 11월 “한반도 환경대재앙-샨샤댐”이란 제목의 TV다큐멘터리로 전국에 방영되면서 국내에서도 샨샤댐에 대한 연구와 대응을 위한 본격적인 발판이 되기도 했으며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환경관련 보도 및 기획취재를 통해 환경문제 해결과 시민 환경의식 제고에 기여한 개인 또는 단체에게 주는 교보생명환경문화상(환경언론부문)도 수상하게 되었다.

차례

1. 구름 위의 협곡, 샨샤
용이 삼킨 구절양장(九折羊腸), 양쯔강 | 구름 위의 협곡, 샨샤 
용을 쫓아 온 야인, 섬부

2. 제2의 만리장성 샨샤댐
황톳물의 양쯔강 1만㎢의 호수가 되다 | 샨샤의 수몰

3. 대륙으로 확산되는 환경난민
대륙으로 확산되는 환경난민 | 하루벌이로 전락한 소수민족 투자족
환경난민자, 대륙의 시한폭탄이 되다 | 먹고 마실 물이 없다
오염된 공기, 샨샤 협곡에 갇히다 | 문명이 말살한 문명
위협받는 샨샤댐

4. 물의 감옥에 갇힌 생태계
양쯔강 돌고래의 멸종 | 샨샤 원숭이의 근친교배

5. 양쯔강 황해를 먹여 살리다
양쯔강의 황톳물은 바다 생물의 영양분

6. 황해의 이변

황해 염분이 높아지다 | 국토가 줄어들다 | 물고기가 달라지다
샨샤댐, 해파리를 키우다 | ‘탐구8호’가 증명한 샨샤댐의 위력

7. 샨샤댐의 나비효과
샨샤댐, 지구의 자전축을 바꾸다 | 폭염과 사막화를 가속화시키다

8. 남수북조의 첫 삽, 샨샤댐

중국 정부의 물 정책 | 썩어가는 발해만

9. ‘곤’의 실패한 치수

‘곤’의 실패한 치수 2000년 만에 되풀이 되는가?
물에게 길을 주는 두장옌의 지혜


저자 : 진재운
1969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마산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를 나왔다.
1995년 KNN의 전신인 PSB 보도국 공채1기로 입사한 뒤 수년간 사회부 경찰기자를 하는 동안 해양다큐 <적조, 그 죽음의 물결>제작에 참여했다. 이후 환경의 가치를 알리는 최고의 방법이 환경다큐멘터리임을 절감한 뒤 <초록빛으로 숨죽인 강><물은 생명입니다><3부작, 생명의 바다><을숙도><생명의 땅 삼각주><아름다운 본능><해파리의 침공><태풍매미-자연의 역습><2부작, 한반도 환경대재앙-샨샤댐> 등 10여 년 동안 30여 편의 환경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기자의 취재력과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영상 구성 감각을 결합하는 일명 Newsmentary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으며 <습지와 새들의 친구><Green Peace> 등의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2년 4월 김해 돛대산 중국민항기 추락 소식을 최초로 전했으며 ‘동북공정’과 ‘샨샤댐 문제’를 허락 없이 취재했다며 중국 정부로부터 입국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펴낸 책으로는『책으로 보는 영상다큐멘터리-해파리의 침공』『백두산에 묻힌 발해를 찾아서』가 있다. chinjae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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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환경도서 당선(링크)

한반도 환경대재앙, 샨샤댐 - 10점
진재운 지음/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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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소박한 독서가 2010.07.21 2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훌륭한 포스팅입니다. 산샤댐의 폐해에 대해서 너무나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군요..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 BlogIcon 산지니북 2010.07.22 0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소박한 독서가님. 책에는 더 풍부한 내용과 진재운 필자가 현장에서 발로 뛰며 어렵게 찍어온 샨샤 유역의 생생한 사진들이 많이 실려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