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오늘의 삶 견디는 이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다

 

- 창녕에서 태어나 마산서 살며
- 전통 서정을 바탕에 두고
- 일상을 시로 풀어낸 지난 30년

- 멸치 한마리, 밥과 반찬, 명퇴…
-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끌고 와
- 고된 하루살이에 희망을 준다

내 할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이런 삶을 사셨겠구나. 성선경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혹 자신이 걸어온 모든 길을 기록하는 형태를 '시'로 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시인이며 교사였던 그는 지난해 3월 명예퇴직했다. 그 심정을 담았던 시가 아마 연작시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의 한 편인 '한로(寒露)'일 것이다. '명예퇴직서(名譽退職書)를 앞에 두고/끝까지 가지를 움켜쥔 단풍잎같이 붉어져 볼 것인가/풀잎에 내린 찬이슬같이 끝까지 매달려 볼 것인가/놀란 자라목같이 밤새 주름진 생각의 관절들이/우두둑 우두둑 뼈마디 꺾이는 소리를 낸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한 집안의 가장인 우리들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평생을 일하고도 힘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고단한 일상을 견뎌내고 있을 수많은 '우리'들이 생각났고, 이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하는 '모두'가 생각났다.

시인을 만나면 묻고 싶었다. 산다는 일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꿈과 야망이 있었고 힘과 열정이 넘쳤던 젊은 날들이 스러져갔어도 아직 가슴 밑바닥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음을, 서서히 스러졌던 그 과정조차 진정 아름다웠음을.

 

 

■창녕 출신 마산 시인, 두 고향 품다

성선경은 1960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1987년 무크지 '지평'과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올해로 시력 30년이다. 시집 '모란으로 가는 길' '진경산수' '봄, 풋가지行'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파랑은 어디서 왔나' 등을 냈다. 그의 시는 전통 서정을 바탕으로 두고 일상을 이야기한다. 첫 시집부터 출판된 순서대로 읽다 보면 성선경이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감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고향 창녕을 떠나 마산으로 온 뒤 지금까지 마산에서 사는 그는 '창녕 출신 마산 시인'이다.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인을 만나 성호동 임항선그린웨이로 향했다. 임항선은 경전선 마산역에서 마산항역을 이었던 철도로, 2012년 1월 26일에 폐선되었다. 현재 시민의 산책로로 사랑받는 이곳은 나무로 만든 시비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이어진다. 지역 출신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걷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이곳에서 성선경의 시 '별'을 만났다.

'아차 순간 내 헛디딘 잘못 하나로/그만 정한수 사발이 깨어져 흩어졌습니다./이렇게 깨어진 사금파리들이/저 하늘에 가득 찼습니다./나는 얼마나 잘못하며 살아왔을까요?/이젠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실제 그릇이었을까, 마음의 그릇이었을까. 그것이 깨지는 순간을 느끼고, 시인은 밤하늘의 별을 보았을 것이다. "저는 얼마나 많이 잘못하면서 살아왔을까요." 시비를 묵묵히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후략)

 

2017-02-06 | 국제신문 | 박현주 책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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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10점
성선경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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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성선경 시인 여덟 번째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발간

말맛이 살아있는 속담이 시가 됐다.
창원 성선경 시인이 여덟 번째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산지니)’를 내놨다.
‘봄 풋가지행’을 내놓은 이후 1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 떫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부쩍 밝아진 표정이었다.
말을 잇는 입꼬리도 싱싱했다. 그가 명퇴한 ‘명태 씨’가 됐기 때문이다. 

성선경 시인.

지난 2월 29일 그는 30년간의 교직생활에서 물러나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석간신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죠. 우리지역 석간신문들이 다 조간이 돼서 안타깝지만요. 작품에 집중할 수 있어 좋습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8편의 연작시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를 쓰면서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냈다. 요즘 말로 ‘웃픈(웃기고도 슬픈)’ 자화상을 이 시에서 드러내고 있는 시인은 시집 전체에도 살려냈다. 특별한 형식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그는 속담을 끌어왔다. 속담 시집이라 부를 만하다.

밥벌이는 밥의 罰(벌)이다./내 저 향기로운 냄새를 탐닉한 죄/내 저 풍요로운 포만감을 누린 죄/내 새끼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겠다고/내 밥상에 한 접시의 찬이라도 더 올려놓겠다고/눈알을 부릅뜨고 새벽같이 일어나/사랑과 평화보다도 꿈과 이상보다도/몸뚱아리를 위해 더 종종거린 죄/몸뚱아리를 위해 더 싹싹 꼬리 친 죄/내 밥에 대한 저 엄중한 추궁/밥벌이는 내 밥의 罰이다. 

- ‘밥罰-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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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그 답이 속담과 격언이었어요. 오랜 시간 구전돼 쌓인 이야기를 적층문학이라고 하는데, 단순하면서도 많은 민중들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쓰면서도 재밌었어요.”


읽으면서도 재밌다. 우리가 아는 속담이 풀려 시가 되면서 장면을 일깨운다. 30년 시력은 능청스럽게 감정의 냉온을 오가며 속담이 갖고 있는 해학·골계미를 띤다. 손에 잡히지 않는 현대시와는 달리 한 편 읽을 때마다 이야기를 품은 영상이 지나간다. 투명한 수채화가 아니라 질박하면서도 다채로움을 잃지 않은 민화에 가깝다.

한 마리가,/그것도 딱 한 마리가/온 세상을 흙탕물로 만들었다면/아마 그건 미꾸라지가 아니지?/(…)/그건 용이지 아마!/그런데 왜/가만히 있는 미꾸라지를 왜/사람들은 왜 물풀에 몸을 숨기고/자는 듯 죽은 듯 숨어 있는/미꾸라지를 왜/무슨 이무기나 용 취급하지?

-‘가만히 있는 미꾸라지를 왜’ 일부

속담 시의 대부에는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가 담겨 있다. 삶의 새로운 시작에 선 그가 스스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어떻게든 표 나는 일을 하려는 우리에게, ‘해봤자 표 나지 않는’ 화분에 물 주기가 ‘가장 귀한 일’임을 알려준다.

“아들이랑 말없이 화분에 물 주는 일이, 이 보잘 것 없는 일이 내 일생에서 가장 남겨져야 할 중요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야 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거죠.”

책장이 계속 넘어간다. 독자들이 그가 비틀어 놓은 속담 속에서 ‘꾀죄죄한 희망’이나마 찾고, ‘이야이야오’ 콧노래 부르게 될 것이다.

이슬기 | 경남신문 | 201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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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10점
성선경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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