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중국 사상가 '류스페이 사상선집' 번역·출간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약 100년 전에 중국에서 활동했던 사상가 류스페이(1884∼1919)의 사상선집이 출간됐다.

출판사 산지니는 "중국 근현대 사상가들의 삶과 그들의 사상이 현대 중국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보고자 기획했다"며 "2016년에 담사동의 '인학', 량치차오의 '구유심영록', '신중국미래기', 20세기 초 중국 사상계를 흔든 논쟁 '과학과 인생관' 등 4권을 동시 출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에는 격변의 시대에 지식의 힘을 강조한 장지동의 '권학편', 중국오사운동의 총사령관이면서 중국공산당을 창당하고 초대 당총서기를 맡아 20세기 중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천두슈의 '천두슈 사상선집' 등을 출간한 바 있다"고 전했다.


"지금 도의적으로 그런 평등을 달성하려면, 최선은 주인과 노복의 명칭을 없애고 세상의 빈곤층에게 전부 자유노동의 제도를 시행하여 사회에서 생존을 쟁취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가령 과거 천민에 속하는 자들도 일반 백성과 일체화시켜 평등의 권리를 함께 누리게 한다면, 곧 계급제도는 소멸되어 없어지고 중국의 백성은 모두 자유라는 행복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48쪽)

'류스페이 사상선집'은 류스페이가 중국 사상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발표한 논문 가운데 학술과 혁명에 관련된 20편을 뽑아서 우리말로 옮겨 묶은 책이다.

이 무렵의 류스페이는 반청혁명에 투신하고 배만민족주의를 거쳐 세계혁명을 외치는 아나키스트로서의 면모를 발휘했다. 이 과정에서 량치차오(梁啓超)와 '배만혁명의 정당성'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필전을 벌이기도 했다.

청소년기까지 고향 양주에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으며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류스페이는 1903년 과거에 낙방한 뒤 상해에 들어가 반청혁명에 투신했다.

류스페이는 무정부주의 혁명을 통해 '인류의 완전한 평등과 최대 행복'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시아의 약소민족은 대동단결하고, 서구의 사회주의자·아나키스트와 연대해 '세계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외쳤다.

산지니는 "우리나라에서 류스페이의 학술과 사상을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는 30년 전쯤"이라며 "1988년 처음으로 조광수가 류스페이의 무정부주의 평등관을 소개했고, 그 이후 본서를 번역한 도중만 교수 외에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연구는 넓고 깊어졌으나 류스페이의 논저를 직접 번역해 소개한 책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류스페이의 저작이 이미 동아시아의 근대 경전으로 자리매김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늦은 감이 있다"며 "여기에는 번역의 어려움도 한 몫했을 것이다. 특히 악필로 유명한 류스페이 덕분에 저본 자체가 오탈자투성이었는데, 번역자 도중만 교수가 일일이 여러 저본을 대조해 판독하고 교주 처리했다. 류스페이의 사상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것들만 가려 뽑았다"고 했다.

도중만 옮김, 370쪽, 3만2000원.

 

 

뉴시스 신효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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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민주주의: 시위와 조롱의 힘』과 관련하여

경향신문에서 꽤 긴 내용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기사 내용이 많아서 정말 일부분만 가져왔으니

전체 기사를 읽으실 분들은

하단의 기사 전문 읽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

 

손팻말, 머리띠, 구호…. ‘시위’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정형화된 이미지다. 변화를 위한 행동은 손팻말과 구호에 머무르지 않는다. 편견을 깨뜨리는 이색 시위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박수 치지 않기’, ‘샌드위치 먹기’, ‘러버덕 사진 합성하기’…. 익살과 유머가 때로는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변화를 이끌어낸다.

 

<거리 민주주의: 시위와 조롱의 힘>(산지니)은 새로운 저항 방식에 주목한 책이다. 인권운동가로 오랜 세월 활동한 저자 스티브 크로셔는 이 세상에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의 저항 방식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산지니의 허락을 받아 글·사진을 발췌 정리했다.

 

(중략)

 

로셔의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23차례 개최된 한국의 촛불집회다. 늦가을에 시작해 매서운 한파를 뚫고 봄이 올 때까지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탄핵심판 이전인 19차 집회까지 연인원 1588만2000명이 참석했으며 마지막 집회인 23차 집회까지 총 1684만8000명이 참석했다.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집회는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직전에 열린 지난해 12월3일 6차 집회로 232만1000명이 모였다.

 

시민은 분노했으나 차분했다. 전국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놀랍게도 한 목소리를 냈다. 더 놀라운 건 이처럼 큰 규모의 시위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노도현 기자 (경향신문)

 

기사 전문 읽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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