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CHECK] 무위능력

 

 

우선 저자 김종목 시조시인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38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난 저자는 196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석류’가 당선돼 등단했다. 이후 1972년 ‘소년중앙’에 동시 ‘박꽃’과 ‘가을’이, 같은 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가을에’가,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겨울바다’가 당선되는 등 다양한 문학 장르를 아우르는 문인으로 나섰다.

 

또 저자는 현재까지 시 8천여 편, 시조 7천800여 편, 동시 4천400여 편, 동화`콩트`수필`라디오드라마 대본 1천300편 등 미발표 작을 포함해 책으로는 192권, 2만1천400여 편을 썼다. 그리고 이번에 2016년 부산문화재단 ‘올해의 문학’ 선정작인 시조집 ‘무위능력’으로 50여 년 문학 인생을 스스로 되짚어보는 셈이다.

 

저자는 “등단 후 반세기만에 세 번째 시조집을 펴낸다”며 “열심히 써 왔지만, 아직도 가슴이 빈 것 같아 허전하다. 해는 서산에 걸렸는데 갈 길은 멀다”고 했다. 이우걸 한국시조시인협회 명예 이사장은 “'무위능력'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시인에게는 마음 가는 대로 꾸미지 않는 시조를 쓰겠다는 뜻일 것”이라고 해석하며 “시조집에는 그야말로 무애자재한 시편들이 담겨져 있다. 이 시조집을 계기로 현대시조의 새로운 활로도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시조집에는 ‘완행인데도 급행이다’ ‘다시 찾는 파계사’ ‘삶의 반납’ 등 딱 100편이 수록됐다. 141쪽, 1만원.

Posted by 비회원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

손경하 시집




인생의 ‘갓길’에 밀려난 노년의 현재를

문명비판적 시선과 자의식의 프리즘으로 바라보다

1950년대 초반 전후 한국문단의 선도적 동인지였던 『신작품』의 동인, 손경하 시인이 신작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로 돌아왔다. 이 책은 1985년 출간된 시인의 첫 시집 『인동의 꿈』 이후 삼십 년 만에 발간된 두 번째 시집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해방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자연과 현대문명과 신에 대한 물음 및 현실비판적 주제를 드러냈다. 동시에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갖고 있는 노년에 대한 상실감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그리고 있다. 표제작 「그대 홀가분한 길손에서」는 작별을 고하며 반추하는 생애를 삶과 죽음의 상징으로 풍경 속에 교차하여 그려냈다. 그러나 허무감과 쓸쓸함의 정서로 일관하기보다 지나온 생을 초연하고 아름답게 되돌아봄으로써 아름다운 노년의 작별을 마무리 짓고자 하는 정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노년의 지금에서 과거로 떠나는 기억여행

일렁이는 황홀한 과거/ ――폐쇄된 미래/ 입력불능의 생소한 현재의/ 그 단절된 회로 사이를/ 뒷걸음치며/ 홀로 배회하는/ 늙은 미아――.

-「미아」 부분


『그대 홀가분한 길손에서』의 많은 시들은 노년에 접어들며 인생의 갓길로 밀려난 시인의 옛 기억을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다. 치매 노인에 대한 묘사이자 기억 장애를 겪는 노년의 모습을 그린 「미아」는 노년의 두뇌 작용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빗대고 있는데, 기억이 소멸되는 현재를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해 정보가 지워져버리는 것처럼 묘사한 점이 특징이다. 이 시의 “뒷걸음치며” 떠나는 기억여행에 관한 모티브는 다른 시편들에서도 볼 수 있는 중요한 시적 자의식이며, 기억과 망각을 주된 소재로 하는 이 시집의 중요한 테마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억 여행에서 시인은 때로는 어린 시절에 살았던 시골 마을의 풍경이나, 하나둘 장성하여 품을 떠난 자녀들의 빈자리를 발견하고 죽은 친구를 재회하기도 하는 등 상실과 부재의 이미지 속에서 다양한 기억의 불씨를 피운다.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국면을 담아

근 사십여 년 넘어/ 찾아온 광주/ 낯선 충장로를 걷는다/ 낯익은 다방도 주점도 책방도/ 보이질 않네/ 독재에 항거하는 함성도/ 낭자하던 핏자국도 사라지고/ 서울의 명동, 부산의 광복동 같은/ 화려한 금남로를 걷는다/ 아름다운 청춘들이 출렁이는/ 빛나는 물결 속을/ 성성한 백발이 둥둥/ 억새꽃처럼 떠밀려 간다/ 박봉우, 박성룡, 주명영, 이수복/ 백시걸이 그리고/ 김현승 선생, 박용철 시인의 미망인……/ 다들 저승으로 이승으로/ 민들레꽃처럼 흩어져 찾을 길 없네/ 낯익은 먼 무등산이 물끄러미/ 흐린 내 눈앞을 가리네.

-「다시 광주에」 전문

손경하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목도한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이 여과 없이 표출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던 무렵의 장면이나, 6·25 전쟁 직후의 삶에 대한 기억, 혹은 군부독재와 싸우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회상이 등장하기도 하며, 1980년대 이후 도시의 인구 집중으로 달라진 삶의 풍경이 포착되기도 한다. 이는 격변의 20세기를 살아온 시인이 우리 현대사에 대한 개인적·시대적 애증을 담아 여러 시편에 녹여낸 것으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함께 흘러가는 사회적 변화를 시인의 다양한 시각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추락한 현대문명 안에서 외치는 인간성 회복에 대한 의지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자본주의를 맞이하면서 크나큰 풍요를 경험했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물질적 풍요 뒤에 인간적인 면모를 상실하면서 얻은 부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 이처럼 시인은 지나온 세월에 대한 기억여행을 단지 노년의 향수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명비판적 시각을 담아 「고발」, 「곤돌라」, 「아파트」, 「캐나다 이민」, 「경고」 등의 시편에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삶의 인간다운 영역이 효용의 잣대로 폐기되어 밀려나는 물질문명의 디스토피아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과거의 시간 속 버려진 가치들을 되짚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하여 물신숭배의 기계문명에 저항하는 가냘픈 저항을 꾀하며 ‘인간다움’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그저 암울하게만 바라보기보다는 자연과 인생과 자라나는 새 세대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품어내고자 하였다. ‘인간성’이 증발한 사회 속에서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담은 “한” 많은 “한의 바다”(「한의 바다」)를 꿈꾸며 인간 정신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믿고자 한 시인의 의지가 두드러진다.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 | 손경하 시집

손경하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24쪽 | 12,000원

2015년 8월 24일 출간 | ISBN : 978-89-6545-311-6 03810

1950년대 초반 전후 한국문단의 선도적 동인지였던 「신작품」의 동인, 손경하 시인의 시집. 1985년 출간된 시인의 첫 시집 <인동의 꿈> 이후 삼십 년 만에 발간된 두 번째 시집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해방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자연과 현대문명과 신에 대한 물음 및 현실비판적 주제를 드러냈다. 동시에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갖고 있는 노년에 대한 상실감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그리고 있다. 



글쓴이 : 손경하(孫景河)

1929년 경남 창원시 진북면에서 태어났다. 마산상고(1950), 부산대학교 졸업(1955). 『신작품(新作品)』·『시조(詩潮)』 동인(1953). 『시연구(詩硏究)』(1956), 『현대시학』에 작품 발표(1972). 부산시인협회 기관지 『남부(南部)의 시(詩)』 창간 동인. 청마 시비 건립 대표, 고석규비평문학상 운영위원 역임, 현재 최계락문학상 운영위원으로 활동. 시집으로 『인동(忍冬)의 꿈』(198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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