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권'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9.03.27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와의 만남
  2. 2019.03.20 [국제신문]-[문화] 조봉권의 문화현장 <49>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인터뷰
  3. 2016.05.09 '5·7 정신'(요산 김정한 주도 문인단체)으로 지역문학에 활력 불어넣는다 (국제신문) (2)
  4. 2016.04.22 논어 맹자 중용 이어 '한비자' 펴낸 고전학자 정천구 박사 (국제신문) (2)
  5. 2016.04.19 대암 이태준 선생 일대기, 몽골에 알린다 (국제신문)
  6. 2016.04.12 웃겼다가 울렸다가…이 남자의 시는 오랜 친구다 (국제신문)
  7. 2016.03.03 섬·시골서 삶 일구며 쓴 산수화 같은 소설 (국제신문)
  8. 2016.02.18 "좌우 헛된 갈등 이제는 풀어야 할 때" (국제신문)
  9. 2016.01.25 조미형 등단 10년만에 묵직한 첫 소설집 (국제신문)
  10. 2016.01.21 새 봄에 만나는 새로운 작가들!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상식 (1)
  11. 2015.12.28 "지역책 계속 만드니 살아남더라" 향토출판사 10년 생존기(국제신문)
  12. 2015.11.17 절망에 빠진 가족 제한구역에 갇혀 희망 찾는 몸짓 (국제신문)
  13. 2015.10.29 10구체 향가처럼 짧은 시어로 서정의 여백 (국제신문) (1)
  14. 2015.10.22 86세 손경하 시인 3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국제신문)
  15. 2015.10.13 '턱'하고 와닿는 현실감에 공감 (국제신문)
  16. 2015.09.10 다각도로 본 그래피티 구헌주 작가에게 듣다 (국제신문)
  17. 2015.08.27 미지가 도사린 인생의 바다, 어떻게 할 것인가 (국제신문)
  18. 2015.07.28 첫 소설처럼 '다시 시작하는 끝'에 선 작가 (국제신문)
  19. 2015.06.11 "은유의 남발은 동일성의 확대재생산" (국제신문)
  20. 2015.04.08 청춘 빚는 일흔 청년작가들 (국제신문)
  21. 2015.03.02 다양한 예술 넘나드는 폭 넓은 평론 (국제신문)
  22. 2015.01.15 멈춰버린 손·입 대신 눈으로 써내려간 '편지' (국제신문)
  23. 2014.12.30 당신의 인생 고도는 몇 피트 상공입니까 (국제신문)
  24. 2014.12.10 항해사가 기록한 바다, 소년들이 꿈꾸는 바다 (국제신문)
  25. 2009.02.19 하루에 버스 두번, 고성 갈천리 어실마을

산지니는 지난 3월 13일~18일 한국을 방문한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의 저자 무스토 교수의 강연에 함께했습니다.

 

3월 13일 (수) 진주: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및 SSK연구팀(정성진 교수)

3월 14일 (목) 부산: 오후 3시, 동아대학교 맑스엥겔스연구소(강신준 교수)

3월 18일 (월) 서울: 정치경제연구소 대안(곽노완 교수)

 

위와 같은 일정으로 진주, 부산, 서울에서 강연이 있었는데요,

이 포스팅에서는 진주와 부산에서 있었던 강연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마르셀로 무스토(Marcello Musto) 교수 / 산지니 DB

 

마르셀로 무스토(Marcello Musto) 교수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신세대 맑스주의 연구자로서 현재 캐나다 요크대학 부교수입니다. 칼 맑스의 사상, 맑스주의, 사회사상사, 소외 이론, 공황 등에 관한 그의 관심은 100권을 넘는 분량의 저서, 기사 등으로 표현되어, 전 세계에 2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저서 <맑스의 Grundrisse-정치경제학비판의 기초, 이후 150년>은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산지니에서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1881-1883년의 지적 여정>(2018, 산지니)을 번역 출간했습니다.

 

진주 경상대에서는 정성진 교수의 사회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좌)와 정성진 교수(우)

 

정성진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재 한국사회경제학회장, 계간 <마르크스주의 연구> 편집위원장, 국제학술지 Research in Political Economy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고,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장,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장과 대학원 정치경제학과 초대 학과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마르크스와 한국 경제>(2005), <마르크스와 트로츠키>(2006) 등이 있다.

 

이날은 경상대학교에서 마르크스를 연구하시는 대학원생 분들, 대학생 분들이 많이 와주셔서 인지 무스토 교수가 '새로운 마르크스 연구 세대'를 위한 강연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교수님이 밝힌 주제는 ‘Marxs for Today’였는데요,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과 정치 상황은 항상 이어져 있어서, 나라마다 그 관심과 공부에 대한 상황이 달랐다고 합니다.

1960~1970년에는 유럽에서 마르크스 공부가 매우 중요했고, 최근 브라질에서는 교수님이 강연을 하러 가면 몇백 명이 기다릴 정도로 마르크스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합니다.

 

 

강연 중인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유럽 경제 위기는 전 세계의 경제 위기로 확산되었는데요, 이 위기는 다만 경제적 위기(political crisis) 만을 넘어서 사회적 위기(social crisis)를 불러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유럽, 특히 마르셀로 교수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나라 속 나라’로 불릴 만큼

공산주의, 마르크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르셀로 교수는 지금이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책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다고 했는데요.

마르크스 책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누어지는데,

1. 전기(biography) 이고 2. 드물게 마르크스 이론(rarely marxs theory)이라고 합니다.

전기는 아주 많이 나와 있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에 관한 책은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우리 자본주의의 미래를 엿볼 수 있고, 마르크스가 제기한 후기 자본주의(post-capitalsim)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criticism of capitalism)에 대한 문제에 대해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와 청중들

 

또한 무스토 교수는 마르크스를 연구하는 젊은 세대(young generation)에 대한 애정을 보였는데요, 학생들에게 한 가지 조언도 해주면서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학창시절 매우 비판적인(critical) 학생이었다고 하면서요.

결코 순종적인 학생이 아니었고, 그 점이 그를 세계 최고의 학자로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스토 교수는 학생들이 무엇을 공부하다가 자기 생각과 다른 결과를 본다 하더라도 “I was wrong”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그 말은 필요 없는 말이라고요.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이미 많이 연구된 마르크스에 대해 배우는 것도 좋지만

‘Unfinished Marx’, 후기 마르크스의 삶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석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마르크스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마르크스의 생애뿐 아니라 생각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진 않을까요?

무스토 교수는 마르크스의 마지막을 통해 우리가 ‘자본주의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가 나아갈 발전방향’까지 고려할 수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부산 동아대 부민캠퍼스에서도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신준 교수의 진행으로 강연을 시작했는데요.

 

무스토 교수의 동아대 강연 현장. 맨 왼쪽이 강신준 교수

 

강신준 교수는

고려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노동운동과 관련된 주제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는 데 관여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를 강의하는 교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후 영남지역의 노동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노동운동의 실천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였고, 최근에는 <자본>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일과 마르크스 엥겔스 정본 전집(MEGA, 총 114권)의 한국어판을 최초로 출판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맑스를 읽다><마르크스의 <자본> 탄생의 역사> 등이 있다.

 

Another Marx after MEGA(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arx Engels Gesamtausgabe))"를 주제로 개최된 이번 행사는 소규모 토론 형식의 강연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활발한 질의응답이 있었답니다.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와 청중들

 

청중 질문

메가 이후 일어난 마르크스 붐이 이탈리아만의 현상인가? 선생님이 연구하고 있는 캐나다, 미국에도 그런 붐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이탈리아에서 시위라고 하면 다 같이 텐트를 치고 고생하고, 파스타를 만들어서 나누어 먹고 그런 문화가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고 놀랐던 것이 오바마 케어 등 그런 시위가 일어났지만 그들은 인도에 한 줄로 서서 시위를 한다. 이탈리아인 입장에서 ‘그건 시위가 아니다’

북미권은 확실히 그런 공동체 정신이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 유럽, 아시아와 비교했을 때 낮은 것 같다. 연대(solidarity)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한다.

미국인들에게 너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으면 질색하며 ‘난 노동조합형 인간이 아니야.(I'm not unionized guy)' 라고 말한다.

그래서 트럼프가 당선됐는지도 모르겠다. (웃음)

 

청중 질문

교수님이 한국의 마르크스 연구자(특히 이 자리에 모인 MEGA 연구자)들에게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해준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 좋은 질문이다. 한국의 마르크스 연구를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자료가 없다. 한국에 강연을 오기 전에 찾아봤는데, 정말 하나도 없었다. 번역해서 세계로 그 연구를 알리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또한 마르크스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젊은 피(fresh blood) 양성이 필요하다. 활발한 컨퍼런스 개최 등을 통해 젊은 세대를 유입하길 기대한다.

 

 

참석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이번에는 무스토 교수가 질문했습니다.

 

무스토 교수 질문

마르크스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 있나?

 

- 청년 교육, 취업 문제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활발한 논의, 미래, 나라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면, 1998년 IMF 이후로 그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경향이 낮아졌다.

그에 따라 마르크스 연구도 점차 축소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청년들이 마르크스, 새로운 사상에 대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번 초청 강연회는 무스토 교수와 직접 대화하며 마크르스를 새롭게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또한 국내 마르크스 연구 권위자들의 진행과 함께해 더욱 풍성한 시간이었습니다.

뒤풀이 식사자리에서까지 국내 마르크스 연구자들과 무스토 교수의 열렬한 대화가 오갔는데요.

앞으로 진행될 연구도 기대됩니다.

 

무스토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마르크스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  ->  책 소개 바로가기

불러오는 중입니다...

 

+) 동아대 강연 다음날 이루어진 국제신문 조봉권 기자와 무스토 교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조봉권의 문화현장 <49>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인터뷰

마르크스 재조명 세계적 열풍 … 우리는 ‘진짜 마르크스’를 모르고 있다

 

 

++) 진주, 부산에서 뵀던 사흘 내내 에너지가 넘치고 소탈했던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님.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타는 시간까지 부산을 더 보고 싶다며 식사를 마다하고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보수동 책방골목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비하인드 컷을 공개합니다. :)

 

 

Posted by 실버_

 

조봉권의 문화현장 <49>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인터뷰

마르크스 재조명 세계적 열풍 … 우리는 ‘진짜 마르크스’를 모르고 있다

 

- 캐나다 요크대 사회학과 교수
- 마르크스 초고·서신 등 모두 담는
- 114권 전집 발간 프로젝트 참여
- 생애 최후 3년 분석 저서도 발간

- “말년에 연구 중단 소문은 오해
- 지적영역 확대하며 치열한 검증
- 식민주의에 관한 자기주장 철회
- 경제적 예정·결정론도 비판

- 불평등 심화·저성장 등 현 위기
- 그를 보면 해결책 찾을 수 있어”

한국에서 지금 마르크스(1818~1883)를 이야기한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누가 못 하게 말려서 그런 게 아니다. ‘별로 인기 없는 일’로 여겨져 그렇다. 체 게바라, 호찌민 같은 혁명가는 재조명되고 인기도 얻는 한국에서 그들의 ‘원조’ 격인 마르크스는 ‘배울 것 별로 없는 한물간’ 사상가쯤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 이념 장벽도 여전하다.

그는 세계를 통째로 온전히 파악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대범하고 철저하며 까칠한 태도로 자기 사상을 실천했다. 그런 점에서 맹자, 한비자, 묵자 또는 사마천 등과도 비견할 만한 점이 있지 싶은데, 마르크스를 다루는 인문학 강좌는 좀체 찾기 어렵다.

그런 사이, 세계 곳곳에서 ‘마르크스 재발견’ ‘마르크스에게로 귀환’이라는 흐름이 폭넓게 형성됐다. 관련 학술대회에 젊은이 수천 명이 몰리고, 언론은 그를 재조명했다. 대학 교육 과정에 채택되고 국제회의에서도 다뤄진다. 저작뿐 아니라 그간 출간되지 않았던 각종 초고와 예비노트, 서신, 발췌문 등을 방대하게 실은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모두 114권 출간 계획으로 현재 65권이 나옴) 발간 작업이 국제적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 새롭게 발굴한 자료 폭넓게 연구

왜 이런 걸까? 캐나다 요크대 마르셀로 무스토(43·사회학과) 교수를 만났다. 그는 현재 ‘MEGA’ 발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그의 책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1881~1883년의 지적 여정’이 부산의 산지니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책은 오해로 점철된 마르크스의 인생 말년의 학문·사상·삶을, 그간 묻혀있다시피 했던 초고·서신·발췌문·노트 등을 연구해, 재발견하고 새로 정리하며 기존 해석을 쇄신한다. 현재 세계 10여 개 나라에서 번역·출간돼 있다.

그는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 경상대 SSK 연구팀-포스트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혁신, 정치연구소 대안, 산지니출판사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 지난 13, 14, 18일 각각 진주, 부산, 서울에서 강연했다. 마르크스는 왜 오늘의 세계로 귀환하는 것일까? 우리가 몰랐던 마르크스의 면모는 어떤 것일까?

무스토 교수는 이 말부터 했다. “마르크스가 말년에 지적 호기심이 줄고, 연구를 그만둔 것으로 오해하는데, 아니다.” 무스토 교수의 책 자체가 마르크스 생애의 마지막 3년에 집중한 책이다. “그는 그 시기 인류학, 수학, 지리 영역 등으로 학문적 관심을 확장합니다. 그러면서 그간 자기가 수행한 연구가 이치와 현실에 맞는지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고 돌아봅니다.”이런 태도는 학자라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지 않았는데도 ‘말년에 들어 연구를 중단했다’는 식의 오해와 편견에 덮여버린다면 이건 거의 치명타 수준이다. 한 사상가 또는 학자를 총체로서, 제대로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간 접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마르크스 말년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존 해석을 쇄신한 무스토 교수의 주장은 의미가 크다.


■ 30대 마르크스가 전부 아냐

   
대화를 나누는 무스토(오른쪽) 교수와 조봉권 기자. 무스토 교수는 7개 언어를 말하고 쓰면서 국제적인 학술 활동에 힘쓴다.

그는 계속 사례를 들었다. “‘오리엔탈리즘’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가 1979년 마르크스를 ‘오리엔탈리즘(동양에 관한 서구인의 편견과 왜곡) 주의자’로 규정하는 글을 썼다. 마르크스가 35세 때 쓴 짧은 글(article)을 보고 쓴 것으로 ‘영국의 인도 지배에는 (생산력 발전에서) 긍정적 측면도 있다’는 요지였다. 그러나 말년에 접어들면서 마르크스는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알제리, 이집트 등으로 연구의 지리적 영역을 확대하면서 이를 부정한다.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파괴적 측면이 더 많은 위기, 가난, 기아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는 유럽 중심주의자가 아니다.”

사례는 매우 많았다. 몇 개만 더 들어본다. 무스토 교수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와 매우 긴밀하게 관련되는 이슈도 여러 가지 있다”고 했다. “이미 그때 마르크스는 생태 이슈에도 관심이 높았다”고 소개했다.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주의 생리를 연구한 결과, 자본주의는 착취라는 문제뿐 아니라 생태·환경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란 점에서도 위협이라고 경고했다는 설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류학 연구를 바탕으로 성(gender) 평등과 여성해방을 강조했고,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증진하는 사회를 모색한 점도 말년의 마르크스가 확실히 내보인 특징이다.

그렇다면, 무스토 교수가 ‘진짜(real) 마르크스’라고 표현한 진면목은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왜 마르크스는 경제학만 고수하면서, 경제가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결정주의를 주장했고, 역사는 단선적으로 순서대로 ‘외길’로만 발전한다는 식의 학설을 펼친 것으로 잘못 인식될까? 무스토 교수는 “마르크스에 관한 이해가 소비에트의 교과서와 매뉴얼에 갇혔고, 많은 경우 그의 연구를 제대로 읽지 않고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맥락에 맞춰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마르크스는 예정론·결정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가 ‘역사적’(절대적 존재가 아니며 역사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뜻) 실체임을 주장했다. 그는 ‘내 이론은 모든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다’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 학술 행사에 젊은이 5000명 몰려

   

이제 ‘오늘의 세계’로 무대를 옮길 차례다. 세계 곳곳에서 최근 일어난다는 ‘마르크스 재발견’ 현상은 왜 등장한 것일까? 그는 이 질문에 진지하게 “불평등은 극심해지고, 합의와 소통에도 위기를 맞은 현재의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다. 물론 2008년 닥친 세계 경제위기가 큰 계기가 됐다”고 답했다. “현실적 측면은 있다. 억압적이고 나빴던 현실 사회주의를 실제로 겪은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나라에서 마르크스 재발견은 이야기하기 어렵다. 북한과 대치한 상태에서 프로파간다로서 마르크스를 접했던 한국도 비슷하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대안 모색으로서 ‘재발견’ 흐름은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다. 참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체험담을 들려줬다. “보수 정권이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마르크스 관련 콘퍼런스를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하고 물었더니 관계자는 ‘지금껏 500~600명이 최대 규모였다’고 답했다. 그런데 당일 젊은이 5000명이 몰려들었다.”

   

글로벌 경제 체제에 강하게 연계된 한국 또한 고용 증발, 청년실업, 저성장, 포퓰리즘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여기에 관해 무스토 교수는 명쾌했다. “세계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나라마다, 사회마다 저마다 구체적인 맥락이 있으니 이를 잘 살펴야 한다. 종교처럼 마르크스주의를 대하거나 교조적 독단(dogmatism)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방법론으로, 해결의 방안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는 “마르크스 하면 ‘공산당 선언’을 떠올리는데 그건 그가 30세 때 쓴 글이다. 그 뒤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바뀌었다. 우리 사회 또한 완연히 달라졌다”며 고정관념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 구체적으로, 새롭게 볼 필요를 강조했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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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0점
마르셀로 무스토 지음, 강성훈.문혜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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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무크 제1호 '다시 지역이다' 출간


5·7문학협의회의 정신을 기리고, '5·7의 마음'을 오늘의 지역문학에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지원으로 삼겠다는 활동이 시작됐다. 5·7문학 무크 제1호 '다시 지역이다'(사진)가 산지니출판사에서 최근 나왔다. 무크는 부정기간행물을 뜻한다. '다시 지역이다'를 기획하고 엮은 편집위원은 강동수 소설가,구모룡 문학평론가, 최영철 시인이다. 5·7문학협의회는 소설가이자 민주화운동가 요산 김정한 선생이 주도해 1985년 5월 7일 부산에서 결성한 문인단체이다. 구성원은 모두 부산의 문인이었다. 군부독재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출범한 이 문인 결사체는 민주화운동에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부산작가회의의 뿌리가 됐다. 무엇보다 여기 참여한 문인들은 저항도 했지만, 작품도 잘 썼다. 이렇듯 뜻깊은 참여와 창작의 전통과 정신을 오늘의 지역문학현장으로 가져와서 살리자는 것이 이번 무크지 '다시 지역이다' 발간에 담긴 뜻이다.

편집위원 세 사람은 '1980년대 이후의 문학과 지금-이곳의 문학이 갈 길'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갖고 내용을 책에 실었다. 이 대화는 '5·7문학' 지향과 활동 방향을 보여준다. "전지구적인 위기를 감지하는 곳도 여기고 그래도 놓을 수 없는 희망을 건져올리는 곳도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최영철)

"그것은 피상적인 관념이 아닌 실체요, 구체라는 점에서 지역은 늘 저에게 처음을 되묻고 현재의 당면한 문제를 감지하고 돌파하게 하는 힘의 원천입니다."(최영철)

"5·7문학은 지역성에 토대를 두면서 우리 시대의 화두를 리얼리즘 정신 속에서 새로이 제기하는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강동수)

"문학이 구체를 놓치고 추상과 관념을 경배할 때 자기도 모르게 세계의 속박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구모룡)

"그렇다면 답은 다른 방법으로 찾아야 하는데 그 답이 저는 예전과 같은 소집단 운동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문학은 그렇게 다시 가난해지고 다시 외로워져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문학의 하향 평준화를 막는 것이 가장 시급합니다."(최영철)

이 책에는 조성래 조향미 성선경 이응인 성윤석 등의 신작 시, 조갑상 강동수 정영선 허택 소설가의 신작 소설, 최영철 시인론(허정 평론가)과 윤정규의 '얼굴 없는 전쟁' 비평(전성욱 평론가) 등을 실어 새 기운과 읽을거리를 다 갖췄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5-08

원문 읽기

다시 지역이다 - 10점
5.7문학 편집위원 엮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한비자를 만나세요, 당신이 세상의 乙(을)이라면


- 기존에 출간된 책보다 매끄럽고 쉬운 번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 한비자는 처세술이 아닌 경영학+정치학의 통치술
- 특히 사회에 나가기 전인 청년에 일독을 권합니다

고전학자 정천구(49) 박사를 부산 금정구 남산동 연구실 겸 자택에서 지난 19일 만나자마자 평소의 의문부터 털어놓았다.

   


'한비자' 번역본을 펴낸 고전학자 정천구 박사가 한비자의 사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본지에 연재한 기획시리즈에 바탕을 둔 단행본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도 함께 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재작년 이른바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들썩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사건의 장본인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일찌감치 '한비자'를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하곤 했는데요."

커피콩을 가는 수동 커피그라인더를 돌리던 정 박사가 대답 대신 요즘 우스개를 하나 들려준다. "어떤 청년에게 꿈이 뭐고, 그 꿈을 이루는 데 어려운 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재벌 2세가 되는 게 꿈인데 아빠가 노력을 안 해요'라고 답하더랍니다." 참 절묘한 농담이다.

곱게 간 커피가루에 물을 부어주면서 정 박사가 덧붙인다. "한비는 전혀 다르게 말하죠.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는 있어도 능력은 물려받을 수 없다. 필요한 덕목을 터득해서 네가 1세가 되라, 네 삶의 군주가 되라 하는 메시지와 내용이 '한비자'에는 있지요."

요약하면, '한비자'를 쓴 중국 전국시대(거의 2500년 전이다) 법가 사상가 한비가 땅콩회항의 현장을 봤다면, "그렇게 공부하라고 했건만…"하고 혀를 찼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물론, '한비자'에서 배울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비자'는 훨씬 풍부하고 깊고,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현실감이 높다. '한비자'는 2500년 세월을 거치며 강철처럼 단련되고 엄정하게 검증받은 책이다.

■거칠지 않게 어렵지 않게 번역

정천구 박사는 최근 산지니출판사에서 '한비자' 완역본을 펴냈다. 한비자를 전면에 내세워 현대 한국사회의 현실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도 같은 출판사에서 함께 냈다. '한비자,제국을 말하다'는 지난해 3월~8월 국제신문에 연재한 글을 다듬어 엮은 책이다.

그는 비중이 크고 중요한 책을 꾸준히 번역하거나 저술했다. 저서로 '삼국유사, 바다를 만나다' '맹자독설', 번역서로 '차의 책' '동양의 이상' '원형석서' '일본영이기' '밝은 마음을 비추는 보배로운 거울-명심보감' '삼교지귀' '모래와 돌' '베트남 선사들의 이야기' 등이 있다.

그의 저서 가운데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맹자, 시대를 찌르다' '중용, 어울림의 길'은 고전 주해서로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동양 고전을 깊이 읽고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한비자'가 그 흐름을 이었다.

"다른 연구자의 번역서가 나와 있는데, 정천구 번역본 한비자를 다시 내신 뜻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그는 답했다. "한비자 전체를 번역한 책은 현재 시중에 4종 정도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런데 대체로 번역이 거칠고 상그러워요. 대학생 이상이면 읽는 데 어려움이 없는 번역서가 필요하다고 봤지요." 정 박사는 "그리고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게 아니라 옮기는 이의 해석과 시각과 역량이 담기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내내 한비자 주석서가 안 나온다. 비교적 근래까지 한비자에 관한 관심이 없었다. 일본만 해도 에도시대에 한비자 주석서가 쏟아져 나왔고 권위 있는 책도 많다. 이런 사정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명세에 비해 한비자 번역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았다.

■제자백가 책은 고루 읽어야

   

그가 한비자를 새로이 공들여 번역한 뜻은 또 있다.

"기존 한비자 번역서에는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사상이 유가사상과 단순하게 대립하고 배척만 한 것으로 이해하는 면이 있죠. 유교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고, 그러다 보니 유가와 법가의 관계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 박사가 볼 때 둘 사이의 관계는 훨씬 긴밀하다.

법가의 거물로, 진시황이 완성한 천하통일의 바탕을 마련한 상앙은 당시 유가를 비판하면서 법가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상군서'라는 책으로 남겼다. 유가의 거목 맹자는 이런 '상군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비판하면서 자기 사상을 펼친다. "불교사상이 없었다면, 성리학이 성립할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하게 법가와 유가의 관계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데가 있었죠."

이는 정천구 박사가 강조하는 고전 공부법의 요체로 이어진다. "함께 읽어야 해요." 한비자를 비롯한 제자백가는 '나는 논어가 좋아' '그럼 나는 맹자' 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제대로 배울 수 없고 고전공부에서 아주 중요한 균형감각까지 못 갖추기 십상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세상 살기 어렵다고 노자와 장자에만 빠져들면 도피로 흐르고, 법가만 파고들면 각박해질 수 있겠다. 실제로 에도시대부터 한비자에 열광한 일본은 국가 발전을 앞당기는 데 성공하지만, 그 뒤 침략적 제국주의로 흘렀다. 조선은 법가와 유가가 균형을 이룬 전기에는 융성했으나, 성리학과 관념론에 빠져버린 조선 후기에는 참혹했다. 정 박사는 '한비자' 또한 '논어' '맹자'를 비롯한 여러 제자백가의 책과 함께 볼 것을 권했다.


■당신이 을이라면 한비자를 읽자

'한비자'의 문장은 간결한 아름다움이 있다. 상당 부분이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권력과 정치의 속성과 본질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2000년이 지난 지금과 하나 다를 게 없어 간담이 서늘하고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다.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한국 정치 현장 이야기처럼 생생하고 현실감이 강하다.

망징(나라가 망할 징조) 팔간(신하의 여덟 가지 간사한 짓) 십과(군주의 열가지 허물) 세난(유세의 어려움) 간겁시신(간사하고 겁주고 시해하는 신하)…. '한비자' 자체가 강한 책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한비자'는 인간사회의 관계를 힘(권력)의 관계로 보고 이를 활용하고, 여기서 살아남고, 번성하고, 안정되는 법을 논한다.

"그러므로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경영학과 정치학을 아우른 통치술이지요. 조직 위계에서 아래 쪽에 있는 분들, 갑을관계에서 을인 분들은 반드시 읽어야죠. 그래야 안 당하죠. 20대 청년들도 사회에 나가기 전에 꼭 읽기를 권합니다. '한비자' 속에는 일화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논어 맹자 등 다른 책과 함께 읽을 때,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책이다. 


# 고전학자 정천구와 그가 말하는 인문학

정천구 박사는 부산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부산 동구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에서 도덕경을,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사상구 사상평생학습관에서 맹자를 강의한다. 이 두 군데에서 강의하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책 쓰고, 노니는 삶을 산다.

그는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거나 가르치려면 "장기 강의는 필수"라고 잘라 말한다. 그 자신이 강사로서 한비자 84주, 맹자 60주, 중용 36주, 순자 32주를 강의했다. 현재 하고 있는 맹자는 96주 진행했다. 드문 장기 강의이다.

좋은 인문학 강의는 진지하게 이뤄지며, 수강생에게 배우는 재미와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해준다. 정 박사는 이렇게 의견을 밝혔다."적어도 인문학 공부라면 1회성 강의나 특강은 보람과 효과를 느낄 수 없다. 80주에 걸쳐 해야 할 공부를 단 두 시간에 듣는 것은 '나도 안다'는 착각만 조장한다. 공부의 효과는 단숨에 얻을 수 없다. 꾸준히 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길이 없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 인문학의 참맛을 느낀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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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 10점
한비 지음, 정천구 옮김/산지니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 - 10점
정천구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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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개와 천둥' 현지어로 출간




부산 문단의 원로 이규정(79) 작가가 지난해 펴낸 역사장편소설 '번개와 천둥'이 최근 몽골어로 번역돼 몽골 현지에서 출간됐다.

소설가 이규정 씨는 "경남 함안 출신의 의사이자 독립운동가 대암 이태준(1883~1921)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번개와 천둥'의 몽골어 번역판이 지난 3월 몽골에서 출간됐다"고 18일 밝혔다. 번역은 울란바토르대 강사이자 총장 비서인 다쉬체벨마 씨가 했다.

산지니출판사에서 나온 '번개와 천둥'은 대암 이태준의 불꽃 같은 삶을 생기 넘치는 문체로 되살린 역사인물소설(본지 지난해 3월 14일 자 14면)이다. 이태준은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서 태어났다. 세브란스 의학교(현재의 연세대 의과대학)를 졸업한 이태준은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에 눈을 뜬다. 중국에서 활동하다 1914년 몽골로 가게 된 그는 몽골을 휩쓸던 성병을 퇴치해 몽골 민중의 사랑을 받는다.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로 활약했으며, 이 나라 최고 훈장까지 받은 그는 현지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1921년 러시아 군대(백군)에 의해 피살된다. 38세에 타계한 그를 기리는 이태준 기념공원이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다.

'번개와 천동'의 몽골어 번역은 안경덕 몽골종교문화연구소장이 주도했다. 안 소장은 "한국과 몽골의 문화교류 확산을 모색하던 중 대암 이태준 선생의 삶을 몽골에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마침 이규정 선생의 '번개와 천둥'이 있어 지난해부터 번역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이태준 선생의 모교인 연세대 의대의 기독교인 교수님들이 번역 사업 취지를 높이 사 재정적 도움을 주었다"며 "초판은 500부를 찍었는데 앞으로 몽골의 각급 학교에서 독후감 대회를 여는 등 이 책의 보급과 활용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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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와 천둥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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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평범한 장면 속에서
- 명퇴 앞둔 50대가 읊조리듯
- 삶의 회한 시적 언어로 버무려

삼복 더위로 푹푹 찌는 여름날 친구 다섯이 오랜만에 만나 보신탕집에 갔다. 이 집 메뉴는 삼계탕과 보신탕, 단 둘이다. 연신 들이닥치는 손님으로 바빠 죽을 것 같은 보신탕집 주인장은 빨리 주문부터 받느라 이렇게 외친다. "여기 개 아닌 사람 손 드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주인장은 확인한다. "다섯 명, 모두 개 맞죠?"

   



여덟 번째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씨'를 최근 펴낸 성선경 시인.

무신경하게 들으면 우스개, 애견인이 하면 저주가 섞인 꾸지람이 될 이 장면을 명퇴했거나 명퇴를 앞둬 약간 쓸쓸한 느낌도 없지 않은 오십대가 소개한다면? 시인 성선경의 시에서 이 촌극은 웃기고 쓸쓸한, 좀 후줄근하지만 미워하기 힘든 삶의 한 장면이 된다. 이 장면을 담은 그의 시 '녹피(鹿皮)에 가로 왈'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다섯 명 모두 개가 되었는데 / 개를 먹으러 갔는데 / 멍멍 짖지 않는 뚝배기 / 줄줄 땀 흘리는 숟가락.'

성선경(56) 시인은 시와 우리가 '친구'가 되게 해준다. 깍쟁이 같은 친구 말고, 옆에서 다 지켜보면서 눈물 콧물 닦아주던 속 깊은 존재로 시를 독자의 삶 가까이 끌어당겨준다. 요즘 같은 세태에 이런 능력과 성의는 드물고 귀하다.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산지니 펴냄)'는 경남 창원시에 살며 마산무학여고 교사로 오래 일한 성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2003년 펴낸 시집 '서른 살의 박봉 씨'에선 서른 살 박봉 씨를 주인공으로 삼았던 그가 이 시집에선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를 내세웠다. 물론, 명태 씨는 명퇴(명예퇴직)와 겹친다. 명태 씨는 진짜 열심히 살았다. 근데 돌아보니 허무나 회한 같은 심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적금 타자 아들이 이사를 하고 /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고 / 장롱이며 침대며 다 있는데 / 냉장고가 고장이 나고…'('복사꽃 지자 복숭아 열리고' 중)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는데 / 꽃피는 봄날에 / 계란 몇 개 깨어버렸네 / 그냥 두었으면 병아리가 되었을 / 닭이 되었을, 닭이 되어 / 알을 낳았을, 알을 품어 / 병아리를 오종종 오종종 / 거느리고 다녔을, 어미닭이 되었을 / 계란 몇 개를 깨어버렸네'('봄밤에 시를 쓰다' 중)

진하게 달인 반성도 오십대 명태 씨를 찾아온다.

'밥벌이는 밥의 벌(罰)이다 / 내 저 향기로운 냄새를 탐닉한 죄 / 내 저 풍요로운 포만감을 누린 죄 / 내 새끼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겠다고 / 내 밥상에 한 접시의 찬이라도 더 올려놓겠다고 / 눈알을 부릅뜨고 새벽같이 일어나…'('밥罰-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중)

명태 씨는 지나온 삶을 더듬고 다듬으면서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를 채웠다. 시가 우리의 친구가 되게 해주는 시인 성선경의 능력과 성의가 새삼 귀하게 다가온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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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10점
성선경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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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세번째 단편소설집 출간


- 부산서 30년 살다가 보성 이주
- 구수하고 걸쭉한 입담이 매력

단편소설에서는 첫 대목의 힘이 중요하다고 흔히 말한다. 소설가 정형남(69·사진)은 그런 힘을 잘 아는 이야기꾼이다.

"계시오?" "왜, 또?" "워메, 답답해서 사람 똑 미치것소." "뭔 일인디?" "좀 들어 보시오. 말이 통하나, 입맛이 맞나, 생활습관이 맞나, 사람 환장하것소. 천불이 나요, 천불이…." "국제적으로 장벽이 높단 말이여?" "높고 낮은 정도가 아니요. 이건 갈수록 엉망진창이요."(소 쌀밥 첫머리)

"저, 청승 좀 보게." "누가 아닌가. 허구헌 날 실꾸리 되감듯 하는 저놈의 노랫소리도 신물이 날 만도 한디." 오일장을 보러 온 노인네들이 포장마차에서 대낮부터 술잔을 나누며 혀를 찼다.('무넘이재' 첫머리)

첫머리가 이렇게 구수하고 능숙하게 나오면, 독자는 '무장'이 해제되면서 이야기 속으로 슥 빨려들어가기 십상이다. 물론 좀 고전적인 묘사로 시작하는 작품도 있지만, 정형남(사진) 소설가의 새 소설집 '진경산수'(해피북미디어 펴냄)에 나오는 8편은 진입 장벽 없이 독자를 얘기 속으로 데리고 가는 힘이 넉넉하다.

전남 완도군의 작은 섬 조약도에서 태어난 소설가 정형남은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뒤로 부산에서 30년여 년 살며 소설을 썼다. 그에게 제1회 채만식문학상을 안긴 6부작 장편소설 '남도', 5권짜리 '여인의 새벽', 화제가 됐던 구도소설 '천 년의 찻씨 한 알' 등 많은 작품을 그는 부산에서 써냈다. 몇 해 전 그는 전남 보성으로 거처를 옮겨 계속 소설을 쓰고 있다.

   

부산의 많은 동료 작가에게 '그리운 정형남'이 된 그는 그런 옛 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은 전남 보성을 중심으로 시골과 작은 도시를 무대로 한 작품을 써왔다. '진경산수'라는 제목으로 펴낸 세 번째 단편소설집인 이번 책이 그렇다. 한국의 정서와 미감을 간직한 공간으로서 섬과 시골,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가버린 사람과 사연, 그런 사람과 사연을 떠올리며 회한과 맞닥뜨리는 오늘의 사람들이 소설을 수놓는다. 전남 화도(花島)에서 오래 전 있었던 사랑 이야기를 회한 속에 떠올리는 '꽃섬', 깊은 산 속의 얼음계곡 숨겨진 일제강점기의 비극에 우연히 맞닥뜨리는 현대의 세 사람을 그린 '사금목걸이' 등을 실었다.

작가는 아등바등 기교를 부리려 하지 않고, 어찌 보면 무심해 보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순한 호흡으로 문장을 밀고 간다. 진경산수란 이런 연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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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 - 10점
정형남 지음/해피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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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복 17년만에 장편소설 '칼춤', 밀양검무·현대사 아픔 등 담아


- "사회 대통합 갈망하며 집필"



소설가 김춘복(78) 선생이 실로 오랜만에 펴낸 장편소설 '칼춤'(산지니출판사·사진)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밀양검무의 원형부터 감상해 보자. 김춘복 작가가 '칼춤' 속에서 인용한 박제가(1750~1805)의 '검무기' 중 한 대목이다.

"두 기생이 칼춤을 춘다. 융복 입고 전립 쓴 채 잠깐 절하고 돌아서 마주 본다. 천천히 일어나는데, 귀밑머리는 이미 거두어 올렸고 옷매무새는 단정하다. 버선발 가만히 들어 치마를 툭 차고는 소매를 치켜든다. 칼이 앞에 놓였건만 알은척도 하지 않고, 길고 유연하게…"(256쪽)

김춘복 소설가는 밀양에 산다.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중, 부산고를 나왔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59년 '현대문학'에 처음으로 추천됐으나, 제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6년 '쌈짓골'을 '창작과비평'에 연재하면서부터다. 고향 밀양을 지키며 살아온 그에게 '칼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전화를 드렸다. 그의 전화기 컬러링 음악은? 그렇다! '밀양아리랑'이었다.

그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에 걸쳐 '꽃바람 꽃샘바람' '쌈짓골' '계절풍' 등의 장편소설과 중단편집 '벽' 등을 내면서 활발하게 쓰면서 독자와 만났다. 그 뒤로는 좀 뜸했다. '칼춤'은 '꽃바람 꽃샘바람'을 낸 뒤로 17년 만에 펴내는 장편소설이다.

   

"우리 사회의 '대통합'을 갈망하면서 쓴 소설이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탈고와 출간까지 10년 정도 걸렸군요." '칼춤'은 언뜻 조선시대 밀양 출신의 이름 난 기생 운심과 밀양검무에 관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운심은 예술기량이 탁월해 밀양에서 한양으로 불려올라가 활동하는데 연암 박지원과 초정 박제가의 글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했다. 운심의 장기가 밀양검무였다.

그런데 '칼춤'은 밀양검무 자체에 집중하는 예술소설은 아니다. 소설에는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부터 2000년대까지 30년 세월이 밀양 서울 부산을 오가며 실감 나게 펼쳐진다. 등장인물도 다채롭다. 주인공 준규는 밀양에 사는 소설가로 기생 운심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있다. 젊은 날, 독재에 저항하며 진지하게 고뇌하고 '데모'에도 뛰어든 그에게는 잊지 못할 첫사랑이 있다. 서울에서 춤을 가르치며 사는 은미다. 둘은 사랑하다 서로의 집안이 이념에 얽힌 '원수'임을 알게 되고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두 사람의 사랑과 갈등은 시대의 아픔, 사회의 좌우 대립으로 확장되면서 질기게 이어진다. '칼춤'은 이토록 질기고, 알고 보면 헛된 이 원한과 갈등을 이제는 풀자는 해원(解寃)의 염원을 품었다. 이런 주제의식은 밀양 상동면 신안마을의 꿀뱅이바위에 실제로 있다는 운심이묘의 고유제 장면이 강렬하게 상징한다.

길고 긴 길을 돌아 이렇게 해원과 신생(新生)에 닿고자 노작가는 밀양검무와 운심이, 독재와 저항의 시대에 관한 기억, 겉도는 보수와 진보, 최면·빙의·전생 등 심령의 세계까지 넘나든다. 걸림 없이 자유롭게 다양한 영토를 오가며 진정한 화합을 꿈꾸는 넉넉한 품, 오랜만에 작가 김춘복이 내놓은 '칼춤'의 힘이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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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 10점
김춘복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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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푸춘, 새벽 4시' 등 7편 수록…삶·사회 돌아보게 하는 힘

- 본지 2006년 신춘문예 출신




소설가 조미형(사진)이 첫 소설집 '씽푸춘, 새벽 4시'(해피북미디어)를 펴냈다.

정신 못 차리게 몰아친다고 할까. 편한 자세로 누워서 읽다가, "뭐야…?" 하는 신음 소리를 내며 일어나 자세를 고쳐 읽게 하는 힘을 '씽푸춘, 새벽 4시'는 지녔다. 어둡고, 절망의 색조가 짙은 세상에서 출구를 찾아 몸부림치는 인물이 나오는 장면을 홍콩 누아르 영화에서 보곤 하는데, 그런 거친 호흡과 눅진함이 있다. 그런 묘한 질감과 호흡이 우리 삶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수록 작품 7편 가운데 강렬한 인상으로 치자면 표제작인 '씽푸춘, 새벽 4시'를 먼저 짚게 된다. 이 책에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황국명(인제대) 교수는 "타인을 위한 희생이나 미래를 위해 아낌없이 자기를 버리는 혁명조차 무색하게 만들 세계의 비정성이 나를 압도하였기" 때문에 '씽푸춘, 새벽 4시'는 인상 깊다고 했다.

부푼 희망과 약간의 허영을 품고 중국에 투자해 현지에 화장품 공장을 차린 40대 한국인 사업가는 한순간 사기와 실수로 모든 것을 날린다. 악마 같은 사채업자 장두목 일당에게 넘겨진 이들 부부가 밀려간 곳은 중국 내륙 소도시 통링. 이곳에서 짐승의 가죽을 벗겨 무두질하는 희망 없는 노동에 시달리고 아내는 곤욕을 치른다.

살아있는 짐승의 가죽을 무심하게 벗겨 가공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은 아무 희망도 의미도 갖지 못하는 반항을 시도하다 처참하게 얻어맞고 동네 술집촌인 씽푸춘(행복촌)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나비를 보다'는 지하를 직렬운행으로 달리는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노동과 삶을 그린 문제작이다. 지상과 대별되는 땅밑이라는 공간에서 정해진 길로 앞으로만 달려야 하는 기관사들의 처지가 절묘하게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의 삶과 대비된다.

등단작 '다시 바다에 서다'를 비롯해 '우리끼리 안녕' '스노우 트리' '잉커송', 역사물인 '연지연 꽃이 피면'도 이국적이거나 색다른 느낌으로 작가의 일관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으로 등단한 조미형 소설가는 등단 10년 만에 펴낸 첫 소설집으로 강한 존재감을 지역 문단에 알렸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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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푸춘, 새벽 4시 - 10점
조미형 지음/해피북미디어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잠홍 편집자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엄청난 추위였지요? 무사히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지니가 있는 부산 거제동은 체감온도 -14도,

비교적 따뜻한 지역이지만 춥다 춥다 소리를 달고 지내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바람 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바깥은 만주벌판인가 싶다는 분도 계신데요ㅎㅎ

추위가 살-짝 누그러진 어제,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에 다녀왔습니다.


왼쪽부터 강이라 소설 부문 당선자, 이명우 시 부문 당선자, 차승민 국제신문 사장, 최정연 시조 부문 당선자, 도희주 동화 부문 당선자.


국제신문 조봉권 기자님



시, 단편소설, 동화, 시조 부문으로 구성된 국제신문 신춘문예는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국제신문 문화부의 조봉권 기자님께서 행사를 진행해주셨고,

각 부문의 심사위원단 중 대표자이신 분들께서 심사평으로 올해 응모작들과 당선작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올해의 당선작들에 대한 전체적인 평은 "사람의 숨소리, 사람 냄새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삶의 결이 느껴지는 생동감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당선작들을 잠시 만나보실까요.


/ 시 / 

스티커

이명우


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뜯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붙는 스티커를 뜯다가

스티커 뜯기를 멈추고 산동네를 떠났다

멈추고 떠날 때는 다 지운 것이어서

지운 것은 없는 것이어서

없는 여기 산동네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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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남송우 심사위원, 박남준 심사위원, 안상학 심사위원. 사진출처: 국제신문


올해 시 부문 응모작 중에서는 이미지의 조형, 구성의 유연함 등에서 

상당한 수준에 다다른 작품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명우 작가의 <스티커>는 삶의 현장에 가까이 있어 

시가 "손재주에서 그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에 돋보였다고 하셨습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당선자 이명우 시인께서는 "우연히 시를 접하고 10년 간 써왔다"며

"그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편소설/

강이라

벌써 몇 분째였다. 수진은 욕실 앞에 엎어져 있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고 머리는 바닥에 처박은 채였다. 꺽꺽, 마른 울음이 목구멍을 할퀴며 넘어왔다. 바짝바짝 침이 말랐다. 풀썩 꺾인 무릎으로 타박의 고통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욕실용 슬리퍼가 발가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전 세입자가 버리고 간 누런 아이보리색 슬리퍼의 지압용 돌기마다 거무스름한 물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나머지 한 짝은 보이지 않았다. 목이 잔뜩 늘어난 양말이 발바닥까지 밀려 내려가 있었다. 허옇게 튼 뒤꿈치가 앙상하게 도드라졌다. 발목이 선듯했다. 냉기가 온몸으로 번져 올랐다.


그것은 쥐였다. 사과 씨처럼 작고 까만 눈을 가진 잿빛 털의 새끼 쥐였다. 그렇다고 큰 귀가 사랑스러운 미키, 미니 마우스는 아니었다. 어수룩한 톰을 괴롭히는 앙큼한 제리도 아니었다. 해묵은 기름기가 켜켜이 앉은 중화반점 환기통을 요리조리 쑤시고 다니며 살모넬라균을 옮기고 몸통을 채 보기도 전에 긴 꼬리의 흔적만 남기고 날쌔게 내빼버리는, 이름 그대로 시궁쥐였다. 어릴 적 수챗구멍 바깥으로 삐죽이 나온 꼬리를 고무줄인 줄 알고 잡아당기다 까무러치게 놀란 뒤로 수진은 쥐 소리만 들어도 기겁을 했다. 그 쥐가 저기, 욕실에 있었다. 욕조 가득한 물 위로 노랑 바가지를 타고 표류하고 있었다. 바가지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뒤집힐지도 몰랐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전문 읽기



왼쪽부터 황국명 심사위원, 이순원 심사위원, 정혜경 심사위원, 나여경 심사위원. 사진출처: 국제신문


심사위원 대표로 평을 전해주신 황국명 평론가님은 

예술을 반구대 암각화와 비유하시면서 

암각화를 그린 사람들이 높은 위치, 깊은 동굴이라는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그림을 만들었듯

목숨을 걸고 하는 절실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당선자 강이라 소설가님은 1년 전 이맘때쯤 당선작을 쓰고 계셨다고 합니다.

12월 31일 밤에 무심코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검색해보다 

당선작품과 자신에 대한 기사를 보았고, 그렇게 2016년을 맞이하셨다고 합니다.

"좀 더 제대로 써보라고 주는 상이라 여기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조/

물의 독서

최정연


물 아래 달을 봐라

콸콸한 문장이네

몇 개의 모음들이 괄호 밖에 흘러넘쳐

지금은 은어가 오는 시간,

달빛공지 띄우라네


산란하는 조약돌도 물 소리 헤이는 밤

오십천 수면 아래

무슨 등불 켜두어서

뜨거운 이마 짚으며

다상량의 달을 보나


수심 찬 질문들이 부서지고 또 고여서

물결 책 갈피마다

각주로 박혀있네


내 몸도 출렁, 불려나와

행간의 밑줄 될까



전연희 심사위원(왼쪽), 서태수 심사위원. 사진출처: 국제신문


전연희 심사위원님께서는 

360여 편의 응모작이 있었다고 합니다.

1. 율격 운용의 자질 2. 제재 해석의 참신성 3. 시상의 심화 확장성 4. 정서 전달의 효율성

측면에서 평가하신 후, 생동감 넘치는 신선미가 돋보이는 '물의 독서' 를 당선작으로 뽑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당선자 최정연 님께서는 

신춘문예 마감일 한 달 전부터 밤을 새며 글을 쓰셨다고 하는데요.

밤늦게까지 글을 쓰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불평을 피해 나간 물가에서 이 시조를 쓰셨다고 합니다.


/동화/

굿샷! 쭈글이

도희주


식은 어묵을 먹다 말고 뛰기 시작했어. 검은색 승용차가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거든. 놓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나는 뛰었지.

"저 녀석 또 뛰네!"

그런데 승용차는 경적을 날카롭게 울리며 내 앞을 휙 하고 스쳐 가고 말았어. 한 걸음만 빨리 뛰었으면 바퀴 아래로 들어갈 뻔 했지.

"쭈글아! 괜찮아?"

김밥 아줌마 목소리가 경적소리보다 크게 들렸어. 나도 놀랐지만 김밥 아줌마와 요구르트 아줌마가 더 놀랐나 봐. 두 아줌마는 횡단보도 앞에서 수레에 파라솔 쳐놓고 장사를 하고 있어. 여긴 골프장과 등산로가 있어 늘 사람들이 붐벼.

나는 멀어져가는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봤어. 비슷했지만, 내가 기다리는 차는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이번엔 배달통을 든 오토바이 한 대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내 꼬리를 스치고 쌩 지나가는 거야.

"쭈글이 죽겠다!" 

"저 집에 짜장면 시키지 마!"

쭈글이. 김밥 아줌마가 붙여준 나의 새로운 이름이지. 난 불도그 샤페이 종으로 얼굴과 발에 주름 많은 게 특징이야. 하지만 내 이름은 굿샷. 이곳에서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두 아줌마를 만난 지 한 달이 됐어. 한 달 전엔 넓은 마당에 퍼팅 연습 홀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이층집에서 살았지. 외출 때는 예쁜 신발을 신었어. 선택된 개만 간다는 애견유치원도 다녔고. 그런데 여기서 뭐 하냐고? 나도 그게 궁금해. 어느 날 주인이 이곳에 나를 내려놓고 가버렸어. 그게 다야.




배익천 심사위원(왼쪽), 이동렬 심사위원. 사진출처: 국제신문


동화 부문 당선작 '굿샷! 쭈글이'는 심사위원 두 분께서 한 마음으로 '찍어뒀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동화는 산문이지만 시에 가까운 장르인데,

응모작은 거의 생활동화여서 순수동화가 줄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당선작의 강점으로는 돋보이는 구성과 문장력, 

군더더기 없는 짧은 문장에서 느껴지는 박진감을 매력으로 꼽으셨습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도희주 작가님께서는 여러 동화를 쓰다 그만두기도 했지만 쭈글이만큼은 버릴 수 없어 묵혀두셨다고 합니다.

위암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니며 수없이 동화를 반죽했다고 하셨어요.

아버지께 신문에 실린 당선작을 보여드리니 버리지 말고 간직하라고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왼쪽부터 정혜경 소설가, 남송우 부경대 교수, 강이라 단편소설 당선자, 황국명 인제대 교수, 

이명우 시 당선자, 차승민 국제신문 사장, 최정연 시조 당선자, 전연희 시조시인, 

도희주 동화 당선자, 배익천 동화작가, 이동렬 동화작가, 서태수 시조시인 이십니다. 



신춘문예 시상식에 가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습니다.

첫 시상식에서는 '신기하다'는 느낌이 컸다면 어제는 만남의 기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눈여겨 본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알아본다는 것

그 누군가가 나와 같은 (또는 비슷한) 일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또 이런 만남을 통해 더 많은 읽는 이, 쓰는 이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


오랜 기간 묵혀온 원고, 고독하게 홀로 글을 쓰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당선자 분들의 숨길 수 없는 눈물을 바라보면서 새삼 글쓰기의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구나, 했습니다.

독자와 글쓰는 이를 연결하는 편집자의 기쁨 또한 그런 만남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이쯤에서 머릿속에서는 반사적으로 '연결고리'가 흐르는군요 ~_~)



어쨌든

새 봄에 뵙게 된

강이라, 이명우, 최정연, 도희주 작가님

모두 모두 축하드립니다 :)

앞으로도 꾸준히 건필하시길 빕니다!



Posted by 비회원

산지니출판사가 2005년 창업해 10년 동안 펴낸 300여 종의 책.- 척박한 환경서 '맨땅에 헤딩'
- 업계 좌충우돌 에피소드 담겨

- 그간 펴낸 300여 종 도서
- 지역 관련 콘텐츠 많아 의미 

2003년 12월. 경남 창원에 있는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던 36세 청년 강수걸은 10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그는 그때부터 서울을 오르내리며 출판강의를 챙겨 듣고, 동네에 있던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구상과 고민을 거듭했다.

   
그간 꾸준히 개최한 저자와의 만남 등 출간 기념행사 모습. 산지니출판사 제공

그렇게 1년 남짓 준비해 "2005년 2월 척박한 맨땅에 부딪히는 느낌으로" 산지니출판사는 출발했다. 부산대 법학과를 나와 기업의 구매부서와 법무팀에서 일했을 뿐 책 만드는 일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산 강 대표가 부산에서 출판사를 시작하자 격려 못지않게 걱정도 많았다. 유서 깊은 향토서점의 경험 많은 부장은 이렇게 충고했다. "아무 경험도 없고 연고도 없는 분이 출판사 문 열었다가는 2년을 버티기 힘들 걸요."

최근 부산의 산지니출판사 강 대표를 비롯해 권경옥 권문경 양아름 씨 등 구성원 8명이 함께 쓴 책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에 나오는 장면이다. 이 책의 부제는 '부산 출판사 산지니의 10년 지역출판 생존기'이다.

주위의 걱정 속에 척박한 출판풍토에 부딪히듯 출발한 산지니는 올해 창업 10주년을 맞았다. '산지니 10년'의 의미는 단순히 "2년을 버틸 수 있겠느냐"던 우려를 극복하고 지역 출판사로서 10년 넘게 생존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출판산업 또한 서울·수도권의 독점구조가 강하다. 독서시장은 물론 출판 여건, 출판기획 인력과 자본이 모두 수도권에 편중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출판기획 역량에 체계를 확립하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부산을 담는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활발하게 책으로 펴냈다는 점이 '산지니 10년'이 지역문화에서 갖는 진짜 의미다.

강 대표는 "출판사는 결국 출간도서목록으로 말한다. 산지니가 그간 펴낸 300여 종 도서목록을 보면 지역 관련 책을 꾸준히 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부산 관련 책과 필자의 비중이 높다. 이는 산지니출판사의 정체성이다"라고 말했다.

산지니 10년 생존기에서 매우 상징적인 일은 2005년 출판사로서 첫걸음을 뗄 때 만든 첫 책이 '반송 사람들'(고창권 지음)과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김대갑 지음)이라는, 부산 필자의 부산 책이란 점이다. 그 뒤로 책 300여 종을 만드는 동안 이 같은 '로컬 퍼스트'(지역이 먼저다) 원칙은 산지니의 출판기획을 관통했다.

   

지역을 다루는 책은 시장이 작을 수밖에 없어 산지니는 출판의 기획단계부터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했고 지역 필자 발굴에 필사적으로 나섰다. 이는 새로운 경쟁 흐름을 만들어 지역 출판계에 자극제 구실을 했다. 산지니의 책은 예술 문화 정치 경제 고전 학술 지역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다. 강 대표는 "독자들이 읽고 행복해지는 책, 우리도 출판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책을 꾸준히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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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 10점
강수걸 외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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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적 요소로 스토리 구성

김비 소설가가 최근 펴낸 새 장편소설 '붉은등, 닫힌문, 출구없음'(산지니 출간)은 매우 인상 깊은 전개를 보여준다. 특히 도입부는 읽는 이를 압도한다. 한 번 쥔 책을 여간해선 놓을 수 없을 만큼 이야기가 긴박하고 빡빡하다.

밀리고 밀려 사회의 벼랑 끝에 온 주인공 남수 가족의 상황, 그들 각자의 아픔, 끔찍한 결심에 이르게 된 절박한 처지까지 단번에 드러낸다.

남수는 "LED 패널 공장, 자동차 부품 프레스 공장, 금고를 만드는 회사를 거쳐 택배 일까지 왔는데도" 삶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택배를 하다 허리를 다치고, 빚을 내 구매한 트럭은 고장 나고, 빚을 돌려 막으려고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 아내 지애는 무기력하고, 어린 외아들 환이는 장애가 있다.

   

이곳은 갓 지은 160층짜리 초호화 건물, 화려한 백화점이 있고 첨단 상업시설이 즐비한 곳이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남수가 마음 먹자 아내 지애는 "마지막으로 좋은 곳 한 번"이라고 통사정한다. 그 통에 남수 가족은 160층 건물의 쇼핑센터에 온다.

그런데 남수 가족은 그만 빨간색 출입통제선 넘어 제한구역에 들어서고 여기에 완전히 갇혀버린다. "문도 다 닫혀 있고…층수가 없어. 몇 층인지 적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숫자가 보이질 않아." 호화찬란하던 빌딩은 이들 부부에게 순식간에 절망과 고통뿐인 공간이 된다. 애초에 '죽을 결심'까지 하고 왔던 남수의 머리에 이때 처음 떠오른 생각은 '억울하다'이다.

남수는 아내 지애와 다투고 서로 아픈 곳을 건드려 가면서도 "그 누구도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일직선의 미로"인 이곳을 아래위로 뛰어다니며 살길을 찾아 나선다. 이 모습을 김비 작가는 밀도 높고 능숙하게 그린다.

자신들만 갇힌 줄 알았던 이곳에서 남수 가족은 다른 조난자를 만나기 시작한다. 이들에게서 소문과 정보를 듣게 되고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 자본의 힘을 과시하는 이 빌딩은 서둘러 짓느라 아직 미완성이라는 점. 치명적인 결함을 무시한 탓에 빌딩은 이미 천천히 무너지고 있다는 점. 바깥엔 '열쇠를 쥔 사람'이 있지만 선뜻 갇힌 자들을 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게 된다.

이 장편소설은 상징적인 요소가 선명하고 많아 보인다. 특히, 남수 가족이 처한 상황을 상징으로 읽으면 '여기가 몇 층인지도 모르며, 끝없이 올라가도 닿을 수 없고, 끝없이 내려가도 찾을 수 없는' 숨가쁘고 아득하고 희망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지극히 미세한 모습으로 절묘한 몸짓의 희망이 꼬물대는 모습은 만날 수 있다. 절망을 만날지 희망을 찾을지는 독자 몫이다.

경남 양산에 살면서 부산에서도 꾸준히 활동하는 김비 작가는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하면서 등단해 소설과 에세이를 펴냈고,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트랜스젠더 작가로 잘 알려졌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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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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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시인이 평소 즐겨 찾는 밀양 얼음골 사과밭에서 잘 익은 사과를 들어보이고 있다.


- 등단 30년 맞아 12번째 시집
- 인세 전액 네팔지진 구호 내놔
- "윽박지르지도 요구도 않고
- 독자가 빈 공간 완성하게 해"

"신라 사람들이 지은 10구체 향가를 많이 생각합니다. 10구체 향가가 시를 쓰는 내 마음에 들어와 있어요."

정일근 시인에게 10구체 향가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10줄 안팎으로 짧게 쓰는" 긴장감 어린 형식미가 그 핵심이다. 10행을 채 넘지 않도록, 깎아내고 덜어낸 간결한 시행에서 생기가 돋아나 독자에게 닿는 상큼한 광경을 그는 1000년 전의 향가에서 본 듯하다.

'고추밭에 고추가 달린다. 고추는 주인을 닮는다며 나릿나릿 달린다. 서창 장날 천 원 주고 사다 심은 고추 모종이 달린다. 고추꽃이 달린다. 별같이 하얗고 착한 꽃이 달린다. 어머니에게 나는 첫 고추, 고추꽃 일어 고추 달고 달린다. 은현리에 고추가 달린다. 풋고추가 달린다. 아삭이 고추가 달린다…'(시집 '소금 성자'에 실은 '고추가 달린다' 중)

   

고추가 탐스럽게 열린 모습 같기도 하고, 잘 자란 아삭이고추 꽈리고추들이 은현리 마을을 뛰어다니는 듯한 생기 넘치는 모습 같기도 한데 이 시는 7행짜리 짧은 시다.

정일근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 '소금 성자'(산지니 펴냄)을 내놓았다.

"경남대 4학년에 다니던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가 당선되면서 저는 시인이 되었지요. 올해로 30년입니다. 때마침 운이 좋아 지금 모교 경남대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으니 이번 시집은 제겐 참 뜻깊네요."

'모두 다 받아줘서 바다라고 했다. 마침내 원자력발전소까지 받아준 바다가 말한다. 봐라봐라, 봐라봐라, 이 바다 사람이 다 받아야 할 밥성이다'('바다의 적바림'·15 전문) 

'쇠숟가락으로 온기 먼저 담겨 오는 민물새우뭇국 받아들고 / 남루한 가족 모여 따뜻하게 먹는 저녁이 있었다 / 여흘여흘 흘러가던 저녁강 깊어지며 비로소 잠드는데 / 기다릴 사람 돌아올 사람 없지만 / 바람길 따라 에두른 돌담 위로 노란 등불 맑게 켜지는 밤이 있었다'('수세미꽃이 있는 풍경' 전문)

10구체 향가의 마음을 생각하며 쓴 짧은 시는 "독자를 윽박지르지도 않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요구하거나 이끌려고 들지도 않고, 여백을 남겨 그걸 독자가 완성하도록" 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그는 말했다.

"2000년에 히말라야를 다녀왔죠. 그때 네팔에서 순수한 아이들을 만나 마음이 참 좋았어요." 그는 등단 30년을 맞아 펴낸 이 시집의 인세 전액을 대한적십자사 네팔 지진피해 구호성금으로 내놓는다. '소금 성자'는 입소문 덕분인지 출간 14일 만에 2쇄를 찍었다. 은현리 고추, 밀양 얼음골사과도 작은 씨앗에서 시작했음을 생각하며 힘을 보탠다는 마음이다.

'이 가을 가장 뜨거운 것은 사과 씨앗이다 / 어제의 사과에서 몸을 받아 오늘의 사과를 만들어낸 둥근 목숨 스스로 곡진하여 / 그 열기 어찌할 수 없어 껍질째 빨갛게 끓는다 / 밀양 얼음골 십만여 평 사과바다가 씨앗 하나로 창창히 깊어지고 / 씨앗 하나로 뜨거워져 넘친다'('끓는 사과' 전문)

정 시인은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있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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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성자 - 10점
정일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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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 최계락과 동시 입상
- 오랜 사유·체험 '노년의 진경'

예술작품의 힘은 '돌아보게 하는 힘'에서 출발한다.

손경하 시인이 자택에서 두 번째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를 펴낸 소감과 시에 관한 생각을 들려주고 있다. 국제신문 김성효 기자


작품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게 된 감상자의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것이 감동이다. 이렇게 예술가와 향유자가 작품을 매개로 만나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소통이고 그 열매가 공감이다.

최근 두 번째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산지니 펴냄)를 내놓은 손경하(86) 시인의 부산 수영구 망미배산로 자택을 지난 20일 찾아갔다. 정갈하고 마당이 예쁜 집이다. 손 시인이 마당 감나무에서 직접 따준 붉은 감은 꼭 인상 깊은 예술작품 같았다.

1929년 경남 창원 출생인 손 시인은 마산상고를 졸업한 뒤로 줄곧 부산에 살았다. 

"고등학교 다니던 1949년 영남예술제에 나가 시를 냈는데 입상자가 세 명이었어요. 이형기 최계락 그리고 저였지요." 그렇게 문학에 들어왔다.

부산대 상대에 진학했는데 상업 관련 과목은 이미 명문 마산상고에서 배워온 터였다. 그때 젊은 사자처럼 치열하고 쟁쟁했던 고석규 문학평론가(1958년 26세로 요절) 등을 만나 '신작품' '시연구' 등에서 동인으로 활동했다.

손 시인은 대학을 채 졸업하기 전부터 교편을 잡게 되면서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1950년대 당시 젊고 쟁쟁했던 '신작품' 동인들은 자신감이 있었고, 동인지 '신작품'에 글을 쓰면 됐지 기성의 등단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들 했죠. 저 또한 별다른 등단 절차 없이 현대시학 등에 글을 쓰면서 시의 길에 섰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지역 문단 청년들의 기개가 당당했다.

1985년 첫 시집 '인동의 꿈'을 낸 뒤로는 '시인 손경하'보다는 '교장 손경하'로 더 널리 알려진 삶을 살았다. 첫 시집 뒤 30년, 21년 전인 1994년 교직에서 은퇴하고 꽤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는 두 번째 시집으로 돌아왔다.

시집 '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에 실린 시는 노년의 진경을 보여준다. 시어는 명징하다. 작품들은 오랜 묵힌 사유와 삶의 체험을 다 갖췄다. 그러므로 노년에 이르러서야만 할 수 있을 대범한 시상 전개와 함께 진실함이 살아있다. 이 시를 노년층 독자가 읽는다면, '나도 시를 써서 내 인생을 돌아봐야겠군' 하고 마음먹게 되리란 생각이 들 만큼 수록 작품은 묵직한 호소력이 있다.

치매를 그린 '미아'는 인상 깊다. 삶의 체험과 오랜 생각에서 나왔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 입력된 기억을 망가뜨리듯 / 불명의 촉수로 / 인간은 하루에도 / 재생 불능의 뇌신경세포가 / 10만 개나 / 미세한 거품 꺼지듯 / 죽어간다고- / 그러니 / 평생을 / 꿀벌처럼 축적한 우리들의 기억도 / 황폐화할 수밖에…입력 불능의 생소한 현재의 / 그 단절된 회로 사이를 / 뒷걸음치며 / 홀로 배회하는 / 늙은 미아-'(부분)

'반딧불이'는 오래된 날들과 오늘과 미래가 함께 숨쉰다. '산골짜기서 내려온 어둠이 / 마을에 그득 실린다 / 무자치가 지나간 무논에 / 별들이 눈을 비비는 동안 / 개구리 울음이 잠시 / 아득해진다…그들은 지금 / 다 어디 갔을까'(부분)

조봉권 | 국제신문 | 20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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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홀가분한 길손으로 - 10점
손경하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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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이병순 첫 소설집 '끌', '창'·등단작 '끌' 등 수록

신예 소설가 이병순이 생애 첫 소설집 '끌'(산지니 펴냄)을 내놓았다.

이병순 소설가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작가 수업과 작품 활동을 줄곧 했고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끌'이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끌>의 작가 이병순 소설가



대개의 독자는 작가가 비로소 소설책을 한 권 엮어서 펴냈을 때, 온전하게 그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소설가가 꾸준히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더라도 그 문예지를 찾아 읽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으므로 책이 아니라면 독자는 소설가의 존재감을 좀체 느끼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집 '끌'은 탄탄하고 진지한 신예 소설가가 부산 문단에서 새로이 출발함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의미를 갖는다. 모처럼 만나는, 옹골차고 든든한 느낌의 '첫 소설집'이다. 이병순 소설가는 독자와 속 깊이 교감하는 방법의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부지런히 모색하고 고민하면서 다채로운 색감과 결을 책에 담았다.

수록 작품은 한결같이 우리 삶의 진실, 생(生)의 절실한 얼굴과 현장을 바탕에 탄탄하게 깔고 있다. 허황하게 공중으로 휘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읽는 이에게 다가가 턱 하고 박히는 현실감과 공감력을 내장했다. 군더더기 없이 단호한 대목도 많다.

'창(窓)'
은 복학을 앞두고 아파트 창호를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에 나선 평범한 대학생에게 창문이 갖는 벽 같고, 거울 같은 상징을 차분하고, 냉정하고, 실감 나게 그린다. 주인공은 말한다. "시급을 많이 주는 곳은 여전히 치킨 배달원이었다. 복학을 한다는 것은 치킨 배달원이 된다는 뜻이었다."

'끌'은 등단작으로 작가의 예술적, 문학적 관심과 방향을 여러 겹으로 품었다. 목공예인인 나는 해맑고 마음에 구김살 없던 아내와 산다. 손과 몸으로 살고 느끼는 나는 아내가 수필을 배우러 다니면서 변하자 생각한다. "나는 수필은 잘 몰라도 아내를 수필보다는 많이 알았다. 아내는 어디선가 자꾸 때를 묻혀 오고 있었다."

'닭발' 또한 잘 빚어낸, 뜨겁고 탄탄한 단편이다. 교사인 나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말더듬이 증세에 시달린다. 이 덕분에 여성과 사귀게 되지만 소통은 또 미끄러진다. 이 과정을 닭발 하나로 매끈하게 꿰어냈다. 단편 '부벽완월'과 '비문'은 역사소설 형식을 취했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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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점
이병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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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는 디테일한 작업을 많이 해왔지만, 아까 만덕에서 했던 작업을 보여드렸던 것처럼, 요즘은 아예 반대로 매우 심플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많이 떠올리려 해요. 심플하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비평 전문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오문비)이 최신호인 가을호에서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래피티 작가 구헌주에게 주목했다. 이 잡지는 '주목할 만한 시선'이라는 기획물에서 구헌주 작가를 집중해서 다뤘다.

구 작가는 2005년부터 부산에서 그래피티 작업을 펼쳐왔다. 도시의 공터나 건물 벽면에 스프레이 같은 도구로 그림을 그려 메시지를 표현하는 예술양식이 그래피티다. 사회를 비판하거나 저항 정신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은 자유분방한 분야다. 구 작가는 전국을 무대로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주목받았고 비중 있는 작가로 떠올랐다.


그가 2012년 그린 '자이언트 키드'.

시민에게 친숙한 구 작가의 작품은 2012년 부산 수영구 광남초등학교 바깥 벽면에 그린 '자이언트 키드'를 들 수 있다. 한 어린이가 돋보기로 골똘히 뭔가 살피는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큰 그림이다. 대체로 사실성이 높고 세밀한 그림으로 메시지를 표현한 작가는 이 기획에서 철거되는 주택 벽면에 '천사의 머리 위에 뜨는 동그라미' 하나만 달랑 그린 작품 'RIP'을 보여주며 앞으로 작업이 한결 단순해질 것임을 내비쳤다.


올해 그린 'RIP'. 철거된 가옥 벽면에 천사 머리 위 동그라미만 간략히 표시했다.


가을호 '오문비'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는 구헌주 작가와 손남훈 문학평론가의 이메일 대담, 구헌주 작가의 자기 작품 설명, 부산시립미술관 김영준 학예연구사의 그래피티에 관한 비평문을 실어 여러 각도에서 그래피티를 볼 수 있게 했다.

한편 '오문비'는 이번 호에서 특집좌담 '신경숙이 한국문학에 던진 물음들', 특집 '노년의 삶과 재현'을 수록했다.

조봉권| 국제신문 | 2015-09-09


오늘의 문예비평 2015.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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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소설가 유연희 '날짜변경선'…4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 발간


- 실습선 등 항해 체험 반영

1. '파도는 하루에 팔천육백 번 정도 쳐댄다던가'.

2. '육지에서는 놀이기구도 못 탄다던 실항사지만 배에서는 못 하는 게 없다. 바다와 배, 제도가 그렇게 만든다'.

3. '갈매기가 있으면 기상도를 체크하지 않아도 마음이 놓였다. 배가 육지의 자장권에 있고 여차하면 항구로 피항할 수 있으니. 첨단 과학이 잡지 못하는 자연의 기미를 감지하는 새들이 놀랍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지만 자연에서 오래전에 쫓겨난 자식들인지도 모른다'.

위의 1, 2, 3번 문장을 차례대로 요약하면 이렇다. 1. 파도는 하루에 8600번 정도 쳐댄다.(인생이 그렇다.) 2. 부딪혀 보면 사람에겐 평소엔 자신도 몰랐던 놀라운 적응력과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인생이 그렇다) 3. 그러나 막상 일을 제대로 해보려 하면 그동안 편한 것만 추구하던 현대인에게선 퇴화해버린 능력이 참 많다.(그걸 느끼는 게 인생이다.) 작가는 묻는다. 자,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역 문단 중견 작가이자 해양소설가로 입지를 탄탄히 한 유연희 씨가 최근 펴낸 두 번째 소설집 '날짜변경선'(산지니)에 실은 단편소설 '어디선가 새들은'은 매우 인상 깊은 작품이다. 위의 1, 2, 3번은 모두 '어디선가 새들은'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이야기를 단단히 압축해 압축미가 있고, 상징 요소를 적절히 배치해 소설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며, 생각지 못한 반전의 요소를 품었을 때 단편소설은 매력이 커진다. '어디선가 새들은'은 이런 요소를 고루 갖췄다. 해양소설 또는 해양문학 작품이 흔히 놓치곤 하는 '독자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삶에 관한 질문'도 안 놓친다.

'날짜변경선'은 유연희 소설가가 4년 만에 펴낸 소설집이다. 김만중문학상을 받은 표제작 중편소설 '날짜변경선', 부산 항만에서 가장 거대하고 눈에 잘 띄는 존재이지만, 좀체 문학이나 예술에서 다루지 않은 갠트리크레인 CG-5를 주요한 요소로 그린 '붉은 용골' 등 작품 7편을 실었다. '신갈나무 뒤로'와 '유령작가'를 제외하면, 5편은 해양소설이다. 해양소설가로서 유 작가의 공력과 지향을 알 수 있다.

그는 부산에 기반을 둔 한국해양문학가협회 회원이다. 1956년생인 그의 고향은 부산이다. "온천장에서 태어났어요. 가슴이 설레도록 예뻤던 동래권번의 기생들 모습을 자주 보며 자랐죠. 외가는 영도였어요. 외가에 가느라 영도다리를 건널 때마다 물씬 다가오는 바다의 냄새, 육지와 완연히 다른 공기와 풍습과 풍경을 느꼈죠."

   

그렇게 시작한 유 소설가의 바다 사랑은 줄곧 이어졌다. "지금도 커다란 위험과 미지가 도사린,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바다로 뚜벅뚜벅 배를 타고 나가는 이들을 보면 의문과 신비가 생깁니다." 그가 해양소설을 쓰는 근원적 이유다.

소설집 '날짜변경선'은 항해의 과정과 배, 바다의 모습과 상황을 세심하게 취재해 반영한 작품이 많아 인상 깊다. "한국해양대 실습선을 타고 몇 차례 항해를 체험했고, 한국해양문학가협회 소속 동료들의 도움도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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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변경선 - 10점
유연희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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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표 중진작가 조갑상, 시민과 이색 문학토크 시간

부산작가회의가 27일 부산 중구 자유바다소극장에서 연 제27회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톡톡 행사에서 조갑상(오른쪽) 작가가 첫 소설집 재출간과 정년퇴임 소감을 말하고 있다. 강덕철 선임기자



- 교수 정년퇴임 앞둔 소회 밝혀
- 90년대 책, 25년 만에 재출간
- "분단 주제 작품도 1년내 발표"

"또 다른 시간이 열리는 것이지요. 단편소설 '다시 시작하는 끝'의 주인공도 한 번 막힌 데서 다시 시작하려는 인물입니다."

27일 오후 7시 부산 중구 중앙동 자유바다소극장에서 부산작가회의가 주최한 제27회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톡톡이 열렸다. 그달에 책을 펴낸 문학인을 초청해 '문학 토크(talk)' 시간을 갖고, 책 내용 일부를 연극으로 꾸며 공연하는 이채로운 행사다.

이날 주인공은 부산을 대표하는 중진 작가 조갑상(66·경성대 국문학과) 교수였다. 그에게 이날 문학행사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최근 그는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산지니 펴냄)을 냈다. 이 책의 운명이 특이하다. "1980년 등단하고 꼭 10년 만인 1990년 낸 첫 소설집이 바로 이 '다시 시작하는 끝'입니다. 그런데 그사이 책이 절판돼 누구에게 보여줄 수도 없었고 독자가 구할 수도 없었죠."

표제작을 비롯해 단편이 17편이나 실린 이 책을 부산의 산지니출판사가 이번에 재출간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끝'은 새로운 시작을 맞았다.

그리고 그는 올해 경성대 국문학과 교수로서 마지막 해를 보낸다. 올해 2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을 맞는다. "1982년 서울을 제외한 도시에서는 처음으로 문예창작과가 생긴 당시 부산여자전문대(현재 부산여대)에서 가르치기 시작해 1986년 경성대로 옮겨왔다. 어느덧 올해가 마지막 해"라고 그는 말했다. 이 또한 끝이자 다시 시작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문학톡톡' 행사가 시작하기 직전 만난 그의 목소리는 조금 상기된 듯했다. 35년 작가 생활에서 의미가 큰 첫 작품집을 다시 찾고, 교수로 가르친 세월 33년을 매듭짓는 자리이므로 감회가 새삼스러운 것은 당연해 보였다.

조 작가는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혼자 웃기'가 당선해 등단했고, 소설집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 산문집 '이야기를 걷다'를 냈다. 보도연맹 비극을 다룬 '밤의 눈'으로 만해문학상을 탔고, 요산문학상 이주홍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도 수상한 부산의 대표 작가이다.

'작가로서 놓치지 않고 추구하려 한 것은 무엇인가' 묻자 그는 "사람이 억압당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추구하는 바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는 삶과 사회를 줄곧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어려움이 드리워 있어 더욱 예민했다"고 밝혔다.

평소 그는 동료 작가와 이야기할 때 "창작 환경이 좋지 못해도 우리(소설가)가 당연히 할 일이 좋은 작품을 쓰는 것임을 잊지 말자"며 작가의 책임을 중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오랜만에 독자에게 건네는 메시지도 꺼내놓았다.

"소설은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고 새롭게 보도록 하는 가장 역동적인 장치라고 본다. 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 독자 여러분의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언어가 가진 특유의 힘으로 세상과 자기를 다시 보게 하는 예술임을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그는 말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에 선 기분"이라는 그는 "분단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 그 속살 드러내는 장편소설을 1년 안으로 발표할 것 같다. 새 단편집도 엮을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조봉권| 국제신문ㅣ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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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끝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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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평론가 '저자와 만남'서 "시인은 나르시시즘 극복해야"


중진 문학평론가 구모룡(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가 평론집 '은유를 넘어서'(산지니)를 최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시인과 시가 다시 변화를 감행할 시점에 닿았다고 고찰했다. 그 방식은 '은유를 넘어서'라는 제목이 상징한다.

'은유를 넘는 것'는 어떤 걸까. 지난 9일 산지니출판사는 부산 러닝스퀘어 서면점에서 구모룡 평론가를 초청해 제67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을 열었다. 은유를 넘어서는 것의 의미와 접근법이 궁금한 이들이 많았던 듯했다. 좌석 30여 석이 순식간에 가득 찼다.

사회와 진행을 맡은 최정란 시인, 최학림 부산일보 논설위원은 저자를 친절하게 대하는 척하다가 이내 돌변해 몰아치듯 질문했다. 저자는 꿋꿋하게 의견을 내고 설명했다. "사실 언어 자체가 일종의 은유('A는 B다' 또는 '내 마음은 호수다' 식의 표현)다. 그러므로 은유 없이 소통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그의 설명은 은유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게 아니라, 죽은 은유를 남발하거나 무의식 상태이든 의도를 했든 간에 과도하게 은유에 기대어버리는 시 창작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남 또는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계속해서 이런 식 은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굉장한 동일성의 확대재생산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동일성의 확대재생산'은 실제로 시에서 굉장히 위험한 요소다. 별 고민 없이 'A는 B다'라고 해버리거나 '내 마음은 호수다'라는 식으로 식상하게 표현할 경우 이는 일단 창작 주체인 시인 내면에 아무 변화도 못 일으키고, 'A를 B'에 '내 마음을 호수'에 가둬버려 문학을 파괴할 공산이 매우 커진다.

저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므로 서정시인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이 나르시시즘(자기도취)이다. 시인이 자기 이야기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걸 넘어서야 한다. 그 점을 표현하려니 '은유를 넘어서자'는 제목을 고르게 됐다. 이 중에서도 자기 아름다움에 도취하는 나르시시즘은 큰 문제 아닐 수 있다. 언젠가 극복 과정에 가닿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타자를 외면한 나르시시즘이다."

수많은 이가 자기 세계에 갇혀 의미 없이 과장하고 호들갑 떠는 시를 쓰는 세태를 그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어 최영철 송경동 시인 등을 언급하며 시와 삶이 일치하는 시인, 세월호 사고를 예로 들며 주체에서 확장을 거듭해 세계로 나아가는 소통의 시를 강조했다. '은유를 넘어서' 갈 방향이었다.

조봉권 | 국제신문ㅣ201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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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를 넘어서 - 10점
구모룡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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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현장] 이규정 방식 vs 김성종 방식

청춘 빚는 일흔 청년작가들
   

이규정(왼쪽), 김성종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네…." 새뮤얼 울만이 78세에 쓴 시 '청춘'의 첫머리이다. 울만의 시를 따르면, 소설가 이규정(78) 김성종(74) 선생은 부산 소설계의 빛나는 청춘 작가이다.

1937년생으로 팔순을 바라보는 이규정 작가가 최근 펴낸 역사인물소설 '소설 대암-이태준 번개와 천둥'(산지니)은 전개가 매우 활달하고 생생했다. 이태준(1883~1921)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교 2기 졸업생이며 독립운동가였다. 천신만고 끝에 1910년대 몽골에 들어가 그 나라를 망친 성병을 몰아내 신의(神醫)로 추앙받지만, 허무하게 살해당한다.

역사인물소설은 인물 재현에 그치거나 인물에 끌려다니다 생기를 잃고 실패하기 십상이다. '번개와 천둥'은 펄떡대는 생선처럼 살아있는 느낌이다. 이 책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를 써서 이미 신문에 내놓은 뒤에도 이 소설의 비결이 여전히 궁금했다. 그래서 이규정 작가를 만났다.

그는 2001년 몽골과 바이칼호로 문학기행 갔을 때 이 소설을 구상했다. 2010년에는 대암이태준선생기념사업회를 따라 몽골 울란바토르의 이태준기념공원 방문 및 교류 행사에도 참가했다. 그간 이태준 관련 논문과 자료를 몽땅 모아 공부했다. 한창 작품을 쓰던 2011년 4월 작가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원해서 소설을 계속 썼다. 그 바람에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려 솔직히 후회스럽긴 하다." 2012년에는 아내가 위중한 병에 걸려 집필은 또 한 번 벽에 부딪혔지만, 극복했다.

'번개와 천둥'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다 이규정 작가가 1996년 펴낸 대하소설 '먼 땅 가까운 하늘'(전3권·동천사)이 화제가 됐다. 아마 한국 문단에서 사할린 동포의 기구한 삶과 민족의 아픔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그린 대하소설일 것이다. 내친김에 기자는 절판된 '먼 땅 가까운 하늘' 1~3권을 구해 며칠 만에 다 읽었다. 1991년 집필에 들어가 5년 만에 탈고한 이 대하소설이 왜 한국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반드시 재조명해 가치를 재평가해야 할 빼어난 대하소설이다.

이 대하소설은 권정생의 '한티재 하늘'처럼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할린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주인공이다. 그중에서도 함안, 서울, 진주, 평양, 부산, 일본, 사할린으로 이어지는 주인공 이문근의 인생은 민족사의 아픔 자체다. '먼 땅 가까운 하늘'에서 보여준 작가의 치열한 취재,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 역사의식과 리얼리즘 정신이 '번개와 천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청년 작가 이규정'을 생생히 느꼈다.

'청년 작가'를 이렇게 꼽다 보니, 김성종 작가가 최근 펴낸 연작소설 '달맞이언덕의 안개'(새움)가 떠올랐다. 베테랑 추리소설가 노준기가 시칠리아산 와인 '도망간 여자'를 마시며 노련하고도 정열적인 활약을 펼치는 이 소설은 사실 면모가 매우 다양하다. 

범죄의 고리를 절묘하게 풀어나가는 전형적인 추리소설도 있다. 부산 근교 원전 사고를 소재로 문명의 반성을 촉구한 문제작 '죽음의 땅에 흐르는 안개, 그리고 개들의 축제', 테러사건 현장을 찾아다니는 '런던의 안개' 등 독특하고 새로운 작품도 있다.

연작소설 '달맞이언덕의 안개'에 등장하는 주인공 노준기는 허무주의에 빠진 노인 같지만, 여전히 엄청난 정열로 활약을 펼친다. 그 점에서 자신의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에서 숱한 인물을 창조한 김성종 작가가 빚어낸 또 하나의 캐릭터이다.

최근 몇 년 새에도 세 권짜리 장편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2006)부터 '후쿠오카 살인' '안개의 사나이'에 이어 '달맞이언덕의 안개'까지 도무지 쉴 줄 모르는 70대 중반 김성종 또한 부산 소설계의 대표 청춘 작가다.

조봉권ㅣ국제신문ㅣ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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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와 천둥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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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예술 넘나드는 폭 넓은 평론

전성욱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영화·독서기록·사진전 등 다뤄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학평론가 전성욱(사진) 씨가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산지니)를 펴냈다.


전성욱 평론가는 부산에서 나오는 전국구 비평지 '오늘의 문예비평'의 편집주간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0년 펴낸 평론집 '바로 그 시간'에 이어 두 번째 책이다. 저자가 무척 폭이 넓고 다양한 예술 영역을 넘나들면서 다채로운 글을 쓴 점이 이 책에서 먼저 눈길을 끈다. 문학평론가가 낸 책은 대개 문학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산문집을 표방한 이 저서는 폭넓고 자유로워 구미를 당긴다. 1부에서 영화를 보고 쓴 글, 2부에서 독서기록, 3부 사진 연극 여행에 관한 글을 실었고 4부에서 비평가로서 정체성을 묻고 고민하는 글 세 편을 수록했다.

문학평론가로서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2부에서 저자는 최근 주목받는 인문학자 윤여일의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부산 문단의 소설가인 강동수의 '금발의 제니', 이상섭의 '챔피언', 허택의 '몸의 소리들', 배길남의 '자살관리사' 등의 작품을 읽고 산문을 썼다. 윤여일을 읽고 이론적인 글을 전개하다가 이렇게 마무리한다.

'…학문은 현실의 한가운데서 끊임없이 반성되어야 한다. 윤여일은 길 위의 만남에 예민한 유목의 에세이스트다. 길 위에서 걷는 몸의 공부가, 그를 저 모순과 역설과 망상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이는 예술을 일상으로 접하고 문학을 공부하는 저자 자신의 다짐으로도 비쳐 산문집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1부에서 다루는 영화는 '세르지오 레오네 걸작선', 장 뤽 고다르의 '영화사(들)', 다르덴 형제의 속죄와 구원에 관한 영화들, 오즈 야스지로 50주기 특별전부터 '한공주' '지슬' 등으로 다양하다. 마리오 스테파토 사진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등을 보고 쓴 글은 독특하다. 이론적 용어가 많고 다소 까다로운 전개로 쉽게 읽히지 않은 글도 있다.


조봉권ㅣ국제신문ㅣ201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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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 10점
전성욱/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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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정태규 소설가, 투병 중에 새 창작집 펴내

- 단편소설 등 14편 수록

- 같은 병 남녀 다룬 작품도

루게릭병으로 몸이 불편한 소설가 정태규 씨가 14일 부산 남구 대연동 자택에서 최근 펴낸 새 창작집 '편지'를 들어 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전민철 기자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인 소설가 정태규(57) 씨가 "몸은 많이 불편하지만, 글은 계속 쓰겠다"며 문우와 독자들에게 인터뷰 등을 통해 약속한 대로 새 창작집 '편지'(산지니)를 내놓았다.

"작품이 한 권 분량에 못 미쳐 두어 편 추가하려고 계획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구상만 겨우 끝냈을 때 나는 이미 말하는 능력을 잃고 있었다. 구술할 형편도 못 되었다. 귀하신 안구 마우스는 자주 고장을 일으켜 미국 본사에 다녀오느라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는 책에 쓴 '작가의 말'에서 마음먹은 대로 쓰지 못한 아쉬움부터 털어놓았다. 몸 전체가 천천히 마비되어 가는 병이고, 아직 치료법이 없어 모두가 무서운 병이라고 하는 루게릭병은 그의 작가정신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아내 백경옥 씨는 "상태가 악화돼 요즘은 누워서 지내실 때가 많다. 이젠 구술도 힘들다. 다행히 미국에서 수리한 안구 마우스의 성능이 좋아져 카톡으로 소통한다"며 "집필 계획을 내게 얘기하고 문학계 새 작품과 경향에만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창작집 '편지'에는 스토리텔링 성격 단편소설과 콩트를 합쳐 14편을 실었다. 수록작 '비원(秘苑)'은 맑고 아름답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남녀가 우연히 서울 창덕궁의 신비한 정원인 비원에서 만난 장면을 그려 작가 자신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갑자기 사람들이 해설사의 손짓을 따라 이쪽을 쳐다보았다.…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개울 위의 작은 다리를 건넜다. "우리 병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요?" 그녀가 소요암이라는 바위를 바라보며 심상하게 물었다. "…짧은 동정과 긴 망각…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잊혀질 것이오. 사람들은 우리와의 관계를 포기하겠지요." "몸으로부터도, 사람으로부터도 우린 끝없이 고립되어 갈 거예요." "동감이오." '('비원' 중)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현실을 놓고 이어지는 남녀의 대화는 인상깊다. 둘은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가 인현왕후의 넋이 이끄는 대로 목욕을 한 뒤 고약한 부스럼을 치유했다는 비원의 연못에서 목욕한다. 남녀가 헤어지는 끝 장면은 이렇다. '돈화문 거리에서 둘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살아남아요."'

아내 백 씨는 "2012년 가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서울의 병원에 다니던 지난해 여름 남편과 내가 비원에 가서 산책했는데 그때 구상한 소설"이라고 들려줬다. 다른 수록작은 대부분 써놓았던 작품이다.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서 싸운 젊은 조선 무사와 아내의 지극한 사랑을 그린 '편지'와 '3일간'은 생명에 대한 고결한 마음이 생생하다. '병삼이의 웃음' '우리 집 그 인간' 등 콩트는 낙천성과 웃음이 출몰한다. 

정 작가는 "이 소설집으로 지금까지 써온 글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루게릭병이 나에게 계속적인 집필을 허락한다면 새로운 단계의 글쓰기에 도전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조봉권ㅣ국제신문ㅣ201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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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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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 고도는 몇 피트 상공입니까

김헌일 소설집 '고도경보' 펴내…수록 6편 모두 공항·여객기 소재

  • 국제신문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2014-12-29 19:48:26
  • / 본지 23면




국내 문단서 보기 힘든 항공소설

"높은 창공에서 매일 불안한 비행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러하리라"

항공사에서 30여 년 근무한 독특한 이력의 중견 작가 김헌일이 최근 펴낸 소설집 '고도경보'(산지니)는 수록작 6편이 모두 공항과 여객기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희귀하다. '고도경보'는 국내 문단에서는 보기 힘든 항공소설집이다.

작가 김헌일은 책에 실은 '작가의 말'에서 "삶이 있는 곳에 문학이 있다면 당연히 하늘과 항공 운송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작가나 작품이 있어야 할 법도 하다.…우리나라의 연간 항공기 이용객 수는 대략 730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해양문학이 부산 등을 중심으로 분명한 문학적 실체이자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을 고려하면, 음미해볼 만한 말이다.

   
김헌일

'고도경보'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점이 있다. 공항-여객기-창공-삶 터로 이어지는 항공소설의 공간 배경은 고도의 긴장감, 삶과 사회의 표정과 사연, 사회의 모순, 개인의 상처와 회복을 압축해서 담아내는 훌륭한 문학 장치가 된다는 것이다.

수록작품 '지상의 낙원, 오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짧은 분량 안에서 악천후 비행을 다룬다. 오리엔탈 스타 항공 기장 다차인은 비행기와 승객이 극도로 위험해진 악천후 상황에서 안전을 위해 여객기를 돌릴지, 회사의 방침에 순응해 착륙을 강행할지 갈등에 빠진다.

지상에서 근무하는 이 항공사의 운항사 안토니오 파본은 '착륙 시도는 미친 짓'이라고 판단하지만, 눈앞의 이익 앞에 탐욕스러운 권력의 반대에 부딪힌다. 무대는 공항과 여객기이지만,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사회적 긴장감을 그리는 단편이다.

   

'기도'는 태풍 덴빈과 볼라벤의 영향권 안에서 솔로몬 제도의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의 상황을 그린다. '지금쯤 공항 활주로의 영롱한 불빛이 저만치서 보여야 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기장님, 혹시…우리가 산을 넘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승객 수백 명을 태운 비행기가 순식간에 곤경에 빠지는 장면은 아찔하다. 이 속에서 인물들은 제각각 구원, 기도, 회한에 빠져든다.

'떠나는 사람들'은 창공을 나는 기장에게 닥치는 관계의 단절과 고독을 다룬다. '붉은 띠'는 9·11 테러 당시 납치된 비행기에 탄 한국인 승객의 심리를 쫓아간다. 많은 사람이 갑작스레 위험에 빠지면 매우 짧은 순간에 지나온 삶의 다양한 장면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신비한 체험을 하듯, 주인공 석우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여객기와 조종석, 공항이라는 좁은 공간이 우리 삶의 압축판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항공소설의 가능성일 것이다.

조봉권ㅣ국제신문ㅣ2014-12-30

원문읽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41230.22023194710

고도경보 - 10점
김헌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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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사가 기록한 바다, 소년들이 꿈꾸는 바다

부산서 해양문학서 두 권 발간

   
'북양어장 가는 길'의 저자 최희철 시인이 1990년 원양어선 갑판 위에서 포즈를 취했다. 최희철 제공
- 최희철 시인 '북양어장 가는 길'
- 직접 체험한 현장 모습 담겨
- 해사고 동아리, 풋풋한 글 묶어

1961년생 해양문학가 최희철 시인은 이달 초 드물게 보는 형식의 해양문학서 '북양어장 가는 길'(해피북미디어)을 펴낸 뒤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서 바다처럼 살았던 선원들, 어획 대상이었던 물고기들, 생명 없는 기계라고 생각했던 트롤어선과 어구들, 출렁이던 바다의 흔적으로서 바람, 어둠, 파도, 눈보라, 안개 그리고 대양의 상처 같았던 섬들 모두 역동적인 주인공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록으로 남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역사 없는 것들'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북양어장 가는 길'(왼쪽), '바다를 바라보다'
거의 같은 시기에 부산의 '고딩'들이 해양문학서 한 권을 내놓았다. 국립부산해사고에서 '해양문학교실'이라는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하는 1, 2학년생 19명이 필자로 참여한 '바다를 바라보다'(산지니)이다. 한국해양문학가협회장을 지낸 해사고 심호섭 교사가 지도했다. 이 책의 필진은 앞으로 해기사가 되어 세상의 바다를 누빌 청소년이다.

"배를 어느 정도 타본 사람이라면 모두 하나같이 항해 중 그 무엇인가를 기다려본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바로 Landfall(육지초인) 즉, 육지를 발견하는 일, 그러고 나서 상륙하는 것이다. 이때의 희열감과 성취감이야말로…나의 경험을 들어보자면 목포에 입항했을 때…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목포를 한눈에 바라본 경험은 절대 지워지지 않을 추억이 될 것이다."

'바다를 바라보다'에 '항해의 묘미-기항지 여행'을 쓴 해사고 2학년 이지훈 군은 "이를 통해 내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있는 나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국립부산해사고 해양문학교실 소속 학생들이 심호섭 교사의 지도 아래 문학 토론을 하는 장면. 심호섭 제공
항해사 출신 최희철 시인의 '북양어장 가는 길'은 부제가 '미시적 사건으로서의 1986~1990년 북태평양어장'이다. 2013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수상작을 다듬어 펴낸 책이다. 직접 겪은 험하고 거친 북양어장의 일을 세밀하게 되살리고 기록문학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출항, 피항, 혹한 노동, 선원들의 놀이, 그물 사고에 이르기까지 깨알같이 박진감 넘치게 그린 소중한 자료다. 

최 시인은 "원양어업은 거대한 자본이 기획해 노동을 투입하는 구조적인 측면이 중요한데, 그간 우리 해양문학은 현장을 그리되 이런 문제는 잘 다루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점을 포함해 나 자신과 바다를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바다를 바라보다'에 실린 글은 해기사의 꿈을 키우는 청소년이 쓴 글답게 풋풋하고 순수하며 힘이 넘친다. 해양문학교실의 동아리를 오래 지도한 심호섭 교사는 "나는 이 책을 거창하게 해양문학 작품집이라고 부른다. 미숙한 청소년의 작품집이지만, 글의 중심에 바다 고유의 미학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장년의 해양문학가가 이미 겪은 바다로 책을 쓰자 미래에 바다를 누빌 청소년이 해양문학 작품집으로 화답하는, 부산 문단의 풍경이다.

북양어장 가는 길 - 10점
최희철 지음/해피북미디어


바다를 바라보다 - 10점
해양문학교실 지음/산지니
 

원문읽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41209.2202319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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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만나다
빨리 가면 안보이던 것

몰랐던 것,
스쳐지나가던 것들을

 

1992년 부산에서 경남 고성으로 거처를 옮겼죠. 내가 사는 마을은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어실마을이라고 깊은 곳이예요. 우리 마을에서 고성읍까지 다니려면 오전 7시, 오후 3시 이렇게 하루 두번 있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좀체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그는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는 데만 2시간 반이 걸렸다.
"그때부터 길과 친해진 것 같습니다."

동길산 시인이 산문집 '길에게 묻다'(산지니)를 냈다. '길에게 묻다'는 말 그대로 길 위에서 길과 대화하며 쓴 글이다. 합천 밤마리 들길을 시작으로 창원 주남저수지 둑길, 최계락 시인의 외갓길, 진주 경남수목원 침엽수길, 남해 다랑이마을 논길, 거창 빼재, 고성 대가저수지 등 경남 20개 시·군의 사연 있고 풍경 있는 길들을 급할 것 없이 걸었다. 영주동 시장통길, 이기대 해안길, 청사포 오솔길, 영락공원 묘지길 같은 부산의 길도 담았다. 부인 박정화 씨가 동행하며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영주동 시장길과 청사포 오솔길

 



요즘엔 부산서 보름, 고성서 보름씩 지냅니다. 부산에 있을 때도 걷습니다. 약속이 생기면 해운대에서 서면이나 중앙동까지 걸어갑니다. 운동 삼아 모래주머니를 발에 차는 날도 있어요.

 
약속시각보다 두어 시간 일찍 출발해 걷다보면 길 위에서 빨리 가면 안보이는 것, 몰랐던 것, 스쳐지나가던 것을 보게 되고 옛날 그대로여서 반가운 풍경과 변해서 흥미로운 풍경을 챙기고, 사람을 만날 수 있단다.

생소한 길의 설렘도 좋지만 기억이 묻어있는 길이 좋더라고요. 내가 영주동에서 태어났으니 책 속의 영주동 시장통길에 애정이 많이 가고 지금 살고 있는 고성의 대가저수지길도 사랑하죠. 숨어있는 것은 아니면서 낮고 평평해서 예쁜 티, 잘난 티 안내는 그런 길이 오래 마음 속에 남습니다.

 
이 책은 동 시인이 2007년 '국제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고 엮은 책이다. "문체를 현재형으로 했습니다. 길을 걷고 있는 이 느낌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문장에서 반복법이 자주 쓰인 건 벽돌을 한장 한장 쌓아올리는 삶의 과정을 그런 방식으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고요."

주남돌다리

"최고 명소"를 꼽아달라는 말에 동 시인은 난감한 듯 웃으며 "주남저수지의 돌다리"라고 했다. "서로 다른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고, 좋고 나쁨이 공존하는 삶을 긍정하게 해주는 곡선미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내면의 자신을 찾아가 만나는 과정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 2009년 2월 19일 국제신문에 실린 조봉권 기자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Posted by 산지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