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연말 기념 폭풍 블로거 잠홍 편집자입니다.


산지니 어워드 2부: 2015년에 빛난 산지니 책! 문학편


에 이어, 이번에는 2015년에 빛난 산지니 인문도서들을 한자리에 모아보려 합니다.

순서는 제 마음대로, 아시죠? :)
수상 사실 외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도서 목록입니다.



1/ 힘의 포획, 비인칭적인 것 

세종도서 문학나눔 - 평론

올해 문학나눔 평론 부문에서는 오길영 평론가의 <힘의 포획>, 
그리고 고봉준 평론가의 <비인칭적인 것>이 선정되었습니다.




<힘의 포획>은 “지금 비평은 거의 대부분 ‘칭찬’의 비평”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이 책에서 오길영 평론가님은 “비평(criticism)은 곧 비판(critique)”라고 적으셨는데요. 

문학의 위상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동시에 '칭찬'의 비평과 주례사 비평으로 전락한 당대 한국비평의 위기상황 속에서도, 비평가가 본래 갖고 있는 문학에 대한 책무를 놓치지 않을 것을 강조합니다. 



힘의 포획 - 10점
오길영 지음/산지니




<비인칭적인 것>은 고봉준 평론가님의 네 번째 평론집으로, 한국사회와 한국문학의 최근 시대적 변화에 개입하여 주체, 문학과 정치, 민주주의, 주권, 노동시 등의 문제들을 직접 마주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올해의 첫 저자와의 만남에서 교수님은 "문학은 자신만의 경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작품이 모두 작가 본연의 이야기가 아닌 경우도 있지요. 작가, 나 그리고 이외의 목소리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누구의 목소릴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비인칭적이라는 것』이라는 제목을 착안했습니다."라고 설명해 주셨어요.

고봉준 평론가님께서는 올해 5월에 '제16회 젊은 평론가상'을 수상하시기도 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비인칭적인 것 - 10점
고봉준 지음/산지니



2/ 지중해 언어의 만남

세종도서 우수 교양도서


2015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서 선정된 산지니 책은 

지중해지역원 인문총서 시리즈 중 하나인 <지중해 언어의 만남> 입니다.


저자 윤용수, 최춘식 교수님께서는 이 책에서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요르단, 레바논을 중심으로 근대 이후에 아랍어가 유럽어와 접촉하는 과정과 배경 및 그 결과를 살펴보셨는데요. 지중해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언어의 강제 이식이 어떻게 언어 교류의 형태로 작용하는지 파악할 수 있고, 타 지역의 언어 교류 형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외래어가 범람하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지요.




지중해 언어의 만남 - 10점
윤용수.최춘식 지음/산지니



3/ 한국 근대서화의 생산과 유통 
세종도서 우수학술도서


왕실과 양반계급 내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던 서화는 어떻게 대중적 문화상품이 되었을까요? 저자 이성혜 교수님은 근대 전환기 신문과 잡지를 살펴 조선시대부터 일제 시기까지 국내 서화계의 변화를 실증적으로 규명한다. 근대국가 체제로의 전환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서화가들이 어떻게 생존을 모색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이성혜 교수님께서는 조선후기 서화가의 삶과 예술에 골몰하여 2000년도 초부터 서화가들에 대한 책을 내신 바가 있고이들 조선후기 서화가들이 중세가 해체된 근대전환기에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며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에 실린 연구를 진행하셨습니다.


한국 근대 서화의 생산과 유통 - 10점
이성혜 지음/해피북미디어


4/ 사막의 기적? , 
라틴아메리카 언어의 다양성과 언어정책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칠레와 20년 가까이 인연을 맺고 있는 조경진 교수님의 저서『사막의 기적?』은 

칠레 북부 이키케 지역의 흥망성쇠의 문화와 지역개발신화를 다룬 문화인류학 책입니다.



이키케는 칠레 북쪽 아타카마 사막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항구도시로, 비옥한 남부지역과 달리 척박한 사막지역이어서 수천 년 동안 정착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세기 이키케 지역에 초석 붐이 불면서 경제부흥이 일어났고, 다른 도시의 이민자들이 유입해 오면서 척박한 도시에 항구와 지역민이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단일품목 생산 또는 단일 사업형태에 집중된 이곳 경제활동은 외부충격에 취약했고, 다시 쇠퇴기를 겪으면서 결과적으로 반복적인 흥망성쇠를 경험하게 됩니다. 


군사독재하에 이뤄진 경제개발, 과열된 부동산 투기, 노동운동의 태동과 지역민의 국민되기 등은 머나먼 이국 땅 칠레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우리에게 낯선 사건들이 아니지요. 무엇보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현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칠레 북부 사람들의 개인사와 지방사, 역사를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게 풀어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남아 있는 개발신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사막의 기적? - 10점
조경진 지음/산지니



『라틴아메리카의 언어적 다양성과 언어정책』은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언어상황과 
다민족으로 구성된 이들의 문화와 언어정책 등을 되짚어 보는 책입니다.


저자이신 김우성 교수님은 특히 중남미 각국의 독자적인 언어규범 확립에 대한 노력에 주목하셨는데요. 과거 라틴아메리카가 겪은 역사, 사회적 변동에 따라 식민지 본국인 스페인과는 다른 차별성을 갖기 위해 각국이 어떠한 언어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정책을 펼쳐왔는지 상세히 기술하셨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스페인어는 국가마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집합체라고 쓰셨는데요. 그럼에도 이들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근본적인 통일성이 언어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어현상에서 공통되는 점을 묶어 규범을 만드는 일이 다양한 어휘로 인해 야기된 많은 문제를 종식하는 한 방법일 수 있다고 합니다.



5/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산지니 어워드 3부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책은, 제가 편애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부산 지역출판사 산지니 식구들이 출판사의 창업에서부터 다사다난했던 출판사 운영과정을 엮어낸 책인데요.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사 창업을 준비한 강수걸 대표님의 사연은 물론 첫 책 『반송 사람들』을 시작으로 300여 권의 책을 펴낸 산지니의 기록을 한데 모았습니다. 출판사를 차리고 첫 책을 홍보하러 서점 관계자를 찾아갔던 이야기, 출판사 작명에 관한 이야기, 저자에게 원고를 청탁했던 이야기, 인쇄사고, 서점부도 등 10여 년에 걸친 지역출판사의 생존기록인 셈입니다. 산지니 출판사 사례를 통해 부족하지만 지역의 독자들과 꾸준히 만나며 향후 지역출판의 과제와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 10점
강수걸 외 지음/산지니


산지니 어워드 3부작, 어떠셨나요?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올해 꽤나 많은 책들이 나오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과 격려 속에 2015년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저자분들의 헤아릴 수 없는 땀방울에서부터 

교정교열, 본문과 표지 디자인, 인쇄와 제본을 거쳐

독자 여러분들께서 책들을 읽어주시기까지--

편집자인 저는 활자에 파묻혀 잊고 있을 때가 많지만

참 많은 분들과 손길을 주고 받았네요.

이 참에 감사 인사 드립니다.



연말 블로거 잠홍은 이만 새해를 맞이하러 가봐야겠습니다.


잠홍과 싱크로율 99%. 표정은 이래도 좋아라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어떤 책으로 또 인사를 드리게 될까요? 


산지니의 2016년, 기대해주세요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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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단디SJ 2016.01.04 0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학만큼 알찬 산지니의 인문 서적들~ ♥

  2. BlogIcon 엘뤼에르 2016.01.04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궁... 고양이 귀여워 죽겠네요 ㅎㅎ

  3. 온수 2016.01.04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었어요. 앵콜 요청합니다. 다음 편도 해주세요. 아우 고양이도 귀엽네요. 그냥 고양이 특집 한 번 해줘요ㅎㅎ

이키케의 삶,

흥망성쇠의 굴레

 


안녕하세요, 곰고래곰입니다!

       즐거워

블로그에서는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오늘 포스팅할 책은

『사막의 기적?-칠레북부 흥망성쇠의 문화와 지역개발신화』입니다.

출근한 첫날, 처음 맡은 업무가 바로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거였지요. 두근두근!


먼저, 칠레북부의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는 표지와 목차부터 살펴볼까요?

  



 

 

      저자 소개

 

 

조경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했다.라틴아메리카 연구자로 시작해서 지금은 의료인류학과 공중보건, 케어기빙에 대한 연구로 관심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집필한 논문으로 「다시 쓰는 자유무역」, 「전지구화 시대의 위기와 공동체 재편성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 그리고 「Border Children: Interpreting Autism Spectrum Disorder in South Korea」 등이 있다

 

 

 

저자 조경진 선생님은 미국 시카고대학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하셨는데, 이 책은 박사학위 논문을 보기 좋게 편집해서 출판한 거라고 합니다. 박사논문이라고 해도 어렵게 볼 필요는 없어요! 이런 주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을 곁들여주시고 있습니다:-)

 

자, 먼저 책을 간단하게 훑어보겠습니다.

 

칠레의 지도


이 책은 미역줄기처럼 기다란 나라,     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칠레 영토의 길이는 약 4,200km, 폭의 평균은 약 140km라고 해요. 굉장히 긴 나라지요? 칠레 중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한 타라파카 지방의 주도 이키케가 책의 주 무대가 됩니다.

타라파카 지방은 칠레 중앙에 위치한 수도 산티아고와 멀리 떨어져있는 사막지대이기 때문에, 문화·경제적으로 소외를 받아왔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와서 당시 중요한 지하자원이었던 초석이 발견된 이후, 거대 자본과 중앙정부와의 끊임없는 마찰을 겪게 되는 한편, 칠레 전역과 외국에서 투자자와 인부들이 유입됨에 따라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이키케를 구성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키케 사람들은 칠레라는 국민국가에 완전히 포섭되지 못하고 이키케 특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요.

 

 

 

저자는 이러한 이키케의 문화와 정체성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그런데 인류학이라니, 이게 대체 뭘까요?

 

 

 

인류학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 그것을 의미의 체계(meaning)와 행위(practice)의 차원에서 도출하여 패턴을 찾고, 그 특수성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서, 인류문명의 독자적인 면모와 공통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것을 통해 인류라는 종(species)에 대한 이해를 가져가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이때 문화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그림을 ‘완성한다’라는 말을 할 수는 없으며, 그때그때 최대한으로 포괄적이고도 깊은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

 

 

 

저자는 이키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하나의 그림으로, 긴 서사로 엮어내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사막의 기적』은 근대 이후 이키케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역사서같이도 보입니다. 역사서와 한 가지 다른 점은 서사를 서술하는 방식이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하나의 완결된 작업이 아니라, “하나의 테마로 구성된 속성을 보유하면서도 재해석의 여지가 넘쳐나는 미완의 작업”이라는 것이죠.

 

 

이제 준비운동을 끝내고,

따뜻한 시선으로 엮어낸 이키케의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볼까요?

 

 

칠레는 중앙집권체제를 일찍 구축한 국가 중 하나인데요, 칠레의 근대사는 중앙정부 주도 아래 지배엘리트를 중심으로 서술되며, 계급과 정당 간의 관계 외에 다른 종류의 갈등은 배제됩니다. 이키케 또한 칠레가 근대적 국가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이 벌어졌던 곳으로 부각되기만 할 뿐, 지방과 지방민이라는 주체는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19세기 말의 초석개발은 이키케가 칠레 국사에서 중요하게 서술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비글호 항해기에서 이키케를 두고  "식수나 땔감 같은 생필품도 부족한 도시" 라고도 묘사했는데요, 단 하나 풍족한 것이 있었다면 바로 초석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인공초석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초석은 무기와 비료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원료였기 때문에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죠.

 

 

이키케해전이 벌어진 이 날은 "영광스러운 해군의 날Día de las Glorias Navales"로 불립니다.


 

 

 

"우리를 무릎 꿇리려 한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할 지어다!"

태평양전쟁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페루-볼리비아 연합군과 칠레가 타라파카 지방의 초석광산에 대한 개발권을 두고 벌인 전쟁입니다. 우리나라에선 태평양전쟁하면 2차대전 당시 일본과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졌던 전쟁을 떠올리지만, 칠레에선 이때를 두고 태평양전쟁이라고 일컫습니다.

 

 

 

 

칠레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뒤, 비옥한 초석광야를 개발하기 위해 외국자본이 이키케에 들어옵니다. 중앙정부는 외국자본에 초석광산 개발권을 이임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수료와 세금을 챙겼는데요, 초석생산에서 나오는 수익이 칠레 전체 수익의 반에 달했지요. 한때 타라파카 지방이 칠레 전체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앙정부는 그 돈으로 칠레가 근대 국민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모든 인프라―철도, 도로, 항구시설 등―를 건설합니다. 그러나 초석산업이 만들어낸 수익임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이 타라파카지방까지 닿지는 못했죠. 이키케 사람들은 수십 년이 지날 때까지 하수도조차 제대로 깔리지 않은 환경에서 만성적인 인프라·생필품 부족에 시달립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칠레 전역과 외국에서 많은 인부들이 초석광산 캠프에 정착합니다. 초석광산에서부터 칠레의 노동운동이 태동하고, 급속도로 퍼져나간 좌파정당이 세계최초의 사회주의 대통령을 당선시킵니다.

 

 

칠레 북부 초석광산 노동자들

 


이러한 지점들을 거쳐 이키케 지방사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군인들의 자기희생,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계급갈등, 정당들의 헤게모니 쟁탈 등으로 대변되고, 국가의 거대개발 담론과 궤도를 함께하는 개발신화로 서술됩니다. 그야말로 “노동운동의 요람에서 사막의 기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것 외에, 현지인들이 그 과정 속에서 살아가고 생각하는 방식은 배제되고 맙니다.



작은 마을, 큰 지옥 이키케



그러나 이키케의 역사는 국사에서 서술되고 있는 것과 달리 선형적이지 않습니다. 현지인들의 생활여건과 경제활동은 국사가 말하고 있는 것과 달리 직선의 형태로 계속해서 발전만을 거듭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이키케의 지리적 조건은 초석개발 등의 특정한 경제활동을 장려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다른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주된 산업이 쇠락할 경우, 경제활동에 절대적 공백이 생겨 다시 아무 것도 없는 출발지점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타라파카 지방의 주도 이키케의 흥망성쇠의 굴레

 

 

인공초석의 개발 이후 초석 산업이 쇠하고, 이후 번창했던 어분산업 마저 다시 쇠하고, 이키케 자유무역지대가 설립되지만 FTA가 발흥하고 중앙정부가 엄격하게 관세를 부과한 이후 또다시 쇠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타라파카 지방 이키케의 흥망성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자유무역지대가 쇠한 이후 현재, 이키케는 물류중심지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의 이키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이키케 사람들은 이러한 사이클을 두고 “흥망성쇠(auge y caÍda)”라고 표현하고 있다. (…) 흥망성쇠는 초석산업과 같은 경제활동의 시작과 끝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 산업이 몰고 온 지역경제의 활성화(boom)와 갑작스러운 공황(bust)을 의미할 수도 있다. 나아가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면 경제적 붐이 제공했던 부와 수많은 가능성, 그리고 공황에 잇따라 무너진 가정경제와 가정의 붕괴, 개인적으로는 희망의 상실과 좌절을 의미할 수도 있다. 지방사를 흥망성쇠의 틀에서 다시 서술하고자 한다면, 타라파카에서의 흥망성쇠의 준거(reference)를 파악해야 한다. 타라파카에서 흥망성쇠는 본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그곳 사람들은 흥망성쇠를 어떻게 체험하고 이해했으며 기억하고 있는가를 알아봐야한다. (…) 반복되는 흥망성쇠의 사이클은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데 방해가 되며, 불안감 속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이 지역에서 어떠한 여운을 남겼는가? 이곳에 흔적을 깊이 남긴 세 가지 경제활동의 흥망성쇠는 어떻게 기억되고, 어떤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가? 생활 속에서 흥망성쇠의 사이클을 타고 살아갈 때 어떤 종류의 지역 정체성이 형성되는가?

 

 

 

 

저자는 세계경제와 중앙정부의 동향에 의존하는 이키케의 불확실한 “인류의 상태”를 발견하고, 현지인들이 이키케의 역사를 비유하는 흥망성쇠를 토대로 이야기를 서술합니다. 이키케의 구성원과 생활양태, 사회지배계층에 의해 지속적으로 소외되는 데서 오는 불만, “지역경제의 활성화(boom)와 갑작스러운 공황(bust)”이 야기하는 생활전반의 불안감 등을 가깝게 들여다보고 큰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흥망성쇠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순적인 갈등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키케의 과거와 현재에 구체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중앙정부 중심의 국사에 종속되어 있던 이키케의 지역사가 말해질 수 있게 됩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은 그 역사를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곳의 힘이기도 하다. 이키케는 칠레에서 자신의 자리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키케 사람들의 삶을 얽매이고 있는 흥망성쇠의 굴레는 마치 산꼭대기를 향해 끊임없이 굴려야하는 시시푸스의 바위 같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반복되고 되풀이되는 역사 속에서 저자는 이키케 사람들의 계속해서 ‘흥’과 ‘성’을 만들어가는 의지와 열망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 발견 속에서만이 이키케가 칠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서술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저자가 칠레를 보며 우리나라를 떠올리듯, 어쩌면 힘들고 고되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이키케 사람들의 삶은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먼 곳에 사는 이웃들의 그림과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우리들의 그림과 이야기를 되돌아보고 새롭게 그려나갈 수 있겠지요. 『사막의 기적?』이 여러분께 그런 책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글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네요. 하지만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우니, 재밌었던 코너 하나를 알려드릴까 싶어요(-;

저자는 중간 중간 인물탐색 코너를 삽입해서 이키케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키케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 이키케에서 태어나 이키케에서 성장한 이키케뇨, 자유무역지대 소프리의 직원에서 시작하여 오너까지 오른 부인, 이 세 사람의 삶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이키케를 좀 더 가깝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세 사람의 출생배경에서 이키케 사람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었는데, 한 사람은 칠레의 다른 지방에서 이키케로 이주를 한 사람이고, 다른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국적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어요.

 

 

2000년 11월, 돈 기예르모 로스-뮤레이 레이 킴과 함께 페허만 남은 산타 카탈리나 초석캠프에서


 

위의 사진은 이키케뇨인 돈 기예르모 로스-뮤레이 레이-킴입니다. 언뜻 너무 길어 보이지만, 한 사람의 이름이랍니다;-) 그의 아버지 존함은 기예르모 로스-뮤레이 미란다, 어머니 존함은 테레사 레이-킴 아르노로,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스페인계 사람였고, 어머니는 중국 프랑스계였습니다. 돈 기예르모는 인종적으로 그 출신을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초석시대의 다양한 이민자의 혈통이 섞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이키케뇨라고 믿을 뿐만 아니라, 이 사실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키케의 흘러간 가요 몇 구절을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를 짓도록 할게요.

 

 

 

Hello, Miss

How are you?

Hello, Miss Hodge

¿Donde esta tu voz? (목소리는 어디 두고 오셨어요?)

¿Y tu sonrisa en blue? (슬픈 미소는 또 어디에?)

 

 

 

어때요, 좀 더 이키케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나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블로그에 쓰는 서평은 처음이라, 많이 딱딱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드네요.

인턴을 마칠 쯤엔 좀 더 경쾌하고 즐거운 글을 쓸 수 있길 바래봅니다ㅎㅎ

좋은 하루 보내셔요♥♡




사막의 기적? - 10점
조경진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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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동글동글봄 2014.08.13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미역줄기에 빵 터졌습니다^^ 정말 적절한 표현 같아요. 다소 낯설 수 있는 책 내용이었는데 알차게 정리하셨네요. 제가 편집하면서 느꼈던 부분과 또 다른 부분이 있어 저 역시 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2. BlogIcon 동글동글봄 2014.08.13 1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3. BlogIcon 동글동글봄 2014.08.13 1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왜 곰고래곰이죠ㅎㅎ?

  4. 사막의 기적 저자 2018.05.14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제 이름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블로그 포스팅을 봤습니다. 제가 쓴 그 어떤 줄거리보다도 명확하게 쓰신 것에 놀라고, 이렇게 정성스럽게 읽어주신 분이 계신다는 사실에 놀라고 감동했습니다. 인턴 정말 확실하게 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너무 감사드려요.

    • 산지니 2018.05.15 1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조경진 선생님.^^
      인턴 곰고래곰 님이 이 댓글을 보면 무척 반가워할텐데요.

칠레에서 지진이 나고 남의 일로 생각하였습니다. 계속되는 환경재앙에 무기력한 우리이기에 무신론자이면서도 신을 찾게 됩니다.

구리로 전선을 만들기 때문에 LS전선을 비롯한 주가가 상승하지 않을까 추측하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 칠레산 포도주를 이마트에서 사기도 하였기에 포도주 가격이 상승하지 않을까 추측하기도 하였습니다. 추측은 정확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출판사 사장으로 제일 중요한 부분을 모르고 있었더군요. 종이 가격이 오른다는군요. 칠레에서 목재산업이 번성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한국의 첫번째 목재 교역국일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과 칠레의 FTA를 체결한 후에 인도네시아를 제치고 1위가 되었더군요.

4월 1일자로 종이가격을 6% 인상한다고 합니다. 걱정입니다. 책은 원가가 상승하여도 책 가격에 반영을 즉시 하기가 곤란합니다. 독자가 줄어들어 고민이 많은데 원가 상승은 출판사 운영에 어려움으로 나타날 듯합니다. 참. 칠레산 홍어를 많이 먹었는데 홍어 가격은 어떨까요?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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