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턴 시작 후 첫 서평을 올리게 된 ‘솔율’입니다    즐거워

막상 시작하려니 긴장되는 이 기분.. 두근두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앞표지 (슬쩍 나온 저 통통한 건.. 어허허)

  오늘 제가 서평을 쓸 책은 ‘류원빙’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라는 책입니다. 중국 영화라니. 한국 영화나 미국 영화에 익숙한 제게는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런데 그 낯선 느낌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고 해야 할까요. 전반적으로 쉬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중국의 역사와 연결되는 지점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먼저 저자에 대해 알아볼까요? 저자 ‘류원빙’은 1967년 중국 산둥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도쿄대학원에서 학술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영화전문대학원대학 객원 조교수를 거쳐 현재는 도쿄대학 대학원 학술연구원으로 있다고 합니다. 전공 분야는 영화론과 표상 문화론이라고 하네요.

  저서로는 『중국 항일 영화, 드라마의 세계』(쇼덴샤 신서, 2013), 『증언 일중 영화인 교류』(슈에이샤 신서, 2011), 『영화 속의 상하이』(게이오기주쿠 대학 출판회, 2004) 등이 있습니다. 저서만 보아도 저자의 자국 영화에 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네요.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도서 이야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목차

  사진을 보셨듯이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는 추천사, 서장, 본문, 맺음말, 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서를 읽은 후 본문을 제외한 부분들 또한 본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특히 중국의 제6세대라 일컫는 감독 중 하나인 ‘자장커’감독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답니다.

  잠시 맨 위의 도서 사진을 다시 볼까요? 본 제목 아래 부제로 ‘어느 영화 소년의 80년대 중국영화 회고론’이란 문구가 쓰인 것을 보실 수 있는데요. 네, 맞습니다. 어느 영화 소년은 바로 이 책의 저자를 지칭하는 것이겠지요. 부제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이 책은 1980년대 파란만장했던 중국의 역사와 함께 그 속에서 꽃피웠던 영화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봅시다. 본문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문혁’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혁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줄인 말인데요, 모두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하 문혁)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당시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사회주의 운동입니다. 본래 농업국가인 중국에서 과도한 중공업 정책으로 인해 국민경제가 좌초되는 현상이 발생하자 민생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일부를 채용한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면서 덩샤오핑(鄧小平)과 같은 개방파들이 새로운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전국 각지마다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군사)’이 조직되었고 그들은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전국을 휩쓸기 시작합니다.

  이때 중국은 일시에 경직된 사회로 전락하게 되었고 마오쩌둥에 반대되는 세력은 모두 실각되거나 숙청되었습니다. 마오쩌둥 사망 후에야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극좌적 오류’였다는 공식적 평가를 내렸고 문화대혁명의 광기는 급속히 소멸되었는데요.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바로 문혁 이후의 중국 사회를 영화라는 소재를 빌려 풀어내고 있습니다.

 

 

  약간 어려우시죠? 그렇다면 지금부터 각 장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따라오세요^^ (과연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긴장긴장)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의 본문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문혁에서 덩샤오핑 시대로-불길한 기억으로부터의 해방, ‘제2장, ‘외부로’로 향하는 시선-한정된 정보로부터 얻는 영감, ‘제3장, 제작, 유통, 검열-중국 영화를 지탱하는 것, 방해하는 것, ‘제4장, 스타 탄생-개혁개방 후, 물신이 된 여배우가 그것인데요. 차근차근 한 장씩 알아가 보도록 합시다.

 

 

  제1장, 문혁에서 덩샤오핑 시대로-불길한 기억으로부터의 해방에서는 중국의 문혁시절 고난을 그려낸 당시 중국 영화의 독특한 장르 ‘상흔 영화’를 중심으로 당대의 상황이 ‘역사’로 변모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문혁 이후 1978년이 되자, 덩샤오핑을 대표로 하는 ‘탈문혁파’가 마오쩌둥 이론을 상대적으로 수용해야함을 주장하는 동시에 문혁 시절 속박되었던 사상에 대한 탈피를 외칩니다. 이는 사상 해방 운동과도 연결되며 이전 중국 전체를 옭아맸던 문혁 이데올로기 자체를 철저히 부정하여 새로운 ‘덩샤오핑 시대’의 서막을 알립니다.

  이러한 정세 변화를 수용하듯, 중국 내에선 1979년을 경계로 문혁과 정면으로 맞서는 새로운 유형의 영화가 등장하게 됩니다. 문혁 당시 시민들이 겪은 고통, 그리고 트라우마를 감상적으로 표현한 소위 ‘상흔 영화’라 불리던 장르인데요. 이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중국에서 제작된 120여편의 영화 중 50편에 달했다고 합니다. 주로 ‘사인방(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권력을 휘두르며 탄압을 주도한 공산당 지도자 네 명. 장칭, 야오원위안, 왕훙원, 장춘차오)에 의해 탄압받은 정치적 사건이 중심이었다고 하네요.

 

- 영화 <열번째 총알자국> 문혁 시기,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남은 아버지. 그리고 장난감 총을 겨누고 있는, 비행의 길로 들어선 아들. <열번째 총알자국>에선 둘의 대조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다.

 

  또한 ‘상흔 영화’의 가장 큰 모토는 자본주의의 억압을 고발하는 것으로, ‘적에게 입은 상처’가 모티프로 종종 등장했습니다. 사상을 억압하고 한 가지로 압축하려 했던 마오쩌둥이 아닌 개방적인 정책을 취했던 덩샤오핑 정부의 흐름과 이어지는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이전의 억압과 폭력을 적으로 두고 남은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서로의 생채기를 어루만지는 방법으로 이러한 장르를 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2장, ‘외부’로 향하는 시선-한정된 정보로부터 얻는 영감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서방의 문화가 중국에 유입될 때 일어난 ‘문화 번역’문제를 대중, 그리고 예술 운동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검증합니다.

  당시 서양 문화의 중심에는 춤이 있었습니다. ‘디스코 댄스’‘브레이크 댄스’가 대표적인 예인데요. 당시 외국 영화를 보면 그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방정책에 따라 중국내로 유입된 춤들은 중국 청년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중국의 영화감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요. 젊은 주인공이 로큰롤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강렬한 장면이 포스터로 인쇄되는 등 이전의 영화와는 다른 성향을 보입니다.

 

- 영화 <로큰롤 청년> 서구문화 유입의 예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 시기 중국의 영화감독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프랑스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입니다. 앙드레 바쟁의 영화는 세 가지 키워드로 말할 수 있는데요, 바로 ‘롱 테이크’, ‘리얼리즘 미학’, ‘영화의 사진적 이미지 존재론’입니다. 롱 테이크란 촬영 기법중 하나로 카메라 쇼트를 짧게 끊지 않고 긴 시간동안 한 번에 촬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리얼리즘 미학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들여다보는 것과 연결이 되는데요. 허구가 아니라 있는 그 자체를 담아내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영화의 사진적 이미지 존재론이란 사진을 찍은 것처럼 순간을 포착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이 세 가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묶일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담 이러한 바쟁의 의식을 물려받은 감독들의 영화는 어땠을까요? 네, 당시 있는 그대로의 현실, 다큐멘터리에 입각한 영화가 많이 탄생했습니다. ‘원 쇼트 = 원 신’이라는 방식을 채용해 있는 사실 그대로의 꾸밈없는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 영화 <필승의 의지> 실제 중국 여자 배구선수단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렇게 1980년대의 중국영화산업의 시선은 개혁개방 정책과 함께 장의 제목처럼 외부에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부제에 있듯이 그 시선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방정책을 펼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시민들이 (사상적으로) 어느 정도는 억압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 억압이 영화에게도 미치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한정된 시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당시 어떤 검열, 즉 억압이 영화를 누르고 있었을까요? 제3장에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합시다.

 

 

  제3장, 제작, 유통, 검열-중국 영화를 지탱하는 것, 방해하는 것에서는 중국영화의 제작, 검열, 배급 구조와 함께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가 영화 시스템에 가져온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지배체제였던 사회주의가 영화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데요.

  1950년대 전반,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영향을 받은 검열 제도는 크게 각본에 대한 검열과 완성된 작품에 대한 검열, 이렇게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각본에 대한 검열이 우선이었는데 이 역시 아무 각본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권위 있는 영화 잡지였던 『전영창작』, 『전영신작』 등에 각본이 실려야만 검열의 우선순위를 잡을 수 있었는데 당시 잡지에 투고된 작품은 4,000편이 넘었지만 실리는 것은 몇몇 프로 각본가들의 것이었다고 하네요.

 

- 영화 <주청전> 남녀가 한 침대에서 자게 되었을 때, 여주인공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 바지춤을 추스르는 모습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삭제당함.

 

  잡지에 각본이 실린다는 것은 영화화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 말할 수 있었는데요. 그러나 실리고 나서도 촬영소에서 수십 번의 수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검열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각본은 검열기관인 ‘전영국’를 비롯해 중국 당정부에까지 전달되었으며 아주 엄격한 기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각본 검열이 통과되고 촬영·편집이 완성된 후 완성작에서의 검열 역시 까다로운 기준으로 이루어졌는데요. 1차로 각 촬영소에서 검열을 한 후, 2차로 전영국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이렇게 대략적으로 써보았는데 이 글로만 보아도 중국 내 영화 검열은 많은 경로를 통해 아주아주 까다롭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겠지요. 이러한 검열방식이 과거보단 느슨해졌다고 하나 현재 역시 크게 다르진 않다는 사실은 제게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검열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 영화 <지금 무슨 생각해?> 노동자 청년과 당 간부가 화해하는 장면

 

  1983년 개봉한 영화 <지금 무슨 생각해?>는 적극적인 당 간부의 노력으로 노동자 청년과 간부가 화해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역시 당 간부가 나쁜 이미지로 비춰질 것을 우려한 당의 압력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결말이 오히려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해준다면 믿으실까요? 부정적인 시각에선 당 간부의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현재 깨어있는 독자의 눈으론 오히려 당 간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화해가 힘들다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지도자층이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자신들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한 검열이 오히려 대중들에게 충고를 받을 여지를 준다는 사실이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네요.

 

 

 

 제4장, 스타 탄생-개혁개방 후, 물신이 된 여배우에서는 문혁 이후 중국에서 국민적 인기를 떨친 두 명의 여배우 ‘류샤오칭’과 ‘조안 첸’ 통해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의 스타 소비 형태와 시장 자유화에 따른 여배우의 ‘물신화’ 경향을 만날 수 있습니다.

  류샤오칭과 조안 첸은 영화 <작은 꽃>으로 동시에 영화계 톱스타로 등극했는데요. 이 두 사람의 청순한 이미지는 문혁으로 황폐해진 중국인들의 마음에 여유로운 정감을 선사했고, 둘은 국민적 아이돌로써 인기를 떨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여배우로써 서로 다른 길을 걷는데요. 먼저 ‘류사오칭’은 여배우로써 종래의 사회적 상식적 성윤리를 대변하는 검열에 맞서 언제나 도발적이고 공격적이었습니다. 그녀는 브라운관 안과 밖 상관없이 화려한 패션과 팜므파탈적인 생활로 유명했는데요. 여기서 여배우의 ‘물신화’ 경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류샤오칭’은 욕망이 강한 배우였습니다. 자부심이 넘쳤고 당당했지요. 화려한 만큼 받았던 비판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그녀는 대중 심리를 이용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항상 대중의 관심을 바라며 일부러 자신에 관한 스캔들과 루머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스캔들로 배우 생활이 위기에 닥쳤음에도 자서전을 펴냄으로써 대중의 동정심을 유발했으며 그야말로 참된 류샤오칭 자신이 아닌 물신, 즉 스타로써의 욕망에 사로잡힌 생활을 했습니다.

 

- 류사오칭

 

  제도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녀는 80년대 후반 태도를 바꾸는데요. 정치적으로 권위적인 위치에 선 것입니다. 그녀는 당 위원 활동까지 하며 애국심을 고취시킵니다. 미국에서의 러브콜도 거부한 채, 그녀는 “내 뿌리는 중국에 있고, 내 뒤에는 만리장성이 있다”고 말하며 중국에서의 작품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브라운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하네요.

  ‘조엔 첸’ 역시 노동자로써의 모델이 만연하던 시기에 아주 모던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간 여배우입니다. 청초함을 강조했던 그녀는 단박에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소녀다운 순수함을 가진 그녀의 외모는 중국 내에서 ‘미의 규범’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1년 8월, 인기가 절정에 다다랐던 조안 첸이 갑작스럽게 유학을 선언합니다. 중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는데요. 중국 내에서 유학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자국 내 시민들이 외국으로 나가기 쉬워진 점을 감안한 것입니다. 또한 당시 중국의 이데올로기는 스타를 제도에 맞추기 위한 모델로 삼았기에 스타 스스로의 매력을 발산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역시 그녀가 미국으로 넘어간 이유가 될 수 있겠지요.

 

 

 

조안 첸

 

 

  미국에서의 시작은 그녀에게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양적 외모가 서구의 캐릭터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몇 번의 탈락의 고배를 마신 그녀는 자신을 제도에 맞추기로 결심합니다. 미국이 바라는 체형을 만들기 시작하지요. 이전의 모습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중국 내 여론은 그녀를 배신자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미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최근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톱스타가 된 후 서로 다른 길을 걷기도 했지만, 둘 모두 어느 하나의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개방 이후 중국 시민들의 외부를 향한 욕망, 그리고 일편적인 제도에서 벗어나고 했던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힘드셨죠? no  감사

  이렇게 본문은 마무리가 되었네요. 각 장의 특징이 뚜렷하여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픈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기에 부득이하게 자체 검열(ㅋㅋ)된 부분도 많은데요 (아쉬운 분들은 맨 아래 이미지를 눌러주는 센스!) 오랜만에 쉽지만은 않은 책을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중적이고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 아닌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 읽는 내내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특히 역사를 영화를 통해 배운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이해하기도 쉬웠구요.

  한 이데올로기에 억눌렸던 중국이 변화하는 중요한 시점, 1980년대 파란만장했던 중국의 역사를 알고 싶으시다면,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추천 도장 꽝꽝꽝!!!

 

 

이상 솔율의 첫 서평이었습니다사랑해5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급 마무리란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탓이겠지요 허허허;;;)

 

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 10점
류원빙 지음, 홍지영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전복라면 2015.02.03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XX씨 닉네임을 솔율로 정했군요? 소나무엔 밤보다 잣이 더 가깝지 않나ㅋㅋ(농담) 추천도장이 꽝도 아니고 꽝꽝꽝이니까 저도 꼭 말고 꼭꼭꼭 정독할게요. 사실 솔율씨 포스팅 읽으니까 뭐 책 다 안 읽어도 되겠다 싶네요(엘뤼에르 미안)

  2. BlogIcon 잠홍 2015.02.03 1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율님 첫 포스팅이 완전 알찬데요?!! 저도 전복라면 님과 동감하는 바입니다, 포스팅 읽으니 책은...꼭 읽고 싶어지더란 말입니다. 언급하신 영화들도 다 보고 싶네요!
    다음 포스팅도 기대할게요 :)

  3. BlogIcon 엘뤼에르 2015.02.03 1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율님 반가워요^^ 저는 4장을 가장 재밌게 읽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송혜교가 중국 영화에 등장하고 하는 모습이 마치 조안 첸의 사례 같기도 하고, 류사오칭이 자서전을 내면서 대중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신정아씨가 『4001』을 출간해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여론전을 펼치는 모습과 오버랩되어 더욱 재밌었습니다.
    장별로 정리된 포스팅이 너무 다채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아시아 총서 14


중국 영화

 

열광적 황금


 어느 영화 소년의 80년대 중국영화 회고론 

이와나미쇼텐에서 출간된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와 번역되어 산지니에서 출간된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1980년대 중국영화, 그 영광의 의미를 논하다

아시아 영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중 중국영화는 자장커, 로예, 루추안 같은 제6세대 감독들이 가져온 충격이 크다. 문화혁명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중국영화를 논한 책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는 오늘날의 중국 영화를 있게 한 중국 내의 제도적 측면, 관중들의 수용, 스타 시스템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당시의 신문, 잡지, 평론, 단행본, 인터뷰 등 현지 자료를 통한 철저한 고증과 더불어 영화팬으로서 저자의 개인적 애정이 녹아들어 있는 책이다. 1967년생인 저자 류원빙은 개혁개방 이후 10대를 보냈고 그 시절의 영화관을 ‘파라다이스’로 기억하고 있다. 책은 영화의 호시절을 누린 저자가 기억하는 중국영화는 과연 어떤 것인지 그 실체를 상세하게 다룬다. 더군다나 이 책은 단순히 영화론에만 그치지 않고, 영화 제작을 뒷받침한 중국 제도와 대중문화를 함께 짚어보고 있어 현대 중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중국의 ‘1980년대’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다. 따라서 이제 그 시절과 같은 중국의 ‘열광적 황금기’는 아마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이에 1980년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던 영화 장르를 통해 중국의 사회상 전반을 살펴보는 작업은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 보다 의미가 깊을 것이다.


영화로 만나는 문화대혁명의 상흔

문화대혁명의 종결부터 고도성장기 개막에 걸친 10년, 특히 1980년대는 중국 영화의 황금기였다. 격동하는 시대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영화 미디어가 위안과 평온을 선사한 것이다. 이 시기에는 텔레비전이 아직 보급되지 않아, 저자의 말대로 “영화관은 파라다이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흔 영화(傷痕電影)’라 불리는 방대한 작품군에 더해 코미디나 연애 영화, 액션 영화 등 오락 영화도 다수 제작되기 시작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억압되었던 중국영화가 한 달에 15편가량 제작·상영되었고 외국영화도 미국과 서유럽, 소련과 더불어 제3세계 영화들이 다양하게 공개되었다. 이 책은 문혁에 걸쳐진 여러 기억들이 ‘가련한 피해자로서의 나’라는 공공적 기억에 수렴되는 과정과, 이에 ‘이야기’로 쓰이는 문혁이 공동체의 ‘역사’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개혁개방 이후 문화 번역(cultural translation)

휴일이 되면, 젊은 여공들은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예쁜 스커트로 갈아입고는 ‘잔췬’으로 유명한 지점으로 향했다. 최신 유행 패션을 몸에 걸치고 주위의 시선을 끌겠다는 듯 낭창낭창 걸어다니는 여성들과 기타를 치면서 그녀들을 힐끔거리는 청년들로 늘 분주하던 공원 일각이 그 지점이 되었다. 공원에 도착하면, 다소 긴장한 기미의 여공들은 우두머리격의 여성이 내리는 ‘가자’라는 지령을 따라, 횡렬대를 이루어 인파를 헤치고 당당히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곳에 자연스레 ‘통로’가 생겨났다. 여공들이 ‘통로’의 막다른 끝에 다다라 안도의 숨을 내쉬면, 우두머리격 여성이 이 ‘행렬 동기’들에게 ‘되돌아서 한 번 더 하자’며 다음 지령을 내렸다. 빨간 스커트를 입은 이 행렬 동기들은 주위의 선망어린 시선 속에서 통로를 되짚어 갔다. ‘제일 예쁘다’ ‘최고다’라는 관중들의 함성에 둘러싸여, 여공들은 서로 얼싸안고 대승리를 기뻐했다. _「제2장 ‘외부’로 향하는 시선」, 108~109쪽.


저자는 개혁개방 이래 서양 문화가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을 ‘문화 번역’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서술하고 있다. 외국 영화를 매개로 대중에게 수용된 디스코 댄스나 브레이크 댄스를 열심히 흉내 내며 ‘자본주의적 신체’와 동일화하려는 중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프랑스의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André Bazin)의 언설을 내세우며 영화 기법의 혁신을 시도한 중국 영화감독들의 문화 수용을 고찰하였다. 〈빨간 스커트의 유행街上流行紅裙子〉(치싱자齊興家, 1985)에서 자본주의의 경쟁 원리가 모종의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제시된다던가,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속일 수밖에 없을 만큼 고뇌하던 중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스크린 안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댄스스포츠의 일종인 폭스트롯(fox-trot)이 중국문화에 도입되면서 ‘베이징핑쓰北京平四(베이징 폭스트롯)’라는 스텝으로 변형된 것과 마찬가지로, 외국 문화가 새로이 중국 문화로 이식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 작용이 생겨나고 있다고 저자 류원빙은 말한다.


중국 영화의 제작시스템: 독특한 검열 구조

〈중년이 되어〉의 스태프들은 촬영 재개 뒤에도 검열 대책으로서 이 심각한 작품에 일말의 경쾌함을 부여하고자 갖은 애를 썼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농민 환자의 입을 빌어, “같은 백내장으로 고통받던 아버지는 눈이 먼 채로 일생을 보냈는데, 나는 나을 수 있다니… 사회주의는 얼마나 훌륭한가!”라며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어필하거나, 여주인공과 남편이 사별하는 심각한 장면에서는 집에 남겨진 어린 두 아이를 이웃이 열심히 보살펴 주는 장면이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삽입되는 등의 궁리책이었다. _「제3장 제작, 유통, 검열」, 192쪽.

사회주의를 국시로 하는 중국은 독특한 검열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저자는 영화 검열 제도에서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저촉되는 테마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것 또한 아니라며 독특한 구조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심사위원의 투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검열 방식, 검열에 통과되지 못했다가 특수한 계기로 특별 허가받은 사례, 다양한 결말을 동시에 촬영하여 검열에 통과된 라스트 신으로 교체해서 유통한 사례 등으로 그 특수한 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사회주의 아래, 여배우 소비 형태의 특수성

스타는 완벽한 상품이다. 1센티미터의 신체, 한 줄기 영혼의 섬유, 한 조각 생활의 추억 모두 시장에 내놓이기 때문이다. 스타에게는 가격이 매겨지고, 이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변동에 따라 규칙적으로 변화하며 수요는 티켓 시장과 ‘팬레터 부문’에 의해 정기적으로 평가된다. _「제4장 스타 탄생」, 248~249쪽.

이 책은 또한 1980년대를 빛낸 두 여배우인 류샤오칭과 조안 첸(천충)의 사례를 통해 냉전 시대에서 전 지구화 시대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중국 내 상황과 함께 여배우의 자기 소외에 대해서 논했다. 특히 스타의 이미지는 스크린과 사생활에 걸쳐져 있다. 류샤오칭은 에로틱한 신체와 공격적인 성격으로 스캔들의 도마에 자주 올랐던 배우이나 자서전 『나의 길』(1983)을 써서 스스로 자신의 사생활 일부를 털어놓음으로써, 외려 스캔들을 활용하여 자기 이미지를 조종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와 비견되는 조안 첸의 사례는 8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중국 스타의 할리우드 진출 사례를 보여준다. 조안 첸 이후 중국에서는 스타들의 출국 붐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면에는 서방세계에 대한 중국인들의 동경과 선망이 놓여 있었다. 자본주의를 경험하고 중국으로 돌아온 조안 첸에 중국인들은 한때 이질성을 느꼈으나,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중국인들과 조안 첸 사이에 오묘한 동질성이 형성된다.


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아시아총서 14

어느 영화 소년의 80년대 중국영화 회고론

류원빙 지음 | 홍지영 옮김 | 예술 | 신국판 | 350쪽 | 25,000원

2015년 1월 15일 출간 | ISBN : 978-89-6545-276-8 94680

문화혁명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중국영화를 논한 책 『중국영화의 열광적 황금기』는 오늘날의 중국 영화를 있게 한 중국 내의 제도적 측면, 관중들의 수용, 스타 시스템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당시의 신문, 잡지, 평론, 단행본, 인터뷰 등 현지 자료를 통한 철저한 고증과 더불어 영화팬으로서 저자의 개인적 애정이 녹아들어 있는 책이다. 책은 영화의 호시절을 누린 저자가 기억하는 중국영화는 과연 어떤 것인지 그 실체를 상세하게 다루는 한편, 영화 제작을 뒷받침한 중국 제도와 대중문화를 함께 짚어보고 있다.


지은이 : 류원빙(劉文兵)

1967년, 중국 산둥 성에서 태어났다. 2004년,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초역문화과학 전공으로 표상 문화론 박사 과정을 수료, 학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영화전문대학원대학 객원 조교수를 거쳐, 현재는 도쿄대학 대학원 학술연구원으로 있다. 와세다대학 등에서 강사를 역임하고 있다. 전문 분야는 영화론과 표상 문화론.

저서로 『중국 항일 영화, 드라마의 세계』(쇼덴샤 신서, 2013), 『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이와나미쇼텐, 2012), 『증언 일중 영화인 교류』(슈에이샤 신서, 2011), 『중국 10억인의 일본 영화 열애사』(슈에이샤 신서, 2006), 『영화 속의 상하이』(게이오기주쿠대학출판회, 2004)가 있다. 공저로 『학예의 환류―동서의 번역·사상·영상』(센슈대학 출판사, 2014), 『일본 영화는 살아 있다―경계를 넘는 다큐멘터리』(이와나미쇼텐, 2010), 『표상의 디스쿠르―미디어』(도쿄 대학 출판회, 2000)가 있다. 중국 영화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옮긴이 : 홍지영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출판사에서 예술 전문서 편집자로 몇 년을 보내고,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을 전공했다. 일본에서 중국어를 배웠고, 도쿄의 시네마테크, 도서관에서 영화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상하이의 푸단대학 중문과 연극영화학(戲劇與影視學) 석사 과정에 들어가 중국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현재 주된 관심사는 1930, 1940년대 상하이 영화와 중일 영화 교섭사, 중국의 신다큐멘터리 운동과 독립영화이다.


차례



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 10점
류원빙 지음, 홍지영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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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미스터빅샷 2015.01.20 1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뜬금없지만..중국영화와 홍콩영화는 원래부터 별개의 존재들인가요?

    • BlogIcon 엘뤼에르 2015.01.20 1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래도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이양(1997년)되기 전까지 홍콩은 영국이 통치하는 국가였으니 제작환경부터 출연배우, 영화기법이 모두 달랐겠죠. 이 책에서 말하는 '제작, 검열, 유통'에서 말하는 중국 공산당의 검열 자체에서 자유로우니 홍콩 영화사와 중국 영화사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고 보실 수 있겠습니다.^^;;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_홍콩역사박물관의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홍콩의 박물관에서 중국 민족주의가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1997년 7월 1일에 영국이 자국의 식민지인 홍콩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반환한 이래, 홍콩인들의 정체성 문제가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보통 선거권에 입각한 자유선거 실시와 렁친잉(梁振英) 행정장관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며 2014년 9월 말 격화된 홍콩 민주화 시위(우산혁명, Umbrella Revolution)는 중국 본토를 향한 홍콩인들의 불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저자 류영하 교수는 한 사회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공간인 ‘박물관’에서 중국이 왜곡하고 있는 홍콩 정체성을 살펴보고, 과연 바람직한 중국-홍콩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였다. 저자는 2005년 여름부터 줄곧 홍콩역사박물관의 ‘홍콩스토리’ 전시를 참관한 후 이곳의 전시물을 통하여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를 읽어낼 수 있겠다고 판단하였는데, 박물관에는 권력 주체가 선양하고 싶은 것만 전시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홍콩박물관이 말하는 홍콩의 정체성이 홍콩의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며, ‘민족’과 ‘본토’ 모두 특정한 주체에 의해 구현되어 국민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를 교육하는 공간으로서 역사박물관이 운영되고 있음을 밝힌 연구서이다.



주권 반환 이후,

홍콩에 가해지는 민족과 애국 이데올로기를 살펴본다

주권 반환 이후, 홍콩은 중국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시스템(일국양제, 一國兩制)을 혼용하는 매우 특수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실제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라는 정식 명칭을 갖고 있는 홍콩의 현주소는 주인이 없는 도시라는 별칭으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반발한 홍콩 본토주의자들은 홍콩만의 독특한 ‘다움’을 주장하여 홍콩의 고유한 정체성을 인정받고자 한다. 그러나 최근 홍콩을 향해 가해지는 중국 이데올로기는 홍콩인들에게 같은 민족이라는 정서와 공통된 역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로 홍콩역사박물관에서 역사를 왜곡하여 전시․교육하고 있는 현장을 제시했다. 이처럼 중국-홍콩 양자는 끊임없이 ‘중국다움’이나 ‘홍콩다움’을 추동하고 재생산하며,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통해 식민과 탈식민의 기준을 움직이고 있다.



홍콩역사박물관에 나타나는 홍콩의 정치문화

원래 아편전쟁 전시실의 독립은 계획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정국 박물관위원회에 소속된 일부 의원의 비판을 받고 확대․개편된 것이다. ‘홍콩 스토리’에 대한 설계와 내용이 이미 박물관위원회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원의 문제 제기로 다시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들은 홍콩 근현대사 쪽에 아편전쟁과 주권 반환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사건에 대해 보강하기로 대체로 인식을 같이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강화된 부분은 ‘97’ 주권 반환이었고, 쑨원과 신해혁명 부분이 보강되었던 것이다. 민족보다는 인간을 생각하자는 르낭에 의하면, 한 민족은 다른 민족의 억압을 받을 때에만 자신에 대해서 자각하게 된다. _제3부 ‘탈본토 스토리’ p.101-102. 


저자의 연구는 홍콩역사박물관에 드러난 홍콩의 중국사 기술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홍콩시정국이 깊게 관여한 홍콩역사박물관의 ‘홍콩 스토리’전을 관람하면서 홍콩 당국이 홍콩과 중국 본토의 상호 밀접성을 크게 부각하고 있음을 발견하였으며, 특히나 박물관의 의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애국주의와 직결되는 스토리텔링임을 역설하였다. 이렇게 박물관에서 구현된 중국의 민족주의와 홍콩의 본토주의를 규명하는 작업은 중국-홍콩 양자 모두의 실체를 파악함과 동시에, 국가가 내세운 ‘민족’과 ‘본토’ 개념에 대한 비판도 가능케 하리라 저자는 바라보았다. 전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민족교육과 국민교육이 국가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다. 저자는 ‘민족’과 ‘본토’라는 정체성과 더불어 어떤 방식으로 국가가 편향된 현실 인식 방식을 국민에게 주입시키고 있는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홍콩 본토주의

저자는 영국 식민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성장한 홍콩의 엘리트들을 위주로 1970년대 중기부터 홍콩 본토의식이 싹텄다고 말한다. 주권 반환을 대비해 영국은 홍콩 내 엘리트들에게 영구적인 영국 거주권을 부여했는데, 이는 영국이 홍콩의 엘리트 계급에게 민주주의를 이식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자유’ 또한 홍콩 본토주의를 이루는 주요한 요소이다. 문화대혁명 초기 중국공산당의 방침은 홍콩을 중국 문혁의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었는데, 4인방의 권력 장악 후 극좌적인 분위기가 홍콩에 퍼져나갔고 이는 1967년 홍콩 폭동으로 이어졌다. 폭동 이후 정부와 시민 간 새로운 관계 정립이 이루어져 세계 식민사적으로 홍콩은 매우 특유한 형태로 남게 되었다.


전지구화 현상과 티베트․신장․대만 등 수많은 본토의 움직임

저자가 연구한 ‘홍콩 스토리’전(展)의 사례처럼 역사를 재현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은 홍콩이 주권 반환 이후 국민 신분을 회복하는 과정이자 당위이다. 이처럼 ‘홍콩 스토리’ 속에는 중국의 강력한 중원 중심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저자는 이 전시에 나타난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의 현재를 도출해냈고, 나아가 이것의 함의와 한계, 정체성의 맹점과, 세계체제를 향한 전제로서 민족주의와 본토주의를 사유했다. 티베트나 신장 지역의 경우를 보더라도 소수는 중국의 국민국가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스스로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대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몇 차례의 민주화 시위에 대한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을 갖고 있는 홍콩인들은 홍콩 본토에 대한 많은 자부심을 갖고 있고, 중국은 홍콩의 민주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의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는 수시로 충돌할 것이며, 전지구화가 가속화되면서 이제 ‘민족’과 ‘본토’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이에 이 책에서 언급된 홍콩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살펴봄으로써 지구상에는 중국 외에도 수많은 본토가 있다는 것을 상기함과 더불어, 민족주의와 본토주의가 대립할 때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사유하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글쓴이 : 류영하(柳泳夏)

현 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동아시아학 통섭 포럼 대표, 중국 남경사범대학 중한문화연구센터 연구교수. 한국에서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홍콩에서 중국현대문학을 전공하여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이미지로 읽는 중화인민공화국』(문화부 우수교양도서), 『홍콩이라는 문화공간』(문화부 우수학술도서), 『홍콩-천 가지 표정의 도시』가 있으며, 역서로 『포스트 문화대혁명』,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등이 있고, 편저로 『중국 백년 산문선』 등이 있다. 그 외 「후식민의 주체로서 국가와 본토: 중국-홍콩의 경우」를 비롯한 논문 30여 편을 발표했다.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아시아총서 12
홍콩 역사박물관의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류영하 지음 | 인문 | 신국판 양장 | 320쪽 | 25,000원
2014년 11월 10일 출간 | ISBN : 978-89-6545-271-3 94300

한 사회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공간인 ‘박물관’에서 중국이 왜곡하고 있는 홍콩 정체성을 살펴보고, 과연 바람직한 중국-홍콩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책. 이 책은 홍콩박물관이 말하는 홍콩의 정체성이 홍콩의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며, ‘민족’과 ‘본토’ 모두 특정한 주체에 의해 구현되어 국민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를 교육하는 공간으로서 역사박물관이 운영되고 있음을 밝힌 연구서이다.


차례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 10점
류영하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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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6.05.26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알아갑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