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신1 더불어 살아갑시다-이동순 시선집 『숲의 정신』 양말을 빨아 널어두고 이틀 만에 걷었는데 걷다가 보니 아, 글쎄 웬 풀벌레인지 세상에 겨울 내내 지낼 자기 집을 양말 위에다 지어놓았지 뭡니까 참 생각 없는 벌레입니다 하기야 벌레가 양말 따위를 알 리가 없겠지요 양말이 뭔지 알았다 하더라도 워낙 집짓기가 급해서 이것저것 돌볼 틈이 없었겠지요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양말을 신으려고 무심코 벌레집을 떼어내려다가 작은 집 속에서 깊이 잠든 벌레의 겨울잠이 다칠까 염려되어 나는 내년 봄까지 그 양말을 벽에 고이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작은 풀벌레는 양말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양말 속의 작은 풀벌레를 떼어내는 순간, 그 벌레는 집(생명)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 작은 풀벌레가 생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신어야 할 양말을 내년 봄.. 2010. 6. 1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