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마치 구멍이 난 줄 알았습니다. 너무나도 많이 내린 비 때문에 여기 저기 피해에 난리입니다. 야속한 비가 그치고, 하늘에 남은 구멍을 해가 메우려는 것인지 해가 뜨겁습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우리는 백년어서원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세이렌들의 귀환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벌써 산지니에서 인턴을 한지도 2주가 흘러갔습니다. 바로 어제, 얼마 전 출간 된 김경연 선생님의 평론집 『세이렌들의 귀환』을 축하하는 저자와의 만남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 행사가 제 인턴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백년어서원은 처음 가보았습니다. 문학을 한다는 자가 인문학을 공부하는데 너무나도 게을렀던 것 같아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백년어서원은 인사동의 미니미 같았습니다. 전통의 색이 베어 나오면서도, 현대적이었고, 또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많은 수업에서 인문학이 위기라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보고 나니, 어쩌면 부산의 인문학은 아직 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에서 비평을 하고 문화를 이야기하는 ‘오늘의 문예 비평’이 있고, 인문학 카페인 ‘백년어서원’이 있고, 또 그것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이야기의 방향이 잠시 딴 길로 샌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 어제 저자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자이신 김경연 선생님은 프로필 사진보다 예쁘셨습니다. 수줍게 인사를 나누고 슬쩍 다가가 사인을 부탁드렸습니다. 선생님의 지인들과, 독자들이 자리를 많이 채워주셨습니다.
 

문제는 7시에 되어도 오시지 않는 사회자 선생님이셨습니다.
사회자를 대신해서 행사 초반, 강수걸 사장님이 잠시 진행을 맡아주셨습니다. 사장님은 백년어서원 대표이신 김수우 선생님과, 황국명 교수님에게 축사를 부탁하셨습니다. 두 분 다 예정에 없던 축사에 당황하셨지만, 역시 프로셨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문학이었습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그들만의 풍채와 향기가 가득한 것 같습니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신 사회자 박형준 평론가 선생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수줍게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순한 인상이 마치 양을 닮기도, 캐릭터 푸우를 닮기도 하셨습니다. (칭찬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렇게 사전 행사가 지나고, 사회자와 작가와의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두 분 다 비평을 쓰시는 평론가이셔서 그런지, 날카로운 질문과 재치있는 답이 오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김경연 선생님의 비평적 글쓰기의 출발점이었던 윤이상은 그녀에게 경계의 안과 밖 그리고 유령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윤이상에 대해 서술한 소설 『나비의 꿈』은 선생님이 처음으로 비평적 글쓰기를 한 대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세이렌들의 귀환은 시작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며 김경연 선생님은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지난 자신의 글이 부끄러웠지만, 오늘의 나를 성장시킨 글들이기에 모두 다 내 자식 같다면서 웃으셨습니다. 그 모습에서 저는 문학을 하고, 배우고, 쓰며, 읽는 선생님의 삶에서 그 어떤 뜨거움을 본 것 같습니다.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행사 초반에 풀렸습니다. 에메랄드 색의 표지에 또박또박 쓰인 책 제목은 제 시선을 확 끌었습니다. 우리에게 흔히 세이렌은 부정한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그와 다른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며 자신 역시 세이렌은 권력과 중심에서 철저히 외면된 어떤 형상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외면된 여성의 존재와 위치에 대한 탐구, 그리고 비판과 격려는 선생님만의 시선으로 따뜻하고 날카롭게 이야기되고 있었습니다. 대상에대한 애정과 열정이 없이는 비평을 하지 못한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제게 비평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말씀이 행사 중간에 떠올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작가 선생님들을 뵈면, 언제나 치열하게 반성하는 저를 봅니다. 게으르지 않고, 치열하며, 언제나 따뜻하게 그렇지만 날카롭게 글을 써야 합니다. 김경연 선생님을 뵈며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행사에서는 책의 1부인 ‘여성을 횡단하는 여성’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 역시도 1부를 가장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1부에서는 많은 문제적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87년 체제 이후 여성문학이나, 공지영과 천운영에 대한 비평, 또 황진이에 대한 비평까지 제가 접한 텍스들에 대한 비평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특히 저는 공지영에 대한 작가님과 사회자님의 견해에 대한 토론이 흥미로웠습니다.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은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만, 문학가들 사이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공지영에 대한 김경연 선생님의 입장은, 비판과 칭찬의 흑백 논리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김경연 선생님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그 결이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두 작품 다 공지영의 작품이지만, 그 결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저 역시 공지영의 초기작을 좋아합니다. 그녀의 초기작은 작가 공지영의 뜨거움과 날카로움이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흘러서 인지 그 날카로움이 많이 무뎌졌습니다. 문학이란 사회와 현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선에서 보았을 때, 공지영의 최근 작품들은 인간에 대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공지영은 역시 문제적인 작가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세이렌들의 귀환』저자가 여성 문학과 외면 받는 현시대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사유한 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기록은 책을 읽는 많은 이들에게 많은 사유와 생각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행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저도 질문을 했습니다. 소설을 쓰는 학생으로 비평을 많은 소설가 또는 시인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비평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는 작은 감상이었습니다. 긴장한 탓에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을 당황시켰지만, 뿌듯했습니다. 평소 어렵다고 생각한 비평은 문학에 대한 또 다른 시선입니다. 텍스트를 쓴 작가의 생각과 달리 시대상황 속 이 텍스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또 어떤 반향을 불러 올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와 글쓰기입니다. 김경연 선생님은 제 질문에 이렇게 말해주셨습니다. 작품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린 비평이든, 나쁜 평가를 내린 비평이든, 비평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관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비평은 비판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평론가도, 그 비평의 대상인 텍스트를, 쓰는 소설가나 시인도 기억해야한다고 말하셨습니다.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제 문학의 깊이는 조금 더 깊어진 듯합니다. 많은 사유와 고민을 통해 글을 써야한다는 것. 글쓰기의 무거움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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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성욱 2011.07.31 2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참 잘 읽었다.

    비평론(이론) 말고 비평실습(평론 쓰기) 수업을 들었더라면 나는 너에게 분명 A+로 평가해야만 했을 것이다.

    내가 쓴 비평이 너무 어려웠다는 너의 말, 항상 기억할게.

    이론은 내가 많이 알아도 어쩌면 글은 니가 나보다 더 잘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 BlogIcon 날아라민트야 2011.08.01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수업 들으면서 많은 것 배웠습니다.

      그래서 비평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구요^^

      언제나 선생님 응원할게요.

      오늘의 문예 비평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오늘 비 오는데, 파전에 막걸리 꼭 드세요!^^

  2. 박형준 2011.08.01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한 양'과 '푸우'라...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증샷 이쁘게 찍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부득이하게 조금 늦었어요. 제 불찰이 김수우, 황국명 선생님의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인턴 잘 마무리하고 건강한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3. 김경연 2011.08.02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려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꼼꼼하게 써 주신 내용에 많이 감동했습니다. 앞으로 게으르지 않게 공부하고 저를 벼리면서 글을 쓰겠습니다. 비평가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해석의 열망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 쓰신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이경관님의 소설을 읽고 강한 울림으로 글 쓸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치지 말고 젊은 열정으로 부단히 건필하십시오.

    • BlogIcon 날아라민트야 2011.08.02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비평집에 줄 긋어가며 읽을 때의, 설렘과 두려움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해석의 방법, 그리고 독해의 차이. 그것에 대한 공부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습니다. 언제나 선생님의 글을 기대하는 독자가 될게요^^

  4. 윤인로 2011.08.08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경관아, 책날개에 "이경관님께"라는 글씨가 있어서 놀라고 반가웠다.^^
    그 날 나도 참석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오늘 너의 글을 보고는 아쉬움이 더 커졌다...
    무엇보담 글을 참 잘 읽었다. 풍성하고 맛깔났다. 힘내라!^^

    • BlogIcon 날아라민트야 2011.08.09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그날 선생님 뵐 줄 알았는데...
      계시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그리고 수업 한 번 밖에 듣지 않았는데,
      기억해주셔서 감사해요. 아침부터 완전 감동 했어요^^

감미로운 노래로 바다를 항해하는 뱃사공의 넋을 빼앗는 바다의 요정 세이렌은 남성을 유혹하는 부정적 여성상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페미니즘 논의에서는 중심을 교란하면서 주변부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긍정적 존재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성, 이주노동자, 지역 등 우리사회의 마이너리티들의 의미와 가능성을 사유하고 해석하는 일은 이들 세이렌들의 귀환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일이라 할 수 있죠.

산지니출판사와 인문학카페 백년어서원이 매달 함께하는 <저자와의 만남>, 이번 달에는 <세이렌들의 귀환>이라는 책을 펴내신 
문학평론가 김경연 선생을 만납니다.

일시: 2011년 7월 28일(목) 저녁 7시
장소: 백년어서원(T.465-1915)

* 참가비: 5,000원(차와 떡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Posted by 아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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