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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화3

조선 후기 사대부 고급예술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부산일보) ▲ 1920년대 최고의 서화가였던 해강 김규진(1868~1933)이 그린 산수화 대작인 금강산만물초승경도. 창덕궁 희정당을 장식하고 있는 궁중벽화다. 부산일보 DB 조선 후기 서화가의 삶과 예술을 연구해 온 이성혜 부산대 한문학과 강의교수가 새로운 성과물을 내놓았다. 시문에 뛰어났고 서화에도 능했던 조희룡을 다룬 '조선의 화가 조희룡', 김해에 뿌리를 둔 범상치 않은 문인 서화가였지만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불우한 화가 배전을 소개한 '차산 배전 연구'에 이어 최근 '한국 근대 서화의 생산과 유통'(해피북미디어)을 펴낸 것이다. 책은 '생산과 유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왕실과 양반의 전유물이던 서화가 어떻게 대중적인 문화상품으로 변모했는지를 추적한다. 조선 후기 양반의 전유물이던 서화 기성품으로 대중화되.. 2014. 12. 30.
도화원 떠나 시장으로 나온 한국 근대 미술 (서울신문) 한국 근대 서화의 생산과 유통/이성혜 지음/해피북미디어/301쪽/2만 5000원 요즘 그림·글씨를 포함한 미술품을 팔고 사는 시장과 공간은 도처에 수두룩하다. 인터넷에선 그림이며 미술 작품을 팔고 사는 거래가 붐을 이룬다. 그런데 이 땅의 미술품 거래 역사, 이른바 상품으로서의 미술이 등장한 건 100여년 역사에 불과하다. ‘한국 근대 서화의 생산과 유통’은 그 상품 미술의 역사를 들춰냈다. 조선시대, 특히 조선 전기 극도로 제한됐던 미술품, 즉 서화의 생산과 유통이 어떻게 대중화되고 상품화됐는지를 추적해 흥미롭다. 널리 알려진 대로 조선시대 서화를 만들어내고 향유한 건 직업화가인 화원과 양반가 사대부들에 국한됐다. 도화원 소속인 화원(畵員)과 사자관(寫字官)은 지극히 기능적인 생산만 했던 것으로 전해진.. 2014. 12. 29.
근대 전환기와 일제 시기를 거친 서화가들의 생존 방식:『한국 근대 서화의 생산과 유통』(책소개) 예술문화총서 04 한국 근대 서화의 생산과 유통 왕실 위한 기능품·사대부의 취미이던 서화, 대중이 향유하는 문화상품이 되다왕실과 양반계급 내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던 서화는 어떻게 대중적 문화상품이 되었을까? 『저자 이성혜 교수는 근대 전환기 신문과 잡지를 살펴 조선시대부터 일제 시기까지 국내 서화계의 변화를 실증적으로 규명한다. 조선시대의 서화는 관에 소속된 서화가들이 왕실의 주문을 받아 제작하거나, 사대부 양반들이 여기(餘技) 활동으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증여하였다. 하지만 직업화가인 화원을 관리했던 국가기관 도화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서화가는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신분제의 해체로 양반 문인서화가 또한 증발하였다. 이로써 서화가는 생계를 오직 자신이 해결해야 하게 되었고, 서화는 대중들 또한 비용.. 2014.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