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겨우내
햇볕 한모금 들지 않던
뒤꼍 추녀밑 마늘광 위으로
봄비는 나리어

얼굴에 까만 먼지 쓰고
눈감고 누워 세월 모르고 살아온
저 잔설을 일깨운다

잔설은
투덜거리며 일어나
때묻은 이불 개켜 옆구리에 끼더니
슬쩍 어디론가 사라진다

잔설이
떠나고 없는
추녀 밑 깨진 기왓장 틈으로
종일 빗물 스민다

-이동순,『숲의 정신』, 산지니, 2010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네요.
감수성 풍부한 소녀적엔 일부러 비를 맞고도 다녔는데...
이젠 비도 예전 그 비가 아니네요. ㅠㅠ


숲의 정신 - 10점
이동순 지음, 최영철.김경복.황선열 엮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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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이제야 2011.04.22 17: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사능이라는 것이 봄비의 멋진 정취까지 앗아가 버리고 말았네요

  2. 바람 2011.04.22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권인하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나오길래
    모처럼 상념에 잠겼었는데...
    산성비, 황사비에 이제 방사능비라니요.

 지난 3월 말부터 저는 학교에서 신청한 근로장학생으로 이곳 산지니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기 전에 출판사에는 무슨 일들을 하는 걸까, 내가 이곳에서 과연 무슨 일을 하는걸까 굉장히 궁금했었는데요,

 먼저 출판사에서 하는 일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책을 출간하는 데에만 있어서도 저자와 먼저 여러가지를 논의해야했고, 출간하는 일뿐만 아니라 책의 홍보, 책의 판매 등 다양한 일들을 출판사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곳 산지니에 와서 처음 맡은 일이 이동순 시인의 시선집을 타이핑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시인 한 분과 평론가 두 분께서 추려주신 시들을 빈도별로 간추리고, 연도별, 시집별 등등으로 모아서 목차가 만들어지면 그 목차를 가지고 시를 타이핑하는 작업이었는데요, 처음하는 일이고, 제가 학기중에는 하루에 두시간, 세시간 씩밖에 일을 하지 못했어서 너무 급하게 작업을 했었나봅니다.. 편집장님께서 " 좀 바빴나보네"라고 하셨거든요... 오타가 좀 많았는지.. 책이 출간된 것은 제가 타이핑하고 나서도 한 2개월정도 후인 것 같습니다. 


숲의 정신-이동순 시선
  산지니 시선 1

아 정말 감격이었습니다. 
제가 타이핑은 했지만 표지나 안은 어떻게 되는지 몰랐거든요,
정말 너무너무 예뻤습니다. 시선집의 제목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표지의 그림이며 색감이 선물 주시지 않았더라도 저는 꼭 샀을 것이에요 !

 
이렇게 감격의 순간도 잠시 저는 곧 고려대 동양사학과 교수이신 이춘식교수님의 사대주의라는 책을 타이핑하게 되었습니다. 아... 정말 ! 처음엔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 책이 원래 만들어진지가 꽤 된 책이라고 하시는데 안의 내용을 보면 한글이 반, 한자가 반이었습니다... 그것도 어찌 그리 어려운 한자들만 나오는지... ㅜㅜ

작업을 시작한지 첫 날에는 4시간에 2페이지밖에 못 쳤던 것 같습니다..    그게 한 일주일, 점점 속력이 나긴했지만 결국 한달이상이 걸려버린.. 
 한자들이 음이 없이 한자만 나와있어서 한자에 취약한 저로써는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서 하나하나 찾아서 타이핑했습니다..

옆의 책이 사대주의라는 책인데요, 8월 초 드디어 작업이 끝난 사대주의는 아쉽게도 나오려면 아직 한참이 걸린다고 합니다.. 안에 있는 한자가 음이 없이 되있어서 이번에 산지니에서는 음이 있게 하여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신다고 합니다. 이 책도 얼른 출간이 된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정말 이 책은 나오기만 한다면 꼭 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두 권의 책을 타이핑하고 저는 이제 산지니에서 나온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칼럼모음집인 '왜사느냐고 묻거든', 연설모음집인 '들어라!미국이여', 화첩모음집인 '브라보 내 인생',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마을혁명', '서른살에 떠난 세계일주' 등등 하루에 거의 한권씩 읽게 되었는데요, 읽고 나서 느낀점 등도 썼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저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 읽는 것도 요즘에는 괜히 학과 공부다 뭐다해서 한달에 두권도 채 읽지 않고 있던 제가 책을 꼬박꼬박 읽고 느낀점을 쓰고 하면서 처음에는 역시나 안읽다 읽어서 그런지 읽는 것도 느리고, 칼럼모음집이니 연설모음집이니 제가 잘 접하지 않았던 책들을 읽는 것도 왠지 지루해보였는데요, 이게 이게 딱 일주일만 해보니 '아 책 읽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하고 저는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없니 책을 읽을 곳이 없니 이런 저런 핑계를 댔던 제가 이제 제발로 책을 빌려 스스로 독후감도 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얻은 것이 아주 많은 산지니에서의 5개월 반이라는 짧고도 길었던 만남이 이제 끝나려 합니다.
 출판사라는 곳에서 처음 일해보는 저에게 친절히 대해주신 이곳 산지니 분들께 너무 감사드리구,  제가 보기에도 우리 대학생들만해도 책을 보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게 보이는데요 예전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라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처럼 우리 모두 책읽는 즐거움을 발견해서 모두들 책을 많이 많이 읽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gyug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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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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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소박한 독서가 2010.08.18 0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읽고 갑니다...열심히 즐겁게 하세요~^^

  2. BlogIcon 아니카 2010.08.18 15: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곧 교환학생으로 독일 간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잘 할거라 믿어요. 수고 많았어요~


 

양말을 빨아 널어두고
이틀 만에 걷었는데 걷다가 보니
아, 글쎄
웬 풀벌레인지 세상에
겨울 내내 지낼 자기 집을 양말 위에다
지어놓았지 뭡니까
참 생각 없는 벌레입니다
하기야 벌레가 양말 따위를 알 리가 없겠지요
양말이 뭔지 알았다 하더라도
워낙 집짓기가 급해서 이것저것 돌볼 틈이 없었겠지요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양말을 신으려고 무심코 벌레집을 떼어내려다가
작은 집 속에서 깊이 잠든
벌레의 겨울잠이 다칠까 염려되어
나는 내년 봄까지
그 양말을 벽에 고이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작은 풀벌레는 양말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양말 속의 작은 풀벌레를 떼어내는 순간, 그 벌레는 집(생명)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 작은 풀벌레가 생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신어야 할 양말을 내년 봄에 신을 것이라고 미룹니다. 이 순간, 그 작은 풀벌레는 생명을 얻게 되죠. 이런 생태학적 상상력은 작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감응, 더 나아가 나의 생명과도 소통하고 있다는 각성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말’이라는 흔한 소재를 끌어왔지만, 그 일상적 소재는 생명의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양말 속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화자의 작은 노력에서 놀라운 생명 존중사상이 느껴지지 않나요.

위 시는 이동순 시인의 「양말」이라는 시인데요.
시인은 언덕에서 불어오는 한 점의 바람에서도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고, 양말 속에 감추어진 작은 벌레 하나에서도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여 시로 형상화합니다. 이동순의 시에서 생명에 대한 인식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건강한 생명의식은 등단작부터 최근의 시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여러 시에서 다양한 진폭으로 확대 변주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동순의 시는 근원적으로는 노장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하면서 동양적 형이상학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동순의 시에서 노장사상은 자연을 넘어서 우주적 상상력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생명의 발견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변하는 것은 변하는 것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연과 순응해가는 것이죠. 그는 자연을 관조하고 즐기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의 일부로 감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공간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과 감응하고, 그 자연의 질서 속에서 참된 진리에 도달하는 길, 그것이 이동순의 서정시가 지향하는 시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등단 37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이동순 시인은 지금도 꾸준히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시집만 『개밥풀』 『물의 노래』 『지금 그리운 사람은』 『철조망 조국』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꿈에 오신 그대』 『봄의 설법』 『가시연꽃』 『기차는 달린다』 『아름다운 순간』 『마음의 사막』 『미스 사이공』 『발견의 기쁨』 등 13권을 발간하였습니다.

이 13권의 시집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이동순 시인의 시세계를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는 시선집이 이번에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최영철 시인, 김경복 평론가, 황선열 평론가가 그동안 발간된 이 13권의 시집에서 오랜 고심 끝에 100편을 선정해서 담았는데요. 이동순 시정신의 본령을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시 선정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이동순 시인의 시세계가 응축된 시선집 『숲의 정신』과 함께 자연과 하나 됨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숲의 정신 - 10점
이동순 지음, 최영철.김경복.황선열 엮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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