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 <중국근현대사상총서> 7 번째 책 『류스페이 사상선집』 관련 기사들을 모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중국에서 활동했던 국학자이자 사상가, 혁명시대의 독서종자(讀書種子)였던 류스페이. 중국 근대 격동기에 세계혁명을 외친 아나키스트였던 동시에 절대 평등을 주장했던 그의 사상은 이미 동아시아의 근대 경전으로 자리잡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그의 글들을 직접 접해보기 어려웠습니다.

산지니에서 출간된  『류스페이 사상선집』 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류스페이의 전위적인 사상과 사유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합뉴스 신간 소개] 류스페이 사상선집

▲ 류스페이 사상선집 = 류스페이 지음. 도중만 옮김. 산지니. 370쪽. 3만2천원.

 

무정부주의와 평등사상을 설파한 중국 사상가 류스페이(劉師培·1884∼1919)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발표한 글 20편을 모은 책.

양저우(揚州)의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류스페이는 과거에 낙방한 뒤 상하이에서 반청혁명에 뛰어들었다. 그는 혁명 강령으로 '국가를 폐지하고 정부를 설립하지 않는다', '남녀 사이에 절대적인 평등을 실행한다'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류스페이는 1908년 갑작스레 기울어가는 청 정부에 합류했고, 1917년 베이징대 중국문학 교수로 부임한 뒤에는 신문화운동의 대척점에 섰다.

책에 실린 논문은 그가 혁명을 외쳤던 시절에 작성된 것이다. 류스페이는 '무정부주의 평등관'이란 글에서 "인간에게는 평등권, 독립권, 자유권이 있다"며 "무정부주의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니라 중심도 없고 경계도 없는 상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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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간 소개] 류스페이 사상선집

류스페이 사상선집-격변의 시대, 세계혁명을 외친 중국 아나키즘 ‘중국근현대사상총서’의 일곱번째 책. 중국 사상계의 신성으로 꼽혔던 류스페이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발표한 논문 가운데 20편을 뽑아서 묶었다. 반청혁명과 배만민족주의, 아나키즘 등 당시 류스페이가 드러낸 사상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도중만 옮김/산지니·3만2000원.

[국제신문 신간 소개] 류스페이 사상선집

▶류스페이 사상선집(류스페이 지음·도중만 옮김)=류스페이(1884~1919)는 중국의 근대 격동기에 나타나 아나키스트로 사상을 펼치다 흐려지고, 사라졌다. 그의 사상을 담은 글 20편. <산지니·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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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신간 소개] 류스페이 사상선집

류스페이 사상선집 (중국근현대사상총서 007)  
류스페이 지음 | 도중만 옮김 | 산지니 | 370쪽


이 책은 지금부터 100년 전 중국의 근대 격동기에 활동했던 저명한 국학자이자 사상가인 류스페이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발표한 논문 가운데 학술과 혁명에 관련된 20편을 뽑아 엮은 책이다. 이 무렵 저자는 반청혁명에 투신하고 배만민족주의를 거쳐 세계혁명을 외치는 아나키스트로서의 면모를 발휘했다. 그의 주장은 국가폐지와 무정부, 국경과 인종의 경계 제거, ‘인류의 노동균등설’ 실행, 남녀의 절대적 평등 실행으로 요약된다. 무정부주의 혁명을 통한 ‘인류의 완전한 평등과 최대행복’의 실현 가능성을 믿은 류스페이는 아시아의 약소민족은 대동단결하고, 서구의 사회주의자·아나키스트와 연대하여 ‘세계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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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스페이 사상선집 - 10점
류스페이 지음, 도중만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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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1923년 9월 1일, 도쿄가 있는 일본 간토 지역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집들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뒤틀리고 넘어졌다. 사람들은 거기에 깔린 채 생매장을 당했다.  겨우 뛰쳐나온 사람도 미친개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문명의 낙원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 머리말 중에서


지진 후의 혼란 속에서, ‘조선인들이 지진을 틈타 방화, 강도, 폭탄 투하 등의 활동으로 이익을 취하려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혐오성 폭력이 거세졌고 6,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일본 정부, 그리고 민간인들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국가 내의 ‘또다른 위험분자’ 무정부주의자들을 잡아들이고 죽였습니다. 이 때 체포된 이들 중에 근대 일본의 대표적 여성 아나키스트라 불리는 가네코 후미코(1903~1926)와 그녀의 연인이자 무정부주의 조직 불령사(不逞社)의 리더 박열(1902~1974)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 주에 읽은 책 <나는 나>는, 가네코가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 기록하라는 판사의 명령을 받고 쓴 옥중 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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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성 아나키스트의 옥중 수기라니. 어찌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책이라 생각되어 저는 <나는 나>를 주저없이 이번 독서후기의 대상으로 골랐습니다. “문체는 어디까지나 단순하게, 솔직하게, 그리고 딱딱하지 않게” 해 달라고 밝힌 그녀의 당부대로 엮인 이 책은,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 하룻밤 만에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독서후기를 시작하는 것이 힘겹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 <나는 나>의 ‘압축 불가능함’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삶이란 누구의 것이나 원체 ‘압축 불가능’한 것일 테지요. 하지만 저의 첫 독서후기 대상이었던 <루쉰 그림일기>가 루쉰의 삶의 다방면을 비추면서도 그의 일생의 화두들에 일관성을 부여/부각하여 ‘루쉰=중국의 민족적 영웅’이라는 상을 형성하는 데 비해, <나는 나>는 특정한 질문에 답하거나 하나의 뚜렷한 주장을 펼치는 글이 아닙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그녀에게 이 글을 쓰라고 요구한 것은 아마 “[그녀가] 그처럼 엄청난 일을 한 (...) 이유”가 궁금해서일 것이라 추측하면서도, 이 옥중수기의 맺음말에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나 자신도 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나의 반생을 여기에 펼쳐놓고 싶었다.”라고 씁니다 (13, 344). 이 자기역사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스스로가 한없이 비참하고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솔직하게 그립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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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는 호적상 1903년생이나 실제 출생년도는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1912년에 조선에 있는 친할머니 댁으로 가게 되기 전까지 그녀는 무적자였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보내달라는 딸의 성화에 못이겨 가네코의 어머니는 그녀를 자신의 호적에 사생아로라도 올려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려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바보같이, 사생아 신고를 하겠다고? 사생아는 평생 떳떳하게 살 수 없어.”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28). 가네코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주지는 못할 망정, 사생아로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만든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는 가네코의 이모와 사랑에 빠져 가네코와 어머니를 떠나고, 어머니는 의지할 사람을 찾아 다른 남자들을 만났으나 뒤이은 관계들도 곤궁한 생활을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와 가네코는 어머니의 고향인 작은 농촌 마을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친할머니가 가네코를 데리러 찾아옵니다. 조선에 사는 가네코의 고모는 아이를 가질 수가 없어, 가네코가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고모의 아이로 입양하기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가네코 후미코는 친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조선으로 가게 됩니다.  


충청북도에 위치한 부강이라는 마을에서 조선인 소작농들을 고용하고, 고리대금업까지 하고 있을 정도로 생활이 넉넉한 친할머니 집안이었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이곳에서도 마땅한 보살핌은커녕 하루하루 학대를 받았습니다. 손님이 가네코를 보고 누구냐고 묻자, 할머니는 그녀를 손녀라고 소개하지 않고 “그냥 좀 아는 집 아인데, 여하튼 지독하게 가난한 집 아이라 예의도 모르고 말도 천박해요.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지만 너무 불쌍해서 그냥 데려온 거랍니다.”라고 말합니다 (92). 아들의 혈육이라 데려오기는 했으나, 줄곧 빈곤 속에서 자라 할머니가 바라던 얌전한 소공녀가 될 수 없었던 가네코를 할머니는 손녀로 인정하거나 양녀로 들일 의향이 없었습니다.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닌 상태. 이 경계적인 위치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모진 학대를 겪어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녀를 학교에 보내기 전에 “잘 들어, 후미. 가네코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아이라면 상관없지만, 적어도 지금부터 너는 이와시타 가문의 아이야. 이와시타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가는 거야. (...) 농부 자식에게 지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면 이름을 뺏어버릴 거야.” 라고 말합니다 (94). 그리고 몇년이 지나지 않아 정말 학교 출석부에서 ‘이와시타 후미코’는 ‘가네코 후미코’로 바뀝니다 (94). 그러나 이 ‘가네코 후미코’가 이와시타 집안에 속한 아이라는 게 마을에 알려진 이상, 후미코는 언제나 ‘이와시타 가문’에 먹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할머니는 후미코에게 ‘가난뱅이 자식처럼 험하게 놀지 말고 여자아이답게 행동하라’ 며 감시하고, 동시에  “우리 집은 말이야. 가난뱅이들과는 격이 달라. 아이를 밖에 내팽개쳐 둘 순 없어.”라면서 쉴틈없이 부려먹습니다 (111). 가족이고,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돈을 주지 않고 착취하지만, 동시에 가족과 타인간의 선을 그으며 실수로 깨트린 냄비값까지 물어내라 합니다 (102).


이렇게 온갖 수모를 겪으며 후미코는 자신이 조선인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생각에 그들을 가깝게 생각합니다. 그녀는 할머니 집안의 머슴 고씨를 동정하지만, 동시에 일본인인 자신과 조선인들간의 ‘다름’을 매일같이 교육받았을 것입니다. 어느날은 할머니의 미움을 사 몇일을 굶고 쫓겨난 후미코를 한 조선인 아낙이 보리밥이라도 먹겠느냐고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 때 후미코는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 [할머니가] 조선인의 집에서 밥을 빌어먹는 거지를 우리 집에 들여놓을 수는 없어, 하며 호통을 칠 게 분명했기에 호의를 거절합니다 (140).

이후 박열을 만나 가네코는 그가 독립운동가인지를 물으며 조심스럽게 “민족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인이 아니라서 그들처럼 일본으로부터 억압받은 일이 없으니, 조선인들과 함께 조선을 위한 독립운동을 할 마음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군요” 라고 말합니다 (337). 그녀는 계급의 차원에서 조선인들과 공감하였으나 그녀는 일본인인 자신이 조선인들이 겪은 민족적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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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시집 갈 나이가 된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으로 돌려보내집니다. 조선에서의 생활보다는 조금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진실된 바람과 목적”, 즉 “다양한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습득하여 나 자신의 생명을 펼치는 것”을 이루기에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경제적 독립은 물론이고, 딸인 후미코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려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녀를 “하나의 물건처럼 외삼촌에게 [아내로] 팔려고” 했고(193), 도쿄에 보내달라고 허락을 구하자 “어린여자아이를 혼자 도쿄로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니? 바보같이. 세상이라는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아. (...) 남자가 잠시 여자에게 길을 물어도 세상 사람들은 곧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한번 그런 소문이 나봐라. 그럼 그 여자는 끝인거야. 흠진 물건이 되고 마는 거지.”라며 단칼에 가네코의 희망을 꺾습니다 (212).

그러나 결국 가네코는 한차례 아버지와 크게 싸운 뒤, 도쿄에 있는 작은 외할아버지의 집으로 떠납니다. 이 곳에서 역시 공부보다는 결혼을 하라는 설교를 듣지만, 신문팔이, 비누장사, 식모, 오뎅집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공부를 하려 노력합니다. 이렇게 도쿄에서 가네코는 어느정도 가족이라는 체제 밖에서의 생활을 꾸리고, 사회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이런 가네코를 보고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도 합니다. “저 여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하숙집을 돌아다니는 매춘부 아닐까?” (316) 가족 체계 밖에 있는, 그러니까 딸, 아내, 어머니, 여자 형제로 확인되지 않는 여성은 매춘부--사회 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여성의 대표적 이미지--라 의심하는 사회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끊임없이 ‘나 자신’ 그 자체로 하루하루를 살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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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이자 평생 가난 속에서 살았던 이로서 가네코 후미코는 뿌리깊은 억압의 구조에 대해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장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고학을 하더라도 훌륭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은 물론 "모든 사람의 기쁨이 타인의 슬픔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씁니다. 또한, “인간사회에 대한 특별한 이상을 가질 수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327~328). 하지만 그녀의 니힐리즘은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에서 이상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자신을 위한 일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을 성취하든 성취하지 않든 그것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진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진정한 생활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은 곧 우리와 일치된다. 먼 저편에 이상적인 목표를 두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328-9)


조선에 살던 시절,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려다 “세상에는 아직 사랑해야 할 것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127). 어쩌면 '이상' 이 아니라도 '사랑하는 것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을 더욱 굳게 지키며 앞으로 나아갔던 것일지 모릅니다.




[참고 문헌]


23세 꽃다운 나이, 옥중에서 숨진 그녀가 남긴 것은

서평 <가네코 후미코> 야마다 쇼지

박열, 가네코 후미코, 그리고 한국의 무정부주의 (영문)


나는 나 - 10점
가네코 후미코 지음, 조정민 옮김/산지니

[블로그 관련글]

김혜영 시인, '나는 나'의 주인공 가네코 후미코를 시로 탄생/국제신문


가네코 후미코, 나는 나 - 그녀의 옥중수기가 내게 말하길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