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
책을 말하다_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권헌익 지음|박충환·이창호·홍석준 옮김|산지니|358쪽|25,000원
2016년 06월 14일 (화) 15:27:23교수신문  editor@kyosu.net

베트남의 유령 관련 문화가 비합리성이나 무지몽매의
표현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 도덕적 가치, 규범, 삶의
물질적 조건 등과 복잡하게 연동돼 사회적 현실의 중요한
축으로 접근한다.

 


 
   
 

이 책의 필자 권헌익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인류학과 교수로 베트남 전쟁에 관한 일련의 저술을 통해 냉전 시대 베트남에서 발생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폭력과 그것이 초래한 대규모 죽음의 비극적인 역사를 인류학자의 치밀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조명해왔다. 이 책은 그에게 인류학의 최고 상 중 하나인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 상을 안겨 준 『After the Massacre: Commemoration and Consolation in Ha My and My Lai』 (『학살, 그 이후: 1968년 베트남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인류학』, 아카이브, 2012)의 후속작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도이머이 정책 이후 베트남 사회에서 뚜렷한 문화현상으로 부각해온 전쟁유령에 관한 베트남인들의 의례적 담론과 실천에 초점을 맞춰, 베트남 전쟁의 비극적 경험 그리고 그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기념행위가 갖는 사회적·정치경제적·종교적 함의를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 권헌익 교수 
 

베트남 공산당은 1986년 제6차 전당대회를 통해 시장 지향적 경제개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도이머이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국내적으로 1975년 통일 이후 시행해온 사회주의적 계획경제 및 국가재분배 체계의 실패와 부작용을 수습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지만, 국제적으로는 1978년 중국의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 1989년 소련의 해체에 이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1990년 독일의 통일 등, 냉전의 한 축을 구성했던 사회주의권에서 발생한 급진적 변화의 물결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도이머이와 함께 상대적으로 짧았던 베트남의 국가 사회주의적 실험이 종언을 고하자 베트남인들의 사회적 삶에도 전면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 책의 주제인 베트남 전쟁유령 이야기와 그것을 둘러싼 의례적 실천들은 바로 이러한 거시적인 정치경제적 변혁과 사회변동이라는 맥락에서 부상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문화현상으로서, 좁게는 도이머이 이후의 베트남 사회를, 넓게는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탈사회주의 사회 일반이 경험해온 이른바 ‘탈사회주의적 변환(post-socialist transformation)’을 이해하는 데 의미심장한 창을 제공해준다.


기존의 탈사회주의적 변환 연구자들 대부분은 정치조직, 경제관계, 사회구조의 변화에 주로 방점을 둔 거시적 혹은 텍스트 해석 위주의 접근으로 인해 급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탈사회주의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적 욕망과 좌절 그리고 억압과 저항의 문화적 역동성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데 일정정도의 한계를 노정해왔다. 이 책은 치밀하고 장기적인 인류학적 현장조사에 입각해서 수집한 풍부한 질적 자료를 통해 베트남인들의 사회적 삶의 미시적 결들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거시적인 역사적 변화와 정치경제적 맥락 속에서 총체적·학제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탈사회주의적 변환 연구에 진일보한 이론적·방법론적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령의 삶’ 혹은 ‘유령의 생명력’이라는 표현은 전형적인 형용모순이다. 하지만 당대 베트남인들에게 이 형용모순은 허튼 말장난이나 그럴듯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엄연한 사회적 현실의 재현이다. 이 책에 따르면 최근 베트남에서 관찰되는 전쟁유령 현상은 도이머이 이후 급변하는 물질적·상징적 질서 하에서 발생하는 ‘집단적 망상’ 혹은 ‘문화적 상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베트남인들에게 일종의 자연적 현상으로 인지되는 존재론적 힘을 가진다. 따라서 이 책의 주인공인 베트남 전쟁의 유령은 자크 데리다의 책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등장하는 역사적 은유로서의 유령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의 형태와 종교적 상상력의 형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성되고 살아 숨 쉬는 매우 실존적이고 경험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베트남의 전쟁유령들이 “구체적인 역사적 정체성을 가진 실체로서, 비록 과거에 속하지만 유비적인 방식이 아니라 경험적인 방식으로 현재에도 지속된다고 믿어지는 존재”로서 일종의 ‘사회적 사실’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령 이야기나 귀신 이야기만큼 중대하면서도 진지한 학술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주제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유령이나 귀신은 인류의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는 사회적 사실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학계의 이러한 지적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베트남에서는 유령과 유령을 둘러싼 문화적 담론과 실천이 매우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역사적 성찰과 자아정체성 표현의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인류학적·사회학적·역사학적, 심지어 정치경제학적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베트남의 유령 관련 문화가 비합리성이나 무지몽매의 표현이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역사적 경험, 도덕적 가치, 규범, 삶의 물질적 조건 등과 복잡하게 연동되어 사회적 현실의 중요한 축을 구성하는 것으로 접근한다.


이 책은, 비록 베트남 사회에서 유령이 조상신이나 여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영적 존재에 비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주변적인 위치를 점하고는 있지만 베트남인들의 사회적 삶에 구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그와 관련된 관념과 실천이 보다 광범위한 도덕적·정치적 쟁점을 이해하는 데 의미심장한 창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생생한 민족지적 기술을 통해 감동적으로 논증해내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인류학적 논증은 조상신에게만 배타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유령을 사회구조의 영역과 사회적 상상력의 영성으로부터 배제해온 에밀 뒤르켐의 종교사회학적 전통을 설득력 있게 논박 및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이론적 의의를 가진다. 저자는 “사회이론 내에서 유령의 부재는 기능적 가치와 구조적 질서에 대한 이론적 선입견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뒤르켐의 종교사회학과 성스러운 것에 관한 개념화에 반론을 제기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중심성의 상징적 구성이라는 뒤르켐의 개념적 도식이 사회적으로 주변적인 실체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상관적 프레임 속에서 재고돼야한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이론적 프레임 하에서 저자가 묘사하고 있는 베트남인들의 친족관념과 친족의례체계는 계보적 관계와 혈통적 위계에 주로 방점을 두는 기존의 친족이론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반론을 제기한다. 즉 그는 전쟁유령 현상을 통해 구체화되는 베트남인들의 친족관계 및 친족의례체계가 우리와 그들 그리고 안과 밖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계보적·규범적·정치적 이방인을 이중동심원적 구조 내에서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매우 생성적이고 창조적이며 개방적인 체계임을 보여준다. 베트남 친족과 친족의례체계의 이러한 이중동심원적 구조는 베트남 전쟁의 지극히 혼란스럽고 교란된 전선으로 인해 이탈된 상태에서 ‘객사’한 수많은 영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원혼을 달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 도이머이 이후 베트남 사회는 냉전의 양극적 질서가 초래한 역사적 갈등과 비극을 넘어 보다 성숙하고 조화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결론에서 권헌익 교수는 베트남인들이 전쟁유령을 위해 수행하는 포용적이고 치유적인 의례행위가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넘어 인류의 연대라는 윤리적 지평을 지향하는 창조적인 문화적 실천”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냉전의 오래된 질서가 여전히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의 삶을 양극적 대치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사회다. 베트남 전쟁유령 현상에서 관찰되는 이러한 화해와 연대의 가능성은 아직도 냉전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사회에 강력한 윤리적·실천적 교훈을 남기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는 또한 한국 사회가 현대사의 질곡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 그리고 최근 세월호 참사로 인해 꽃다운 나이에 쓰러져간 304명의 희생자들을 적절하게 기억하고 기념해야만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웅변하고 있기도 하다.

  
   
 

 

박충환 경북대·고고인류학과 
필자는 캘리포니아대(산타바바라)에서 중국 현대문화 전공으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술로는 『글로벌 시대의 문화인류학』(공역), 『석기시대 경제학』(역서), 「Nongjiale Tourism and Contested Space in Rural China」(논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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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글동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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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별과우물 2016.07.05 15: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이 또 기사에 실렸네요! ㅎㅎ

  2. BlogIcon 단디SJ 2016.07.06 1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처럼 베트남 전쟁유령에서 보이는 화해의 가능성이 분단 국가인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유령 이야기를 읽었던 것은 언제일까요?


출처: gholly-fromb.tistory.com


초등학생 때는 문방구에서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을 사 읽곤 했습니다. 

손바닥만한 책에 나오는 귀신 이야기가 너무 무서워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계속 등 뒤를 돌아본 기억이 있는데요.


그 이후에 활자로 만났던 유령들은 

진지한 문학 작품의 상징적 인물이거나

사회과학 책에서 '냉전의 유령'과 같은 비유 정도여서,

해질녘 귀갓길에 마주칠 것 같은 존재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나와 이 세계에 공존하는 존재로서의 유령은 

글보다는 무더운 여름 친구들이 담력 겨루기처럼 하는 수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심하게 꺼내시는 이야기에서 더 자주 만나는 것 같습니다.


무섭기는 한데 믿는다고 선뜻 말하기는 부끄러운 것.

저에게는 그런 존재였던 유령과 사람들의 관계를 연구하는 책이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입니다.



권헌익 교수의 베트남 2부작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는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베트남의 다낭과 인근 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미국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은 1975년에 끝났지만,

전쟁은 베트남인들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 있고

삶의 터전 그 자체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책에서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껌레(Cam Re) 지역은 

전쟁 때 조성된 광활하고 오래된 묘지에 위치합니다. 

거의 모든 껌레 가구의 농지에는 십여 기 이상의 무덤이 있고요. 


출처: bettertour.tistory.com


베트남인들의 삶에서 유령은 낯선 이방인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그리고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존재입니다.

한 남자는 밭에서 전쟁 중 죽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어느 마을에서 늘 같은 길에 나타나는 외국 군인 유령은 주민들에게 익숙한 존재입니다.


책에서는 "누군가의 유령은 다른 이의 조상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연, 혈연이 없고 때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데도 

베트남인들은 유령들을 위해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립니다.

이러한 추모는 1980년대의 경제 개혁 이후에 뚜렷한 문화적 현상으로 부상했다고 합니다. 


유령을 위한 향과 가짜 돈.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seafaringwoman/5455195256/


저자는 베트남에서 

"망자의 역사와 산 자의 생동적 활동이 공존하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씁니다.

예를 들어, 책에서 중요한 인물인 '연꽃'이라는 소녀 유령이 있습니다. 

연꽃은 생전에 고아였고 생계를 위해 땔감을 모아 팔았는데, 

땔감을 모으던 중에 강물에 휩쓸려 자신이 살던 지역과 멀리 떨어진 강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의 시신이 묻혀 있는 마을에 사는 여자아이의 몸에 들어와 

그 아이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찾아달라고 요청합니다. 


텃밭에서 어린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자 

연꽃은 그 가족에게 자신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족의 둘째 딸이 된 연꽃은 놀랍게도 

전쟁 당시 혁명 활동에 동참했던 이들 여럿이 있는 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유령으로 성장합니다. 

가족의 이웃인 찌엠 아저씨는 연꽃의 성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혁명가를 길러내는 것은 그녀 가족의 전통이다." 

찌엠 아저씨에게 저자는 조심스럽게 질문합니다. 


“아저씨, 실례가 된다면 용서하세요! 당신은 연꽃이 진짜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나요?”

“조카야, 그녀가 진짜가 아니라면, 너는 왜 내게 그녀에 대해 묻고 있는 거냐?”


-유령의 변환 중에서

중요한 것은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망상이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자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유령과 대화하기도 합니다! 
제7장 유령을 위한 돈을 읽어보세요.)


조상을 위한 가내 제단. 

출처: travel.tourism.vn


베트남 문화에서 유령은 베트남인들이 집 안에서 추모하는 조상과 

국가적 기념의례의 대상인 전쟁영웅에 비해 주변적인 존재이지만, 

이들 못지않게 베트남인들의 일상에 함께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 그리고 집이 아닌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조상과 유령의 구분이 모호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런 맥락에서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유령을 '사회적 사실'로 연구하고 있다고 할까요. 



출처: www.theodysseyonline.com


문화인류학자들은 대체 뭘 공부하냐?는 질문에 대해, 이런 답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세계가 사실(fact)에 기대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꿈과 망상, 희망과 두려움, 상상과 야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이해한다. 

인류학자들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일축하지 않는다. 

Savage Minds Interview: Sarah Kendzior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문화 인류학의 

"인류학적 통찰의 거의 완벽하고 경이로운 예"라는 찬사를 받았는데요,

(마이클 램벡 런던정경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의 평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베트남 전쟁 유령과 그들을 위한 의례의

선명한 사회적·정치경제적·종교적 함의에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을 읽을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베트남의 냉전사와 우리나라의 상황을 겹쳐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규모 학살과 극단적인 '내 편' '네편' 구분으로 점철된 냉전을 겪은 한반도.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거리에서의 비극적 죽음'으로 가족과 고향을 잃은 베트남인들의 이야기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이북의 고향을 떠나신 저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얼마 전 2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유가족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국인들도 베트남인들도

상처를 겹겹이 축적한 채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베트남 전쟁 참전국이지요. 

베트남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한국인들이 

많은 베트남인들을 학살했다는 것을 기억하면

저는 베트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끝으로,

책이 나오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몇 가지 여담을 해보렵니다. 


1. 영혼이냐 유령이냐?!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의 원제는 Ghosts of War in Vietnam 입니다. 

번역서를 맡게 되면 언제나 큰 고민이 한글 제목을 어찌할 것인가?! 인데요.

눈썰미가 빠르신 권헌익 교수님 팬(...) 여러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동안 언론 기사에서 Ghosts of War in Vietnam은 

쭈욱 '베트남 전쟁의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번역을 맡아주신 박충환, 이창호, 홍석준 교수님께서는 제목을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로 옮기셔서 저에게 원고를 보내주셨지요.

저는 원서와 교정지와 언론기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유령? 정말 유령에 대한 책이란 말이야?? 라는 의심을 했지만 

이내 글에 빠져들었고, 

추상적인 느낌의 '영혼' 보다는 도발적인 '유령들'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의 제목은 권헌익 교수님, 번역자 선생님들과의 논의를 거쳐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


2. 유령을 어떻게 표현하지?

혹시 눈치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유령'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를 단 한 컷도 쓰지 않았는데요,

그 이유는 한 번이라도 '유령'을 이미지 검색해보셨다면 아실 겁니다.

'유령' 하면 주로 납량특집에 나올 법한 오싹한 이미지뿐이라는 사실ㅠㅠ 


그래서 책의 표지 작업에도 사실 난관이 있었습니다. 

산지니에서는 담당 편집자가 디자이너님이 참고할 만한 이미지를 찾기도 하는데요,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의 경우 저는 

베트남인들이 거리에서 향을 피우거나 기도하는 모습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적당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어정쩡한 사진들을 전달했고  

표지 시안이 나왔으나 디자이너도 편집자도 만족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침 부산의 민주공원에서

꾸준히 베트남인들의 전쟁 기억에 대한 작업을 해오신 

이재갑 사진작가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

그런데 전시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

그런데 담당 편집자인 저는 오후에 해외로 출국해야하는 상황!!!


그야말로 절규... 할 뻔 했습니다


저는 부리나케 전시회에 가서 사진들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님과 적절한 작품을 골라

이재갑 작가님께 연락을 드리니 흔쾌히! 표지 이미지 사용을 허락해 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어 이재갑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표지에 사용된 이재갑 작가님의 작품 <빈딩성 가족무덤> .


이렇게 출간 전에 일어난 일들을 적다 보니 책이 드디어 나온 것이 새삼 놀랍고(ㅎㅎ)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임을 되새기게 됩니다.

이제는 독자 여러분들과 만날 일만 남았네요 :)

독자 여러분께도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과의 만남이 기억에 남는 일이기를 기대합니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10점
권헌익 지음, 홍석준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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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디자이너 2016.05.27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표지 작업을 할 때 마침 이재갑 사진가의 전시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뭔가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 온수 2016.05.30 0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전시까지 찾아가는 정성이 있었군요. 책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글이네요^^

  3. BlogIcon 단디SJ 2016.05.30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제목부터 책 표지까지 이 한 권의 책에 담긴 뒷이야기가 쏠쏠하네요ㅎㅎ

  4. BlogIcon 별과우물 2016.05.30 0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여곡절 끝에 나온 표지가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 작가님께 정말 감사드릴 만한 부분이네요!

  5. BlogIcon 잠홍 2016.05.31 15: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이재갑 작가님의 사진을 표지에 쓸 수 있었던 것은 운명적인 만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책이네요!

  6. BlogIcon 반가 2016.06.08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전후 베트남, 떠도는 영혼에 대한 대중적 상상과 역사적 성찰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인류학계의 최고 상 중 하나인 ‘기어츠 상’의 수상자 권헌익 교수의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이 마침내 국내 출간되었다. 캠브리지대학교의 석좌교수인 권헌익은 냉전 시대 베트남에서 발생한 잔혹한 폭력과 대규모 죽음의 비극적인 역사를 인류학자의 치밀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적 시선으로 조명해왔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1980년대의 경제개혁 이후 베트남 사회에서 뚜렷한 문화현상으로 부각된 전쟁유령에 관한 의례에 초점을 맞추어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기념행위가 갖는 사회적, 정치경제적, 종교적 함의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세계 석학들로부터 “놀라울 정도로 감동적”, “어떠한 학자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 “인류학적 통찰의 거의 완벽하고 경이로운 예”라는 극찬을 받은『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뛰어난 동남아시아 연구서에 주어지는 ‘조지 카힌 상’의 제1회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국가적으로 추모되는 전쟁 영웅도, 가정 내에서 기려지는 조상도 아닌 떠도는 유령을 주제로 삼아 냉전사와 친족 연구 등의 지평에서 독보적 시각을 제시한다. 학술서이지만, 권헌익 교수는 베트남인들의 목소리를 생동감 있고 아름다운 문체로 전한다. 뿌리 뽑힌 유령들을 애도하는 베트남인들의 이야기는 냉전의 양극적 질서가 견고한 한국 사회의 독자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무지몽매의 표현이나 비유가 아닌 ‘사회적 사실’로서의 유령


유령 이야기만큼 중대하면서도 학술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주제는 드물다.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유령은 인류의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는 사회적 사실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도 근대화의 과정에서 유령 이야기는 물론 각종 민간 추모 방식을 공식적 활동에서 배제하고 있다. 국가적 기억에서도, 또 조상이라는 친족관계 내의 추모 대상으로서도 배제되는 것이 바로 유령이다.

하지만 권헌익 교수는 베트남의 전쟁유령들이 “구체적인 역사적 정체성을 가진 실체로서, 비록 과거에 속하지만 비유적인 방식이 아니라 경험적인 방식으로 현재에도 지속된다고 믿어지는 존재”(16쪽)로서 ‘사회적 사실’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베트남에서는 유령 그리고 유령을 둘러싼 문화적 담론과 실천이 대중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역사적 성찰과 자아정체성 표현의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인류학적·사회학적·역사학적, 심지어 정치경제학적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베트남의 유령 관련 문화를 비합리성이나 무지몽매의 표현이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역사적 경험, 도덕적 가치, 규범, 삶의 물질적 조건 등과 복잡하게 연동되어 사회적 현실의 중요한 축을 구성하는 것으로 접근한다.


친족관계·냉전사 연구의 지적 전통에 도전하는 독보적 시각


권헌익 교수의 베트남 2부작 중 앞서 출간된 『학살, 그 이후』는 대규모 학살이 일어난 마을의 주민들이 타인의 시신과 뒤섞인 가족의 유해를 어떻게 현존하는 국가적 혹은 가내 기념의 체계와 동화시키는지를 논한다. 반면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친족도 전쟁영웅도 아닌 전몰자라는 중요한 영역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남부 및 중부 베트남의 공동체들은 전사자의 개별 무덤과 마을 주민들의 집단 묘지뿐만 아니라 많은 무명 외지인의 무덤을 함께 지켜왔다. 베트남인들은 ‘길 위에서’ 비극적으로 죽은 이들이 그 죽음의 비통함과 폭력성 때문에 그들이 죽음을 맞이한 장소에 묶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망자들은 산 자들에 의해 그들의 기억이 인정되고 공유될 때에야 비로소 트라우마적 상황에서 자유로워진다. 뿌리 뽑힌 전쟁유령들은 윤리적 책임감에 따른 산 자들의 행동을 통해 강력한 상징적 변환을 거쳐 고향이 아닌 장소의 중요한 터주신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되기도 한다. 전시와 전후 베트남인들의 삶에서, 친족관계는 예정되어 있는 배제적 계보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개방적 관계망이다.

권헌익 교수는 냉전을 ‘상상의 전쟁’이라고 설명하는 유럽중심적 시각을 비판한다. 냉전이 전 지구적 차원의 갈등이었다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현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 냉전이 ‘장기적인 평화’로 경험되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비서구 지역에서 냉전은 대규모 학살을 동반했다. 따라서 대규모 죽음의 역사와 망자를 기념하는 행위는 외교사와 경제사만큼이나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이러한 집단기억의 차이를 짚어내며 양극정치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깊이를 더한다.


“망자들의 세계에는 우리 편, 저쪽 편이 없다”

냉전이 지속되는 한반도의 현실과도 맞닿은 책


현지 조사 중에 한 지역의 신위를 만나 대화할 기회를 얻게 된 저자는 ‘명사수’라고 불리는 이 유령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권: 당신 세계의 사람들도 여전히 명분 때문에 논쟁하고 싸우나요? 망자들의 세계에도 “우리 편”과 “그들 편”이 있나요?

명사수: 아니오, 친애하는 외국인 친구! 망자들은 싸우지 않는다. 전쟁은 산 자들의 일이다. 내 세계의 사람들은 그들이 당신 세계에 있었을 때 싸웠던 전쟁의 동기와 목적을 기억하지 않는다.

-274쪽, 「유령을 위한 돈」 중에서

명사수의 말에 따르면 망자들의 세계에서는 ‘내 편’, ‘네 편’의 구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늘날 베트남인들은 전쟁 때문에 적이 되었던 가족의 일원들, 가족의 연은 물론 지역적 연고도 없는 민간인, 외국 군인 모두를 위해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다. 베트남인들이 전쟁유령을 위해 수행하는 의례행위는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넘어 인류의 연대라는 윤리적 지평을 지향하는 창조적인 문화적 실천”(28쪽)인 것이다.

한국은 냉전의 오래된 질서가 여전히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의 삶을 양극적 대치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사회이다. 이에 옮긴이들은 “베트남 전쟁유령 현상에서 관찰되는 이러한 화해와 연대의 가능성은 아직도 냉전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사회에 중대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윤리적·실천적 교훈을 남기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역설한다. 뿌리 뽑힌 유령의 존재는 대규모 죽음의 경험을 겹겹이 축적해온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을 통해, 끔찍한 폭력을 저지르는 것도 인간이지만 ‘내 편’과 ‘네 편’의 극단을 넘어 생명의 존귀함을 포용하는 것 또한 인간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지은이 : 권헌익


사회인류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의 석좌교수이다. 런던정경대학에서 재직했고, 서울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있다. 시베리아와 베트남에서 현지조사를 했으며 근래에는 한국전쟁의 현재적 역사에도 관심을 두고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학살, 그 이후』 『또 하나의 냉전』 『극장국가 북한』(공저) 등이 있다.


옮긴이 : 박충환 · 이창호 · 홍석준


차례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권헌익 지음 | 박충환·이창호·홍석준 옮김 | 신국판 358쪽 

978-89-6545-354-3 93300 | 25,000원 | 2016년 5월 25일

인류학의 노벨상, ‘기어츠 상’을 수상한 권헌익 교수의 베트남 2부작 완결판. 1980년대 경제개혁 이후 베트남 사회에서 뚜렷한 문화현상으로 부각된 전쟁유령에 관한 기억과 기념행위가 갖는 사회적, 정치경제적, 종교적 함의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 참고: 한글판의 표지이미지는 이재갑 사진가의 작품 <빈딩성 가족무덤>입니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10점
권헌익 지음, 홍석준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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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별과우물 2016.05.26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책도 예쁘게 잘 찍어주셨네요! 사회적 사실로서의 유령이라는 부분이 흥미로워요.ㅎㅎ

  2. BlogIcon 단디SJ 2016.05.27 1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부터 표지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던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이 드디어 출간됐군요. 이재갑 선생님의 사진으로 꾸며진 표지도 이 책에 무게감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상하이, 상하이인, 상하이영화

『상하이영화와 상하이인의 정체성』 | 아시아총서 01

임춘성·곽수경 엮고 씀
김정욱·노정은·유경철·임대근·홍석준 함께 씀
출간일 : 2010년 3월 30일
ISBN : 9788992235884, 9788992235877(세트)
신국판 | 416쪽

중국 근현대사의 진행과정을 압축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도시 상하이. 상하이영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상하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상하이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찰한다. 


책소개

상하이, 상하이인, 상하이영화

중국 근현대사의 진행과정을 압축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도시 상하이. 중국 문화, 경제의 중심지이자 영화산업의 중심이기도 한 상하이에서 세계박람회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상하이엑스포가 치러지고 있다. 상하이에 대한 이해는 근현대 중국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한 유효한 방편인데, 이 책은 그 가운데 상하이영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상하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상하이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찰한다.

21세기 글로벌 중국을 이해하는 관건, 상하이와 상하이영화

개혁개방 30년이 넘은 중국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더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의 부상(the rise of China)’, 중국이 세계를 ‘바꾼다(to change)’, ‘움직인다(to move)’, ‘흔든다(to shake)’, ‘지배한다(to rule)’ 등의 언설이 저널리즘의 표제를 넘어 학문적 의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21세기의 현실이다. 이런 판단은 지난 30년 중국의 경제적 성장에 근거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서양의 잣대로 중국을 평가해서는 안 되고 중국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상하이엑스포를 통해 세계도약을 꿈꾸는 중국

1930년대 서양인들에게 ‘동양의 파리’ 또는 ‘모험가들의 낙원’으로 일컬어졌던 상하이가 왕년의 영광 회복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푸둥(浦東) 지구 개발로 뒤늦게 개혁·개방에 뛰어든 상하이는 10여 년 만에 중국 최고 수준의 발전을 이루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세계무대로 도약했듯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2010년 상하이엑스포가 ‘글로벌 차이나’를 위한 또 하나의 매듭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아름다운 도시, 행복한 생활(城市, 讓生活更美好, Better City Better Life)’이라는 구호 아래 금년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거행될 상하이엑스포는 베이징올림픽의 3.5배라는 경제효과를 예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린 엑스포(Green Expo)’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최대와 최고의 수치로 장식된 공식적인 보도 외에 상하이엑스포를 계기로 위안(圓)화를 세계 기축통화로 격상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물밑 노력도 또 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마틴 자크의 예언대로 베이징이 새로운 세계의 수도(the new global capital)를 자처하는 날 상하이는 명실상부한 경제와 문화의 중심임을 자랑할 것이다.

상하이영화를 통해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고찰한다

1843년 개항 이후 오늘의 상하이가 있기까지의 역사적·문화적 과정에 대한 연구 가운데 상하이영화를 통해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고찰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49년 이전까지 중국영화와 원주가 거의 비슷한 동심원이었던 상하이영화는 사회주의 30년 동안 베이징과 시안(西安) 및 창춘(長春) 등에 경쟁을 허용했지만, 개혁개방 이후 상하이영화그룹 결성과 상하이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고 있다.
상하이에 붙는 최초의 근현대도시, 이민도시, 국제도시, 상공업도시, 소비도시 등의 표현은 영화산업 발전의 요건을 설명해주는 명칭이기도 하다. 중국영화는 상하이로 인해 입지를 확보하고 영역을 넓힐 수 있었고, 상하이는 영화로 인해 근현대화를 가속화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상하이영화는 상하이 나아가 중국 근현대화의 요체라 할 수 있다.

책의 구성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 ‘상하이영화와 영화 상하이’에서는 먼저 중국영화에 재현된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살펴보고, 상하이와 영화 연구를 위해 도시와 영화의 관계, 상하이영화의 명명 등에 관한 개념 규정을 명확히 했다. 아울러 상하이영화의 형성이 어떻게 중국영화의 형성과 길항(拮抗)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내부의 복잡한 논리들을 고찰했으며 20세기 상하이영화 가운데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141편을 대상으로 당시 영화제작사의 경향과 영화와 시대, 사회와의 관계 및 영화의 역할과 위상 등을 살펴보고 있다.

중국영화는 오래된 제왕의 도시 베이징에서 탄생했지만 결국 조계시대의 상하이를 자신의 성장지로 선택했다. 영화 성장에 적합한 토지였던 상하이는 중국영화의 발상지가 되었다. 모두 알다시피 중국영화에서 ‘상하이영화’의 비중은 매우 크다. 상하이영화 발전에 몇 개의 전환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조계, 최초의 영화 상영, 항전, 신중국, 개혁개방 등이 그 주요한 지점이다. 영화와 자본주의 시장의 긴밀한 관계를 고려할 때 신중국 건설은 상하이영화 발전의 주요한 분기점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까지 중국영화사는 상하이영화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본문 24쪽)

색/계

영화 <색/계>는 타이완 출신의 감독(리안)이  미국의 자본을 위주로 제작한 영화다. 중국 관객을 상대로 한 미국 자본의 노스탤지어 전략을 분명히 드러낸 영화로서 '돈의 관리자들이 국가적인 경계와는 상관없이 투자를 위한 가장 좋은 시장을 찾고 있'는 매우 적절한 사례이다. 


제2부 ‘상하이영화와 재현의 정치학’에서는 먼저 중국영화가 상하이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나아가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해내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1930년대 상하이 재현과 상하이영화의 장르적 특징인 ‘멜로 드라마적 이야기 방식’에 주목했다. 또한 사회주의 시기와 포스트사회주의 시기의 상하이 재현 영화들을 분석했다. 아울러 1930년대 중국 좌익계열 영화에 대해 영화의 형식과 미학적 특징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이데올로기, 미학, 산업 등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기제들이 영화의 형식 구성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살펴보았다. 이어서 1930년대 올드 상하이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의 영상서사 미학을 분석함으로써 올드 상하이 영화의 정체성을 판별했다. 또한 ‘기억’과 ‘역사들’을 키워드로 삼아 상하이인의 정체성 고찰의 일환으로 펑샤오롄(彭小蓮) 감독의 ‘상하이 삼부곡’을 분석했다. 그리고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상하이영화를 살펴보고 상하이영화의 남성텍스트적 혐의와 여성형상에 나타난 동화와 할리우드의 영향을 고찰했다.


영화 '수쥬'는 쑤저우허의 풍경을 스케치하듯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저 너머 동방명주가 보인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상하이의 번영을 피해 우리에게 가난하고 외진 도시의 다른 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쑤저우허의 주변에 카메라를 들이댐으로써 드러나는 상하이의 모습은 ‘더러운 쓰레기의 혼탁한 물결이며, 반쯤 철거된 흉물스러운 고층 빌딩, 회색의 공장 굴뚝과 얼룩덜룩한 건물의 벽체, 노점상과 행인, 중년의 노동자 등등’이다. 이것들은 재도약하는 상하이, 번영을 되찾은 상하이의 이면의 것들이다. 와이탄을 스치고 지나가고 동방명주(東方明珠)를 멀리 배경으로 내몰아버림으로써 러우예는 이 영화가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변두리가 되어버린 공간과 주변인들의 이야기임을 암시한다. (본문 136쪽)


제3부 ‘이민도시 상하이의 도시문화’에서는 급변하는 전지구적 변환이라는 광범위한 문화적 과정에서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의 지속과 변화를 상하이 도시문화의 형성과 변화라는 측면에서 다루었고, 근현대도시 상하이의 핵심을 이민으로 파악하고 이민 정체성을 국족(國族) 정체성의 구체적 표현으로 설정해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고찰했다. 또한 1930년대 상하이인의 도시경험과 영화경험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상하이인의 식민 근대에 대한 대응방식과 근대적 자아정체성 형성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고찰했다. 마지막으로 개혁개방 이후 급속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상하이를 대상으로 중국 사회의 시민사회 또는 시민문화의 특징과 의미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상하이 도시문화의 형성과 변모를 추적했다.

조계의 상징이었던 와이탄 앞 서양식 건축물 야경. 지금은 상하이를 대표하는 금융거리이다.

상하이 신세대 여성들

현재 상하이의 혼합문화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도 여전히 현대판 전설을 낳고 있다“고 평가되는 상하이의 현재는 중국에서 가장 모던한 도시의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포스트모던의 최첨단을 선도하는 유행의 발신지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고 있다고 평가된다. 난징둥루 거리의 젊은 상하이 여성들은 중국에서 최고로 모던하고 세련된 유행을 대표하는 이들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에 대해 개방적이며 거리낌 없이 시원시원하게 응대하는 자신만만하고 여유 있는 태도는 상하이인의 국제적 감각이 최근에 급조된 것이 아니라 국제화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해 온 가운데 형성된 것임을 능히 감지할 수 있다. 상하이에서 인기 있는 패션이나 헤어스타일, 히트 상품, 영화나 비디오 등은 상하이에서 편집되는 잡지나 카탈로그 등에 게재되고 이는 중국 각지로 퍼져나간다. 유행의 측면에서 상하이는 베이징을 능가한다. (본문 378쪽)

상하이는 중국 근현대사의 진행과정을 압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따라서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근현대 중국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상하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연구서 출간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엮은이·글쓴이 소개

임춘성(林春城, Yim Choon-sung) 중문학/문화연구. 목포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학위와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회장(2006∼2007)을 역임했고 현재 동 학회 고문직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소설로 보는 현대중국』『21세기 중국의 문화지도-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연구』(공편저)『동아시아의 문화와 문화적 정체성』(공저)『홍콩과 홍콩인의 정체성』(공저)『중문학 어떻게 공부할까』(공저),『중국 현대문학과의 아름다운 만남』(공저),『영화로 읽는 중국』(공저),『위대한 아시아』(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중국 근대사상사론』(李澤厚著),『중국통사강요』(白壽彛主編, 공역),『중국 근현대문학운동사』(편역) 등이 있으며, 중국 근현대문학이론과 소설, 중국 무협소설과 중국 영화, 상하이와 홍콩 등 중국 도시문화, 이주와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타자화 등에 관한 논문 70여 편이 있다. csyim2938@hanmail.net

곽수경(郭樹競, Kwak Su-kyoung) 동아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와 베이징사범대학교에서 각각 문학석사학위와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동아대학교 중국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현대중국의 이해』(공저)『중국영화의 이해』(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이중톈 미학강의』『21세기 중국의 문화지도』(공역)가 있다. 「魯迅소설의 각색과 중국영화사」「코미디영화로서의 『有話好好說』분석하기-원작 『晩報新聞』과의 비교를 통해」「중국의 한국드라마와 한류스타 현상」「중국에서의  『대장금』현상의 배경과 시사점」등 중국영화와 문화 분야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525ksk@hanmail.net

김정욱(金炡旭, Kim Jung-wook)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교수. 중국 현대 소설 및 현당대 드라마로 전남대학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다시 베이징영화대학(BEIJING FILM ACADEMY) 석사과정에서 중국영화각색론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면서 과정 이수를 끝마쳤다. 상하이사범대학에서 1년 반 동안(2008. 2∼2009.8) 교환교수로 파견 근무하였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의 이해』(공저)『영화로 읽는 중국』(공저)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중국영화사를 번역한 『차이나시네마』가 있다. 근간의 연구 논문으로는 「「神女」를 보는 어떤 한 장의 지도」「「阿詩瑪」의 詩的 原型과 영상 서사 연구(上)(下)」 등 중국 현당대 연극, 영화이론에 대한 논문이 있다. cineek@hanmail.net

노정은(魯貞銀, Roh Jung-eun)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푸단대학 중문학부에서 문학석사학위와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중국 현대문학과의 만남』(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중국당대문학사』(陳思和 지음. 공역)가 있다. 최근 논문으로 「『상하이 베이비』와 ‘신인류’의 문화적 징후」등이 있다. rjecilvia@hanmail.net

유경철(劉京哲, Yu Kyung-chul) 강릉원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교수. 2005년 『金庸 武俠小說의 ‘中國 想像’ 硏究』로 서울대학교 문학박사학위에서 취득하였다. 「“中華主義”, 韓國의 中國 想像」「武俠 장르와 紅色經典-양자에 관련된 ‘시간’과 ‘시간성’을 중심으로」「지아장커(賈樟柯)의 『샤오우(小武)』읽기-현실과 욕망의 ‘격차’에 관하여」, 「중국 영화의 상하이 재현과 해석」「장이머우의 무협영화, 무협장르에 대한 통찰과 위험한 시도」 등의 논문이 있다.  mapping@dreamwiz.com

임대근(林大根, Lim Dae-geun)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초기 중국영화의 문예전통 계승 연구(1896∼1931)』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및 중국어통번역과 조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영화연구자 집단인 중국영화포럼을 중심으로 대중문화 연구와 강의, 번역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중국영화의 이해』(공저) 『영화로 읽는 중국』(공저) 등이 있으며, 최근 논문으로 「상하이 베이비: 텍스트의 확장과 맥락의 재구성」「중국 영화의 국적성 혹은 지역성과 역사·문화정치학」「포스트 뉴웨이브 시대 중국 영화와 국가 이데올로기」등 다수가 있다.  rooot@hufs.ac.kr

홍석준(洪錫俊, Hong Seok-joon) 문화인류학/동남아시아 지역연구. 말레이시아의 사회와 문화. 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학위와 인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화인류학회> 이사 및 연구위원, <한국동남아학회> 연구이사, (사)한국동남아연구소 행정부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문화인류학회> 이사 및 기획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동아시아의 문화와 문화적 정체성』(공저)『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문화인류학 맛보기』(공편저)『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공저)『동남아의 사회와 문화』(공저)『동남아의 종교와 사회』(공저) 『홍콩과 홍콩인의 정체성』(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샤먼』(공역)『동남아의 정부와 정치』(공역) 등이 있으며, 문화인류학 이론과 방법론, 문화와 종교, 종교변동론, 지역연구와 문화연구, 동남아시아의 지역연구, 동남아시아의 사회와 문화, 동아시아의 해양문화, 동아시아의 항구도시문화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anthroh@chol.com


차례

책을 펴내며

제1부  상하이영화와 영화 상하이
중국영화를 통해 본 상하이와 상하이인의 정체성/ 임춘성
상하이영화 연구 입론/ 임대근
상하이영화와 중국영화의 형성/ 임대근·노정은
상하이 영화산업의 특징과 변화/ 곽수경

제2부  상하이영화와 재현의 정치학
중국영화의 상하이 재현과 해석/ 유경철
상하이 좌익영화의 미적 허위성-‘선전’과 ‘오락’의 변주/ 노정은
올드 상하이영화의 영상서사 미학적 정체성/ 김정욱
상하이에 관한 기억과 ‘역사들’의 재현/ 임춘성
상하이영화의 남성텍스트적 혐의 읽기/ 곽수경
상하이영화의 여성형상에 나타난 동화와 할리우드의 영향/ 곽수경

제3부  이민도시 상하이의 도시문화
글로컬리티 상황의 상하이 도시문화의 형성과 변화/ 홍석준
이민도시 상하이와 타자화/ 임춘성
상하이인의 도시경험과 영화경험/ 노정은
개혁개방 이후 상하이 시민문화의 특징과 의미/ 홍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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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영화와 상하이인의 정체성 - 10점
임춘성.곽수경 엮고 씀, 김정욱.노정은.유경철.임대근.홍석준 함께 씀/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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