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가네코 후미코 옥중 서신 서평

-여성은 그를 부정하는 세계 속에서 끝임없이 자신을 발견한다-



턴 최예빈


이번 주 일요일은 3.8 세계 여성의 날이다. 작년이 111주년이었으니 올해는 112주년일 것이다. 112년이라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어쩐지 마주하기 민망해지는 숫자다. 문득 중학교 때 배웠던 공식이 떠오른다. 거리를 속력으로 나누면 시간이 된다. 우리가 여기까지 얼마나 느리게 왔기에 112년이라는 커다란 시간이 나온걸까? 그리 멀리 온 것 같지도 않은데, 변화의 속도는 언제나 너무 더디다.

 

반면 요즘 내 하루는 쾌속으로 흘러간다. 산지니 인턴생활을 시작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으니. 출근 첫날, 책으로 빼곡히 들어찬 사무실 책장을 구경하다 대표님께 책 한 권을 받았다.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수기 나는 나. 여성의 날이 곧이니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보라는 말씀이셨다. 이것이 내가 처음 맡은 업무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 (이것은 업무인가 복지인가)

책을 받아들었을 때만 해도 가네코 후미코가 누군지 아는 바가 없었다. 영화 박열도 보지 않았으니까. 나는 한국사를 주제로한 5분짜리 지식채널e만 봐도 열혈의 가슴 되어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한국영화들과는 부러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아무렴 애국심이 쉽게 고취되는 사람은 민족주의에 경도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영화 박열을 보지 않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말하고 움직이며 숨 쉬는 후미코가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희서 배우는 짱이었다...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役을 맡은 최희서 배우. 조연도 있는 개인 포스터가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나의 원제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원제에서 알 수 있듯,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갖고 사는 인간이었다. 스스로를 궁금해하는 사람의 삶은 결코 지루해지지 않고, 그런 이의 글은 삶만큼이나 진실되다.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짧은 생애 내내 기초적인 사회 공동체의 보호를 한번도 보장받지 못했다. 무적자(호적에 오르지 못한, 서류상 세상에 없는 사람)였기 때문이다. 후미코는 그토록 바라던 학교도 가지 못하고, 친척들 사이에선 식모살이를 전전하며 갖은 핍박과 학대를 다 당하고 성장한다. 일찍부터 모든 사람의 기쁨은 타인의 슬픔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쳤던 후미코에게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미코의 입속에는 이런 말이 맴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나 자신이 태어났고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 나는 내가 태어나 살아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할머니가 아무리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나는 태어나 숨 쉬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그를 구박해도, 후미코는 언제나 자기의 주인이었다.

그래서 가네코 후미코라는 여성의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해 흔히 부여하곤 하는 박열의 연인이었던같은 수사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의 연인인 것이 아니라, 박열이 후미코의 연인인 것이다. 두 문장은 의미상 동어반복이지만, 소유격조사 는 앞뒤 체언의 소유관계를 분명한 뉘앙스로 나타낸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를 저토록 강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찾고 싶었다

그것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후미코는 책의 말미에서 박열과의 만남을 명료하게 회상한다. ‘내내 찾아오던 어떤 것을 박열의 가슴속에서 발견했고, 그래서 박열을 선택한다. 둘은 교제를 시작하기 전에 한 중국요릿집에서 만나 서로의 사상과 가치관에 대한 합의를 맺기도 한다. 후미코는 자신은 조선인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박열이 민족운동가라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자신도 박열과 다를 것 없는 지독히 가난한 무산계급이었지만, 일본인이라는 스스로의 부정할 수 없는 위치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후미코의 이름 앞에 따라붙곤 하는식민지 조선을 사랑한따위의 수식은 가네코 후미코가 처음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을 거라는 착각을 일게 하지만, 이것은 우리(한국인)의 바람일 뿐이다. (그가 박열과 함께 일제의 만행에 저항하는 활동을 했던 것은 맞지만, 투쟁의 기반은 조선에 대한 사랑 보단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인권의식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내가 나는 나를 읽으면서 후미코에게 가장 감탄했던 것은 바로 이런 계급에 대한 민감한 인식과 정확한 표현력이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조선으로 떠난 후미코가 포착했던 충남 부강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돈이 있어 빈둥 놀고 지내며, 도시에서는 약간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있는, 

그런 계급들이 으스대고 있었다"


이 얼마나 적확한 표현인가. 도시와 시골―본토와 식민지 사이 생겨난 잉여를 갈취하며 성장한 신생 계급을, 그는 빈둥거리지만 도시에서는 약간 유행이 지난 옷을 입고 있는이라는 한 문장으로 냉정하게 축약한다. 대충 부르주아라고 퉁칠 수도 있었을텐데, 후미코의 관찰력은 용의주도하다.

그는 박열과의 교제 또한 결국 우리 사이에 양해가 성립했다는 표현으로 나타낸다. 나는 둘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는 이 문장이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필시 둘 사이에는 성애적 로맨스, 전투적 동지애, 사상적 의지가 한데 뒤얽힌 어떤 감정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고 뭉갤 수도 있겠으나(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미지로 소비되곤 하지만, 후미코에게 박열과의 애정관계가 셀링 포인트여선 안 된다) 나는 양해야말로 그들에게 알맞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기꺼워하는 마음으로 용납하는 관계. 사랑보다 굳셀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뭐라해도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후미코는 동지들과 사회주의를 공부하며 해방운동을 펼치다가 마침내 대역사건으로 수감 되고 만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기민하게 감각하는 사람이었기에 사회주의 방법론의 한계권력의 본질적 속성에 회의를 갖기도 하지만, 당신이 누구이든지 간에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양식적 삶이 있다고 말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믿음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 믿음이야 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준다.


 

 

"곧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 

현상은 현상적으로 없어질 뿐, 영원의 실재 속에서 존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서류상 자살로 되어있다)옥중 결혼을 통해 박열의 호적에 들어갔기 때문에 후미코의 시체는 해방 이후 문경에 묻혔다. 한평생 무적자로 설움과 괄시를 받았던 후미코가 결혼으로 호적을 얻었다는 사실이 못내 슬프게 다가온다'그저 나'로 태어나 살아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숨쉬는 것만으로 존재를 증명할 순 없는 걸까?

 

올해는 여성의 날 112주년. 대한민국에서 호주제가 폐지된 지는 12년이 지났다. 후미코는 죽음 앞에서 위와 같은 말로 책을 맺었다. 현상은 현상적으로 없어질 뿐, 자신은 영원의 실재 속에서 존속할 것이라고. 그것이 바로 책의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네코 후미코의 육체라는 현상은 현상적으로 없어졌지만, 그의 영혼과 정신은 책이라는 실재 속에서 참으로 영원히 존속하고 있다.






   저자

  가네코 후미코 

 1903년 1월 25일 요코하마시 출생. 아버지 사에키 분이치와 어머니 가네코 기쿠노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무적자'인 채로 살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사이가 좋지 못한 가운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여동생(이모)와 새 가정을 꾸리고, 어머니도 재혼을 거듭하며 후미코는 친척집 등을 전전하게 되었다. 무적자인 탓에 취학 연령이 되어도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사설 학교에서 잠시 공부하지만 그것도 생활고 떄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29년, 당시 충청북도 부강에 살던 고모의 양녀가 되어 조선으로 건너가 약 7년간 생활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식모로 전락한 후미코는 가혹한 육체적 정신적 학대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결심한다. 1919년 4월 12일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온 후미코는 1920년 봄에 상경하여 식문팔이를 하며 고학생 생활을 한다. 일터에서 사회주의자들과 만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니힐리즘에 심취하게 되었다.

잡지 <청년조선>에 실린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후미코는 1922년 4월경부터 박열과 동지로서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1923년 4월에는 박열과 함께 '불령사'를 결성한다.

관동 대지진 직후인 1923년 9월 3일, 후미코와 박열은 보호검속 명분으로 구속되고 이어 10월 10일 치안경찰법위법으로 기소된다. 1924년 2월 15일 폭발물취급벌칙 위반으로 추소, 이어 1925년 7월 17일 박열과 함께 대역죄 및 폭발물취급벌칙 죄로 기소된다. 1926년 2월 26일, 후미코와 박열에 대한 대심원특별형사부의 공판이 시작되고 3월 25일에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어 4월 5일,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지만 7월 23일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역자

  조정민

 부경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규슈대학 비교사회문화연구과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전후 일본 문학이 패전 후 연합국의 일본 점령을 어떻게 기억하였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아, 같은 테마로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학위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 <만들어진 점령서사>(산지니, 2009)를 출간하였다. 지금까지 전쟁, 점령, 민족, 젠더, 언어 등의 문제가 서로 교차하면서 어떤 위계가 만들어지고 또 무너지는지에 대해 주목해왔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군국주의적천황제의 억압과 통제에 추상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분명히 실천했던 가네코 후미코의 삶에 감동하여 그녀의 수기를 번역하게 되었다. 현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로 있다.



나는 나 - 10점
가네코 후미코 지음, 조정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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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예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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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에디터날개 2020.03.06 15: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빈 씨, 서평을 너무 잘 써주셔서 이런 복지를 조금 더 제공해야... 겠는데요?^^ 잘 읽었어요! 저도 영화 <박열>을 보고 최희서 배우에게 완전 빠졌답니다.

  2. 권디자이너 2020.03.06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읽고 싶게 만드는 멋진 서평이네요^^
    편집도 좋습니다.

  3. BlogIcon 동글동글봄 2020.03.10 1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평 잘 읽었어요, 네 편집 좋네요^^

산지니 <중국근현대사상총서> 7 번째 책 『류스페이 사상선집』 관련 기사들을 모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중국에서 활동했던 국학자이자 사상가, 혁명시대의 독서종자(讀書種子)였던 류스페이. 중국 근대 격동기에 세계혁명을 외친 아나키스트였던 동시에 절대 평등을 주장했던 그의 사상은 이미 동아시아의 근대 경전으로 자리잡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그의 글들을 직접 접해보기 어려웠습니다.

산지니에서 출간된  『류스페이 사상선집』 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류스페이의 전위적인 사상과 사유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합뉴스 신간 소개] 류스페이 사상선집

▲ 류스페이 사상선집 = 류스페이 지음. 도중만 옮김. 산지니. 370쪽. 3만2천원.

 

무정부주의와 평등사상을 설파한 중국 사상가 류스페이(劉師培·1884∼1919)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발표한 글 20편을 모은 책.

양저우(揚州)의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류스페이는 과거에 낙방한 뒤 상하이에서 반청혁명에 뛰어들었다. 그는 혁명 강령으로 '국가를 폐지하고 정부를 설립하지 않는다', '남녀 사이에 절대적인 평등을 실행한다'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류스페이는 1908년 갑작스레 기울어가는 청 정부에 합류했고, 1917년 베이징대 중국문학 교수로 부임한 뒤에는 신문화운동의 대척점에 섰다.

책에 실린 논문은 그가 혁명을 외쳤던 시절에 작성된 것이다. 류스페이는 '무정부주의 평등관'이란 글에서 "인간에게는 평등권, 독립권, 자유권이 있다"며 "무정부주의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니라 중심도 없고 경계도 없는 상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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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간 소개] 류스페이 사상선집

류스페이 사상선집-격변의 시대, 세계혁명을 외친 중국 아나키즘 ‘중국근현대사상총서’의 일곱번째 책. 중국 사상계의 신성으로 꼽혔던 류스페이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발표한 논문 가운데 20편을 뽑아서 묶었다. 반청혁명과 배만민족주의, 아나키즘 등 당시 류스페이가 드러낸 사상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도중만 옮김/산지니·3만2000원.

[국제신문 신간 소개] 류스페이 사상선집

▶류스페이 사상선집(류스페이 지음·도중만 옮김)=류스페이(1884~1919)는 중국의 근대 격동기에 나타나 아나키스트로 사상을 펼치다 흐려지고, 사라졌다. 그의 사상을 담은 글 20편. <산지니·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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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신간 소개] 류스페이 사상선집

류스페이 사상선집 (중국근현대사상총서 007)  
류스페이 지음 | 도중만 옮김 | 산지니 | 370쪽


이 책은 지금부터 100년 전 중국의 근대 격동기에 활동했던 저명한 국학자이자 사상가인 류스페이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발표한 논문 가운데 학술과 혁명에 관련된 20편을 뽑아 엮은 책이다. 이 무렵 저자는 반청혁명에 투신하고 배만민족주의를 거쳐 세계혁명을 외치는 아나키스트로서의 면모를 발휘했다. 그의 주장은 국가폐지와 무정부, 국경과 인종의 경계 제거, ‘인류의 노동균등설’ 실행, 남녀의 절대적 평등 실행으로 요약된다. 무정부주의 혁명을 통한 ‘인류의 완전한 평등과 최대행복’의 실현 가능성을 믿은 류스페이는 아시아의 약소민족은 대동단결하고, 서구의 사회주의자·아나키스트와 연대하여 ‘세계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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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스페이 사상선집 - 10점
류스페이 지음, 도중만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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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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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도쿄가 있는 일본 간토 지역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집들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뒤틀리고 넘어졌다. 사람들은 거기에 깔린 채 생매장을 당했다.  겨우 뛰쳐나온 사람도 미친개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문명의 낙원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 머리말 중에서


지진 후의 혼란 속에서, ‘조선인들이 지진을 틈타 방화, 강도, 폭탄 투하 등의 활동으로 이익을 취하려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혐오성 폭력이 거세졌고 6,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일본 정부, 그리고 민간인들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국가 내의 ‘또다른 위험분자’ 무정부주의자들을 잡아들이고 죽였습니다. 이 때 체포된 이들 중에 근대 일본의 대표적 여성 아나키스트라 불리는 가네코 후미코(1903~1926)와 그녀의 연인이자 무정부주의 조직 불령사(不逞社)의 리더 박열(1902~1974)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 주에 읽은 책 <나는 나>는, 가네코가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 기록하라는 판사의 명령을 받고 쓴 옥중 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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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성 아나키스트의 옥중 수기라니. 어찌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책이라 생각되어 저는 <나는 나>를 주저없이 이번 독서후기의 대상으로 골랐습니다. “문체는 어디까지나 단순하게, 솔직하게, 그리고 딱딱하지 않게” 해 달라고 밝힌 그녀의 당부대로 엮인 이 책은,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 하룻밤 만에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독서후기를 시작하는 것이 힘겹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 <나는 나>의 ‘압축 불가능함’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삶이란 누구의 것이나 원체 ‘압축 불가능’한 것일 테지요. 하지만 저의 첫 독서후기 대상이었던 <루쉰 그림일기>가 루쉰의 삶의 다방면을 비추면서도 그의 일생의 화두들에 일관성을 부여/부각하여 ‘루쉰=중국의 민족적 영웅’이라는 상을 형성하는 데 비해, <나는 나>는 특정한 질문에 답하거나 하나의 뚜렷한 주장을 펼치는 글이 아닙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그녀에게 이 글을 쓰라고 요구한 것은 아마 “[그녀가] 그처럼 엄청난 일을 한 (...) 이유”가 궁금해서일 것이라 추측하면서도, 이 옥중수기의 맺음말에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나 자신도 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나의 반생을 여기에 펼쳐놓고 싶었다.”라고 씁니다 (13, 344). 이 자기역사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스스로가 한없이 비참하고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솔직하게 그립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


가네코 후미코는 호적상 1903년생이나 실제 출생년도는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1912년에 조선에 있는 친할머니 댁으로 가게 되기 전까지 그녀는 무적자였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보내달라는 딸의 성화에 못이겨 가네코의 어머니는 그녀를 자신의 호적에 사생아로라도 올려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려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바보같이, 사생아 신고를 하겠다고? 사생아는 평생 떳떳하게 살 수 없어.”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28). 가네코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주지는 못할 망정, 사생아로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만든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는 가네코의 이모와 사랑에 빠져 가네코와 어머니를 떠나고, 어머니는 의지할 사람을 찾아 다른 남자들을 만났으나 뒤이은 관계들도 곤궁한 생활을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와 가네코는 어머니의 고향인 작은 농촌 마을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친할머니가 가네코를 데리러 찾아옵니다. 조선에 사는 가네코의 고모는 아이를 가질 수가 없어, 가네코가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고모의 아이로 입양하기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가네코 후미코는 친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조선으로 가게 됩니다.  


충청북도에 위치한 부강이라는 마을에서 조선인 소작농들을 고용하고, 고리대금업까지 하고 있을 정도로 생활이 넉넉한 친할머니 집안이었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이곳에서도 마땅한 보살핌은커녕 하루하루 학대를 받았습니다. 손님이 가네코를 보고 누구냐고 묻자, 할머니는 그녀를 손녀라고 소개하지 않고 “그냥 좀 아는 집 아인데, 여하튼 지독하게 가난한 집 아이라 예의도 모르고 말도 천박해요.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지만 너무 불쌍해서 그냥 데려온 거랍니다.”라고 말합니다 (92). 아들의 혈육이라 데려오기는 했으나, 줄곧 빈곤 속에서 자라 할머니가 바라던 얌전한 소공녀가 될 수 없었던 가네코를 할머니는 손녀로 인정하거나 양녀로 들일 의향이 없었습니다.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닌 상태. 이 경계적인 위치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모진 학대를 겪어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녀를 학교에 보내기 전에 “잘 들어, 후미. 가네코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아이라면 상관없지만, 적어도 지금부터 너는 이와시타 가문의 아이야. 이와시타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가는 거야. (...) 농부 자식에게 지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면 이름을 뺏어버릴 거야.” 라고 말합니다 (94). 그리고 몇년이 지나지 않아 정말 학교 출석부에서 ‘이와시타 후미코’는 ‘가네코 후미코’로 바뀝니다 (94). 그러나 이 ‘가네코 후미코’가 이와시타 집안에 속한 아이라는 게 마을에 알려진 이상, 후미코는 언제나 ‘이와시타 가문’에 먹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할머니는 후미코에게 ‘가난뱅이 자식처럼 험하게 놀지 말고 여자아이답게 행동하라’ 며 감시하고, 동시에  “우리 집은 말이야. 가난뱅이들과는 격이 달라. 아이를 밖에 내팽개쳐 둘 순 없어.”라면서 쉴틈없이 부려먹습니다 (111). 가족이고,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돈을 주지 않고 착취하지만, 동시에 가족과 타인간의 선을 그으며 실수로 깨트린 냄비값까지 물어내라 합니다 (102).


이렇게 온갖 수모를 겪으며 후미코는 자신이 조선인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생각에 그들을 가깝게 생각합니다. 그녀는 할머니 집안의 머슴 고씨를 동정하지만, 동시에 일본인인 자신과 조선인들간의 ‘다름’을 매일같이 교육받았을 것입니다. 어느날은 할머니의 미움을 사 몇일을 굶고 쫓겨난 후미코를 한 조선인 아낙이 보리밥이라도 먹겠느냐고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 때 후미코는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 [할머니가] 조선인의 집에서 밥을 빌어먹는 거지를 우리 집에 들여놓을 수는 없어, 하며 호통을 칠 게 분명했기에 호의를 거절합니다 (140).

이후 박열을 만나 가네코는 그가 독립운동가인지를 물으며 조심스럽게 “민족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인이 아니라서 그들처럼 일본으로부터 억압받은 일이 없으니, 조선인들과 함께 조선을 위한 독립운동을 할 마음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군요” 라고 말합니다 (337). 그녀는 계급의 차원에서 조선인들과 공감하였으나 그녀는 일본인인 자신이 조선인들이 겪은 민족적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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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시집 갈 나이가 된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으로 돌려보내집니다. 조선에서의 생활보다는 조금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진실된 바람과 목적”, 즉 “다양한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습득하여 나 자신의 생명을 펼치는 것”을 이루기에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경제적 독립은 물론이고, 딸인 후미코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려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녀를 “하나의 물건처럼 외삼촌에게 [아내로] 팔려고” 했고(193), 도쿄에 보내달라고 허락을 구하자 “어린여자아이를 혼자 도쿄로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니? 바보같이. 세상이라는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아. (...) 남자가 잠시 여자에게 길을 물어도 세상 사람들은 곧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한번 그런 소문이 나봐라. 그럼 그 여자는 끝인거야. 흠진 물건이 되고 마는 거지.”라며 단칼에 가네코의 희망을 꺾습니다 (212).

그러나 결국 가네코는 한차례 아버지와 크게 싸운 뒤, 도쿄에 있는 작은 외할아버지의 집으로 떠납니다. 이 곳에서 역시 공부보다는 결혼을 하라는 설교를 듣지만, 신문팔이, 비누장사, 식모, 오뎅집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공부를 하려 노력합니다. 이렇게 도쿄에서 가네코는 어느정도 가족이라는 체제 밖에서의 생활을 꾸리고, 사회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이런 가네코를 보고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도 합니다. “저 여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하숙집을 돌아다니는 매춘부 아닐까?” (316) 가족 체계 밖에 있는, 그러니까 딸, 아내, 어머니, 여자 형제로 확인되지 않는 여성은 매춘부--사회 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여성의 대표적 이미지--라 의심하는 사회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끊임없이 ‘나 자신’ 그 자체로 하루하루를 살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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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이자 평생 가난 속에서 살았던 이로서 가네코 후미코는 뿌리깊은 억압의 구조에 대해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장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고학을 하더라도 훌륭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은 물론 "모든 사람의 기쁨이 타인의 슬픔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씁니다. 또한, “인간사회에 대한 특별한 이상을 가질 수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327~328). 하지만 그녀의 니힐리즘은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에서 이상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자신을 위한 일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을 성취하든 성취하지 않든 그것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진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진정한 생활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은 곧 우리와 일치된다. 먼 저편에 이상적인 목표를 두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328-9)


조선에 살던 시절,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려다 “세상에는 아직 사랑해야 할 것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127). 어쩌면 '이상' 이 아니라도 '사랑하는 것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을 더욱 굳게 지키며 앞으로 나아갔던 것일지 모릅니다.




[참고 문헌]


23세 꽃다운 나이, 옥중에서 숨진 그녀가 남긴 것은

서평 <가네코 후미코> 야마다 쇼지

박열, 가네코 후미코, 그리고 한국의 무정부주의 (영문)


나는 나 - 10점
가네코 후미코 지음, 조정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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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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