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드림>에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서평이 실렸네요 :)

저도 참 좋아하는 책인데, 두고두고 사랑 받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이 글의 필자이신 동네책방 '숨' 안혜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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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기

[동네책방]‘‘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어쩌면 2020년은 우리 모두의 삶에서 지워진 것 같다. 2020이라는 숫자는 사라지고, 판데믹과 확진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의 숫자들이 우리 주변에 항시 도사리고 있다. 12월 추운 겨울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와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가 지나도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우리는 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많은 사람이 코로나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보다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하여. 혼란의 시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혼란을 사유하고 고뇌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유하고 고뇌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래도록 지식인의 영역은 지식인들의 것으로만 여겨져 왔다. 수없이 많은 철학적 맥락을 모두 공부하고,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더 앞으로 나아가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이다. 배운 것이 많아야 생각도 할 수 있고, 이런 생각이 있어야 또 다른 배움을 위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강의가 되기도, 글이나 책이 되기도, 삶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전문가의 발언과 어려운 논문 제목들로 우리 ‘일반인’들은 그 형태를 어렴풋이 감지한다.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가 바로 이러한 방식의 사유를 거부했다고 마리 루이제 크노트는 말한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기자이자 작가, 번역가인 그는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산지니, 2016)이라는 책에서 아렌트가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도 사유하게 하는 글’을 쓴다고 표현했다. 학습보다는 단어 자체에 숨어있는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고, 본문에서 채택된 인용구만을 통해 어렵다고만 느껴지는 과거의 인물들에게 반박할 수 있도록 하는 글을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서를 심각하게 거스르는 일이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유할 수 있는, ‘어려운’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글은 인간이 어떠한 생각을 전달하는 데에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방식이다. 철학과 정치를 공부한 아렌트는 어떤 연유로 이런 생각에 골몰하게 된 것일까?
한나 아렌트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악의 평범성을 아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아렌트는 그 유명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겪으며 이 개념을 소개했는데,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악의 평범성이 아닌, 인간 아이히만을 만난 한나 아렌트의 반응이었다. 아렌트는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지식인 대부분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말들로 자신의 엄청난 범죄사실을 숨기는 아이히만을 만났다.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한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동에 어떠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유대인과 유대국가에 대한 연민을 품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모멸감과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던 아렌트는 ‘당돌한 반어법’과 ‘웃음’을 사용했다. 아이히만을 진지한 철학적 언어로 비판하지 않고 조롱했으며, 심문 보고서를 읽으며 쉬지 않고 웃었다. 이것은 정석을 따르는 길이 아니었고,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렌트를 비판하였지만, 그것은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상황의 유일한 해결법이었다. 절망스러운 감정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만약 이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얻는 말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권력자의 연설일 것이다. 모든 단어와 문장은 다르게 해석되고 그렇기에 글을 쓰는 것은 단순한 주장의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글은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독일어를 사용하던 아렌트는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영어권 인사들에게 전하기 위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했다. 자신의 글뿐 아니라 생각 자체를 ‘적절히 번역’하고자 애쓴 것이다. 각 나라의 언어는 달라서 한 가지 의미에 여러 단어가 연결될 때도, 여러 가지 의미에 한 단어가 연결될 때도 있다. 한나 아렌트는 언어를 잘 사용하지 못할 때의 한계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았던 것 같다.
이렇듯 아렌트는 감당할 수 없는, 그렇기에 말할 수 없는 것, 동시에 타인에게 알려야 하는 것에 나날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감당할 수 없으므로 매번 다르게 표현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방식. 언어를 유연하게 사용하게끔 하는 방식. 정치 이론가 아렌트의 사상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고, 이런 표현을 듣고 있자면 이 사람이 쓴 글은 고리타분한 교양서 정도로 느껴지겠지만, 그 반대다. 아렌트는 시문학과 같은 방식의 글을 쓰기로, 시문학의 부분들에 도움을 받아 자신의 말을 글로 옮기기로 했다. 운율이 있는 주장, 독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문장. 물음표. 그것이 한나 아렌트의 ‘탈학습’이자 ‘진정한 자발적 사유’이다.
낯설은 이름이지만 탈학습은 배움, 즉 세상을 습득하는 것 자체를 멈춘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깥의 것을 그저 내 것이라 착각하며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고, 잘 쓰인 글에 말 없이 반박하며 토론하며 순간순간을 사유한다는 의미다. 21세기의 우리가 20세기 초중반의 사상가를 지레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않을 수 있는 이유다.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기만을 바라게 되는 요즈음이다. 불완전한 말과 글 사이에서 끝없이 사유하며 12월을 지나보낸다.
문의 062-954-9420.
안혜민 <동네책방 숨>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 10점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산지니


Posted by _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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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를 좋아하세요...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인턴 최예빈


사는 게 왠지 시시해질 때마다 집어 드는 그래픽 노블이 있다.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켄 크림슈타인이 지었고, 국내에선 더숲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산지니 블로그에서 타 출판사 책 언급하니 좀 민망한 구석이 있지만 눈감아 주세요 대표님)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은 아렌트의 생애를 그린 만화다. 이렇게 설명하면 예림당에서 내는 WHY 시리즈 위인전 느낌일 것 같지만, 엄연히 성인 대상의 그래픽 노블이다.


뭔지 아시죠?


어쨌든 그 책을 통해 전체주의 광풍으로 혼돈을 맞았던 20세기 초 유럽 모습과 지금은 전설이 된 천재들(엑스트라처럼 등장하는 인물조차 업적 설명을 위한 각주가 달려있다)이 기어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래, 이렇게 열렬한 게 바로 삶인데!” 같은 생각이 절로 들어 권태를 씻고 일어나게 된다. 사유하지 않는 것이 그릇된 사유 보다 더욱 위험한 거라는 아렌트의 일침이 귓전을 때리고, 무기력해진 몸과 정신을 다시 한번 일으켜 내는 것이다.

 

쓸데없이 서두가 길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게 아렌트를 좋아하냐 물었을 때 내가 아유 그럼요”(그런데 누가 아니라고 할까?)라 대답하는 배경에는 만화책 한 권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좀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아렌트 팬을 자처하면서 아렌트의 저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 위의 그래픽 노블을 포함해 아렌트 다룬 책 서너 권 읽었지만, 정작 그가 직접 쓴 책은 읽지 않았다.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제목은 술술 나오고 어디가서 어쭙잖게 아는 체도 하지만 기실은 단 한 권도 안 읽었다. 그러니 아렌트를 좋아한다는 내 대답은 알량한 허세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렌트가 직접 쓴 책보다 아렌트를 오랫동안 숙고해온 다른 어떤 이가 그에 대해 쓴 책이 좀더 아렌트를 아렌트답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너무 아렌트 안 읽은 티 팍팍 내는 발언인가?


아렌트와 블뤼허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저자 마리 루이제 크노트가 아렌트의 사유방식을 사유해낸(그렇담 이것은 메타사유인가) 걸출한 작품이다.

저자는 웃음/번역/용서/표현 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탈학습을 설명한다. 탈학습이란, 이미 존재하는 언어체계와 전승되어온 관념들에 대한 이해를 폐기하고 기존 맥락을 분해하여 개념의 새로운 쟁취를 시도하는 것으로, 친숙한 것을 다시 낯선 것으로 바꿈으로써 세상과의 새로운 관계맺기를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아렌트의 이러한 독특한 사유방식이 계획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닌 충격에 대한 반작용에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독일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며 늘 낯선 세계에 내던져졌던 아렌트는 기존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자신 안에 계속해서 축적했다. 그리고 그 충격에 의한 반작용으로 체득한 사유방식탈학습을 통해 기존 통념을 뒤집는 사유(악의 평범성!)를 구축했다. 또한 아렌트의 웃음, 번역, 용서, 표현 행위는 앞선 충격에 의해 형성된 균열을 봉합하거나 덮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열어둔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균열에 계속해서 관여하도록 한다. 관여가 바로 아렌트의 정치 개념에 대한 실마리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탈학습이라는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사고의 폐쇄성이 짙어지고 있는 오늘날 특히 되새길 지점이 많은 개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아렌트보다 더 아렌트처럼 생각하는마리 루이제 크노트, 즉 저자의 존재. 아렌트의 사유방식을 탈학습으로 설명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아렌트를 떠올렸까. 아마 아렌트가 자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이, 더 오래 그러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 덕분에 아렌트를 읽지 않고도 아렌트를 만나게 된다. 혹은 만났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장 그르니에의 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속 텍스트가 아닌 카뮈의 추천사였던 것처럼, 우리가 다른 이에게 받은 편지 속에 묘사된 자신을 보고 진짜 나를 마주친듯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타인의 애정이 개입된 해석이야말로 그를 더욱 그답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글쓴이 

마리 루이제 크노트Marie Luise Knott

프리랜서 기자, 번역가, 작가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을 해왔으며, 독일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를 설립하고 편집장을 역임했다. 예술과 문학에 대해서 수많은 글을 출판하였고, 가장 최근에는 한나 아렌트에 관해서 Von den Dichtern erwarten wir Wahrheit(한나 아렌트시인에게 진실을 갈구하다) Hannah Arendt/Gershom Scholem, Der Briefwechsel, 1939-1964(한나 아렌트와 게르숌 숄렘, 서신교환, 1939-1964)을 출판하였다.


 

        옮긴이 

배기정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시대 문인들의 중국문화 수용과 문학적 변용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독일학술교류처(DAAD)가 선정한 중앙대학교 독일유럽연구센터(ZeDES)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변화를 통한 접근(공저), 독일 신세대 문학(공저)이 있고, 역서로 망가진 시대-에리히 케스트너의 삶과 문학이 있으며, 패자의 표상에 새겨진 선한 유럽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럽비전과 현재적 의미, 폭력의 시대에 저항하는 문학적 체념-알프레드 되블린의 망명소설 바빌론왕의 유랑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김송인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화관련 해외마케팅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재학중이다.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 10점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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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니카 2020.03.24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렌트가 주인공인 그래픽노블,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2.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3.25 1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빈박사님, 집에 <전체주의의 기원> 있는데 빌려드릴까요?ㅎㅎ (몇 년째 읽고 있어요)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아렌트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서평도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