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9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통해

삶에 휘둘리지 않는 작가 뚝심 엿보여

"달라졌다. 조명숙 작가의 소설이 달라졌다." 조명숙 작가의 네 번째 창작집 <조금씩 도둑>(산지니 펴냄)을 읽고 난 다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그의 소설이 새로 발표될 때마다 읽어왔던 터라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조명숙의 소설은 <조금씩 도둑>과 그 이전의 소설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의 소설이 조금은 다정하고,  정감이 있는 푸근한 소설이었다면 <조금씩 도둑>은 훨씬 담담한 진술방식을 택하고 있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남아있는 수분 같은 걸(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말끔하게 닦아낸 다음 독자에게 내밀고 있다고나 할까. 또 하나는 작가가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젊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작가에게 '담담한 진술' '젊어진 문장의 느낌'이라는 말을 했더니, 작가는 "다행"이라며 웃었다. 작가는 "초창기 작품들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진솔한 의미와 상황을 문장에 담게 됐다. '튀지 않는 진술'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며 "나이가 든 만큼 좀 노련해진 것 같다고나 할까. 젊었을 때처럼 애를 쓰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창작집 <조금씩 도둑>에는 9편의 중단편이 수록됐다. '이치로와 한나절', '점심의 종류', '러닝 맨', '가가의 토요일', '거기 없는 당신', '사월', '나비의 저녁', '조금씩 도둑', '하하네이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매일 매순간의 시간을 '꾸준하게 메워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실 등장인물들은 제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감당하다 못해 쓰러지기 직전이다. 그 삶에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 진술할 수 있는 작가의 뚝심은 이 창작집 책갈피마다 엿보인다. 
 
'점심의 종류'는 세월호로 딸을 잃은 여인 영애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 어디에도 세월호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의 몇 페이지가 넘어갈 때까지 지독한 아픔을 견뎌내는 여인의 독백인 줄로만 알았다가 세월호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소설의 배경은 오는 2024년. 가족을 잃은 채 10년을 살고 있는 한 여인의 일상과 기억을 보여준다. 딸 유미를 그만 잊으라고 말하는 동생 영미를 향해 물이 담긴 컵을 던지는 영애. 소설을 통 털어 영애가 보인 격렬한 행동은 이것이 전부이다.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줄까?" 딸을 잃은 채 10년 째 살고 있는 어머니의 존재 이유에는 이런 슬픔이 짙게 배어있었다. 그 어머니의 하루 중 몇 시간을 다룬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가가의 토요일'은 부산 지하철 수영역 입구에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한 남자 가가의 토요일을 그린 소설이다. 태어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 가가는 '가가'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가가는 새벽에 일어나 작은 수레를 끌고 가서 정성을 다해 맛있는 프렌치토스트를 만든다. 성실한 노동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던 가가는 수영로터리를 지나가는 시위대열과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은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렸던 부산의 하루와 가가의 토요일을 담고 있다. 1987년 6월 부산역 광장에서 뻥튀기를 팔던 가가는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과 외침 속에서 귀가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가가는 '가가'를 외치며 그 시위대와 함께 걸었다. 그때가 다시 온 것인가 하면서 가가는 2005년의 토요일에도 시위대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소리들은 다시 사라져버리고 가가는 혼자 낡은 슬레이트 집으로 돌아간다. 
 
조명숙 작가는 "전통적인 소설 플롯을 버리고,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팽팽한 긴장으로 계속 이어가는 이런 방식을 '지진성 플롯'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주변의 모든 것이 소설로 보인다. 주위의 힘든 상황, 참아내기 힘든 사람들도 모두 객관화 되어 보인다. 그런 것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잔영만 남았을 때 어느 순간 그 잔영이 문장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하하네이션'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작가의 꿈을 꾸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장차 작가가 되려고 했지만,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 
 

박현주ㅣ김해뉴스ㅣ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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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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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복라면 편집자입니다.

『만남의 방식』 정인 소설가가 제8회 백신애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백신애문학상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경북 영천의 소설가 백신애를 기리기 위해 만든 상입니다.

정인 소설가는 2000년 <21세기 문학>에 「떠도는 섬」, <한국소설>에 「당신의 저녁」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다. 작품집으로는  『당신의 저녁』 『그 여자가 사는 곳』이 있고, 부산소설문학상, 부산작가상, 노근리평화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산지니에서 출간한 『만남의 방식』은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입니다. 제18회 부산소설문학상 수상작이자 표제작인 「만남의 방식」 을 비롯해 8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축하해주세요!

 

 

"다음 목적지는 어딥니까?" ─ 『만남의 방식』(책소개)

사람이 희망이다 :: 『만남의 방식』 소설가 정인 인터뷰

사람에게 희망은 결국 사람이더라─정인 저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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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정태규 평론집







느닷없이 우리를 기습하는 삶의 상처와

일상의 시간을 탐문하는 소설쓰기의 미학

중견 소설가 정태규의 첫 번째 평론집 『시간의 향기』가 출간되었다. 시간이 가지는 비정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소설쓰기를 두고, 정태규는 다양한 평문들을 통해 소설이 가지는 미의식을 탐구하였다. 이번 평론집을 통해 정태규는 이효석과 김유정 소설의 공간인식 연구와 경주 지역 문학 연구, 부산 소설 작가들의 작품 세계 분석, 소설가 나여경, 윤정규, 박종관의 작품 세계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미 소설집 『집이 있는 풍경』(개정판 『청학에서 세석까지』), 『길 위에서』를 통해 부산 문단의 뼈 굵은 중견소설가로 인정받은 저자이지만, 정태규 소설가의 비평가로서 또 다른 면모를 이번 평론집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자가 비평한 다양한 소설은 대부분 부산 지역 작가들에 시선이 머물러 있는데, 이는 정태규의 지역작가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어 평론집을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공간인식으로 이효석과 김유정을 다시 읽다

1930년대의 중요한 소설적 성취를 이룬 두 작가 이효석과 김유정. 정태규는 이들 두 작가의 작가의식과 작품의 특성을 재조명하여 두 작가의 소설에 나타난 공간적 배경과 공간 인식의 태도 그리고 공간 지향의 특성을 통해 비교해보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산」, 「들」을 통해 이효석이 도시적 공간을 떠나 자연적 공간으로 관심을 두는 ‘구심적 지향’을 보이고 있음을 설명했다. 한편 김유정의 「소나기」, 「만무방」, 「봄봄」 등을 통해 김유정이 자연적 공간을 떠나 도시적 공간으로 관심을 옮기며 ‘원심적 지향’을 보인다는 해석으로 두 작가가 「구심적 상상력과 원심적 상상력」이라는 각기 다른 공간지향을 보인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끊임없이 시도할 수밖에 없는 시지프스의 길이자

‘지금 여기’의 의미를 사유하게 하는 힘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시간에 반란을 꾀한다. 우리의 기억은 저 선조적이고 기계적이고 무채색인 자연의 시간을 우리의 임의대로 줄이고 늘이고 비틀고 때로는 망각의 형태로 생략하기도 한다. 또한 기억은 시간에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물들인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기억은 우리의 삶을 특별하게 하고 기억의 집적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 속을 아프게 살아온 우리의 기억들이다. 소설은 그 아픈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_「부산 소설의 여름 풍경」에서


저자는 소설읽기에 앞서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을 곁들였다. 늘 우리에게 적대적인 일상. 이 일상이 우리에게 비우호적일지라도 이러한 일상과 시간의 비정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소설쓰기가 출발한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시간이 주는 아픔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소설을 통해 작가와 독자 모두 좌절 속에서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금 여기’의 의미를 사유하게 할 수 있다는 저자의 성찰이 담겨 있다.




지역 작가에 대한 애정 곁들여

저자는 이번 비평집에서 유독 부산 소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소설가 나여경, 이남희, 조명숙, 강동수, 문성수 등 걸출한 부산문단의 소설가들을 조명하여 그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나여경 작가의 소설집 『불온한 식탁』을 통해 나여경 소설이 결핍과 욕망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의 삶을 묘파했다며 분석하였고, 특히 2002년 타계한 소설가 윤정규의 작품세계 분석을 통하여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며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쉽사리 좌절하지 않는 윤정규 소설 속의 인간 군상을 포착했다. 저자는 작가의 작품 분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 윤정규의 인간됨, 인간 윤정규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함으로써, 보다 입체적인 작가분석을 시도하였다.






글쓴이 : 정태규

1958년 경남 합천 출생. 부산대학교 대학원(국문학과)을 졸업하였고,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으로 『집이 있는 풍경』(개정판 『청학靑鶴에서 세석細石까지』), 『길 위에서』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꿈을 굽다』, 평론집으로 『시간의 향기』가 있다. 제1회 부산소설문학상, 제28회 향파문학상을 수상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과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시간의 향기』    정태규 평론집

정태규 지음
평론 | 신국판 | 
224쪽 | 20,000원

2014년 10월 20일 출간 | ISBN : 978-89-6545-268-3 03810

소설가 정태규의 첫 번째 평론집. 시간이 가지는 비정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소설쓰기를 두고, 정태규는 다양한 평문들을 통해 소설이 가지는 미의식을 탐구하였다. 이번 평론집을 통해 정태규는 이효석과 김유정 소설의 공간인식 연구와 경주 지역 문학 연구, 부산 소설 작가들의 작품 세계 분석, 소설가 나여경, 윤정규, 박종관의 작품 세계 분석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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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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