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적으로 풀어보는 사찰문화재 해설서

재미있는 사찰 이야기

한정갑 지음

 

 

 

  사찰에 들어서면 꼭 만나게 되는 4대 천왕. 왜 그들은 무기를 들고 사찰을 지키고 있는 걸까, 대웅전의 부처님상의 손 모양은 무엇을 뜻할까, 절은 항상 산에 있어야 하는 걸까. 사찰에 가게 되면 이런저런 의문이 들지만 속 시원하게 해소해 주는 안내가 없다. 사찰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불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조성되었고, 그것을 조성한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화와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그 본래의 뜻과 목적을 알 수 없다.

 

 

 

  이 책은 전통 사찰과 사찰의 각종 조형물에 대한 안내서로서,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전통 사찰과 조형물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전국의 전통 사찰을 답사하면서 사찰에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고, 조형물에 깃든 불교의 교리를 심도 깊게 풀어간다.

 

 

사찰 배치도에 담긴 불교의 교리와 의미

 

  1부에서는 사찰의 배치도와 함께 진입해 가는 순서대로 불교 교리를 설명한다. 불교에서 수미산 정상은 천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 곳이다. 수행자는 이곳을 통과해야 궁극적인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 사찰은 그 수미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수미산에 가기 위한 여러 관문이 사찰의 구조와 배치에 담겨 있다. 저자는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면서 사찰의 배치도와 구조에 깃든 불교적, 문화적 상징에 대해 심도 깊게 설명한다.

 

  2부에서는 지옥세계에서 완성의 세계로 이어지는 중생의 윤회세계와 우리나라에서 신봉되는 불상을 설명하였다. 사찰의 각 구조물에 보이는 중생들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10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10세계에 대한 저자의 상세한 설명은 석가모니불, 미륵불, 불교 탱화 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탑, 부도, 비문, 석등 사찰 조형물에 대해 분석

 

 

 

  3부에서는 탑과 석등에 대해 설명하고, 시대에 따라 변천한 탑의 양식에 대해 상세히 분석한다. 우리나라 탑의 재료는 주로 나무와 돌로, 특히 화강암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러한 탑과 석등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천했다. 저자는 삼국시대에 각기 달랐던 탑의 특징, 이후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지나면서 탑의 모양이 시대 배경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현존하는 탑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4부는 목조건축물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사찰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조 건축물에 대한 용어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돌과 흙을 쌓는 방법인 기단, 기둥 수와 모양에 따른 양식, 안과 밖을 구분하는 벽면과 창호 등 사찰을 이해하기 위한 세부적인 양식에 대해 알려준다.

 

 

 

문화재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

 

  문화재 해설이 당대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그 문화재의 관계성을 풀어내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삶과 관계없는 신기한 구경거리에 불과할 따름이다. 문화재 해설에 스토리텔링 기법이 도입되고 인문학 개념이 더해지는 것은 문화재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경험을 담고 있는 조형물이라는 배경에 연유한다.

 

  그러므로 사찰 조형물의 불교적 해석은 그 문화재가 가진 뜻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 문화재를 조성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현재 나의 삶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찾아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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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정갑

법명은 지유(智諭). 1961년 부산 출생으로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영남불교문화의 친숙한 환경에서 성장한 후 부산 소림사 고불을 거쳐 부산대학교 불교학생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포교사단, (사)파라미타 등의 실무를 맡아 전국 사찰을 주유하였으며 한겨레문화센터, 조계종포교사단, 조계종 템플스테이사업단, 서울시 노인복지센터 문화재 답사 강사를 맡아왔다. 현재 파라미타 청소년협회 문화재모니터링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민국 명찰답사 33』이 있다. myt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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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찰 이야기

 

한정갑 지음 | 272쪽| 18,000원 | 2017년 11월 30일 출간

 

 

전통 사찰과 사찰의 각종 조형물에 대한 안내서로서,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전통 사찰과 조형물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전국의 전통 사찰을 답사하면서 사찰에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고, 조형물에 깃든 불교의 교리를 심도 깊게 풀어간다.


 

 

 

재미있는 사찰 이야기 - 10점
한정갑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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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소설집 『끌』

불안 허공 탈주




 『끌』은 제가 인턴을 시작할 때부터 줄곧 책상 위에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당시 방금 막 나온 신간도 아니었고, 사무실의 누군가가 읽다 잠시 위에 올려두신 것 같았습니다. 누가 제게 읽으라고 한 적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었지만, 왠지 시간이 날 때마다 눈이 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4주째 『끌』은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명사」

 망치로 한쪽 끝을 때려서 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겉면을 깎고 다듬는 데 쓰는 연장.


 끌은 끊임없이 가구를 다듬습니다. 까슬한 겉을 깎고 다듬어야 죽은 나무는 비로소 공간에 놓일 수 있습니다. 『끌』은 불안하고, 텅 빈 공간에서 계속해서 끌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질


 볼라와 언감생심, 개죽, 인질 주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비어 있다. 연한 하늘색 바탕에 사람의 두상 그림만 연회색으로 희멀겋게 파여 있다. 파인 부분은 마치 두상을 도려낸 흔적 같다. 인질 주인의 카카오톡은 누구와도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12쪽.)


 '인질'은 택시기사 동수와 인질 주인의 연결고리입니다. 동수는 인질을 통해 인질 주인에게 푼돈을 뜯어내 보려 하지만, 인질 주인은 연락도 인질을 구하려는 의지도 없어 보이죠. 어쩌면 인질 주인의 텅 빈 삶에서 인질은 그다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나 봅니다. 인질의 '현대인의 필수품'이라는 별명에도 불과하고 말입니다. 주변 인물과 동수의 통화를 생각해 보면 인질 주인은 그닥 행복한 생활을 한 것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욕설이 가득한 지칭으로 인질 주인을 부르는 개죽의 말에서 오히려 인질을 찾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텅 빈 삶 속에서 인질 주인은 인질로부터 탈주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인질 주인은 '누구와도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고, 프로필의 두상은 마치 '도려낸 흔적' 같습니다. 



에볼라 출혈열 [ ebola hemorrhagic fever ]

: 에볼라 바이러스에 의해 발열과 전신성 출혈 증상이 발생하며 치사율이 매우 높은 질환

焉敢生心 [ 언감생심 ]

: ‘어찌 감(敢)히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으랴’







 놋그릇


  씨는 흙바닥에 담배를 비벼 끄고 손자 손에 이끌려 쪽마루에 올라선다. 맵싸한 향내가 코를 파고든다. 교자상 너머 병풍은 산처럼 우뚝하다. 영정 속의 얼굴은 모두 다 같아 보인다. 남편은 시아버지 같기도 하고 친정아버지 같기도 하다. 희로애락에 치이고 부대낀 흔적은 어디에도 비치지 않는다. 이승에서 겯고튼 흔적은 죽으면 바람이 다 걷어가 버리는 것일까. (49쪽.)


 손 씨에게 담배와 제사는 옛사람을 마주하는 기회이자 현재를 잊는 시간입니다. 언제나 생각에 붙잡혀 사는 손 씨는 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사, 아들, 큰 며느리, 남편. 향불 앞에서 그녀는 꽉 막힌 현재를 벗어납니다. 손 씨는 "그저 향불 앞에 오래오래 엎드려 있고 싶"습니다.



서름-하다

「형용사」

「1」【(…과)】((‘…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여럿임을 뜻하는 말이 주어로 온다)) 남과 가깝지 못하고 사이가 조금 서먹하다.

「2」【…에】사물 따위에 익숙하지 못하고 서툴다.







 


 는 아내를 잡을 언턱거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품었던 고마움과 미안함은 내 분노와는 결코 맞먹지 못했다. 아내의 남자는 수필 쓰는 사람이라 했다. 수필 쓰는 사람, 그 소리가 내 귀에는 숫돌 가는 사람으로 들렸다. (67-68쪽.)


 '나'는 끌질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아내를 떠올립니다. '나'는 아내를 잘 알고 있지만, 아내는 어디선가에서 계속 때를 묻혀 오죠. 익숙한 아내가 낯설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과거와 지금의 아내를 되짚어 보고 있습니다. 옛 찻집 주인의 내연녀를 통해서도 아내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내연녀 영란에게, 아내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랍장을 남기는 것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아내의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수필 (隨筆)

「명사」『문학』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 있다. 


숫-돌

「명사」

 칼이나 낫 따위의 연장을 갈아 날을 세우는 데 쓰는 돌. 

숫돌이 저 닳는 줄 모른다

 숫돌에 무엇을 갈 때마다 숫돌 자신이 닳는 것은 알지 못한 채 점차 닳아서 패게 된다는 뜻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것은 잘 느끼지 못하나 그것도 쌓이면 무시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벽완월


 식이 왕명을 어기면서까지 지상을 죽인 것을 두고 그를 향한 시기심 때문이라는 말들이 떠돌았다. 변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기심에 사로잡혀 지상을 죽였다는 말은 틀렸다. (중략) 지상을 향했던 순정한 동경과 그를 품었던 절절한 마음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떤 소문에도 의연해야 했다. (85쪽.)


 부식은 지상의 시적 감각과 능력을 몹시 사랑하고, 동경합니다. 윤언이 '글 동냥'을 한다며 조롱을 할 정도로 그는 시에 대한 애착이 깊고, 지상의 시를 좋아했습니다. 부식의 눈에 비친 지상은 고고하고, 고매합니다. 또 그에 대한 시기심은 부식을 더욱 안달하게 합니다. 그러나 지상은 부식과 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식은 정치적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자 자신보다 관직에서 높은 성취를 이룬 인물입니다. 부식은 지상과 시에 대에 말을 나누고 싶지만, 지상은 날카로운 정치 이야기만을 늘어놓습니다. 오히려 시에 회의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높은 관직의 부식은 다른 의미로 지상에게 열등감을 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벽완월」은 부식의 눈으로 부식의 소리로 지상의 감정을 보여줍니다.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긴 언덕에 봄빛은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남포에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어느 때 마르려는지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푸른 강에 보태고.

<대동강, 정지상>   







 슬리퍼


  나이 때는 인생의 무게가 제 발밑에 있을 때였다. 또한, 발돋움하지 않으면 세상이 보이지 않을 것같이 초조함이 깃든 나이였다. 찰칵찰칵. 학생들이 카메라에 담기는 소리는 경쾌했다. K에게 부재중 전화가 마흔여섯 통이 와 있었다. (125쪽.)


 '여자'에게 신발은 구속입니다. 그녀가 앓고 있는 무지외반증은 그녀를 신발의 틀에 오래 잡혀있을 수 없게 합니다. 그런 '여자'에게 K는 계속해서 슬리퍼 대신 플랫슈즈를 권합니다. 마치 신발로 '여자'의 삶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발은 언뜻 우리의 발을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신고 있다 보면 발에 땀이 차기도 하고, 속에 날카로운 것이 있으면 오히려 우리 발을 해치기도 합니다. 보온성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아서 때로 한겨울 거리의 한기를 발에 전하기도 합니다. 발을 감싸는 듯하지만 어떻게 보면 발을 꽉 안아 붙잡고 있죠. '여자'에게 삶은, K는 신발입니다. 신발은 '여자'를 꽉 안아 그녀의 삶을 떠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여자'는 항상 슬리퍼를 착용합니다.



슬리퍼 (slipper)

「명사」

 실내에서 신는 신. 뒤축이 없이 발끝만 꿰게 되어 있다.

「참고 어휘」끌신.


간헐-천 (間歇泉)

「명사」『지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뜨거운 물이나 수증기를 뿜었다가 멎었다가 하는 온천. 화산 활동이 있는 곳에서 많이 나타난다.







 창(窓)


 게 창은 알맞은 양분의 햇빛을 관통시키는 프리즘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창은 프리즘도 사탕 빛 정서도 아닌 틀과 유리로 이루어진 건축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았다. (137쪽.) 


 '창'은 흔히 소통의 소재로 등장합니다. 열리는 투명한 벽은 바깥 공기를 들이기도, 풍경을 보여주기도, 날씨를 알려주기도 하는 세상과의 연결고리입니다. 여자는 1층의 방범창이 마치 감옥 같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창을 흠집 내고, 깨고, 부수지만 결국 다시 창을 필요로 합니다. '덜 마른 옷을 입은 것처럼' 기분 나쁜 이곳에서 창은 외부로 통하는 공간이자 바깥세상을 막아주는 벽입니다. 반면 '나'에게 창은 양분을 통과시키는 프리즘이었습니다. 그리고 빛을 들여오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은 '나'에게 무겁기만 합니다. "넌 우리의 빛이다."가 "우린 너의 빚이다."가 되는 것처럼. 현실 속 창은 '틀과 유리로 이루어진 건축 구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빚에서, 젖은 습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와 '여자'에게는 창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窓)

「명사」

「1」=창문(窓門).

「2」『컴퓨터』모니터 화면에서 독립적인 환경을 나타내는 사각형 모양의 영역. 흔히, ‘윈도’라 한다.


창문 (窓門)

「명사」

 공기나 햇빛을 받을 수 있고,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벽이나 지붕에 낸 문.











 닭발


 린 시절, 엄마는 언도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닭발을 입에 물렸다. 닭발을 채찍으로 삼아 입안을 후려치려는 의도였다. 티끌만큼의 선처도 없었고 예외도 없었다. 닭발을 물지 않으려고 도리질을 쳤던 어느 날, 발가벗겨진 채 마당에 내쫓긴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 중의 하나였다. (166-167쪽.)

 슨 말인가 묻고 싶었지만, 혀는 움직이지 않았다. 언도는 전화기에 거친 숨만 내보냈을 뿐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아교풀을 잔뜩 삼킨 것 같았다. (174쪽.)


 언도에게 '말'은 거짓말과 눌언이었습니다. '엄마'의 죽음 이후 자진해서 닭발을 씹는 언도는 그 거짓말과 눌언을 스스로 채찍질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언도는 말문이 트이자 오히려 군말이 줄었습니다. 헛말이 없는 입속은 빈 꽈리처럼 홀가분하고 유연합니다. 그런 언도에게 다시금 거짓말을 유도하는 사람은 언도의 눌언을 교정했던 '공'과 '선배'입니다. 그래서 언도는 오늘 다시 닭발을 씹습니다. 오도독하고 닭발을 물면 헛말은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아교- (阿膠-)

「명사」

 짐승의 가죽, 힘줄, 뼈 따위를 진하게 고아서 굳힌 끈끈한 것. 풀로도 쓰고 지혈제로도 쓴다.







 비문(蚊)


飛 [날 비]

蚊 [모기 문]


 엌의 선반과 살강을 달그락거리는 쥐가 아침의 적막을 깨뜨린다. 수리는 사과 소쿠리를 들고 툇마루에 나간다. 사과를 차례차례 헛간 옆으로 던진다. 물컹한 사과들을 만지자 쉬파리들이 후르르 날아오른다. 쉬파리 떼들이 후룩 수리의 얼굴을 덮치다 이내 허공으로 치솟는다. 손에 묻은 사과의 농액은 추깃물 같다. (183쪽.)


 비문증을 앓고 있는 수리에게 안유백은 썩은 사과입니다. 썩은 것만 보면 쉬파리가 들끓는 것처럼 보인다는 수리는 양반인 안유백에게 억압받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수리가 그린 안유백의 초상화는 탈주를 위한 열쇠입니다. 파과에 모여있던 쉬파리가 후룩 날아가 버리듯 수리는 도망치고 싶습니다.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 수리는 이제 그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파과 (破果)

「명사」

 흠집이 난 과실


추깃-물

「명사」

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 








 끌은 끊임없이 가구를 다듬습니다. 꺼슬한 겉을 깎고 다듬어야 죽은 나무는 비로소 빈 공간에 놓일 수 있습니다. 『끌』불안하고, 텅 빈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끌질을 하고 있습니다. 








 - 10점
이병순 지음/산지니

(단어뜻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http://stdweb2.korean.go.kr/main.jsp)


Posted by 비회원

이병순 소설집

 

 

일상의 균열을 통해 피어나는 삶의 질문들

 

  소설 「끌」은 평생 가구를 만들며 성실하게 살아온 목수의 이야기다. 가구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그것을 보람으로 삼는 주인공(남편)에게 두 가지 시련이 닥친다. 하나는 가구 업계의 불황이고, 두 번째는 아내의 외도다. 호구지책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주인공은 친구의 주선으로 다시 나무와 연장을 만지며 자신을 가다듬는다. 끌로 생채기 난 가구를 다듬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쌓인 분노와 원망도 함께 끌질해 나간다. 소설 「끌」에서는 주인공과 아내의 관계를 끌과 나무의 관계로 보여주며 아내의 외도로 상처받은 주인공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한다.

 

  서랍장 생채기를 화심으로 삼아 꽃을 갉작갉작 그린다. 가는 꽃문양이 새겨지는 자리마다 물비린내와 습한 흙냄새가 섞인 듯한 생나무 냄새가 난다. 나무 가루가 날린다. 끌 자루를 잡은 손에 느슨하게 힘을 풀어 포개진 꽃잎 안쪽 선을 다독이듯 민다. 자잘한 금을 꽃술로 삼아 가는 평끌 끝을 쓱싹쓱싹 그린다. 안쪽으로 오므린 꽃잎 부분을 지날 때 끌 자루에 힘을 살짝 뗀다. 내가 끌 자루에 매달린 것 같다. 몇 걸음 물러서서 서랍장을 본다. 생채기는 꽃으로 피어났다. _「끌」에서.

 

  「슬리퍼」는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리는 여자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여자는 출장 피아노 레슨 강사이고 그녀의 남편 K는 피아니스트이자 음대 교수다. 여자는 자신의 외도를 의심하며 옥죄고 다그치는 남편 K를 떠나 바닷가로 향한다. 평소 외반무지증이 심해 꽉 조이는 신발을 신지 못하는 그녀는 슬리퍼를 신고 백사장을 거닐며 늦여름의 바닷가의 풍경을 음미한다. 소설 말미, 집에서 입던 옷에 슬리퍼를 신고 남편의 피아노 협연을 보는 여자의 모습을 통해 ‘나’와 ‘자유’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슬리퍼’라는 일상의 소재를 통해 자신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음을 던진다.

 

  K는 무대 뒤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객석은 조용해졌다. K가 건반에 손을 올리자 여기저기서 들리는 헛기침 소리도 멎었다. 앙코르곡은 브람스의 소품 ‘왈츠’였다. ‘왈츠’라는 곡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애잔한 선율이었다. 여자를 안고 업었으며 여자의 목을 조르던 저 손으로 K는 지금 왈츠를 치고 있다. 여자는 앞좌석 의자 밑 저 깊숙이 밀려나 있는 슬리퍼를 발로 당겨 신었다. _「슬리퍼」에서.

 

 

소통의 부재를 그려낸 현대인의 자화상

 

  소설집 『끌』에서는 빚에 허덕이는 생활고, 반지하와 같은 허름한 주거환경,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믿음 등이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장악한다. 소설은 주인공들의 이러한 남루한 삶을 통해서 소통의 부재와 비윤리성을 드러낸다.

 

  소설「인질」은 택시기사 동수가 손님이 두고 내린 스마트폰을 돌려주기 위한 과정 속에 생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수는 습득한 스마트폰을 인질로 삼아 사례비를 뜯어내려고 하지만 습득한 폰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번호가 하나도 저장되어 있지 않다. 즐겨찾기에 저장된 사람들도 폰 주인에게 욕설을 내뱉을 뿐, 정작 폰 주인에게는 무관심하다. 핸드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전자기기임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의 주인공과 즐겨찾기에 저장된 사람들은 부재중이다. 독자는 현대 사회의 대표적 사물인 스마트폰(핸드폰)을 통해 현대인들의 소통이 부재한 각박한 삶을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더불어 끝까지 핸드폰(인질)의 주인에게 전화가 오지 않는 결말을 통해 허상에 사로잡혀 필요 없이 부박하게 사는 우리네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여기 택시로 오기엔 아주 멀어.”
  “허명이라는 사람의 집은 어딥니까?”
  “집? 그 아이의 집을 알았다면 내가 이러고 있지도 않지.”
  “아이, 어서 안 들어오고 뭘 해?”
  언감생심 목소리 사이로 여자의 고태 어린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지금 내가 아주 급한 볼일을 보는 중이거든, 그럼 이만.”
  동수는 남아 있는 팥빵을 마저 욱여넣고 우적우적 씹는다. 지방까지 갖다 줬다고 사례비와 차비에 웃돈까지 바랐던 것이야 말로 언감생심이었다. _「인질」에서.

 

  「창」의 주인공 나는 창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복학준비생이다. 창틀을 수리하는 A/S 과장을 따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창을 통해 세상을 엿본다. ‘창’은 소통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창 안에 갇혀 있거나, 창밖으로 내몰려 있다. 소설은 소통의 대표적 이미지로 ‘창’을 보여주면서 그 속의 혹은 그 밖의 고독한 현대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창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것,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소설 속에 녹아 있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소통에 대해 꼬집는다.

 

  “앞이 트였다고 모두 전망인 것은 아니라고. 김 군도 아파트를 많이 다녀봐서 알겠지만 창 앞에 볼 게 뭐 있었어? 전망, 전망들 하지만 정작 전망 좋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전망이라 하지 않지. 요새 사람들, 세계로 어디로 다니면서 좋은 것은 다 보고 사는데 뭘 더 보고 싶겠어. 사람들이 넓은 창을 원하는 것은 뭘 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누가 저들을 봐 주기를 바라는 거지.” _「창」에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숙고

 

  「부벽완월」과 「비문」은 일종의 예술가소설이다. (…) 예술의 목적, 예술과 정치(도덕)의 관계,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등 전통적인 미학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들 두 단편은 예술가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_황국명(문학평론가)

 

  「부벽완월」은 고려 말 묘청의 난을 평정한 김부식이 부벽루에 올라 달을 보며 정지상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김부식이 정지상에게 질투를 품어 묘청의 난 때 그를 죽였다는 역사학자들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소설은 김부식 입장에서 그 사실에 대한 변명의 기회를 준다. 「부벽완월」은 서경천도, 묘청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부식이 지상에게 품은 것은 질투가 아니라 동경과 흠모였다는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쓰였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김부식이 시 구절 하나를 취하기 위해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문학에 대한 열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 홀로 발아되어 꽃을 피운 가요처럼 지상의 시들도 모두 제 흥에 겨운 시들이었다. 지상의 시 어디에도 세상과 엮이고 싶은 마음은 서려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은 세상의 한복판에 쓰러지고 말았다. _「부벽완월」에서.

 

  「비문(飛蚊)」은 18세기 무렵 조선의 화공 최수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리는 타락한 양반 안유백의 하인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엄숙한 태도를 드러내거나 예술적 행위에 대해 특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수리의 예술적 경험과 그 기록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수리의 그림을 된장독 덮개로 쓰거나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안유백의 억압이 그러하다. 잔인한 주인 안유백은 수리의 동료이자 도망 노비인 상두를 놓아주는 조건으로 초상화를 그리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붙들린 상두는 모진 매질 끝에 끝내 자결하고, 수리는 화폭 가득 검은 먹물만 칠해진 것을 초상화라고 제시하여 안유백의 격분을 산다. 조선시대 후기의 변화하는 시대상에 역행하는 안유백에게 저항하는 화공 최수리를 통해 예술가의 역할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나리 눈엔 이것이 검은 바탕으로만 보이십니까? 소인의 눈엔 쉬파리들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꼬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리께서는 혹시 비문증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눈 한쪽 망막에 검은 점이 있어 언제나 파리 한두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병이지요. 나리는 모르셨겠지만 저는 오랫동안 비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앓는 비문증은 이상하게도 푹푹 썩은 것만 보면 온통 파리가 바글바글 들끓는 것처럼 보입니다.” _「비문(飛蚊)」에서.

 

 

 

| 이병순 소설집

이병순 지음 | 문학 | 국판 | 238쪽 | 13,000원

2015년 9월 11일 출간 | ISBN : 978-89-6545-315-4 03810

 

이병순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표제작 「끌」을 비롯해 총 7편의 단편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슬리퍼, 창, 스마트폰 등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을 통해 일상에 나지막하게 깔려 있는 삶의 질문을 표면으로 끌어올린다.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가다듬어 나가는 인물과 소설 곳곳에 자리한 일상의 흔적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더불어 문학의 의미,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역사적 인물인 김부식, 정지상을 주인공으로 한 「부벽완월」, 18세기 말 조선의 어느 화공 이야기를 다룬 「비문」에서는 문학과 예술에 관한 작가의 숙고와 성찰을 전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글쓴이 : 이병순

 

 

부산 출생.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끌」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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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