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산지니·1만4800원


 

시간이 갈수록 빛난다는 건 얼마나 난망한가? 100원 동전도, 수백만원짜리 골드바도 못해내는 일이다. 그런데, 한나 아렌트(1906~75)가 이 어려운 일을 해낸다. 20세기 대표 지성으로 이미 자리잡았지만, 21세기가 한 해 한 해 더할수록 그를 향한 관심 또한 커져만 간다. 그의 사유의 새로움, 독창성 때문일 거다.

<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은 아렌트 사상이 생겨나는 과정에 주목한다. 핵심 개념들을 요약하면서, 이를 도출하기까지 어떤 사유 방식을 거쳤는지를 드러낸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의 사유를 되짚었듯 말이다. 다만 그보다는 덜 사회과학적이고 더 인상비평적인데, 묘한 설득력이 있다.

아렌트가 20세기를 닫고 21세기를 선취할 수 있었던 까닭을, 책은 웃음, 번역, 용서, 표현의 방법론으로 범주화한다. 예컨대, 아렌트의 가장 유명한 개념 ‘악의 평범성’을 보자. 그가 이 유례없는 통찰에 다다른 건 ‘웃음’의 힘이라는 게 이 책의 분석이다.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 책임자 루돌프 아이히만의 신문조서를 읽으며 “몇 번이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 말입니다”라고 썼다. 아이히만이 읊어대는 진술의 상투성, 엉뚱한 의미부여에서 ‘어릿광대’를 포착해낸 것이다. 악이 거대한 실체를 가졌으리라는 ‘학습된’ 관념에서 탈출해, ‘생각없음’ ‘상투성의 추종’이야말로 현대적 악의 진면목임을 간파한 것이다. ‘웃음’이 사고의 반전을 일으켰다. 여기까지 읽으면, 번역·용서·표현으로 드러나는 아렌트 사유의 특징은 뭘까, 궁금증에 책을 덮기 어려워질 것이다.




2017-01-26 | 한겨레 | 손원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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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학습, 한나 아렌트의 사유방식 - 10점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 배기정.김송인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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