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개성을 회복하자

윤여일의 『상황적 사고』






무기력한 현실정치 속에서 

사상의 가능성을 따져 묻는다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한 지금, 지난 5년의 정부를 되돌아보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 정치는 국민들의 외면을 받아왔고 외면은 곧 현실정치 왜곡으로 변형되어왔다. 이러한 체념과 무력감 속에서 저자는 “체념하고 있는 게 아니라 무력함을 내적 동력으로 삼아 현실정치를 외면하지 않되 현실정치와는 다른 위상, 굳이 부른다면 사상의 영역이라고 불러야 할 곳에서 이룰 수 있는 성과는 없는지 따지기로 했다(「상황적 사고」, 29쪽)”고 말한다. 저자는 그렇다면 이러한 무력함 속에서 사상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뤄야 하는지 고민하고 사유한다.

   이 책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의 이명박 집권기 동안 저자 윤여일이 쓰고 번역하고 비평한 글들을 모은 평론집이다. 저자가 2008년 일본에서 체류하고 있었을 때 한국 사회는 이명박 정권의 본격적인 행보와 함께 촛불운동이 일어났다. 일본 사회는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어선 노동자들의 착취와 폭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고바야시 다키지의 소설『게공선』이 당시 일본사회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면서 다시 붐이 일기 시작했다. 저자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촛불시위는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정리해고, 가정 붕괴, 부채 지옥 등이 가속화되고 있었고 일본 사회 역시 빠르게 격차 사회로 진입하고 있었다.

   여기에 모인 글들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저자가 경험하고 느낀 상황 속에서 쓰인 글들이다. 저자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올바로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달리지 않는 까닭이다.”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상황 속으로 진입하면 오류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지만 그만큼 사고는 자신의 처한 현실의 모순과 겹쳐 단단해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다른 사회의 타자에게도 가닿을 수 있도록 발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으로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며 독자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 제약된 현실조건 속에서

사상의 개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저자 윤여일은 묻는다.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기성의 정신세계가 균열된 자리에서 사상이 출현한다. 사상은 그 균열을 자신의 내적 모순으로 전환시켜 성장을 도모한다(「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280쪽)”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사상을 시도하는 자의 구체적 현실에 바짝 다가가야 하기에 다시 묻는다. “비서양에서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저자는 서양의 근대는 비서양을 지배해가는 과정이었고 “자주 거론되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라는 계열은 연대기적 순서를 가리키는 듯 보이지만, 이 순서는 늘 지정학적 틀에서 배분되어왔다. 이 인식론적 구도에서 서양과 비서양의 문화적 차이는 문명적 격차로 번역되었고, 비서양의 사건은 이 구도에 의해 의미가 해석되어왔다(「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282쪽)”고 한다. 저자는 그 결과 비서양의 세계 인식은 심각하게 제약당한다고 말한다.

  

사상에게 있어 제약의 조건은 가능성의 조건이다. 자신의 환경이 지닌 제약을 통해서만 사상은 자신의 가능성을 움켜쥘 수 있다. 그리하여 비서양의 사상은 세계 인식과 자기 인식을 제약당하지만, 그 한계에 내재함으로써 자신의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한계에 내재한다는 것은 힘관계의 비대칭성을 사고의 전제로 삼는다는 뜻이다. 그래야 열위이고 뒤처져 있고 유한하지만, 그 조건에서만 가능한 정신의 개성을 길러낼 수 있다. 

(「사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286쪽)

   

    저자는 오히려 제약의 조건은 사상의 가능성의 조건이라 말한다. 제약된 상황 속에서 기꺼이 복잡한 사고를 감행하고, 자신 내부의 어둠을 살피며 사상을 빚는다. 이러한 사상은 가능성이 되고 정신의 개성이 된다. 사상의 가능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신의 개성을 가지기 위한 그 첫 번째가 바로 자신이기를 원하며,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상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고자 한다.


▶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사상의 자원은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


   

   이 책은 저자 윤여일이 2012년 펴낸『지식인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의 연장선상에서 발간한 책이다. 『지식인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는 구체적인 사건의 언급 없이 사변적인 언어로 리얼리티를 만들었다면 『상황적 사고』는 매 글마다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구체적인 사건에서 자신의 사유를 풀어냄으로써 독자와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었다. 평론은 총 9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현실적 현실론 비판」에서는 저자 자신을 포함해 이명박 정권을 등장시킨 혹은 막지 못한 대중을 비판대상으로 삼아 이명박 정권의 현실론에 조응하는 대중의 현실감각을 파고들었다. 「이 시대의 정신승리법」은 대중의 현실감각을 다룬 「비현실적 현실론 비판」과 달리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저자 자신의 감정을 분석한 글이다.



「정치의 원점」 나오는 텐트 연극 사쿠라이 다이조 사진입니다. 현재 중국에 계신 윤여일 저자가 

직접 메일로 보내온 사진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블로그로 포스팅할게요^^


   「맥락의 전환」은 저자가 일본에 체류하면서 느낀 경험과 동아시아에 관한 일본인 동료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을 전하고자 했다. 「내재하는 적대성」은 한국의 촛불운동에 대한 구체성과 촛불운동이 가지는 성과에 대해 논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독자」는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과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2』를 번역한 저자가 왜 자신이 다케우치 요시미의 독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생을 위한 사」는 저자 자신이 속해 있었던 ‘수유너머’의 생성과정과 이를 통해 공동체의 삶을 이해하는 지평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멀다’와 ‘가깝다’ 사이」는 3·11 이후 일본 지식인들의 고뇌를 번역해 한국과 일본 민중의 간극을 메우며 고뇌를 공유하고자 한 글이다. 「정치의 원점」은 텐트연극을 하는 극작가이자 배우 사쿠라이 다이조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는 그의 존재를 알리고 그가 가진 사상을 글로 번역하고자 했다.






글쓴이 : 윤여일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수유너머의 일원이었다. 도쿄외국어대학 외국인연구자로서 일본에서 체재했으며, 2013년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로서 중국에서 체류 중이다.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사상의 번역』, 『여행의 사고 하나, 둘, 셋』 을 쓰고 대담집 『사상을 잇다』를 만들고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2』,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이 살아가는 법』, 『사상으로서의 3․11』,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을 옮겼다.






 

『상황적 사고


크로스 크리틱 02
윤여일 
지음 
인문 사회 정치 비평 | 신국판 | 296쪽 | 18,000원
2013년 7월 12일 출간 | ISBN :
978-89-6545-221-8 04800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의 이명박 집권기 동안 저자 윤여일이 쓰고 번역하고 비평한 글들을 모은 평론집이다 저자는 그렇다면 이러한 무력함 속에서 사상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뤄야 하는지 고민하고 사유하며 이 책으로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며 독자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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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적 사고 - 10점
윤여일 지음/산지니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 10점
윤여일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지식의 윤리성

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Reviewed by 엘뤼에르




     수유너머R 연구원으로 있는 저자 윤여일은 본인이 평소 견지하고 있던 ‘윤리성(Ethica)’에 대한 고찰을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개념의 맥락에서 네 가지 사유감각으로 풀어내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은 「자본론」보다 논리적 밀도는 떨어지지만 다양한 문제의식을 촉발시키며 현실을 때렸다. 이처럼 저자 윤여일은 지식의 가치를 기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고, 지식의 기능성과 윤리성 사이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가장 심급의 영역으로서의 '사상'을 사유함

     이 책은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지적 영위의 핵심 개념차이를 밝히고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저자의 성찰을 심화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이때 ‘이론’은 지적 주체가 고유하게 만든 자신의 구성물이 아니라,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저자는 바라보았다. 또한, 현실감을 잃고 현실을 분할할 언어 개념으로 남은 ‘이론’에 대해서도 응수를 놓음과 동시에, 맥락을 잃고 학술적 과시성향으로 기능하는 오늘날 지적풍토를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평’은 이론의 이론됨을 성찰한다고 긍정한다. ‘이론’이 억압한 것의 흔적을 살피는 것이 바로 비평이라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이론은 축적됨과 달리, 비평이 가지는 논쟁은 축적되지 않음도 윤여일 저자는 동시에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자기 자신이 비평이 대상임에도 비평할 수 있는지를 사고하는 것이 ‘사상’이고, 이는 곧 가장 심급의 영역이라고 정의한다. ‘사상’이 바로 저자 윤여일이 언급하는 지식의 윤리성이다. 이처럼 저자는 ‘사상’이야말로 자기응시에서 출발하는 행위라고 규정짓고 있다.


대중을 위한 명목하에 소비품으로 전락한 인문학을 반성하다

     윤여일 저자는 ‘현실감각’, ‘정치감각’, ‘번역감각’, ‘언어감각’과 같은 네 가지 층위의 사유감각을 통해 우리 사회와 지식인들이 안고 있는 ‘윤리성’에 대해 고찰한다. ‘현실감각’ 부문에 있어서는 자주 외롭지만 고독할 줄 모르는 양떼 인간을 두고, “나는 남과 다르”지만 그러고는 기꺼이 유행을 좇는 현대인들을 소비주의적 대중매체(TV, 신문, 책)의 영향력을 통해 분석했다. 또한 인문학이라는 것이 대중을 위한 명목하에 소비품으로 전락한 현실에 대해 비판하며, 윤리적 감수성을 타락시키는 TV라는 매체를 현실감각적인 면에서 고찰하였다.


지적 주체들의 사고와 언어가 사회화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정치감각’ 부문은 유동하는 정치와, 정치의 응고물인 권력에 대해 사유한 장이다. 성숙된 정치적 사고란 무엇인지 도덕성과 다른 차원에서 신중한 영역으로 간주하고, 유덕한 지도자 상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조건에서 유리된 유토피아적 전망 역시 정치적 체념의 토양이 되기 쉽다며 오늘날 정치풍토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윤여일 저자는 정치도 경제, 문화와 나란한 사회의 부문이 아닌 사고의 심급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더불어, 사상계가 내놓는 지식이 사회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현학적인 대상에 젖어들고 지식의 언어가 지식인들의 언어로만 남는 것에 대해 비판하였다. 지적 주체들의 사고와 언어가 바깥에서 얼마나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성이 결여되었음을 질타한 것이다. 지적 주체가 진정 인식하고자 한다면 윤여일 저자는 대중 속에서 있으면서 그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지식의 윤리성이 다시 한 번 대두된다.


번역 행위의 본질은 바로 '토론'에 있다 

    ‘번역감각’ 부문에서는 번역 행위가 본질적인 토론행위임을 사유했다. 또한 ‘번역의 정치성’에 대해 논의했는데, 여기에 언어의 헤게모니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담겨 있다. 이는 번역자가 번역을 매개로 보편성을 재사유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언어감각’ 부문에 있어 언어를 만나는 것이 강렬한 정신적 체험이자 버거운 육체적 체험이라고 언급했다. 언어에 기대지 않으면 지적 주체는 무엇을 사유하고 있는지 사유할 수 없고, 따라서 글로 ‘써야 한다’. 쓴다는 행위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글은 홀로 간직하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꺼내는 이상 윤리적 방침이 필요한데, 이는 자기 회의가 감싼 고백으로 기울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식이란 무릇 지식을 습득하는 지적 주체와 지식 자체의 관계에서 지식과정이 성립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 중에 지식을 매개 삼아 지적 주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였다. 헤겔, 마르크스, 니체와 같은 지적 스승들의 아카데믹한 저작들이 보여주는 지식이라는 것이 지적 주체를 쇄신할 수 있는 것인가를 두고 에세이 형식으로 풀었다. 일종의 철학적 소품집인 셈이다. 결국 지적 주체인 지식인들이 지적 대상에게 다가가는 인식절차를 구체적으로 밟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핵심 주제의식이다.


산지니 윤여일 저자와의 만남 현장>>

http://sanzinibook.tistory.com/548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의 속편격인 윤여일 선생의 근간 『상황적 사고』가 올해 출간예정에 있습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저자 소개

윤여일

수유너머R 연구원이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사상의 번역》 《여행의 사고 하나》 《여행의 사고 둘》 《여행의 사고 셋》 등을 쓰고,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2》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으로서의 3·11》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Posted by 비회원

 

 

제 35회 윤여일 저자와의 만남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윤여일 선생님

 

 5월 24일 목요일 저녁 7시, 산지니 출판사, 오늘의 문예비평이 공동주관하는 저자와의 만남 시간은 저자분의 강연을 주로 했던 종전과는 달리 계간지『오늘의 문예비평』의 편집위원분들께서 한분한분 돌아가시면서 토론을 나누는 토론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그 첫 토론회의 주인공은 『오늘의 문예비평』의 연재물을 모아 책을 내셨던 수유너머R(http://www.transs.pe.kr/) 연구원, 윤여일 선생님이십니다. 이날의 토론회는 윤여일 선생님과 더불어 『오늘의 문예비평』편집위원이신 전성욱 문학평론가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 수유너머R 연구원으로 계신 윤여일 선생님의 저서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이하 지식의 윤리성)는 오늘의 문예비평에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취합하여 책으로 낸 결과물이다. 오늘 토론회를 갖기 전, 윤여일 선생님과의 저녁 식사로 충분히 함께 교감을 나누었는데 부산에는 10년 만에 다시 와보셨다고 하셨다. 부산방문에 관한 간단한 소회를 말해 달라.

윤여일 저자 : 연구원 활동 외에도, 논술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예전에 방문했던 부산은 서울에서 강의를 마치고 순천에서 강의를 하고 이동하는 바람에 구경을 못해, 제대로 된 부산 방문은 처음이나 다름없다 . 사실 『지식의 윤리성』 책을 쓸 때 기분이 우울한 상태였다. 반면, 오늘은 부산에 와서 마을도 보고 저녁식사도 맛있게 하고 와서 우울한 기분이 들지 않아 집필 당시와의는 감정 상태에 있어 간극이 있다.

 

 

신체와 정신에 남는 기록을 쓰고파

전성욱 문학평론가 : 책에 보면 후기에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셨다. 번역 활동, 논문을 쓰고 있으며, 여행기를 쓰기도 하고, 에세이 작업을 하시는 등 여러 가지 작업을 하시고 있는데 자신의 작업 활동에 관해 간단한 소개 바란다.

윤여일 저자 : 네 가지를 썼는데, 어떻게 보면 번역도 창작이나 다름없다. 나는 번역자의 기능적인 역할이 아니라, 사상가로서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지식의 윤리성』은 나의 첫 저서인데 이러한 나의 네 가지 작업 중 마지막에 해당한다.

석사논문을 쓸 때, 개념어의 관계성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말의 부재로 인해 논문에서의 논의하려는 문제를 성립시키기가 어려웠고 사회현상의 징후들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논문이 끝난 이후에는 개념화에 비판적인 거리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우연찮은 만남을 통해 동아시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차적으로 생기게 되었다.

한 번은 멕시코로 여행갈 일이 생겨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용량 부족으로 백업을 시켰는데 분실당했다. 도둑맞은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보니 백업을 시킨게 아니라 포맷을 시켜놨더라. 파일이 모두 사라진 것에 대해 분통이 나기도 했고, 내가 무슨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더 화가 났다.

물질적인 결과물인 파일이 사라지고 나니, 신체나 정신에 내가 쓴 언어들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언어감각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다. 일본에 2008년 겨울까지 있었는데 일본어를 잘 모르는 상태로 말이 와전되는 경우에 생긴, 말하고자 하는 의지 사이의 불일치 경험이 언어감각에 대한 생각을 더욱 촉발시켰다. 한국어에 대한 감각 또한 이와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들이 결국 쌓이고 쌓여서 『지식의 윤리성』을 쓰게 되었다.

 

추상적인 언어로 구체화된 형식을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도전하고 싶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전성욱 문학평론가 :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지 못해 저자와의 만남 시간에 말을 잘할 수 있을까 두렵다고 하시더니 말을 너무 잘하신다. 이 책은 정신적 체험에 관한 자서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자신을 대상화 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지식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면 지식의 관계 속에서 그 관계를 성찰해야 한다. 곧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작업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글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책에 등장하는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 설명을 부탁한다.

윤여일 저자 : 아까 얘기와 연결시키겠다. 일본에 가서 동아시아 관련 논문을 썼는데 그때 당시, 밤이 되면 고민이 있어서라기보다 낮에 하고자 했지만 결국 못했던 말들이 생각나서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 때문에 그전에 없었던 언어로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다.

어떤 수업을 들었을 당시, 한 일본 학생이 어눌한 일본어로 질문을 했는데 스승이 태도가 좋은 질문이라며 칭찬하셨다. 그 스승의 태도는 학생에 대한 립 서비스가 아니라, 상대의 동기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어눌했던 학생의 질문을 수준 높은 질문으로 승화시켰다. 질문 내용을 자신의 체험에 대입시켜 질문자 스스로의 신변의 체험으로 끌어당기는 방식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내 개인의 체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할 수 있도록 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언어감각의 문제가 촉발된 것이다.

『지식의 윤리성』은 말하자면 여행기였다. 몸으로 다니면서 체험하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언어로 구체화된 형식을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것이 작년이었고 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 그 도전의 결과물이다. 전성욱 선생님께서 말한 정신적 체험의 결과물이 그런 의미다.

 

시대에 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전성욱 문학평론가 : 결국 윤여일 저자분의 말씀은 지식의 주체와 지식의 대상이 맺는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지식의 주체가 객관적인 인식에만 매달려서만 안 되고, 자신의 변화를 추구해야만 지식 주체와 지식의 대상이 만나서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식의 윤리성이라는 문제가 다시금 제기되는 것이다. 그 지식의 윤리성을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지식의 세 가지 속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세 가지 맥락에 관해서 설명해 주셨으면 한다.

윤여일 저자 : 이론, 비평, 사상에 대해 다시 또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 세 가지의 맥락은 자의적인 것이다. 책 속에서 전달하는 나의 메시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논문을 쓰는 것은 세계를 질문과 답의 형식으로 재창출해 내는 것이다. 물음이 있어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 사회학에서 추구하는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적인 발견이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연구자에게 있어서 연구를 사는 행위를 통해 이론이 탄생한다.

글쓰기에 있어 이런 방식의 문답관계가 궁극적으로 재질문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는 사람은 사상가이지,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억압의 기제로 이론을 설정해 보고 싶었다.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끄집어내고 싶어서 이러한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주제로 1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적 스승으로서의 루쉰과 다케우치 요시미.

 

루쉰

전성욱 문학평론가 : 상투적이고 진부한 질문이기도 한데, 윤여일 저자분의 글 속에서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사상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선생님의 작업이 이론가가 아니라 사상가였는지 그 맥락을 집어주시길 바란다.

윤여일 저자 : 사상적 인격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쓸 수 있었다. 루쉰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자면 루쉰의 글 속에는 불투명한 말이 종종 있다. 루쉰의 원문에서 이미 번역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불행에 따라 글이 전달되지 않고 번역가를 거쳐 전달되는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렇게 하여 루쉰을 발견했는데, 역사와 시대, 장소 속에 맞물려있는 어떤 사람의 사유가 번역가에 의해 옮겨질 때 사상은 이론과도 같은 다른 형식으로도 옮겨질 수 있다.

루쉰이란 작가에 대해 말하자면, 그 사람의 글이 번역서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쓰면서 허구의 이야기와 같이 불투명한 사람 속으로 진입하고자 하면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거는 행위가 뒤따르게 되고, 그 행위로 인해 글의 진의에 가닿고 거기서 무언가의 의미를 건져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의 아카데미적으로 지적인 후계자를 만들지 못한 사람이었다. 전후 일본사상계에 있어서 극과 극으로 평이 갈린 사람이기도 하다. 이른바 체계를 갖지 못한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현실사상에 대해 가설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기대나 성과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전에 만들어냈던 가설을 다시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때마다의 상황 속에서 살아보려 한 사람이고, 그래서 많은 오류를 범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의 시간을 좀먹고 사유능력을 뺏는 TV라는 존재

 

윤여일 선생님.

전성욱 문학평론가 : 이번에는 번역과 현실 감각에 대해 묻고자 한다. 번역이라는 것은 원문에 대한 충실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이 책에서 중요시하고 있는 점은 조금 다르다. 원문과 번역과의 어긋남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현실감각 부분에 관하여서는 책을 출간하면서 첨가한 부분으로 알고 있다. 격정적인 어조에 텔레비전을 끊는다던지 하는 분노에 찬 결단을 내리는 부분이 나오는데 「현실감각에 관하여」편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윤여일 저자 : 이명박 정권 들어서 감정적으로 많은 피해를 받게 되었다. 이명박에게 바로 갚을 방법이 없어, 유의미하고 생산적인 방법으로 바꾸고 싶었다. 이는 텔레비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텔레비전으로 뺏긴 시간들을 텔레비전으로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텔레비전으로 인한 분노를 생각해보라.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너무 분노스럽지 않은가. 요즘 보게 되는 내용이 뉴스나 토론프로그램 등 우울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내 작업이 힘들겠구나 하는 자연스런 생각을 하게끔 되었다. 생각의 호흡을 압축시키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이렇게 텔레비전을 보며 느낀 나의 피해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 결국 저자 분 말마따나 텔레비전은 우리의 시간을 소모시키고 사유능력을 좀먹고 현실감각을 둔화시킨다. 더 중요한 것은 반복적으로 습관화되는 현실에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현실에 대한 예민한 감정을 놓치게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이러한 감각이 축적되어 곧 비평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현실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현실 감각을 연마하기 위해서 비사유를 사용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윤여일 저자 : 현실감각에 대한 부분에서 비사유의 사유에 대한 얘기를 언급했다. 비사유의 사유와 관련된 대목이기도 한데, 곧 있으면 대선이다. 결과는 내가 생각한대로 잘 안 나올 것 같기도 한데, 만약에 박근혜 씨가 되면 니체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변수가 없으면 사실은 루쉰을 읽고 싶다.

이명박은 한국사회의 속물근성이 집약된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동안 인터넷이 얼마나 개인의 감정과 정신을 집약시키는 미디어인지를 알 수 있었다. 촛불시위 따위를 지켜보며 내 자신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촛불운동이 사상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았다면, 첫째로 그 안에서 이명박이 아니라 우리 안의 이명박적인 것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가 논의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명박적인 것이란 외과수술처럼 선명하게 도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앞으로 제2,3의 이명박이 등장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또 하나는 촛불운동 실패 이후의 것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촛불운동은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촛불의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요즘들어 다시금 광우병이나 막장정권이 나타나고 있는데 예전처럼 촛불운동이 기능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루쉰을 읽고 싶기는 하나 니체를 읽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체의 저작을 담론으로 삼아 이를 문제시하는 사회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 또한 니체의 저작을 통한 작업을 하게 될테니 말이다. 책에서는 충분하게 담지 못했다.

 

 

역동적인 결과물인 정치 속,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의 여지를 남긴 노무현 정권

전성욱 문학평론가 : 나 또한 「비사유에 관한 사유」 부분에 관해 충분치 않게 읽혔다. 이 책은 뭐랄까, 답을 내야하는 조바심을 갖지 말고, 물음을 촉발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책에서 기대하고 있는 답은 없으니 나같은 못된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답답했을 것이다. 정치감각에 관한 부분을 보면 텔레비전이나 언론을 보면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무력,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것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비평정신과 정치감각으로 나온다. 선생님께서는 정치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 권력과 정치의 구분, 정치사고의 구도를 이야기하셨다. 상층부 중층부, 하층부를 나누게 되는 정치사회의 구도에 대해 설명해 달라.

윤여일 저자 : 정치와 권력에 대해서 얘기하겠다. 노무현의 새만금 간척사업, 대추리, 한미FTA, 모두 나와 내 동료들이 개입하려고 했던 사건이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비교해 봤을 때, 둘 다 못마땅하지만 생각해보니 민주주의라는 문제에 있어 두 정권은 다른 면을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를 사유하지 못하고 요구하게 만들었으나, 노무현은 민주주의에 사유의 여지를 주었다. 검찰과의 대화와 같은 행보가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에 대해 한국사회가 어디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가를 만들었던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 같다.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것이 자명시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명박 사회는 민주주의가 자명시되지 못하고 퇴행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정치라는 것은 역동적인 과정이며, 권력은 역동적인 과정에 대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일 따름이다. 그 운동성을 정치가 상실하면 권력을 가진 층에서 정치개입 요소를 제공하게 된다. 권력이 정치가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권력이 정치적 세계인 것처럼 마치 우리가 보게 되는 스포츠 뉴스를 다루는 방식과 가까워진다. 즉, 정치가 운동 경기를 설명하는 용어와 흡사해지는 것이다. 그런 용어에만 깊이 빠질 것을 경계하고, 권력을 누가 쟁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정치적 사고에 대해서는 이처럼 현실정치에 대해서, 정치인들의 정치뿐 아니라 이념과 이념,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인권과 인권, 중층, 생활세계의 하층의 다양한 정치가 있다. 현실정치라는 상층부에 있는 정치를 생활정치라는 하층부로 끌고 와야 한다.

 

토론회에 참여해주신 독자분들.

 

독자와의 대담

전성욱 문학평론가 : 책에는 구체적 사례가 많이 없다. 사례를 들어 설명을 해주니 좋다. 이번에는 독자여러분들의 질문을 받아보겠다.

 

독자1 :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숨이 막힌다고나 할까. 읽으면서 생각이나 여유가 없다는 생각을 받았다. 너무나 빠르고 숨막히게 글이 전개되어 미처 의문을 제기할 수가 없었는데, 이 책을 쓰시면서 독자를 위해 좀 더 친숙하고 편하게 쓰실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윤여일 저자 : 어떤 글을 쓸 때 결정하게 되는 것은 글의 주제와 소재뿐만이 아니라, 감정상태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우울한 책이다. 여행기를 연재할 때는 일주일 동안 다녔던 여행을 상상하며 글을 쓰니 즐거운 감정상태였는데, 『오늘의 문예비평』에 글을 쓸 때는 어떤 다른 감정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우울한 정서였다. 글에 여백을 두고 싶지 않아 의식적으로 글을 썼다. 니체의 글쓰기 방식 중에 접속어와 함께 연결되는 세계와, 형상을 만들어내는 글쓰기 방식이 있는데 니체를 흉내내고 싶었다기 보다, 무언가 한 문장의 옆의 문장 하나하나를 다 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힘들었다. 문장을 써내면서 여백에 해당하는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표현을 없애며 써보고 싶었다.

 

독자2 : 이 책은 난해하다.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데 있어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첫문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문장, 한문장에 있어서 어떤 단어를 선택할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몇줄씩 고민하게 된다. 길을 가다가도 떠올리며 메모하고는 하는데, 추상적 언어로 구체적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 글은 솔직히 이해가 잘 안되었다.

윤여일 저자 : A란 주제에서 글로 풀어내고자 하는 B지점이 있을 때, 나는 아주 좁은 걸음으로 가고자 한다. 그 좁은 지점을 열 문장으로 써보고 싶었다, 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사고의 절차와 표현의 절차를 어디까지 표현해 볼 수 있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A와 B사이가 먼 거리여야 했다. 둘 사이가 연관성이 없는데 논리적 비약이 될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다리를 놓아보는 것이다. B로 가지 못하고 A'나 A''라는 방식으로 관성화되는 부분이 많기에 그런 부분을 충분히 경계하고 싶었다. 그래서 돌들을 까는 방식으로 문장을 배치해보려 한 것이다. 문장을 촘촘하게 하여 이론적인 증거를 들거나 사례를 들지 않고 이론적인 표현만으로 글을 구성한 것이다. 이는 첫 번째 독자분의 질문의 답이기도 하다.

사례로 들지 않고 글을 쓴 이유는 이 책을 쓰기 전의 글이 사실 모두 사례였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사례만큼 좋은 것이 없지만, 번역불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구체적 사례를 들지 않았다. 원전인 내 자신의 표현만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독자 3 : 신체에 남는 연구가 무엇인지 답변해 달라.

윤여일 저자 :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이 말한 ‘挣扎(쟁찰)’[zhēngzhá]이라는 용어에 대해 투입하다, 끄집어내다 정도로 표현해냈는데, 이는 글을 쓰고자 하는 대상에 자신을 투입해서 자신을 던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신체에 남는 연구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글을 쓰는 대상과 자신의 거리를 어떻게 두는가에 있다. 글쓰기마다 문체가 달라질 수 있는데, 나는 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글쓰기 방식을 선호한다. 이와 다른 종류의 글쓰기와 관련해서 끄집어내고 싶은 충동을 갖고 있다.

 

독자4 : 「이론, 비평, 사상」부분에 있어 이론과 비평사상에 관한 총괄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비평이라는 지점과 자기비평이라는 사상에 대해서 맥락을 풀어서 얘기해 주시면 좋겠다.

윤여일 저자 : 다케우치 요시미 선생은 1500편의 글을 발표했다. 매달 한편씩 발표를 했다치면 1400편 정도 쓰는 셈이 되는데, 선생은 생애 모든 시간을 글쓰는 데 바친 사람이다. 그 글을 읽는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런 사람의 모든 시간은 글을 쓰거나 읽거나 하는 등의 글과 관련되어 있다.

열아홉 편의 글을 써낼 때 자신에게 이정표가 되는 글이 있는 반면, 자신에게서 버려지는 글이 있다. 내 고민에서 그 물음을 가장 구체화되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글이 있으면 그것을 이어보면서 확인시킨다. 그 이외의 글은 몸에 남는 글이 아니다. 기능적인 글이랄까. 이정표가 남는 글이 생기면 사유의 지도를 완성할 수 있다. 이론적인 공부방식을 거부하는 이유는 좌표를 찾아가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쓰는 사람에게 글쓰기란 거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잠시 머물러 비로소 발견되는 내 한계에 대해 노력했기 때문에 그 과정속에서 내 한계를 배우게 된다. 글쓰는 행위를 나는 ‘사상한다’라는 동사로 만들고 싶다. 글쓰기는 자기자신을 분열상태로 내모는 행위이다.

 

독자5 : 루쉰과 다케우치 요시미, 쑨거를 사상가로 꼽으셨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를 들 수 있을까?

윤여일 저자 : 잘 모르겠다. 그 세 명은 텍스트로 접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삶의 전체상황과 시대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에 사상가로 꼽을 수 있었지만, 어떤 분에 대해서 그 세 분 외에 그런 종류의 전체상을 그려본 적이 없고 연구해 본적이 없다. 다, 나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자기고백과도 같은 솔직한 글

전성욱 문학평론가 : 그런 분들을 만나기가 어렵고, 나도 윤선생님께 물어봤었는데 같은 대답을 하시더라. 사상을 하려는 자에게는 자신이야말로 진정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대목이 있었다. 자기고백과 같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솔직한 글이다. 마지막으로 짧게 인사말 부탁한다.

윤여일 저자 : 솔직한 글은 아니다. 전성욱 선생님과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대화를 하면서도 의식하는 사람은 앉아계신 여러분이다. 글쓰는 행위 또한 읽어주는 사람을 향해있다. 실제 글을 쓸 때도 솔직하게 글을 썼지만, 읽힐 것을 염두했기에 솔직하게 쓰지 못했다. 타인의 시선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내가 애초에 했던 계산에 대해서는 조금 충분하지 못했다. 책의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Posted by 비회원




"지식의 윤리성은 지식과 지적 주체의 관계에서 빚어진다. 물론 지식은 지적 주체가 생산하지만, 지식의 윤리성이란 그 지식을 매개 삼아 지적 주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관련된다." (본문 17쪽)




▶ 지식 생산에 앞서 지식 생산의 절차를 되묻다

이 책의 화두는 ‘지식의 윤리성’이다. 저자가 말하는 ‘지식의 윤리성’이란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지적 주체가 자기 변화의 계기를 구한다는 의미다. 즉 지식이 논리적으로 완결되어 있는지, 옳은지 그른지만이 아니라 지식과 대면하며 주체가 갱신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이론, 비평, 사상을 구분하여 사상을 이론이라는 영위에서 끄집어낸 다음 현실감각, 정치감각, 번역감각, 언어감각이라는 감각의 층위로 내려가 현실, 정치, 번역, 언어의 문제를 사상의 관점에서 해명한다. 이 책은 ‘지식의 심층’을 해부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 지식의 세 가지 속성: 정합성, 기능성, 윤리성

저자는 ‘지식의 윤리성’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제창한다. 만약 지식을 지적 주체와 지적 대상, 그리고 지적 환경 사이의 산물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세 가지 다른 지식의 속성을 구분해낼 수 있는데, 바로 정합성, 기능성 그리고 윤리성이 그것이다.

우선 지식과 지적 대상 사이에서는 정합성이 관건으로 놓이다. 정합성이란 그 지식이 분석과 증명을 통해 해당 대상을 얼마나 정확히 설명해내느냐의 문제다. 학술 영역에서 지식의 질은 대개 정합성에서 판가름 난다. 하지만 그 밖에도 지식은 기능성과 윤리성을 지닌다. 기능성이란 그 지식이 지적 환경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의 문제다. 즉 얼마나 널리 유통되고 현실을 움직이는지, 또한 다양하게 사유를 촉발시키는지와 관련된다. 따라서 지식의 가치는 무엇을 기준으로 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정합성 애호증이랄까, 학술계에서는 정합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사실 정합성과 기능성은 따르는 논리가 다른데도 기능성은 정합성에 따르는 부수적 효과로 간주되곤 한다. 한편 정합성과 기능성이 내적 긴장관계를 상실하면 정합성을 추구하는 지식은 점차 아카데미화되고, 기능성을 좇는 지식은 저널리즘화되는 편향을 띤다. 그것이 오늘날 학술지는 무료해지고 일반 잡지는 선정적이 되어가는 이유다.



▶ 지식의 윤리성을 주목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지식의 윤리성을 주목한다. 지식의 윤리성은 지식과 지적 주체의 관계에서 빚어진다. 물론 지식은 지적 주체가 생산하지만, 지식의 윤리성이란 그 지식을 매개 삼아 지적 주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관련된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내놓는다.

지적 주체가 다루려는 대상 안에 지적 주체는 내재하는가. 지적 주체가 생산하는 지식은 주체 자신을 향하고 있는가. 지적 주체가 대상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을 때 혹은 대상에 지적 주체가 비치고 있을 때 지적 주체는 통상 지식이라는 말에 담기지 않는 관계성에서 불거지는 문제들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그 경우 어떤 요소를 고려해야 지식은 지식으로서 성립하며 지적 주체는 자신을 쇄신할 수 있는가. 그때 지식의 의미는 전과 어떻게 달라지며, 지적 주체는 어떠한 상황에 내몰릴 것인가.




▶ 이론의 물신화에 맞서 치열한 자기비평에 나서다

1장 「이론, 비평, 사상」은 서론 격인 글이다. 저자는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성찰을 심화하기 위해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세 가지 지적 영위의 차이를 밝히며 이론에 악역을 맡긴다. 즉 이론은 현실을 걸러내 앙상한 논리를 추출한 것으로서, 이론이 물신화되면 반체제 정신도 고급 이론으로 유통된다. 특히 비서구 지식계에서는 이론의 물신화 경향이 짙다.

아울러 저자는 ‘비평’을 좁은 의미의 비평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즉 복수의 주관이 맞붙는 장에서 가격을 매기거나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비평과 그런 비평들이 성립하는 지평 자체를 되묻는 비평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평은 담론지형의 근저를 추궁하는 실천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그렇다면 ‘사상’이란 자기 사유의 원점을 응시하며 자신을 사고의 위기로 내모는 실천, 바로 자기비평인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사상이야말로 바로 지식의 윤리성이라는 심급에 닿는 정신의 영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현실감각에 관하여

현대인의 신경은 현대문화가 뿌려대는 복잡한 자극에 시달려 마모된 상태다. 저자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수많은 매체를 통해 주입받은 과도한 자극으로 말미암아 무뎌진 현실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현실’을 거머쥐기 위한 성찰에 나선다. ‘자신의 현실’을 거머쥐려면 현대인은 예리한 눈을 가져야 하고 민감한 귀를 가져야 하는데, 이런 예민함은 사고의 힘으로 배양되어야 한다. 드러난 것에서 은폐된 이면을 사고하고, 투명함 속에서 불투명함을 발견하고, 우리의 현실이 어떤 담론적 공간에서 주조되었는지를 드러내는 비평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정치감각에 관하여

3장 「정치감각에 대하여」는 정치에 대한 무력감, 피로감, 무관심으로 무뎌진 현대인의 정치감각을 고찰한다. 저자는 성숙된 정치적 사고를 갖추려면 정치=권력 혹은 정치=도덕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거기서 나아가 저자는 ‘정치사고의 구도’를 분석한다. 만약 정치사고의 구도를 피라미드형으로 분포시킨다면, 상층부에는 정권 투쟁, 계급 투쟁 등에 사용되는 이념, 이데올로기, 이론 등의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관념들은 정치 투쟁에 활용되어야 하는 만큼 비교적 체계화되어 있으며 가시화되어 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면 정치 현상에 대한 대중의 견해, 더 아래에는 그런 견해들 배후에 버티고 있는 생활감각이 자리한다. 저변으로 내려갈수록 이론화 정도는 약하며 가시성이 낮아진다. 또한 정신 구조의 상층부에는 복수이되 제한된 수의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경합하고 있지만, 대중의 견해와 감각은 보다 파편화되어 있다. 바로 ‘정치감각’은 이러한 양극을 오가는 정치적 사고를 길러내기 위해 필요한 감수성인 것이다.


▶ 번역감각에 관하여

모든 독서는 오독이고 모든 번역은 오역이라 주장하는 논자도 있지만 저자는 번역의 불가능성을 사상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번역은 번역가능한 것이 아니라 번역불가능한 것으로 인해 자유의 경험이 될 수 있으며, 진정한 번역의 자유는 ‘재현’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작의 언어를 번역자 자신의 언어로 해방시키는 과정이 오히려 원문을 향한 충실성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번역의 사상성, 번역의 정치성, 번역의 위계성을 논하면서 번역의 문제를 언어의 기술적 전환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성과 보편성의 문제로 확장시키고 있다.


▶ 언어감각에 대하여

5장 「언어감각에 대하여」는 쓴다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사유는 언어를 매개로 하지만 언어에 머루를 수는 없다.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언어로 비추고 잠재된 사고의 편린들이 모습을 갖춰가는 체험이지만, 관성화된 언어감각으로 인한 상투적인 표현은 쓰기의 체험과 사유를 좀먹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감각을 연마하여 자신의 문체를 가다듬고 벼리는 일은 자신을 의심으로 고통과 고독으로 내모는 영위이며, 저자는 여기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 나서고 있다.





글쓴이 : 윤여일

수유너머R 연구원이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년간 동경외국어 대학에서 외국인 연구자로 수학했다.

「다케우치 요시미 사상의 원점-루쉰을 단서로」, 「내재하는 중국-다케우치 요시미에게 중국연구란 무엇이었나」, 「사상이 살아가는 법-쑨거의 동아시아론 연구」, 「비평의 장소-가라타니 고진을 매개로 삼아」, 「동아시아라는 물음」, 「방법으로서의 동아시아」, 「동아시아라는 번역공간」, 「틀렸다. 하지만 어디가 얼마나? 그래서?―역사주체논쟁에서 논쟁되지 않은 것들」을 발표하고,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 『세계의 사회주의자들』, 『촛불이 민주주의다』의 집필 작업에 참여했다.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1-고뇌하는 일본』,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2-내재하는 아시아』,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으로서의 3․11』을 번역하고, 『리저널리즘』, 『현대사상지도』, 『반일과 동아시아』, 『교차하는 텍스트, 동아시아』, 『동아시아, 인식지평과 실천공간』의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에 수록된 글은 『오늘의 문예비평』에 연재한 「지식의 윤리성」에 미발표 글을 더한 것이며, 『인물과사상』에 「여행의 사고」를, 프레시안에 「동아시아를 묻다」를 연재했다.



▶차례

1장 이론, 비평, 사상

2장 현실감각에 관하여

3장 정치감각에 관하여

4장 번역감각에 관하여

5장 언어감각에 관하여

후기



"「현실 감각에 관하여」를 제외한다면 이 글들은 『오늘의 문예비평』에 1년간 연재한 것들이다. 연재를 마무리한 직후 책으로 묶자는 제안이 왔고 망설인 끝에 한 편을 보태 이런 모습으로 내놓게 되었다. 망설인 이유는 당연히도 애초 구상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형태로 내보내는 것은 「정치감각에 관하여」는 지금 정권을 겪으며 쌓인 감정들로 써낸 것이라서 이 정권이 끝나기 전에 꺼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긴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 감정들을 게워낼 수 없을지 모른다."(후기)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ㅣ 크로스크리틱 01


  지은이 : 윤여일

  쪽수 : 196쪽

  판형 : 신국판

  ISBN : 978-89-6545-175-4 04080

  값 : 16,000원

  발행일 : 2012년 4월 23일

  십진분류 : 041-KDC5

                 089.957-DDC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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