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숙도, 갈대숲을 거닐다

이상섭 르포산문집

▶ 부산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방법?

두 다리로 스케치한 부산 속 사람 냄새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부산의 명소에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 자갈치, 국제시장, 사직구장 등 외지인들도 누구나 얼른 댈 수 있는 이름들이 부산에는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이 장소들 속에 녹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찾기가 쉽지 않다. 자갈치에도 국제시장에도 사람이 살건만, 부산의 명소들을 떠올리는 것은 도통 사람과 연결되지 않았다. 이름난 맛집과 관광 명소 정도가 지금까지 부산이 소개되던 방식이었다.

『을숙도, 갈대숲을 거닐다』는 부산의 이름난 명소들을 소개하는 한편,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작가 본인이 어느 장소를 거닐며 시간을 보냈던 이야기,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때로는 자갈치와 국제시장처럼 익숙하고 잘 알려진 장소를 배경으로, 때로는 동래향교나 화지공원처럼 낯선 장소를 배경으로 역사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골목마다 사연이 들어찬 공간과,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려낸다. 그리하여 다사다난했던 근현대사가 곳곳에 새겨진 부산은, 비로소 단순한 볼거리로서의 공간을 넘어 사람이 사는 곳으로 독자들의 마음속에 다가선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기억을 맴도는 역사 지식은 덤이다.

▶ 국제시장부터 을숙도까지,

부산의 맨얼굴을 사랑하는 이상섭의 이야기보따리

1부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부산 역사 지식수준은 상당하다. 국제시장에서든, 을숙도에서든 그의 역사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지역을 둘러싼 역사와 사회사를 다룬 것은 물론 을숙도를 중심으로 한 문학사와 생태사까지 넓은 범위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만 구구절절 늘어놓지는 않았다. 마치 일기 쓰듯 편안하게 써놓은 그의 글에서는 삶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자갈치 아지매’의 능란한 손놀림에 ‘어’ 소리도 못 하고 생선 봉지를 받아 든 아내의 모습과, 향교에서 운영하는 인성프로그램에 딸을 보낼까 고민하는 아빠의 짜증 섞인 한숨이 활자를 넘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있는 그대로의 삶들이 모여 시장에 3천 원짜리 떡볶이를 먹으러 줄을 서고, 야구장에서 힘찬 응원을 보낸다. 저자는 그런 삶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부산의 맨얼굴에 대하여 숨김없이 사랑을 드러낸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보따리를 읽다 보면, 독자들도 어느새 부산의 맨얼굴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 “선조들처럼 이곳을 지키며 살아야지요.”

주름살에 너털웃음, 우리 곁의 이웃들을 만나다

2부에서는 저자가 만난 부산의 ‘사람’들이 소개된다. 영화 <국제시장>의 실제 주인공, 부산 중구 국제시장 1세대 상인부터 갖은 어려움에도 오롯이 지역을 지켜온 초밥 장인까지 만날 수 있다. 또한 고인 물을 밟아 튀게 만드는 소설가(조갑상)와, 그믐달이 보름달이 되는 것처럼 느리고 깊은 시인(최영철)이 있다. 뒤돌아보면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마주앉으면 그냥 이웃 사람들이다. 그들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면 우리네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삶과 삶의 연속이었다. 무일푼에 맨주먹으로 일어서서 가게를 일구고, 삶에 치이고 부대끼며 글을 써온 그들의 나이테는 어느덧 주름살과 너털웃음이 되어 얼굴에 남았다. 1부에서 다루었던 부산 곳곳의 역사는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의 역사가 모여 만든 총집편이 아닌가, 하고 저자는 묻는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 자신이 그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되새김한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p.22. 인파를 피해 해안길로 접어든다. 막혔던 바다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휘어진 남항의 해안선도 보인다. 이 해안선을 따라 곡절 많은 사연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언젠가 난 이곳의 안개를 그런 사람들의 한숨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곡절 많은 사람들이 끝내 도달할 수밖에 없는 뭍의 끝, 바닷가. 그러니 한숨이 터져도 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곳이 이곳이리라.

p.66. 공자는 출신 성분, 사회적 지위를 상관하지 않고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이는 유교무류(有敎無類), 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늘날 당연해 보이는 이 생각은 당시의 공자에게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p.129. 초읍고개 쪽에 KTX 고속철 터널공사가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이곳 물이 흔적 없이 사라졌단다. 산책객의 목을 축여주던 화지산 속의 약수터도 말라버리긴 마찬가지. 건너편 터널공사와 이곳이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았지만 지하수맥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무분별한 자연훼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 단초를 잘 보여주는 곳이 화지산인 셈이다.

p.157. 을숙도야말로 부산시민에게는 특별한 장소애(Topophilia)가 깃든 곳이 아니던가. 비록 어머니 살 속 같은 모래펄도 밟으면 검은 물이 찌익 올라올 정도로 상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을숙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남아 있는 희망을 보기 위해서라도 을숙도의 현실을 노래해야 한다.

p.206.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도 내년이면 칠순의 노인이다. 하지만 그는 자랑스럽다. 퇴직한 친구들과 달리 아직 현직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그래서 친구들과 모임이 있으면 농담 삼아 친구들에게 흰소리하곤 한다. 아직 칼 잡고 있는 놈은 나밖에 더 있냐고. 맞다, 그는 영원한 현직이다. 그의 친절 덕분에 이제 동래 사람치고 일신초밥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대표인 그를 몰라보는 이도 없다.

 

저자 소개

이상섭
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2002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슬픔의 두께』『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바닷가 그집에서, 이틀』『챔피언』이 있으며, 르포집 『굳세어라 국제시장』을 썼다. 2010년 백신애문학상, 2013년 봉생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해운대관광고교 국어 교사로 근무 중이다.

 

목차

1부
탈근대와 근대의 퓨전공간, 자갈치
한국 근현대사의 저장고, 국제시장
어느 하루의 비망록
야구는 역시 여름밤이 제일이야
다대포의 숨은 역사를 찾아서
하마정과 화지공원
을숙도, 갈대숲을 거닐다

2부
국제시장 1세대 상인을 찾아서
주방으로 숨어든 협객
백자같이 은은한 그 소설적 무늬
지금처럼, 지금처럼만

 

이상섭 르포산문집

을숙도, 갈대숲을 거닐다

이상섭 지음 | 232쪽 46판  | 13,000원 | 978-89-98079-24-6 03810

때로는 자갈치와 국제시장처럼 익숙하고 잘 알려진 장소를 배경으로, 때로는 동래향교나 화지공원처럼 낯선 장소를 배경으로 역사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골목마다 사연이 들어찬 공간과,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려낸다.

 

을숙도, 갈대숲을 거닐다 - 10점
이상섭 지음/해피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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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주 장편소설

유마도柳馬圖

조선통신사 변박, 버드나무 아래 말을 그리다

 

 

 

조선통신사 사행길에 오른 동래 화가 변박!

일본의 호넨지에 남겨진 그의 그림 ‘유마도’의 비밀을 파헤치며

조선통신사, 그 파란만장한 300여 일의 여정을 그려내다

 

조선통신사와 함께 변박의 그림‘묵매도’, ‘송하호도’, ‘왜관도’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강남주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유마도』가 출간된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지지 않은 변방의 화가 ‘변박’이라는 인물에 주목해 그가 조선통신사 사행선의 기선장이 되어 일본 대마도로 향하는 긴 여정을 담고 있다.

작가 강남주는 1974년 시집 『해저(海底)의 숲』이 『시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한 후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75세의 나이에 계간문예지 『문예연구』 제61회 신인문학작품 공모전 소설 부문 단편소설 「풍장의 꿈」이 당선돼 늦깎이 소설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알게 된 조선통신사의 이야기와 화가 변박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소설로 집필,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변방의 화가에 주목하고, 조선통신사의 사행길을 엄청난 집념으로 쫓는다.

 

‘통신(通信), 신의를 나눈다.’

조선통신사를 통한 교류는 신뢰를 기반으로 조선과 일본의 평화와 선린우호를 상징한다. 작가 강남주는 “평화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하며 조선통신사의 교류가 우리에게 유효한 나침판이 될 것임을 이야기한다. 한편, 지난 10월 31일,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고, 여기에는 변박의 그림 묵매도(墨梅圖)·송하호도(松下虎圖)·왜관도(倭館圖) 세 점이 포함돼 있다. 

 

 

변방의 화가 변박,

그의 작품 <유마도>가 일본의 한 절에서 발견되다

 

일본 시코쿠 섬에 있는 외딴 절에서 200여 년 전 조선 화가의 작품이 발견된다. 그것도 조선에서는 이름도 없는 변방 동래의 화가의 작품이.

‘유마도’

버드나무 아래 있는 말을 그린 이 그림은 변박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이 '유마하도'라고 잘못 알려진 채 일본의 절에서 발견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변박의 삶과 작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변박은 부산진순절도와 동래부순절도를 남긴 화가다. 두 그림은 보물 391호와 392호로 지정될 만큼 유명한 그림이다. 그리고 그의 그림 묵죽도, 묵매도, 송하호도는 구경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일본인이 수두룩했다. 그렇게 알려진 화가다. 그러나 미술사에 남긴 그의 발자국은 그다지 선명하지 못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오로지 변방의 화가로 살다 갔기 때문인지 모른다. 변박은 보잘것없는 출신이란 이유로 무시와 냉대를 이겨야 했다.

『유마도』는 작가가 실제로 논문에서 만나게 된 화가 변박을 조사하며 알게 된 그림 ‘유마도’의 실체를 쫓아간다. 작가가 ‘유마도’를 찾아 일본의 호넨지로 찾아가게 된 이야기를 소설의 뒤에 실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빛나는 예술의 숨결을 전하고자 한다. 또한 허구와 실제를 오가는 액자식 구성은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전한다.

 

 

조선통신사 사행길에 남긴 변박의 그림들

 

동래부사 조엄이 스물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변박을 부른다. 그리고 몇 점의 시화를 선보이게 한다. 조엄은 변박의 붓끝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머무는 예술의 가치를 알아챈다. 그리고 그를 조선통신사 사행길에 함께하도록 한다. 하지만 변박은 화원의 신분이 아닌 조선통신사 사행선의 기선장으로 긴 항해에 오르게 된다. 궁중 도화원 출신이 아닌, 이름 없는 화가에게 쉽사리 문화교류 중심의 자리를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도목수의 도움으로 변박은 기선장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때때로 쏟아지는 폭풍우와 집채만 한 파도를 견뎌내고, 긴 항해에 지친 사람들을 다독이며 대마도를 향한 여정을 계속해나간다. 그러던 중, 사행선의 중심이었던 복선장 유진복이 사고로 의식불명의 상태가 되고 변박은 그의 빈자리를 메우며 조선통신사 행렬의 일정을 무리 없이 진행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대마도, 긴 여로의 곳곳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많은 문인들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조선통신사의 선단(船團)과 행렬은 일본의 민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일본 각 계층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변박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 안에 꿈틀거리는 예술의 혼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그림 한 점을 요청하는 일본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곳에서 몇 작품을 남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변박의 대표적인 작품 ‘송하호도’와 ‘묵매도’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통신사 이야기와

변박의 빛나는 삶과 예술혼

 

소설 『유마도』는 화려한 조선통신사 행렬의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들을 낱낱이 전한다.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는 최천종의 죽음과 구황작물 고구마가 조선으로 들어오게 된 이야기 등을 자세하게 다루며 양국 문화교류의 양지와 음지를 고르게 비춘다. 또한, 조선통신사의 300여 일(10개월) 일정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긴장감 넘치는 사건과 예술에 대한 변박의 간절한 마음을 만날 수 있다.

 

무명 속에서도 임란의 아픔과 조선의 기개를 화폭에 수놓는 위대한 예술가, 변박. 하지만 한양이라는 중앙 무대가 아니라 변방 동래의 화가였기 때문에 재능을 꽃피우기가 어려웠다. 그런 변박은 자신을 알아본 조엄 정사를 통해 조선통신사에 합류하게 됐고, 길고 고된 여정을 함께한다. 기선장이 되어 조선통신사의 항해를 도맡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그림과 글에 대한 열정은 대마도에서 몇 점의 작품으로 남게 되는데….

 

동래의 화가 변박의 삶과 그의 그림 유마도를 찾아 떠나는 여행, 『유마도』.

이 작품을 통해 200여 년 전 어느 화가의 열망과 예술 세계를 만나며

조선통신사의 진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저자 소개

 

강남주

경남 하동 출생. 부산수산대(現 부경대)를 졸업하고 부산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수산대 교수, 부경대 총장을 거쳐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일공동 등재 한국 측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시문학’ 추천이 완료되어 시인으로 활동했으며, 2013년 ‘문예연구’ 신인 소설상에 당선되었다. 저서로는 『가고 싶은 수렵시대』 등 시집 9권과 평론집 4권이 있다. 국민훈장 청조장과 부산시 문화상(문학부분) 등을 수상했다.

 

목차

 

 

 

 

강남주 장편소설  유마도

강남주 지음 | 264쪽| 13,800원 | 2017년 10월 30일 출간

 

무명 속에서도 임란의 아픔과 조선의 기개를 화폭에 수놓는 위대한 예술가, 변박. 하지만 한양이라는 중앙 무대가 아니라 변방 동래의 화가였기 때문에 재능을 꽃피우기가 어려웠다. 그런 변박은 자신을 알아본 조엄 정사를 통해 조선통신사에 합류하게 됐고, 길고 고된 여정을 함께한다. 기선장이 되어 조선통신사의 항해를 도맡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그림과 글에 대한 열정은 대마도에서 몇 점의 작품으로 남게 되는데….

 

 

 

유마도 - 10점
강남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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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1화 :: 동래읍성의 아픔을 420년만에 발굴하다-부산 동래왜성

 


 

 

위의 사진은 무엇일까요?

 

  2005년 4월 부산 동래구 수안동 부산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동래읍성 유적입니다. 처참했던 1592년 음력 4월15일 동래읍성 전투상황을 그대로 간직한 유적이죠.

 

  이후 경남문화재연구원은 곧바로 발굴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성곽을 따라 땅을 길게 판 해자에선 철판을 이어 만든 갑옷과 투구, 환도, 창, 화살촉 등 전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죠.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전쟁의 처참한 흔적이 남아 있는 사람뼈였습니다. 해자 밑바닥에선 남자 59명, 여자 21명, 어린이 1명 등 모두 81명의 뼈가 발굴됐는데요, 이 가운데 8명의 두개골에선 칼에 베이거나, 활이나 총, 둔기 등에 맞은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이렇듯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끝까지 저항하다 스러져간 조선 백성들의 주검이 동래읍성 해자에 아무렇게나 던져졌습니다.

 

  그렇게 우리 역사에서 잊혀져 미처 수습하지 못했던 조선 백성들이 420여년만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 치열했던 동래읍성 전투 그 이후... 병참선 확보, 통치 목적의 동래왜성

 

 

  왜군은 동래읍성을 함락한 뒤 동래읍성 동헌에서 동쪽으로 700여m 떨어진 구릉 꼭대기에 동래왜성을 쌓았다. 임진강·행주대첩·2차 진주성·울산성 전투 등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굵직굵직한 싸움에 참전했던 킷가와 히로이에(吉川廣家)가 이 왜성을 만들어 머물렀다.

  그는 왜군 장수 중에 가장 많은 3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와서 부산 증산왜성 등을 쌓은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의 사촌이다. 킷가와는 모리 가문의 선봉대를 맡았는데, 자신의 공적을 쌓기 위해 조선인의 코를 베어가는 왜장으로 악명이 높았다. <킷가와 가문 문서>에는 그가 1597년 9월1일부터 같은달 26일까지 전라도 일대에서 조선군의 코 1만4800여개를 베어갔다고 기록돼 있다. 학계는 조선군의 코가 아니라 아녀자와 노약자 등 조선 백성들의 코를 베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부산 동래구 칠산동에 있는 동래읍성의 동장대. 임진왜란 때 왜군은 이곳에 동래왜성의 전투지휘소인 천수각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

 

  강이나 바다 근처 낮은 구릉에 있는 대부분의 왜성과 달리 동래왜성은 내륙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학계는 왜군이 부산의 국방·행정 중심지였던 동래에 병참선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이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내륙에 동래왜성을 쌓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왜군은 동래왜성을 쌓으며 1446년(세종 28년) 세워진 옛 동래읍성을 파괴해 석재를 조달했다. 조선은 1731년(영조 7년) 옛 동래읍성의 6배 규모로 새 동래읍성을 건설하며 동래왜성 성벽의 돌을 가져다 사용했다. 왜군은 동래왜성을 쌓으며 옛 동래읍성의 돌을 재활용했고, 조선은 새 동래읍성을 쌓으며 동래왜성의 돌을 또다시 재활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동래왜성에 석축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동래왜성 2곽 추정 지역을 지나 구릉 꼭대기로 올라가면, 1곽이 나온다. 전투지휘소인 천수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에 조선후기 동래읍성의 동장대가 세워졌다. 해운대, 기장, 구포 등 부산 외곽으로 가는 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동장대 동쪽 비탈엔 30~40m 길이의 해자가 보인다.

  1979년 동장대 복원공사 당시 이곳에서 조선 기와가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일본에 돌아가 세운 구마모토(熊本) 무기시마(麥島)성 천수각에서 같은 제작틀로 만든 기와가 출토됐다. 동래읍성에서 가져간 것을 본보기로 만든 기와를 일본성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충렬사 경내로 들어가 동래구 칠산동 쪽으로 내려가면, 동래사적공원의 구릉을 타고 길게 늘어서 있는 조선후기 동래읍성 복원 성벽이 보인다. 조선후기 동래읍성의 문 가운데 하나인 ‘인생문’도 저 멀리 보일듯 말듯하다.

  인생문이라는 이름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인생문 고개를 통해 도망간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라는 설과,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에서 죽은 주검들을 성 밖 묘지로 옮기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인생문은 1731년(영조 7년) 새로 만든 조선후기 동래읍성에 딸린 문으로 1592년(선조 25년) 일어난 임진왜란과는 관련이 없다. 임진왜란 때 억울하고 처절했던 조선 백성 사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내용이 와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 2화에서 계속

 

*본 게시물의 순서와 책의 목차는 상이합니다.

*게시물의 내용은 책 본문의 내용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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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잠홍 2016.04.25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군은 옛 동래읍성을 파괴해 그 돌로 왜성을 쌓았고 조선시대에는 또 동래왜성의 돌들로 새 동래읍성을 쌓았다는 점이 재미있네요. 왜성은 역사의 블랙박스라는 말이 실감나요. 만약 돌들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 BlogIcon 단디SJ 2016.04.25 15: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왜성에는 숨은 역사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는데요. 동래읍성에서 가져간 기와를 일본성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재밌는 부분 중 하나예요.


최근 동래에 놀러갔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인도에 온 착각이 들었더랬죠. 

작년 인도에 여행갔을 때 저를 가장 강렬하게 맞아준 것은, 인도인 특유의 속임수도 아니고, 거리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소도 아니고, 폭주하는 택시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냄새!! 냄새였지요.
동물이나 남자인간이나 지나가다가 마려우면 거침없이 거리에서 그냥 싸버리는 덕에 인도의 거리는 구수한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처음엔 적응하기가 정말 힘들었죠.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바지를 내리며 살짝 돌아서서 볼일을 보시는 통에 "아니, 이런 구경거리가!" 하면서도 눈을 다른 쪽으로 돌리곤 했습니다. 정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자 구경거리였죠. 그러니까, 인도의 화장실은 이런 식입니다. 


델리역 부근 (사진출처는 같이 갔던 권OO씨)


문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실 여기에서 해결하는 사람보다 그냥 벽에서 해결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델리이기에 이만한 시설을 찾아볼 수 있지, 바라나시에선 그냥 내리고 해결입니다. 


그런데, 아니 그런데!!
동래에 이런 게 있지 뭡니까. 시간은 저녁 8시경, 장소는 KT전화국 맞은편이었습니다.


떡하니 변기가 대로변에 이렇게 서 있지 않겠어요. 그것도 실리콘으로 단단히 붙여진 채로. 놀란 저는 변기 가까이로 가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어찌나 신기했던지. 도대체 어떤 연유로 변기가 여기 서 있는 것일까요. 몇 가지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1. 노상방뇨 상습지역이다. "CCTV설치, 적발 시 고발조치", "가위로 자른다" 뭐 이런 문구를 붙여놔도 아무 실효를 보지 못했던 주인이 마지막 방책으로 세운 것이다.
2. 뒤샹의 변기 작품을 보고 감명받은 주인이 길거리 예술을 실현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3.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온 주인, 거리에서 아무때나 해결할 수 있었던 그 편안함을 대한민국에 도입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뭐가 됐건, 저는 이 변기 덕에 한참 웃었습니다. 순간 인도에 온 것 같아서 여행 온 기분도 느낄 수 있었고요. 부산에 이사온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부산 곳곳을 돌아다닐 때 마다 여행 온 기분인데, '따블'로 여행 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지요. 

동래에는 온천도 있고, 맛있는 파전도 있고, 이런 변기도 있어서 정말 좋은 동네입니다. 
동래는 좋은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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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TAG 동래,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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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양갱김정은 2012.01.05 14: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저는 왜 제가 사는 동네인데도 보지 못했을까요. 한번 찾아 봐야 겠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