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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교회를 기억하십니까

by 산지니북 2014. 4. 15.

 

 

당시 전도사로 있던 김형기가 아이디어를 처음 냈다. 당국 감시와 탄압이 심해 공개 강연이나 모임이 어렵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란 형태는 '공개적, 합법적이며, 도덕적이고 온건'한 조직체로 문화운동과 시민운동을 한 그릇에 담을 수 있었다. 뒤이어 최준영 김희욱 등이 가세했고 드디어 1977년 말 부산양서협동조합(이하 양협)이 만들어졌다.

양협은 이내 독재의 부당함을 일깨우고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통로가 됐다. 재야인사나 지식인 강연도 들을 수 있었다. 2년 만에 회원만 600여 명으로 늘었고 대학생 시민 주부에 고교생까지 가입할 정도였다. 그렇게 양협 운동은 부산 민주화운동이 확산되는 구심점이 돼 갔고, 이후 참여 인사들은 부마항쟁을 비롯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이 양협 운동이 싹 트고 퍼져 나간 곳이 바로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의 중부교회였다. 또 그 중부교회가 부산의 명동성당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평가되는 고 최성묵 목사가 정신적 지주로 버티고 있어서다.


(중략)

"인생은 나그네처럼 살아야 한다." 늘 주변에 했다는 말 그대로 최 목사 스스로 청빈의 삶을 살았다. 저자는 "주머닛돈은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줘 버렸다. 그 때문에 목사님은 물론이고 사모님과 가족도 고생했지만 전혀 내색을 안 했다. 민주화운동에 몸 담은 사실뿐 아니라 삶 자체도 모범이 되는 종교인이었다"고 평가했다.

 

-부산일보 김영한 기자 기사 원문 보기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있는 중부교회

 

 

 

최성묵 평전 - 10점
차성환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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