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유원표 지음, 이성혜 역주/산지니·2만원

한 기업한테 3000만원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총리 자리가 위태롭다. 만일 제갈량이 살아와 그 자리에 앉는다면?

1906년 조선의 ‘계몽 지식인’ 유원표가 그런 시도를 했다. 황제도, 무당도 아니요, 한낱 글쟁이인 터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꿈꾸기다. 그 결과가 ‘꿈속에서 제갈량을 만나다’(<夢見諸葛亮>)라는 제목의 책이다. 일부에서 ‘몽유록계’라 하여 소설 범주에 넣기도 하는데, 대화체를 빌린 계몽서다. 서울의 역관 집안에서 나 가업을 이은 유원표는 승문원에서 역관으로 15년 이상, 군부대 통역관으로 10여년 근무하다가 1906년 54살에 퇴직하여 개성에 정주한다. 그는 <황성신문> 등에 시국에 대한 글을 다수 기고하는데, 이 책은 그의 유일한 저서다. 퇴직 후 그의 모든 역량을 들여 쓴 것으로 추정된다.

책은 논자들은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함(議者謂爲非計), 아마도 괴이함이 없이 용납될 것임-10조목(容或無怪十章), 선생의 역사 연의(先生歷史演義), 동양문학의 허와 실(東土文學虛實), 황백인종 관계의 진상(黃白關係眞狀), 중국 정략의 개량(支那政略改良) 등 6개 장으로 되어 있다. 앞 4개 장은 1700년 전 제갈량(181~234년)의 공과를 다투는 내용으로,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조조를 풀어준 관우는 그대로 두고 전투에서 한차례 패한 마속의 목을 벤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승상으로 뭐든 할 수 있었으니 상하 양의원을 만들어 언로를 틔울 수 있지 않았느냐 등등의 지적질이다. 뒤 2개 장이 가관인데, 앞 4개 장을 합친 것보다 많은 분량으로 인간 유원표 내지는 계몽 지식인의 두뇌구조를 보여준다.

‘황백인종 관계의 진상’은 서세동점 시대를 당하여 한·중·일이 힘을 합쳐 이를 물리치자는 내용으로 당시 일본 지식인의 생각을 답습하고 있다. 그런 논리에 따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을 두고 “장하다” “시원하다”는 표현을 한다. 마지막 장이 하필 ‘중국 정략의 개량’이다. 조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게 아니라 중국의 살 방도를 제시하고 있다. 중국이 살면 자연히 조선도 살 것이라는 사대주의가 깔려 있지 않고서야….

꿈 깨시라. 제갈공명의 궁량은커녕 계몽 지식인의 혜안도 없다. 강대국 등쌀에 바람 잘 날 없는 나라의 형편을 목도한 당대 지식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들여다볼 ‘궁핍한 창’이라고나 할까. 이인직·이광수 등 친일로 나아간 문인들의 단초가 보인다.

신채호 서문이 뜻밖이다. “천만번 제갈량을 꿈꾸는 것이 한번 소학교 아이가 되기를 꿈꾸는 것만 못할 것이다”라며 에둘러 비판하는 것이 마지못해 쓴 흔적이 역력하다.

임종업ㅣ한겨레ㅣ2015-04-16


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 10점
유원표 지음, 이성혜 역주/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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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역주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


근대 지식인 유원표,

세기의 전략가 제갈량과 격돌하다

세기의 전략가, 제갈량을 20세기로 불러와 대화한다면 어떨까? 이 흥미로운 설정으로 쓰인 『몽견제갈량』(1908)은 계몽지식인 유원표가 집필한 국한문체 정치소설이다. 몽유록계 소설이기도 하지만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서문을 썼으며, 시대 상황에 대한 정치적 개혁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은 유원표의 호이기도 한 밀아자와 제갈량, 단 두 사람이다. 문답으로 이루어진 소설 속에서 두 주인공은 한·중·일 동양의 문제, 특히 중국과 한국이 어떻게 변혁해야 할지를 놓고 격돌한다.

20세기에 지은이가 꿈꾼 혁명의 바탕이 된 유가 사상과 황백 인종론은 변화한 형태로 오늘날에도 나타나고 있다. 근대 한·중·일의 정세를 파악하고, 당시 지식인의 사유의 틀과 한계를 살피는 것은 21세기 한국의 미래에 대한 상상의 폭을 넓히는 작업일 것이다.



역관 출신 계몽지식인 유원표,

제갈량을 통한 ‘이이제이’를 꾀하다

유원표(1852~?)는 역관(譯官)이 여럿 배출된 집안에 태어나 한어 역관으로 10여 년을 군에 몸담았다. 그러다 1906년 봄에 사직하고 근거지를 개성으로 옮겨, 계몽지식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신문 매체에 시국과 시세에 관한 글을 기고하며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1907년 이후에는 계몽소설몽견제갈량집필에 몰두하였다.

그는 몽견제갈량에서 서구 열강의 침략과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를 눈앞에 둔 한국이 어떻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라를 변혁해야 하는데, 그 주체가 되어야 할 사대부들이 삼국지에 빠져 있다고 한탄한다. 유원표는 이런 연유로 ‘제갈량을 통한 이이제이(以夷制夷)’를 시도하게 되었다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을 보면, 사대부들이 소매를 나란히 하고 계책을 얘기하는데, (…) 저 어리석은 자들은 제갈량의 윤건(輪巾)을 꿈꾸고, 우선(羽扇)을 꿈꾸고, 사륜거(四輪車)를 꿈꾸고, 기산의 오장원(五丈原)을 꿈꿀 따름이지만, 나의 꿈은 그렇지 않으니 곧 20세기 동양의 혁명이다. 그렇기에 내가 제갈량을 꿈꾸었지만 실은 제갈량이 나를 꿈꾼 것일 따름이다. 

_「서문」신채호의 유원표 인용


황인종 간의 단합,

진정한 유가사상 실천 통한 ‘동양평화’ 도모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근대전환기 용어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리적 이분법은 물론 각각 동종의 인종·문화로 묶인 동양과 서양을 전제하고 있다. 청일전쟁 이후 서양열강의 중국 분할과 러시아의 만주 점령이 진행되자, 많은 지식인들은 당시의 국제질서를 인종경쟁으로 보았다. 백인종에 맞서려면 황인종은 일본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만연했다. 유원표 역시 인종주의의 시각으로 러일전쟁을 바라보며, 백인종과 맞서려면 황인종의 맹주로 떠오른 일본이 무력으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백인종의 식민지가 된 이웃나라 황인종을 모두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수백 년 엎드렸던 황인종의 대표로 수백 년 악행을 하던 백인종의 선봉 러시아를 크게 격파하였으니 이보다 더한 다행이 없으며, 이보다 더한 경사가 없습니다. 

_5장 「황백인종 관계의 진상」중

이때 황인종의 ‘동양’은 한자·유가문화권으로 사유되었다. 이에 따라 번역자 이성혜는 유원표가 여러 번 사회적 개혁을 촉구하지만, 유가사상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짚어낸다. 진정한 유가사상의 실천을 통해서라면 개명과 개화를 이룰 수 있다는 논리이다.

만약 성인의 심법을 조금이라도 강구하여 실행하였더라면 (…) 증기차와 화륜선, 크루프 대포와 회룡총 등의 발명품 역시 중국에서 먼저 나왔지 하필 경전도 읽지 않은 서양인이 제작했겠습니까? 

_4장 「동양문학의 허와 실」중




21세기 『몽견제갈량』을 만나다

『몽견제갈량』의 역자 이성혜는 한국 근대전환기 ‘서화’, ‘역관’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다 우연히 역관 출신인 유원표에 흥미를 느껴 한국 근대소설 『몽견제갈량』을 번역하게 되었다. 한국의 근대라고 하지만 국한문체로 쓰인 그 당시의 글들은 대부분 번역이 필요하고 이러한 이유로 한국 근대소설에 대한 자료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번 책에는 번역된 소설뿐만 아니라 역자의 해제와 함께 『몽견제갈량』의 원문을 실었다. 한국 근대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나 학자들에게 유용한 자료가 되리라 본다. 더불어 ‘출전인물간략정보’로 원문의 이해를 도왔다. 평소 삼국지를 즐겨 읽는 독자라면 한국의 근대소설을 읽는 즐거움에 도전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고,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근대전환기 한국 계몽지식인의 고심과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학계는 근대전환기 한국의 지식인들이 자국의 힘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제국주의 논리인 사회진화론․우승열패론․황백인종론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자강의 의지를 불태우는 주체 없는 근대에 몰두하면서 친일과 식민지의 늪으로 점차 빠져든 사실을 일부 고증해냈지만 그에 딱 들어맞는 지표종(指標種)으로서의 작품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몽견제갈량이 바로 그러한 지표종으로서의 작품인 것이다.

_해제 11쪽



글쓴이 : 이성혜

부산대학교 한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강의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연구 초기, 조선후기 서화가의 삶과 예술에 골몰하여 그 결과물을 조선의 화가 조희룡(한길아트, 2005)으로 출간하였다. 이후, 연구 영역을 확대하여 이들 조선후기 서화가들이 중세가 해체된 근대전환기에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며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이를 한국 근대 서화의 생산과 유통(해피북미디어, 2014)으로 간행하였다.

연구 노정(路程)에서 한국의 근대가 형성되는 과정에 많은 중인 계층, 특히 조선시대 역관 신분의 인물들이 계몽지식인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이들의 활동은 한국의 근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인지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근대전환기 역관의 행방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과물이다.



차례



『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 역주 몽견제갈량』

학술 | 신국판 | 301쪽 | 20,000원 | 2015년 03월 1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3-6 93810 

세기의 전략가, 제갈량을 20세기로 불러와 대화한다면 어떨까? 이 흥미로운 설정으로 쓰인 『몽견제갈량』(1908)은 계몽지식인 유원표가 집필한 몽유록계 소설이자 정치적 개혁안이다. 소설 속에서 유원표와 제갈량은 중국과 한국이 어떻게 변혁해야 할지를 놓고 격돌한다. 근대 한·중·일의 정세를 파악하고, 당시 지식인의 사유의 틀과 한계를 살필 수 있다.



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 10점


유원표 지음, 이성혜 역주/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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