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휘리릭 지나가면서

교보문고에서 진행했던 인문출판사 응원 캠페인! 산지니 편이 마감되었습니다.



산지니 편집자들이 직접 책을 소개하고,

독자분들께서 댓글을 달아 주시면 

추첨을 통해 열 분에게 책 선물을 보내드리는 이벤트였습니다.

댓글이 하나하나 달릴 때마다 "새 댓글 보셨어요?!" 하며 호들갑 떨기도 하고

읽고 싶으신 책들이 이렇게 다양할 수가! 놀라기도 했어요.  


그리고 며칠 전에 드디어(!) 책을 발송해드렸는데요.

독자분들의 선택을 받은 10권의 책을

저, 잠홍 편집자 마음대로 분류해 공개합니다.


※ 주의: 

아래 사진에 등장하는 책들은 실제로 보내드린 책이 아니라 

출판사 식구들끼리 필요할 때 꺼내 읽는 '샘플 책' 입니다. 

독자분들께 1분 1초라도 빨리 책을 보내드리고 싶어서

책을 부리나케 포장하는 바람에 이렇게 '대타'를 쓰게 되었네요. 양해해주세요ㅜㅜ 

보내드린 책들은 아래 보이는 것보다 훨~씬 컨디션이 좋은 새 책이랍니다.


1. 응답하라! 대화를 담은 책


논어, 그 일상의 정치』,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불가능한 대화들 2』




독자 댓글: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를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논어'  순우리말 번역, 정확한 주석, 새로운 해석으로 참된 인간을 위한 정치, 공자의 실천사상을 이책을 통해 논어의  한자 하나하나의 속뜻과 말맛까지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싶습니다.


잠홍 편집자 답글:

고전을 주석 없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으로 만나는 건 참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에 이런 구절이 있는데요,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제 몸이 바르면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은 하고, 제 몸이 바르지 않으면 시켜도 사람들은 따르지 않는다.”

(…)

바르게 한다는 게 어디서 시작되겠는가? 바로 나에게서 시작된다. 내 몸을 바르게 하는 것과 집안을 바르게 하는 것, 나라를 바르게 하는 것, 그것들이 뭐가 다른가? 겉은 달라 보여도 속은 같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가 독자님의 하루하루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대활자본도 나와 있어서 눈이 좋지 않으신 분들도 편하게 보실 수 있어요!)

논어, 그 일상의 정치 - 10점
정천구 지음/산지니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 <정신 분석적 발달이론의 통합> 두권의 책이 흥미로워 보입니다. 부산에서 꾸준히 인문도서들을 출판하고 있는 것은 멋지고 의미있는 일 인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책 많이 발굴해주시길!!


위대한 사상가들의 내밀한 삶을 조명한 책과 정신분석학계의 고전을 골라 주셨네요. 

소풍의 계절 봄인 만큼,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은 작은 판형의 책을 드리고 싶어서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를 보내드렸습니다. 이 책은 아렌트와 하이데거의 편지를 토대로 한 최초의 책입니다. 읽으시면서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손 편지를 쓰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ㅎㅎ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 10점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황은덕 옮김/산지니



[불가능한 대화들2]를 읽고 싶습니다. [불가능한 대화들]을 무척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하여 두번째 이야기도 만나고 싶어요. 소설, 평론, 시인들의 이야기. 문학 안에서 처절하게 고민하고 공존하려는 작가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와! 5년 전 출간된 불가능한 대화들도 읽어보고 신청하신다니, 너무 반갑습니다. 불가능한 대화들 2』는 제가 편집한 첫 인터뷰집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는 책이기도 해요. 좋은 구절이 많아 메모하느라 교정교열이 늦어졌어요^^ 삶의 새로운 질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덧붙이고 있는 작가들, 그리고 비평가들의 뜨거운 말들. 그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가능한 대화들 2 - 10점
정유정 외 지음, 오늘의문예비평 엮음/산지니


2. 이야기의 힘! 소설


『물의 시간』,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마르타』




정영선 작가님의 [물의 시간]이 읽고 싶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국모인 명성황후에 대한 시해사건을 시간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정영선 작가님이 재해석 하셨다하니 어떤 구도로 이루어져 있는지 한번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기네요. 정영선 작가님은 역사학을 전공하신 독특한 이력의 창작 소설 작가님이시죠, 본래 작가라 하면 문학과 관련된 분야에서 공부하신 분들이 대개는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데 정 작가님은 역사학을 전공하셨는데도 소설작가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신 분이죠, 그래서 역사학을 기반으로 새롭게 명성황후라는 조선의 마지막 왕비를 새로운 각도로 만들어 내는 창작의 소설이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기만 합니다, 기존 명성황후를 그려낸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조금은 색다른 작품으로 만들어진 내용이라 알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작가라는 점에서 정영선 작가님의 물의 시간을 꼭 한번 읽고 싶어 신청하게 되네요, 혹여라도 당첨이 안될지언정 조만간 구입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정영선 작가님께서 역사학을 전공하셨다는 점까지 꿰고 계셨군요! 『물의 시간』은 말씀하신 대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시간'이라는 주제로 색다르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정영선 작가님께서는 “그동안의 픽션이 명성황후를 야심찬 정치가, 지엄한 국모, 남편의 사랑을 바라는 여자로 그렸다면 이 소설에선 폐경으로 자신의 시간을 잃은 여자이자 조선의 시간을 잃어 가는 황후로서의 모습을 복합적으로 담으려 했다." 고 말씀하셨어요.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랍니다!

물의 시간 - 10점
정영선 지음/산지니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제목부터 확 끌리네요~ 닫힌 문 출구가 없는데 어떻게 해쳐 나갈지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기대되는 책이네요 ㅎㅎ

감사드립니다. 항상 수고하시고 화이팅하세요. 화이팅!


제목의 의도를 간파하셨습니다 :) 제목이 설명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 출구가 없는 비상계단을 주인공들은 어떻게 오르내리고 빠져나갈까요? 서스펜스와 반전이 있는 소설이지만,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표지에 답이 있습니다ㅎ 독자님도 화이팅 하세요!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마르타] 를 읽고싶어요. 지금은 많이 변화되어 여성이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여자가 홀로 살아간다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편견들과 싸워야하는지 느끼고 있기에  남편 없이 삶을 살기위해 사회에 나와 겪는 여인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특히  근대 유럽의 산업화를 배경으로 했다니 얼마나 많은것들을 생각하고 고민해봐야할지 문제를 던져줄것같아 기대도 됩니다.  작가의 의도대로 현재에 여성으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사실적 문제들을 공감하고  여성이 교육과 노동에서 소외된 사회 시스템에 적극 의사표현을 하는 의지도 가져보고 싶습니다.


많이 변화된 한국 사회라고 하지만, 역자 장정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1800년대 폴란드와 2000년대 한국은 닮은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여성의 노동이나 교육, 가정 안팎에서의 역할에 대한 제한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니까요. 『마르타』와 함께 이런 문제에 대해 적극 의사표현 해주신다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좋은 일이지 않을까요. 미리 감사드립니다! 

마르타 - 10점
엘리자 오제슈코바 지음, 장정렬 옮김/산지니



3. 변화하는 중국, 온전히 이해하기


『중국 영화의 오늘』, 『방법으로서의 중국』



해양풍경, 은유를 넘어서,  발트3국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슬픔, 나는 나,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흩어진 모래 등 제 책꽂이에 꽂힌 산지니의 책만 다섯 권이 훌쩍 넘네요. 강내영 선생님의 <중국영화의 오늘>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100년후에는 모두 아시아의 고전이 될 훌륭한 책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이 만들어 주세요~^^


와-- 이제 산지니 책을 여섯 권 갖게 되셨네요^^ 꾸준히 산지니 책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국영화의 오늘』은 동시대의 중국영화를 담고 있다는 면에서 기존의 중국영화 관련 서적들과 차별화되는 책입니다. 기존의 서적들은 기념비적인 과거 작품이나 저명한 감독들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책 읽으시면서 영화도 함께 보시면 재밌겠죠?ㅎㅎ 

앞으로도 매의 눈으로 좋은 책을 찾아주시는 독자 여러분,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들과 함께하는 산지니가 되겠습니다. 

중국영화의 오늘 - 10점
강내영 지음/산지니


늘 아시아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라 무척 고마웠습니다. 미조구치 유조가 지은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이에 걸맞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꼭 읽고 싶습니다.


따뜻한 응원 감사합니다^^ 중국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저자 미조구치 유조는 오래 전부터 동아시아적 탈근대론에 천착해온 학자이지요. 그의  첫 저서이자 중국학에 대한 그의 신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책이 『방법으로서의 중국』입니다. '중국을 온전히 바라봄으로써 우리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미조구치의 시각이 독자님께도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방법으로서의 중국 - 10점
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


4. 산지니의 고향, 부산에 대한 책



부산을 맛보다』, 『금정산을 보냈다



 


<부산을 맛보다>가 눈길이 가네요. 부산에서 시작해 올해도 10년이 된 출판사라는 소개를 읽으니, 부산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아 믿음이 갑니다. 부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부산 출판사가 말하는 부산이야기. 돼지국밥 같은 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요. ^^


산지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부산을 맛보다』를 골라주셨네요~ 이 책은 일본으로도 수출된 (산지니의 첫 수출도서(!)여서 산지니 식구들에게 더욱 특별한 책이기도 합니다. 돼지국밥과 해산물뿐만 아니라 멋진 까페와 퓨전요리까지, 지역별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니 부산을 맛보다』 들고 조만간 부산 한 번 들러주세요! 

부산을 맛보다 - 10점
박종호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제 곁엔 늘 당연히 금정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계절 내내  저와 가족들을 말없이 품어준 금정산에 대한 시인의 생각 또한 엿보고 싶어요!^^


이 시집이 출간되고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금정산은 어떤 산인가"하는 질문을 받고 최영철 선생님께서 "금정산은 서울의 남산 같은 산"이라고 하셨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ㅎ 독자분께서는 이런 설명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시겠지만요. 올해도 넉넉한 품을 가진 금정산과 아름다운 사계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

(참고: 이 책도 큰 글씨 책으로 읽으실 수 있어요!)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전국 곳곳에 계신 독자분들로부터 이렇게 응원을 받으니

산지니 식구들, 힘을 내지 않을 수 없네요 :)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답변 드리고 책을 보내드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올해도 좋은 책들로 인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Posted by 비회원

지난 몇주간, 저는 아침마다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러 번 지각을 할 뻔하기도 하고,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해 종일 찜찜한 기분이기도 했어요. 

매일 아침 '오늘은 도대체 뭘 입지?'의 고민과 함께 저를 괴롭힌 이 질문은 바로 - 

'오늘 아침엔 도대체 뭘 읽?!'

출판편집자에게 읽을거리야 언제나 넘쳐납니다만 (교정지님 안녕;_;), '통근시간만큼은 읽고 싶은 것을 읽겠다!!!'는 마음으로 저는 아침마다 소설이나 시를 읽습니다. 어쩌다보니 주로 한국문학을 읽고 있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얼마 전 신경숙 소설가의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어서 한국문학 내 권력체계에 대한 비판이 일었습니다. 독자로서, 저는 놀라기도 했고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런 사건을 맞아 발현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최근에는 한국문학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출근길에 단편소설에 빠져 시간 지나는 줄 모르던 저에게, 한국문학계의 위기(?)가 매일 아침의 위기로 나타난 것이죠.

그러던 중, 한국의 작가 10인과의 대화를 담은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대화들 2

이 책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부터 저는 이 비관적이면서도 고집스러운 제목이 좋았습니다.

소통이 아니라 '불통'의 나라와 시대라고 하지만, 그 수많은 어긋남들 속에서도 실제로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하길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는 '그럼 이거라도 읽자'는 심정으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오늘날 한국문학이라는 너른 마당 속에서 뚜렷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열 명의 소설가와 시인을 젊은 비평가들이 만났습니다.

정유정, 김유진, 고은규, 김성중, 최진영, 

이승우, 서효인, 김경인, 조혜은, 이안. 

저에게 '그래도, 그러니까 한국문학'이란 생각을 들게 한 글귀 몇 구절을 옮겨 적습니다. 



정유정


저는 소설을 ‘이야기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전환점과 결말의 상황(극화)을 통해 이야기를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주고 싶고, 그것을 통해 ‘나는 인간을, 삶을, 세계를 이렇게 바라본다’라고 제시하는 것이 미학적 요소를 구현하는 제 나름의 방식이고요. 저절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하나쯤 있다 해서 한국문단이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차별화된 소설이란 그런 의미입니다. (22~23쪽)



김유진


소설은, 서사가 간소화되어 있지만, 서사를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인물의 감정을 절제하는 것과 배제하는 것은 다른 의미인것 같고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하지는 않았어요. 모든 묘사와 풍경, 방향, 인물들의 행동은 저의 머리를 통해, 제가 드러내고자 하는 정서와 분위기, 감정의 결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읽히고자 했으나, 그림으로 보이고자 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것은 소설이니까요. (63쪽)



고은규


저를 자주 흔들어놓는 감정은 연민입니다. 연민이 저를 움직이게 하고 글쓰기를 재촉합니다.  () 아프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자신의 프레임에 넣어 엉터리로 사건을 재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는 나쁜 곳으로 굴러 떨어지겠지요. 문학이 낭떠러지를 지키며 미력하나마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87~88쪽)




김성중


보이지 않는 손’에 맞서는 ‘보이는 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손은 당연하게도 우리의 팔에서 뻗어 나온 두 손, 나의 두 손이겠지요. 약하고 무디고 쉽게 다쳐 잘 아물지도 않지만 바로 이 손이야말로 유일한 손입니다. (…) 그 손을 치켜들게 만드는 다른 상상들, 꿈과 질문들이 새로운 서사를 이뤄나갈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102~103쪽)



최진영

이 세계와 내가 너무나 닮았다는 것. 이 세계의 무자비함과 폭력성이 바로 나의 속성라는 것. 저는 이제 겨우 그만큼 압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실, 아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힘에 부쳐요. 그러니 저는 주장하기보다 보여주고 싶고, 말하기보다 듣고 싶어요. 각자의 탈출구, 각자의 희망, 서로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되는 무수한 욕망과 그것을 담은 삶, 고독하게 메아리치는 저마다의 질문을. (138~139쪽)



이승우

나는 인간이 좀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우리가 가진 그물, 법과 이성으로 다 덮을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리의 이해의 그물 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근거이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의 방법입니다. () 세계는 없다고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만 있는 건 아니다, 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163쪽)

 


서효인


시는 학대받는 언어를 그러모으는 작업이 아닐까요. 이것은 서정시에 대한 옹호가 아닙니다. 습관적인 언술과, 비슷비슷한 이미지로 무한히 반복하는 여러 시들은 SNS의 안부인사와, 유튜브의 엽기 영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언어’가 아닌 ‘예술’에 있다고 봅니다. 생채기 난 언어를 모아 생채기를 부각시키는 일 혹은 망가진 언어를 모아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것. (183쪽)




김경인

저는 언어는 근본적으로 투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조차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데요. 그래서 시인은 잘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에서 저는 타인의 슬픔을 위무하는 것은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트레이싱 페이퍼처럼요. 그것이 설령 타인의 인생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타인을 내 안에 깃들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12쪽)



조혜은

제 시에서는 소통하고 싶어 하는 화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것들이 잘 전해지지 못했을 때, 자폐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 것 같습니다만 제 시의 화자들은 자폐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순간에도 누구보다 소통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청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화자와 청자는 다른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통에 서투르고, 관계 맺기에 서투르기 때문에 어긋나고 있을 뿐, 서로를 향해 분명히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236쪽)



이안


시, 또는 세계가 호락호락, 단순하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면(裏面)이나 전면(全面)을 포함하지 못하는 단편적 현상 제시는 세계 인식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보고요. 앞으로 시를 써나가면서 경계하려고 하는 대목입니다.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서 언어의 끈을 결코 느슨하게 풀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며, 어느 한쪽에 맥없이 투항해버리지도 않으리라 다짐하고는 합니다. (266~267쪽)

Posted by 비회원



우리 삶의 새로운 질문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열 명의 작가

문학은 정말 끝장나버린 것일까? 순수문학이니 대중문학이니 하는 관습적 구분을 넘어, 문학의 종언은 이제 익숙한 선언이 되었다. 이 무거운 질문에 누구보다 예민할 이들은 작가이지만, 담담한 창작활동으로 응답하고 있는 이들도 바로 작가다. 정유정, 김유진, 고은규, 김성중, 최진영, 이승우, 서효인, 김경인, 조혜은, 이안. 오늘날 한국문학이라는 너른 마당 속에서 뚜렷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열 명의 소설가와 시인을 젊은 비평가들이 만났다. 창작의 우물을 은밀하게 비춰보는 ‘작가산문’과 열띤 ‘대담’의 기록에서, 우리는 문학이 빛나는 문장과 사유를 전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삶에 기여할 수 있기에 유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삶의 새로운 질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덧붙이고 있는 작가들. 그 목소리는 이미 치열한 생의 기록이자 비윤리적 사회에 대한 항전이다. 이들 소설가와 시인, 그리고 비평가들은 작품 속에서, 또는 학계에서는 건넬 수 없었던 뜨거운 말들을 우리에게 전한다. 4년 전 출간되었던 첫 『불가능한 대화들』에 이어, 동시대 독자와 머리를 맞대고자 보내는 초대이다.


이야기를 하기에 가장 큰 공간, 소설

소설은 “인간과 삶과 세계와 운명을 한계 없이 은유해내는 대지”이다. 집필한 장편 두 종이 영화화되고 있는 작가 정유정은, 작가가 가진 이야기꾼의 욕망이 왜 소설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독자는 화자가 많아도 각각의 인물에 이입할 수 있고, 독자 스스로 내킬 때 이야기를 멈추거나 시작할 수 있어 이야기의 흐름과 숨겨진 의미를 음미하게 된다. 그래서 소설은 “이야기를 하기에 가장 큰 공간”이다.

이어지는 소설가들의 산문과 대담은 이 주장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누구나 금방 읽고 이해하되, 이해가 또 다른 질문을 부르는 이야기를 쓰는 최진영, 그림이나 음악처럼 읽히면서도 여전히 견고한 서사를 만드는 김유진, 암울한 현실을 명랑한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고은규의 작품들은 독특한 울림을 남겨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이곳을 다시 응시하도록 만든다. 신의 힘과 인간이 만든 세상을 비추는 이승우는 인간의 사고를 초월하는 세계에 대해 말하고, 세계의 종말에 대한 단편을 쓴 김성중은 ‘보이지 않는 손’에 맞서는 ‘보이는 손’, 바로 우리의 팔에서 뻗어 나온 두 손에 대한 믿음을 작품에 담는다.


투명하지 않은 언어 고이 듣고 생채기 난 언어 그러모으는 시인

시 아닌 ‘시적 언술’이 흘러넘치고 언어가 파괴되고 있다는 요즘, 시와 시인이란 무엇일까. 김경인은 시인을 “잘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시인은 “근본적으로 투명할 수 없”는 언어를 정성들여 듣는 방식으로 “타인을 내 안에 깃들게” 한다. 이것이 소통으로서의 시, 나아가 문학에 대한 하나의 목소리라면, 젊은 작가 서효인은 시의 방법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다.

시는 학대받는 언어를 그러모으는 작업이 아닐까요. (…) 습관적인 언술과, 비슷비슷한 이미지로 무한히 반복하는 여러 시들은 SNS의 안부인사와, 유튜브의 엽기 영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언어’가 아닌 ‘예술’에 있다고 봅니다. 생채기 난 언어를 모아 생채기를 부각시키는 일 혹은 망가진 언어를 모아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것. 시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_「불온한 ‘파르티잔’의 목소리」(183쪽) 중에서

물론 시는 아름다움만 담지는 않는다. 조혜은은 용산 참사를 기억하는 삼보일배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적이 있다. 그러나 어느새 ‘구경’만 하는 일상으로 돌아온 자신에 대해 “양심선언인 동시에 비굴한 굴종”인 시들을 썼다. 이러한 고백은 “시를 삶의 중심부로 끌어들이고 삶을 시의 중심부로 탈주시키”려 한다는 이안 시인의 말과 겹쳐진다. 언어화하는 순간 도망쳐버리는 시의 정면(正面)을 기어코 그리려는 이가 시인이라는 그에게서, 추상적 언어에 능란한 시인을 넘어 단련된 끈기를 지닌 시인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그러니까, 한국문학이다

여전히 머리 위에 드리운 문학의 종언으로 돌아와, 우리가 ‘문인’라는 사람들에게 가장 던지고 싶은 질문은 ‘왜 쓰는가’일지 모른다. “써야 한다. 그래야 산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최진영), 자신은 지금 앉아 있는 의자가 하는 말을 적어내고 있을 뿐이라는 작가도 있다(김성중). 고은규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자신의 글쓰기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불행을 진심으로 아파할 수 있는 감정이 필요합니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자신의 프레임에 넣어 엉터리로 사건을 재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는 나쁜 곳으로 굴러 떨어지겠지요. 문학이 낭떠러지를 지키며 미력하나마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암울한 세계, 명랑한 이야기」 중에서(88쪽)

그러나 어떠한 목적으로 문학을 하는지를 떠나 분명한 것은, 세상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어떤 언어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이승우가 말하듯,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상태가 아니라 의식이기 때문”이다. 영상이나 SNS 같은 매체에 익숙해져 우리는 그동안 문학 특유의 매력과 힘에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 “한국어로 된 시가 우주 최상의 시”라는 서효인의 주장이 낯간지럽지만은 않다.

『불가능한 대화들 2』는 분명 작가들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작품의 섬세한 결을 포착하는 평론가들의 노력 또한 조용히 빛나는 책이다. 비평가와 작가, 그 언어의 차이가 돋보이기도 하고 그 간극이 깨어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줄 책이다.



글쓴이

정유정

2007년 세계청소년문학상, 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등이 있다.

김유진

2004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단편집 『늑대의 문장』, 『여름』, 장편소설 『숨은 밤』이 있다.

고은규

2007년 계간 『문학수첩』 단편소설 부문 신인상,

2010년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트렁커』, 『데스케어 주식회사』가 있다.

김성중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12년 창작집 『개그맨』 출간.

최진영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2010년 한겨레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소설집 『팽이』가 있다.

이승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장편소설 『그곳이 어디든』,

산문집 『소설을 살다』 등이 있다.

서효인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

제30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이 있다.

김경인

시인,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기초융합교육원 교수.

2001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한밤의 퀼트』,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가 있다.

조혜은

2008년 『현대시』로 등단.

2012년 시집 『구두코』 출간.

이안

1999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편집위원.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 『치워라, 꽃!』,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이 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주간

김경연

문학평론가,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

김필남

문학평론가,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

박형준

문학평론가,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

손남훈

문학평론가,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

윤인로

문학평론가


차례



불가능한 대화들 2


문학 | 신국판 272쪽| 978-89-6545-290-4 04180 정유정 외 15인 지음 | 오늘의문예비평 엮음 | 

|15,000원 | 2015년 06월 15일

오늘날 한국문학이라는 너른 마당 속에서 뚜렷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열 명의 소설가와 시인을 젊은 비평가들이 만났다. 삶의 새로운 질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덧붙이고 있는 작가들. 창작의 우물을 비춰보는 ‘작가산문’과 열띤 ‘대담’을 통해 이들은 작품, 또는 학계에서는 건넬 수 없었던 뜨거운 말들을 우리에게 전한다.




불가능한 대화들 2 - 10점
정유정 외 지음, 오늘의문예비평 엮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