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남 세번째 단편소설집 출간


- 부산서 30년 살다가 보성 이주
- 구수하고 걸쭉한 입담이 매력

단편소설에서는 첫 대목의 힘이 중요하다고 흔히 말한다. 소설가 정형남(69·사진)은 그런 힘을 잘 아는 이야기꾼이다.

"계시오?" "왜, 또?" "워메, 답답해서 사람 똑 미치것소." "뭔 일인디?" "좀 들어 보시오. 말이 통하나, 입맛이 맞나, 생활습관이 맞나, 사람 환장하것소. 천불이 나요, 천불이…." "국제적으로 장벽이 높단 말이여?" "높고 낮은 정도가 아니요. 이건 갈수록 엉망진창이요."(소 쌀밥 첫머리)

"저, 청승 좀 보게." "누가 아닌가. 허구헌 날 실꾸리 되감듯 하는 저놈의 노랫소리도 신물이 날 만도 한디." 오일장을 보러 온 노인네들이 포장마차에서 대낮부터 술잔을 나누며 혀를 찼다.('무넘이재' 첫머리)

첫머리가 이렇게 구수하고 능숙하게 나오면, 독자는 '무장'이 해제되면서 이야기 속으로 슥 빨려들어가기 십상이다. 물론 좀 고전적인 묘사로 시작하는 작품도 있지만, 정형남(사진) 소설가의 새 소설집 '진경산수'(해피북미디어 펴냄)에 나오는 8편은 진입 장벽 없이 독자를 얘기 속으로 데리고 가는 힘이 넉넉하다.

전남 완도군의 작은 섬 조약도에서 태어난 소설가 정형남은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뒤로 부산에서 30년여 년 살며 소설을 썼다. 그에게 제1회 채만식문학상을 안긴 6부작 장편소설 '남도', 5권짜리 '여인의 새벽', 화제가 됐던 구도소설 '천 년의 찻씨 한 알' 등 많은 작품을 그는 부산에서 써냈다. 몇 해 전 그는 전남 보성으로 거처를 옮겨 계속 소설을 쓰고 있다.

   

부산의 많은 동료 작가에게 '그리운 정형남'이 된 그는 그런 옛 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은 전남 보성을 중심으로 시골과 작은 도시를 무대로 한 작품을 써왔다. '진경산수'라는 제목으로 펴낸 세 번째 단편소설집인 이번 책이 그렇다. 한국의 정서와 미감을 간직한 공간으로서 섬과 시골,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가버린 사람과 사연, 그런 사람과 사연을 떠올리며 회한과 맞닥뜨리는 오늘의 사람들이 소설을 수놓는다. 전남 화도(花島)에서 오래 전 있었던 사랑 이야기를 회한 속에 떠올리는 '꽃섬', 깊은 산 속의 얼음계곡 숨겨진 일제강점기의 비극에 우연히 맞닥뜨리는 현대의 세 사람을 그린 '사금목걸이' 등을 실었다.

작가는 아등바등 기교를 부리려 하지 않고, 어찌 보면 무심해 보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순한 호흡으로 문장을 밀고 간다. 진경산수란 이런 연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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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 - 10점
정형남 지음/해피북미디어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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