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은 필요 없는 보통의 존재

-『다시 시작하는 끝』을 읽고

  안녕하세요. 인턴 정난주입니다.

  7월, 작은 태풍이 지나가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어김없이 산지니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아침인데도 습하고 더운 날씨의 그 기세가 대단합니다. 거기다 출근 시간에 차까지 막힐라치면 이 버스에 있는 사람들, 도로의 차들 다 저 밖으로 내쫓고 면허도 없지만 핸들을 뺏어들고 법원검찰청 정류장으로 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마치 얼마 전 봤던 영화처럼 말이에요. (다들 연상되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히히) 거제대로를 '분노의 도로'로 만들고, 입에는 은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치이익, 나를 기억해 줘!…… 하지만 그럴 수는 없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산지니에 가기 위해 법원 검찰청 정류장으로 가는 것이지 전과기록을 남기려고 법원 검찰청으로 가는 건 아니니까요…….

매일 아침 제 롤모델이 되어 주시는 퓨리오사 언니…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비단 저뿐만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종전에 언급되었던 영화와 같이, 질주하고 폭주하는 텍스트를 찾는 것 아닐까요. 그곳의 주인공의 폭주로 대리만족하고, 희열을 느끼며 또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히는 도로를 참아내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읽은 조갑상 작가님의 『다시 시작하는 끝』에서는 우리에게 희열을 줄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았습니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곳에 나오는 주인공은 저 혹은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과 같이 폭주를 머릿속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이내 곧 자신의 망상을 비웃고 주어진 시간을 주어진 일로 보내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된 자들를 보며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며 발버둥 쳤지만 결국 모두 아버지가 됩니다. 조갑상 작가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건조하고도 어떠한 연민도 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설을 일부분을 보며 작가님이 어떻게 그려내셨는지 한번 볼까요?

 

 

보통의

불안

『다시 시작하는 끝』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아버지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흔히 아버지라는 소재가 감정에 호소하여 연민의 대상, 희생의 아이콘으로 그려진 것을 다양한 매체에서 많이 보았는데요. 『다시 시작하는 끝』에서는 그 이면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희생했다는 것은 결국 체제에 순응하여 자신의 색을 지우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것에 대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단편 「동생의 3년」과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에서 잘 드러납니다.

“앞서지도 뒤서지도 말고 중간 정도 하면 돼. 괜히 옳으니 그르니, 부당하니 어쩌니 깊이 생각지 말고 그냥 남 하는 대로 해.(…)깊이 생각하면 손해야.” /(…)최소한 내가 겪은 일 따위는 되풀이하게 해서는 안 되는 건데. - 「동생의 3년」p.208

「동생의 3년」에서는 주인공이 군대에 간 동생에게 어머니가 걱정하시니 ‘요령껏’, 참으며 군생활을 버텨내라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이런 자신의 모습이 못마땅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창기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색무취의 소시민.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더라도, 세상살이 전반에 걸쳐 자신의 색채나 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우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또는 비겁한 건지 아닌지는 뒤로 하더라도, 다소 애매하게 다수의 편에 서거나 중도에 서는 게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손해 본 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인 듯했다.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p.247

이념의 대립과 자극적인 구호로 가득한 유세장을, 하창기 씨는 어떠한 주장도 없이 그 난리 속을 통과합니다. ‘소시민’이라고 자신을 정의하며 이런 삶이 당연하다고 이야기 하는 하창기 씨의 이 웃지 못할 장면으로, 작가님께서는 당시 어지러운 사회의, 어쩌면 지금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세상의 단면을 그려내고 싶으셨던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들의 증세는 더 심각해져 결국 「그리고 남편은 오늘 밤도 늦다」의 남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직장에 대한 불만을 생각할 수 없다.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릎으로 TV를 끄고 30분이나 변기를 타고 앉아 신문을 읽으며 킬킬거리며 어색하도록 인용 자료를 밝히고 술을 마시고 온 세상을 욕을 해대는 근본 원인은 절대 아니다.(…)그런 온 세상이 그를 불만에 가득 차게 하고 술을 마시게 하고 XX되는 욕설을 내쏟게 하는가. -「그리고 남편은 오늘 밤도 늦다」p.147

술을 마시고 심한 욕설을 퍼붓고, 대화는 하지 않고 신문만 보고 킬킬거리고 인용자료에만 의존하는 남편의 태도는 결국 무엇에 대한 불안인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남편의 증상에는 이제는 흔한 말이 되어버린 ‘원인불명’이라는 원인이 가장 적절하다고 느껴집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불안, 그 불안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더 괴로워하는 원인불명의 굴레. 무엇이든 불분명하고 불명확한 사회에 남편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정확한 근거로서의 인용자료 뿐이었을 것입니다. 홀로 그 굴레에서 힘겨워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동정심이 들기보다는 누군가에 비친 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 뜨끔하며 소설을 읽었습니다.

불안한, 아버지가 된 사람들

 

또 「방화」에서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아하는 소년이 아버지인 그들을 바라봅니다.

나의 혼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실들을 고정화 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방화」 p.308

“안정된 리듬은 권태와 크게 다른 말일까요?”

“자극은 누구나 조금씩 원하고 또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표피적이고 단순하지. 오래 계속하는 일에서 힘도 생기고 융화도 발견하게 돼.”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이 혐오스러울 만큼 싫어질 때가 있는 모양이죠. 그런데 그런 내부의 욕구를 조화니 천직이란 틀 속에 넣어 적당히 말랑하고 부드럽게 변하시키는 것 같아요.” -「방화」 p.313

위는 아버지에 대한 소년의 단상이고, 아래는 자신을 다그친 선생님과의 대화입니다.

선생님의 말 속에서 자신도 역시 아버지가 되기 싫어 발버퉁쳤지만 결국 아버지가 된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태도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보통의

폭주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던 「방화」의 소년은 결국 제목처럼 방화를 저지릅니다.

“너는 맏이니까 잘해야 돼, 무엇이든지.”

(…)나는 땀이 나는 손을 빼고 싶었다. /(…) 후텁지근한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손에서 땀이 조금만 나도 당장 수돗가로 달려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이제 곧 눅눅하고 축축한 손의 끈적임도 없어질 것이다. (…) 연기가 아주 낮고도 가늘게 피어올랐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걸레는 타들어갔다. -「방화」 p.318

인용된 부분은 소년이 어릴 때 아버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아픔을 말하고 난 뒤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그때의 아버지와 땀이 나 축축하게 젖은 손은 오래도록 소년의 기억속의 남았습니다. 땀에 젖은 손은 그 이후에도 소년을 그 기억에 시달리게 했는데요. 방화를 결심한 소년은 더 이상 손이 땀에 젖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방화는 결국 아버지와 그 기억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는 소년은 발버둥 같이 느껴집니다.

 

 

 

동정은

필요

없다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가 된 그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그러하다’는 태도로 일괄되게 서술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판이나 풍자의 대상으로 해석하는 것 또한 과하다고 느껴집니다. 작가는 ‘그저 그러함’을 보여주면서 주변 어디에든 있는 인물 중 하나의 삶 속에 들어가, 그 중에서도 그들의 한 장면을 콕 집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탈하는 장면을 보는 것에만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일탈하는 장면을 보면 볼수록 일탈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조갑상 소설가는 그런 두려움을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며 지난 세월의 아버지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지금도 아버지가 되어 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하는 끝』을 추천하며 서평을 마칩니다.

 

 

작가

소개

조갑상 작가님은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혼자웃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고,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을, 산문집 『이야기를 걷다』를 쓰셨습니다. 요산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만해문학상,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하셨으며, 2015년 현재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특히 이번 『다시 시작하는 끝』은 중견 소설가가 되신 조갑상 작가님의 첫 소설집을 재출간한 것으로 작가님께서도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이번 재출간본에는 ‘방화’가 추가되어 '혼자웃기', '은경동 86번지'와 함께 은경동 3부작을 이루어 독자분들로 하여금 80년대의 부산을 더욱 생생하고 자세히 볼 수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다시 시작하는 끝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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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엘뤼에르 2015.07.16 1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눅스가 되는 상상을 출근길마다 하신다니, 뭔가 모르게 굉장히 재밌네요 ㅎㅎ 서평을 읽다 보니, 소소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일탈하려는 소설 속 주인공들 이야기들이 색다르게 보이네요. 잘 읽었어요 :)

    • BlogIcon 정난주 2015.07.22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늘 아침에는 다행히도 그렇게 막히지 않아서 평화롭게 올 수 있었어요. 히히. 보통의 사람들인 등장인물들이 매일 아침 버스 어딘가에 앉아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2. BlogIcon 단디SJ 2015.07.17 0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평이 올라왔네요 :) 잘 읽었습니다. 오늘 조갑상 선생님 취재다녀오신 이야기도 기대할께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위에서 언급하신 영화, <매드맥스>군요 ㅎㅎ 퓨리오사 사진이 있는 걸 보고 허허허 ㅎㅎㅎ

    • BlogIcon 정난주 2015.07.22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덕분에 인터뷰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퓨리오사 사진을 뒤늦게 첨부해서...하하 최근에 정말 그런 영화들이 많긴 했죠. 다른 폭주하는 영화도 또 보고 싶어요! =]

  3. 권디자이너 2015.07.17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색무취의 소시민'
    좀 찔리네요.ㅋ

조갑상 작가의 첫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이

25년 만에 재출간되었습니다.

 

첫 소설집에는 데뷔작 「혼자웃기」를 비롯해 총 17편의 중단편이 들어 있습니다.

17편이 확실하냐구요?

혹시 오타가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못 믿겠다면 아래 차례를 세어보세요.

 

 

 

 

차례

 

 

혼자 웃기
폭염
사육
살아 있는 사람들
바다로 가는 시간
사라진 사흘
그리고 남편은 오늘 밤도 늦다
익숙한 자는 두렵지 않다
다시 시작하는 끝
동생의 3년
어윤중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
은어와 바다
사라진 하늘
방화
은경동 86번지
병들의 공화국

 

해설 : 진정으로 정치적이라는 것 - 전성욱(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네. 요즘 단행본 2~3권 분량이지요.

분량 만큼이나 묵직한 삶의 이야기들

지금 만나 보시죠.

 

한정 수량 / 마감 임박 / 주문 서두르세요.

(홈쇼핑 따라해봤습니다.)

 

 

책소개 더보기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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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조아하자 2015.06.22 2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대가 됩니다...^ _ ^

2005년에 등단한 신예작가 이미욱이 총 8편의 단편을 묶어 첫 소설집을 펴내었다. 이미욱의 이번 소설집 『서비스, 서비스』는 다양한 소재들의 조합과 함께, 가독성 있고 흡인력 있는 문체로 신진 소설가의 탄생을 예고한다. 오타쿠, 외모지상주의, 동성애, 등교거부 현상, 은둔형 외톨이, 왕따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병리현상들을 젊은 감각으로 끄집어 올리고 있는 이 책은 상처를 안고 시대를 떠다니는 영혼들을 깔끔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들과 함께 펼쳐내 보이고 있다. 동시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갖는 부단한 자의식을 통해, 시대가 품고 있는 병폐를 소설가 특유의 감성으로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이미욱 소설집


서비스

서비스



소설의 제목인 『서비스, 서비스』는 애니메이션 <신세계 에반게리온>의 TV판 차회예고에서 미사토라는 캐릭터가 던지는 멘트이다. 이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표제작 「서비스, 서비스」의 여주인공 코코미 또한, 프리허그, 메이드까페 등의 일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끊임없이 무형의 것을 제공한다는 소설 속 소재(서브컬쳐)를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다.


표류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를 끌어올리다

그들은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혈연이 아니라 같이 살면서 서로를 보살펴주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이들의 위험한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작가는 탄력 있는 구성과 속도감 있는 문장, 그리고 섬뜩하리만큼 예리한 인물들의 자의식을 통해 이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_조갑상(소설가·경성대 교수)

결여의 자리를 대타자의 규율로 채우는 과정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작가는 그의 인물들이 성장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다만 그들이 결여 속에서 앓고 있는 그 고통을 방치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 비정한 가학성이야말로 이 작가가 혹한에 대하여 말하는 어떤 방식은 아닐까? _전성욱(문학평론가)


핵가족화와 일인 가정, 동거가족 등 현대 사회의 ‘가족’이란 마냥 안온하고 따스한 위로의 공간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이에게는 ‘외로움’의 공간이자 ‘전장’의 공간일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싸움’이 끊임없었던 아픈 기억의 공간일 수 있다. 표제작 「서비스, 서비스」에서도 건담 프라모델에 집착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혼 후 각자 재혼해버린 부모로 인해 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민재. 그렇게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채 살아온 민재는 자기 방의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건담 프라모델에 집착한다. 프라모델의 세계를 알려주었던 친구와 함께 떠났던 일본여행에서 민재는 메이드까페 소녀 코코미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런 그녀에게서 귀청소 마사지를 받으며 어린 시절 그가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상처들을 상기한다. 민재에게 있어 코코미의 다정한 ‘서비스’는 깊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으나, 코코미에게는 그저 감정이 결여된 공허한 ‘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가족해체 위기에 대한 젊은이의 보고서

이번 소설집을 통해 작가는 비정한 현대사회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소외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런 주인공들을 하나로 엮는 키워드는 바로 ‘버림받음’의 정서이다. 말 못할 사정으로 엄마를 언니로 알고 자라는 여주인공(「단칼)이나 태어나자마자 미혼모인 엄마에게서 유기 당하는 아이(「쎄쎄쎄」), 나이 어린 아빠한테서 집에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자고 오라고 문전박대 당하는 「분실신고」속 소녀는 각기 부모로부터 버림받는다. 메이드까페 소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하는 소년(서비스, 서비스」),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부모와 친구, 연인으로부터 버림받는 은둔형 외톨이 여성(숨은 그림자」), 못생긴 외모로 인해 남자에게 거절당하는 여성(「미미」), 그리고 부모와 친구로부터 버려지면서 본인의 처지를 작은 먼지와 동일시하며 위안받는 청소년(「연애(涓埃)」), 이명 증세로 동시통역사 일을 할 수 없어 사회에서 고립된 채 홀로 살아가는 사내(「사막의 물고기」)까지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 나아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채 살아가는 이들이다. 작가 이미욱은 이러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 버림받고 있는 이들을, 마치 아슬아슬하면서도 세밀한 정물화를 그려내듯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상실된 결핍을 향한 부질없는, 그러나 의미 있는 몸짓

애니메이션 음악, 가게를 홍보하는 내레이터의 음성, 스피커에서 터지는 유행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거리에 퍼지자 형광 빛깔의 간판들이 들썩거렸다. 수많은 소리에 민재와 준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인파로 흥청거리는 거리의 끝자락에는 노란 트레이닝복 재킷을 걸치고 블랙 미니스커트를 입은 빨간 머리 여자가 ‘Free Hug’(프리 허그)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프리 허그를 받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마치 벌 받는 자세처럼 보였다.

“저기 빨간 머리 여자애 얼굴이 우울해 보여. 누군가 안고 위로해 줘야 할 것 같아.”

준세는 빨간 머리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듯 양손을 들었다.

“더 외로운 사람이 덜 외로운 사람을 안아 준다고 하잖아.” _「서비스, 서비스」, 55쪽.


이미 상실된 결핍이란 채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욱 소설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상실된 결핍을 무엇으로든 채우고자 필사적인 몸짓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몸짓은 어쩌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기 상처 입은 등장인물들이 채워지지 않은 결핍의 환부를 기꺼이 드러내며 서로를 위안하고, 그 과정 속에서 상처투성이 삶을 보듬는다. 결국 작가 이미욱은 버림받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 역시, 상처받은 이들이 건네는 위로가 아닐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상처를 겪어본 자들만이 타인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비스, 서비스』가 가지는 둔중한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지닌다.




글쓴이 : 이미욱

198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5년 《국제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단칼」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w-mioff@daum.net


차례


『서비스, 서비스』

산지니소설선 18
이미욱 지음
문학 | 국판 | 264쪽 | 12,800원
2013년 9월 24일 출간 | ISBN : 978-89-6545-226-3 03810

이미욱의 첫 소설집. 오타쿠, 외모지상주의, 동성애, 등교거부 현상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병리현상들을 젊은 감각으로 끄집어 올리고 있는 이 책은 상처를 안고 시대를 떠다니는 영혼들을 깔끔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들과 함께 펼쳐내 보이고 있다. 동시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갖는 부단한 자의식을 통해, 시대가 품고 있는 병폐를 소설가 특유의 감성으로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서비스, 서비스 - 10점
이미욱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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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도서 2종이 '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에 선정되었습니다.
조갑상 소설집 <테하차피의 달>과 황선열 아동문학 평론집 <동화의 숲을 거닐다>입니다.



2010 우수교양도서는 2009년 9월 1일부터 2010년 7월 31일 사이에 국내 초판 발행된 도서를 대상으로 합니다. 올해는 총 4,119종의 도서가 접수되어 작년에 비해 40%나 증가했다고 하네요.
공들여 만든 책이 기본 수량만 팔려준다면 이런 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데, 요즘 출판시장이 워낙 힘들다보니 다들 (출판계에서 로또나 다름 없는) 이런 상에 기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거라도...' 하면서 말이죠.

저희도 문학, 사회과학 등의 분야에 여러권을 신청했지만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이렇게 문학 분야에서 2종이 뽑혀 참 기쁩니다. 문학, 아동청소년, 사회과학 등 12개의 분야에서 총 405종의 도서가 선정되었으니 약 10대 1의 경쟁률인 셈입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울거라고 벌써부터 매스컴에서 겁을 주던데, 이런 선물이라도 있어 마음이 조금은 훈훈해지는 것 같습니다.

선정도서는 종당 500만원 상당의 도서를 구매하여 전국의 공공도서관이나 작은도서관에 배포한다고 합니다. 선정도서를 전자책으로 만들게 되면 그 비용도 지원한다고 하네요.(자세한 내용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게시판(링크)에 올라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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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국화꽃 향기를 타고~ : 조갑상 (3)
바람의 언덕, 테하차피
따뜻한 만남 <동화의 숲을 거닐다> 저자 황선열

테하차피의 달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동화의 숲을 거닐다 - 10점
황선열 지음/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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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소박한 독서가 2010.11.18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제가 인턴을 시작한지 4일 만에 책 두권을 읽었습니다. 물론 교정 교열작업이 있었지만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어요.

사실, 책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몇 번 다짐하고 다짐해야 읽어지거든요.
(보통은 말이죠)

왜냐면 책보다 매력적이게 다가오는 TV가 있으니까요 ^.^ 헤헤


맹모삼천지교()란 말이 맞나봅니다. 책에 둘러쌓인 곳에 있으니,
책을 절로 읽게되네요.

누가 읽으라는 소리를 안해도 말입니다. 정말 신기하게도요. 



먼저 <부산을 쓴다>는 부산 각 지명이 들어간 단편 소설 28개가 들어있어요. (또, 자신이 사는 쪽을 더 열심히 읽게된다는 *_*)
저는 오륙도에 살아서 근처에 이기대를 자주 가는데, 이기대를 아시나요? 부산의 올레길로 불리는 이기대 길은 어떤 날은 섬이 다섯개가 보이고 어떤 날은 여섯개가 보이는 오륙도까지 이어져있어요. 운동삼아 산책삼아 주말 이용해서 한 번 놀러가보시는 거 추천합니다. 참! 요즘 휴가철이니까 놀러가보시면 되겠어요! 여튼, 부산사람이라면 아는 지명 속 묘사되어 있는 옛모습과 현모습을 떠올리면서 읽을 수 있고. 타지사람이라면 부산의 매력을 알아 갈 수 있는 소설이 될 듯해요. 

 


이 책은 제목만 봐도 벌써 감이 오시죠! 세계일주를 한 내용이예요. 정말 말 그래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적어놨는데.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된 책이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게 하나 있는데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겉치레를 중요시하고 목숨을 거는 걸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해답을 찾았어요. 답은 '자립심과 겉치레는 반비례 한다는 거였어요'. 유난히 한국이란 나라는 부모가 캥거루처럼 아이들을 배에 넣고 다니잖아요. 자기가 벌어서 쓴 돈이 아니라, 부모의 돈으로 쓰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라는 지은이의 생각을 듣는 순간. 아!!!!!!!!!!! 돌 깨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바로 저런 것들이 체험에서 우러나온 답이 아닐까요  : - )




책 2권을 읽은 리뷰이자, 개인적인 조잘거림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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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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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나기 2010.08.04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륙도에 사시는 군요. 근데, 오륙도에도 사람이 사나요?

    • BlogIcon 박비기 2010.08.05 1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륙도 섬 바로 앞에 sk 뷰 아파트에 살고있어요. 원래 나병환자들이 살던 곳인데, 다 헐고 새로 아파트가 들어섰어요. 바로 앞에 나가면 선착장이 있어서 오륙도 섬에 가볼 수 있어요^.^ 낮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섬에 가서 낚시 해요ㅋㅋㅋㅋ

  2. 바람 2010.08.09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제일 먼저 읽게 되지요.
    저도 <부산을 쓴다> 28편 중에서 온천천을 배경으로 한
    김미혜 소설가의 <별을 향해 쏘다>를 맨 처음 읽었거든요^^

테하차피의 달

출판일기 2009. 10. 22. 11:47

아침 저녁 제법 선선한 10월입니다.
오는 27일 저녁 7시, 동광동 40계단 옆 백년어서원에서 <10월 저자와의 만남>을 갖습니다. 매달 저자 한분을 모시고 책 이야기, 사는 이야기 나누는 자리입니다. 이번에 만날 저자는 부산의 대표적인 중견작가 조갑상 소설가와 소설집 『테하차피의 달』입니다. 책과 소설을 좋아하는 분, 책읽기는 싫어하지만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분, 먹고사는 일만으로는 왠지 마음이 허전하신 분들, 모두모두 초대합니다. *참가비는 따로 없고 커피값(3천~5천냥)만 준비하시면 됩니다.


일시 : 2009년 10월 27일(화) 저녁7시
장소 : 백년어서원(T.465-1915)



『소설로 읽는 부산』(1998), 『한국소설에 나타난 부산의 의미』(2000), 『이야기를 걷다』(2006) 등 부산에 관한 책들 또한 꾸준히 펴내온 조갑상 소설가는 문학작품 속에서 부산이라는 공간을 재조명하는 한편, 자신의 작품 속에서도 꾸준히 부산의 색(色)을 내며 ‘부산의 문화지리지’를 부지런히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수록된 작품 중,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는 초량철도관사를 중심으로 일제 때의 부산 지명들을 애틋하고도 매력적인 문학 공간으로 재현하고 있으며, 「섣달그믐날」은 삼랑진역과 자갈치를 배경으로 최하위층으로 내몰린 가장과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 「어렵고도 쉬운 일」 등의 작품에서도 지역 사투리를 고스란히 살려 쓰는 등, 투박하면서도 깊은 맛이 배어나는 문장을 구사합니다.


작품 소개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
일제강점기 때 일어난 조선인 ‘오모니’에 대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으며, 죽은 혼령의 이야기라는 게 뒤늦게 밝혀지는 특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초량철도관사를 중심으로 일제 때의 부산 지명들을 애틋하고도 매력적인 문학 공간으로 재현하고 있으며 초량의 남선창고가 헐리는 데 대한 상실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내를 두고」
노후에 접어든 부부가 종교에 대한 문제로 갈등을 빚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 가리라던 주인공의 생각은 아내의 입교(入敎)와 사고사를 맞아 여지없이 깨어진다. 안전하리라고만 생각했던 노년의 삶이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인해 균열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통문당」
비 오는 봄날, 고가구점 주인이 자기가 어떻게 해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단골손님에게 에둘러 이야기한다. 젊은 시절에 겪은 과거의 하중을 내려놓고자 하는 주인공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인생의 우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겨울 五魚寺」
포항 오어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대학시절, 가슴이 없는 여자를 버린 한 남자가 죽은 여자를 문상하는 대신, 절길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과거 젊은 날이 오늘에까지 작용한다는 점에서 「통문당」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섣달그믐날」
섣달그믐날을 배경으로 최하위층으로 내몰린 가장과 가족을 그린 이야기. 사내는 시골의 빈집에라도 들어가, 삶을 영위하려 하지만 아들과 노모는 도시의 삶을 고집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사내의 이야기가 삼랑진역과 자갈치를 배경으로 을씨년스럽게 펼쳐진다.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
아버지 기제사를 둘러싼 삼 남매의 갈등을 차분하게 그려낸 이야기. 보도연맹에 가입한 탓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에 대해 성오와 준오, 성자는 각각 다른 생각이다. 불편한 과거가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는 장남과 역사의 진실을 대면하기를 바라는 차남의 입장이 대비되어 그려진다.

「테하차피의 달」
미국 모하비 사막의 ‘테하차피’에 위치한 태고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 1박 2일 동안의 묵언수행과 법회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아 그곳에 모인 네 사람의 시점을 교차, 종합하면서 이민의 문제와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렵고도 쉬운 일」
여든에 접어든 부친이 대학병원에 입원하고서 가족들이 보여주는 여러 모습과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아버지가 회복되기를 바라면서도 죽음을 준비하는 자녀들의 이중성을 떠들썩하고도 밝게 그려내고 있다.


 

테하차피의 달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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