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자유 찾아 넘어온 탈북자들 편견의 벽에 가로막혀 고통”

정영선 장편 ‘생각하는 사람들’ 출간 

2년 간의 하나원 교사 경험 담아내




“탈북자들이야말로 이즈음 분단을 상징하지 않을까요? 분단 숨통을 틔워주는 개성공단 같은 것도 있었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탈북자들이 분단의 벽을 허물고 있는데, 그들은 여기 와서 또 다른 분단을 겪고 있습니다. 이 상태를 해결하는 게 진짜 남과 북의 소통인데 소설에서는 해결책까지는 어렵고 문제를 제시했을 뿐입니다.”





부산소설문학상과 부산작가상을 수상하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해온 소설가 정영선(55·사진)이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는 과정의 다양한 문제들을 담아낸 장편 ‘생각하는 사람들’(산지니)을 들고 상경해 기자들과 만났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하나원 청소년 학교 파견교사를 지원해 2013년부터 2년 동안 근무하면서 관찰하고 취재한 이야기들이 이 작품에 핍진하게 담겼다.


주인공인 심주영은 국정원 요원 ‘코’를 만나 인터넷 댓글 아르바이트를 한다. ‘코’는 드루킹 사건처럼 출판사로 위장한 무대에서 선거 때마다 특정한 후보를 향해 ‘종북’ ‘친북’ 공세를 퍼붓게 한다. ‘코’가 소개한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을 위한 교육기관 유니원에 들어가 주영이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탈북 청소년들 이야기가 이 소설의 다른 축이다. 자유를 찾아 남한을 선택한 수지, 축구를 하고 싶었던 창주, 글을 잘 쓰는 선주 등이 남한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드러낸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협주가 뛰고 북쪽에 전기를 보내고 철도를 놓는다는 이야기들만 오가는데 사실 이러한 태도는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베푸는 그런 것이잖아요? 북한과 우리는 한민족인데 대동강변에 트럼프월드가 들어설 거라는 식의 자본에 대한 이야기만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분단의 역사에 책임지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이 시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정영선은 “탈북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준다고 하지만 오히려 큰 벽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들의 내면에 깃든 솔직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수업 시간에 하나원 청소년들에게서 받은 진솔하고 흥미로운 글들을 출간하려고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무산돼 안타깝다는 그는 “북에도 남에도 정착하지 못한 그들은 ‘난민’일지 모른다”면서 “북한에서 남한으로 온 이유는 다양하지만 남한에서의 고통은 비슷해보였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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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들

정영선 지음 | 280쪽 | 14,800원 | 2018년 5월 24일

 

정영선 작가의 장편소설. 작가 정영선은 2013년~2014년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하나원 내 청소년 학교에서 파견교사로 근무했다. 2년의 시간 동안 탈북 청소년들의 삶을 지켜보며 남한사회에서 북한출신자들이 겪는 또 다른 문제들에 주목하게 됐다. 또한 단순 정착을 넘어 사회, 경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그려나갈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해 고민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그러한 관찰과 고민의 결실이라 볼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들 - 10점

정영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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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으로서의 중국/미조구치 유조 지음/서광덕, 최정섭 옮김/산지니/2만5000원

중국 vs 아시아, 그 전쟁의 서막/조너선 홀스래그 지음/최성옥 옮김/시그마북스/1만5000원

일본의 사상가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1932∼2010)의 첫 저서이다.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동아시아적 입장에서 중국을 이해하자는 책이다. 중국의 근대사는 ‘진보-보수’, ‘사회주의-자본주의’, ‘선진-후진’과 같은 서구식 이원론적 시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신 중국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자유로운 중국학을 주창했다.

중국의 독자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중국을 상대화해 바라보자고 주장한다. 아울러 일본의 중국학을 중국 없는 중국학으로 비판한다. 지금 일본인의 시각으로는 1949년 이후 중국의 근대사 역시 제대로 해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출판사는 “국내에서도 중국학연구소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중국학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면서 “이 책을 통해 21세기 중국학 방향을 정립하고 중국 연구가 지닌 세계성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적 가치에서 중국을 바라보면 중국의 방향이 보일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중국 vs 아시아’는 중국이 직면한 지정학적 딜레마를 분석했다. 저자는 중국과 주변국 간의 긴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융통성 없고 비타협적인 정책은 주변국의 반감을 사면서 불가피하게 심각한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안보와 번영을 극대화하려는 열망이 있고, 이런 열망은 주변국을 불평등한 동반자 관계로 내몰며 점차 분쟁이 있는 영토를 장악할 수 있다. 저자는 그러나 중국의 열망을 특별한 것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중국은 정상적으로 부상하는 국가이고 평범한 야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과거 서구 열강들 또한 고민했던 ‘전쟁과 평화’라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본다.

저자는 “오늘날 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전쟁을 막기 위해 첫 번째로 할 중요한 일이, 바로 이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욱 | 세계일보 | 201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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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으로서의 중국 - 10점
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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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시인 최영철·소설가 조명숙 부부

낙동강변 도요마을에 가랑비가 내렸다. 삼랑진역에 내렸을 때부터 비는 그치지 않았다. 시인 최영철과 소설가 조명숙 부부가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들어가겠다고 만류했는데 굳이 도요마을에서 차를 끌고 나왔다. 이들은 5년 전 부산을 떠나 김해시 생림면 도요마을로 이주해 살고 있다. 도요마을에 도자기 굽는 가마나 도요새 군락지 같은 건 없다. 천태산과 무척산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옆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삼한시대부터 주요 마을이라 하여 도읍 도(都)자에 중요하다는 맥락의 요(要)자가 붙어 도요마을로 명명된 것인데, 시적인 마을 이름처럼 풍광도 아름다운 건 사실이다. 이윤택 시인이 대표로 있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창작스튜디오가 있고 그들의 주거지까지 자리 잡은 연극촌으로도 호가 높은 마을이다. 이윤택과 형제처럼 살아온 최영철 시인도 이 연극집단이 2009년 이곳에 자리 잡을 때 부산의 집을 내놓고 들어왔다.

경남 김해 도요마을 옆 낙동강에 선 시인 최영철, 소설가 조명숙 부부. 이들은 5년 전 부산을 떠나 도요마을로 들어와 변방에서 중심을 누리고 있다.

“도시 변두리에서만 살면서 그곳을 무대로 시를 캐낸 터라 이제 환경을 바꾸면 좋겠다 싶었어요. 저로서는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별 볼일 없는 변방에서 새로 시작해보고 싶었던 거지요. 그 즈음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맥이 빠져 있던 때라 이윤택 선생의 제안을 두 번 생각 안 하고 바로 받아들였습니다.”

최영철(59) 시인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중견시인으로 활약하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각광받아온 인물이다. 올해는 부산에서 12년째 진행해온 책읽기운동 ‘원북원부산’의 책으로 그가 작년에 출간한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산지니)가 뽑혀 명실상부한 부산의 상징 문인이 되었다. 전문가집단이 5권까지 후보를 압축해놓은 뒤 이를 온오프라인을 통해 부산시민들이 투표로 한 권을 선정하는 방식인데, 부산 출신 문인이 그것도 시인이 시집으로는 처음으로 1만3000여 표를 얻어 뽑힌 경우여서 의미가 각별하다. 이 시집을 놓고 올 10월까지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이 이어질 예정인데 지자체에서 인문의 향연을 벌이는 돋보이는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처음에는 진저리를 쳤어요. 성장기에 촌에서 자란 데다 바로 건너 마을이 친정 동네여서 한 다리만 건너면 전부 아는 사람인 처지라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을까 걱정한 거지요. 게다가 소설을 쓰는 공간이 저에게는 중요한데 이곳은 너무 평화로워서 오히려 집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여건이었어요. 처음 1년은 두 집 살림을 하다가 이곳에 정착했는데 지금은 중심에 있다고 착각하는 도시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소설가 조명숙(57)은 1996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해 장편과 소설집을 펴낸 중견작가다. 이달 초에는 네 번째 소설집 ‘조금씩 도둑’(산지니)을 펴내 건재를 과시했다(세계일보 4월17일자 참조). 개인이 안고 있는 작은 상처들의 내력을 핍진하게 되짚어온 조씨가 남편 최영철을 만난 건 1970년대 후반이었다. 부산에서 발행되는 동인지에 시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을 보고 역시 문학청년이었던 최영철이 물어물어 그네를 김해까지 찾아간 것이다.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고 당시만 해도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야 했던 김해와 부산을 번질나게 오가며 연애를 했던 것인데, 이를 안 양가 집안은 서로의 교제를 극렬하게 반대했던 모양이다. 이제 갓 스물 한두 살인 어린 사람들인 데다, 조명숙은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했고 최영철 또한 중학교 때 사고를 당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처지였다. 이들의 사랑을 부모들은 불장난으로 치부했다.

이 ‘대책 없는’ 문학청년들은 먼저 ‘사고’부터 치고 결혼을 밀어붙였다. 혼전 임신과 출산을 거쳐 첫딸이 기어다닐 무렵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과 박대의 터널 속에서 이들의 결혼 생활은 시작됐다. 최영철 시인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잠시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장 생활도 했지만 끝내 도시적 삶에 길들여지지 못한 그이는 가족들을 설득해 부산 변두리로 내려와 1990년대 중반 이후 전업시인으로 살아왔다. 전업작가 아내와 전업시인 남편이 꾸려온 생활의 가난이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들은 밝고 따스하게 아이들을 키웠고 두 자녀는 보란 듯이 서울과 부산의 국립대를 나와 딸은 박사과정에, 아들은 지금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6년 전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100여 곳에 취업 원서를 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렵게 요르단 근무를 전제로 취직해서 떠나게 됐다. 이때 시인 아비는 아들을 멀리 보내는 아픔을 담아 ‘금정산을 보냈다’를 썼다. 부산의 상징적인 금정산을 아들에게 통째로 선물한 것이다. 아들은 무사히 돌아왔고 부산 시민들은 시인이 새로 쌓은 금정산을 따스하게 안아준 셈이다. 문인 부부로 사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서로 격려할 것 같지만 반대예요. 피차 아는 처지에 글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어차피 겪기로 한 이상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요. 상대방의 작품에 대해서는 날 선 감시자 역할을 하는 편입니다. 남보다 더 인정사정없이 비판해요. 이런 게 외려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균형감각을 잃지 않도록 남편이 스승 역할을 한 건 확실합니다.”

낙동강에서 사진을 찍고 도요마을 흰 집으로 들어와 식탁을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소설가 아내 조명숙은 시인 남편과 사는 소회를 말했다. 사실 시는 조명숙이 먼저 문청 시절 시작했지만 남편에게 ‘양보’를 한 셈이다. 결혼해서 양육하느라 10여년을 글쓰기와 멀어져 있다가 소설로 다시 문학을 경작해왔다. 최 시인은 “지금이라도 내가 시를 포기하고 산문을 쓸 테니 시로 돌아가라”고 농을 건네자 아내는 “이젠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시도 많고 소설이 더 낫다”고 받아쳤다. 최영철은 “나는 눈물이 더 잦아졌다. 망치를 들고 세상을 깨부수고 싶은 날이 있다. 시는 더 절박하고 절실해야 할 것이다”고 시집 후기 대담에서 언급했거니와 “세상은 미궁 속으로 추락하는데 다른 소리만 하는 시가 너무 많아져 걱정된다”면서 “시로 이야기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한지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명숙도 “시와 소설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동시대를 반영하는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시인 남편과 문학을 대하는 기본 자세가 같음을 확인했다. 

조명숙은 부산 여성소설가들 중에서 맏언니 격에 속한다. 부산에는 등단 작가만 80여명,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도 반이 넘는다. 그네는 인터넷과 교통수단이 발달한 이즈음에 중앙과 지방문단의 구별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도시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중심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다고, 비켜서보니 그런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시인 남편이 옆에서 덧붙였다. 특히 상부, 하부 조직으로 체계화된 문인단체의 구성 때문에 중앙, 지방이 구분될 따름인데 이제 이런 단체들도 해산될 때가 됐다고 그는 강조했다. 사실 작금의 문학 환경은 어디에 머무느냐보다 ‘의식’이 더 큰 요인일 수 있다. 끊임없이 변방으로 내려가 자신을 낮추어 중심을 제대로 관찰하고 반성하는 자세야말로 문학의 기본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나오는 길, 도요마을 하얀 집 대문 문패에 아내가 심었다는 인동초 덩굴이 드리워져 있다. 35년 넘게 서로 마음의 다리가 되어 문학이라는 지팡이를 짚고 애틋하게 낮은 변방까지 걸어온 이들 부부의 이름 위로 곧 아름다운 ‘금은화’(金銀花)가 피어날 절기다.

조용호ㅣ세계일보ㅣ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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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어중씨 이야기 - 10점
최영철 지음, 이가영 그림/산지니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 10점
최영철 지음, 박경효 그림/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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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디자이너 2015.04.30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 분 포즈가 참 고전적이네요.(두 번째 사진)
    사진 찍을 때 꽤 어색하셨을 듯.^^

부산 토박이 여성작가 2人 나란히 책 출간
부산 문단의 두 여성 작가가 나란히 묵직한 작품을 상재했다. 중견작가 조명숙(57)과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가인 박향(52)이 그들이다. 이들은 부산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그곳의 풍광과 정서까지도 작품에 반영하는 토박이 작가들이다. 이들이 생산한 작품은 지역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시대와 인간 보편의 고민과 아픔을 보듬어내는 문학적 성취도가 높다. 


나란히 소설을 펴낸 부산 토박이 작가 박향(왼쪽), 조명숙씨. 이들은 지역의 질감을 잘 살려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조금씩 도둑’

‘조금씩 도둑’(산지니)은 표제작을 포함해 단편 9편이 수록된 조명숙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1996년 ‘진주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으니 문단 이력이 2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연치와 등단 이력만큼 작품도 깊다. 

‘러닝 맨’의 아버지는 갑자기 옷을 벗어던지고 팬티 바람으로 눈 내리는 거리로 

달려나갔다. 그를 모시고 살아온 미혼의 서른여섯 살 막내딸이 폐암이라는 말을, 그것도 수술이 불가능한 비소세포성 선암 말기라서 잘해야 여섯 달 더 살까 말까 한다는 사실을 지나는 말처럼 형제들에게 던진 뒤였다. 아버지가 말도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이어서 방심했다. 아버지는 딸의 운명을 오감으로 파악했던 것인지 모른다. ‘다섯 살에 엄마를 잃고 벙어리 아버지와 오빠 셋 틈에서 천방지축 세상을 배운 막내’는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누르고 외친다. “저러신다고 내가 안 죽을까 봐!”


‘가가의 토요일’에도 말을 못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누가 무슨 질문을 던지 건 ‘가가’ 소리밖에 내지 못해 ‘가가(呵呵)’로 불리는 사내. 이 남자는 부산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수영역 2번 출구 앞 부산은행 모퉁이에서 프렌치토스트를 판다. 1987년 6월, 부산역 광장에서 뻥튀기를 팔던 가가는 도도한 시위대의 물결에 휩쓸려 서면로터리까지 행진할 때 함성과 외침 속에서 어느 순간, 태어날 때부터 까무룩 잠긴 귀가 열렸었다. 그리고 다시 2005년 에이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반대를 외치며 해운대 누리마루까지 행진하는 시위대 속에서 새로운 소리를 듣는다. 

‘점심의 종류’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배경인 단편으로 “10년쯤 지난 뒤에는 여러 방식으로 유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이 최소한이나마 치유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썼다”고 작가의 말에 밝혔다. 시대와 특정 공간이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음각된 조명숙의 이번 소설집에는 이밖에도 ‘이치로와 한나절’ ‘거기 없는 당신’ ‘사월’ ‘나비의 저녁’ ‘조금씩 도둑’ ‘하하네이션’ 등이 수록됐다. 

◆‘카페 폴인 러브’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뒤 2013년 ‘에메랄드궁’으로 1억원 고료 세계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새삼 부각됐던 작가 박향은 새 장편 ‘카페 폴인 러브’(나무옆의자)를 상재했다. 부산 중앙동에 존재하는 가상의 카페 ‘폴인 러브’를 무대로 커피에 관한 지식을 사랑 이야기에 삼투시켰다.

권세희라는 여자가 이 카페의 바리스타이다. 그네는 남편 정수와 겉도는 부부관계로 살아오다 이 카페에 단골도 드나드는 기러기아빠 제호에게 빠져든다.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세희는 정작 남편 정수야말로 결혼 전부터 한 여자를 가슴에 담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번민에 사로잡힌다. 

세희에게 카페를 차려준 친구 효정은 죽음을 앞둔 암환자이지만 그네 남편과의 사랑에 마지막 생의 나날을 ‘전투적으로’ 바친다. 딸과의 불화도 극복해나가는 눈물겨운 캐릭터다. ‘죽으나 사나 영도다리’에서 만나기로 했던 60여년 전의 여자를 잊지 못하는 낭만적인 할아버지, 이 노인을 감싸는 할머니의 사랑도 일품이다. 몇 개의 사랑이야기는 원두를 로스팅하고 커피를 내리는 과정의 세밀한 지식들을 배경으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커피에 관한 이러한 성찰은 사랑을 말할 때 제법 유용할 듯하다.

“커피에는 신맛과 단맛과 쓴맛이 있다. 각각의 맛은 너무나 매력 없고 맛이 없는데, 그 세 가지 맛이 잘 어우러졌을 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최고의 커피 맛이 우러나온다. 어쩌면 사랑도 그와 같지 않을까. 사랑의 단맛만 보려고 하다가 실패하는 사람도 있고, 쓴맛이나 신맛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시작도 하기 전에 돌아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박향은 “사랑은 나에게 어려운 숙제와 같은 일이고, 경이로움과 권태가 함께 새겨진 행운권 당첨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면서 “사랑은, 태연히 세상 한가운데에 수많은 의문을 남긴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조용호ㅣ세계일보ㅣ2015-04-17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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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 YWCA에서 소년원 청소년들이 즐거운 게임 을 읽고 싶다고 해서 후원을 해줄 수 없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소년원 청소년들이 어떻게 즐거운 게임 을 알았을까요?  담당자분도 어떻게 알았는지 놀랐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런 건 망설일 필요가 없으니 아이들이 신청한『즐거운 게임』다섯 권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고 감상 내용을 편지로 주고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내용일지 저도 궁금하네요.


또 한 편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앞에 이야기도 물론 좋은 소식 맞지요?)


세계일보에서 주최하는 1억 원 고료의 세계문학상'에  박향 선생님의 장편소설 『에메랄드궁이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선생님 축하합니다. 짝짝짝!


작년 부산작가회의에서 '부산작가상'을 타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수상소감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이 집에서 글이 써지지 않아 끙끙 앓고 있으니, 딸이 엄마에게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책을 쓰면서 뭘 그렇게 고생하느냐고 타박을 줬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이 계속해서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건 문학이 주는 힘이겠죠. 


이 책을 읽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계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27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립니다.


선생님, 이번 상으로 딸에게 조금 큰소리치셔도 될 것 같아요!













Posted by 동글동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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