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향토 요리,

백년의 장인 정신



이천효

동부산대학교 호텔외식조리과 교수, 문헌비평가

한국은 1인당 국민 소득 1만 달러에 도달하면서 자동차에 열광하고, 2만 달러를 지나면서 요리에 열광, 지금 불가사의한 현상에 빠져들고 있다. 언제쯤 한국 요리의 세계화가 가능한가? 왜 한국에는 백 년 맛 집이 없는가? 유명한 음식점 원조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동시에 등장하는가? 요리란 지구촌, 즉 세계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삶의 창이다. 왜냐하면, 요리는 사람에게 단순히 영양만을 제공하는 도구가 아니라, 민족이나 인종을 초월하여 인간적 만남을 이어주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음식이란 함께 먹으면서 나누는 것이다. 사람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삶의 위안을 받는다. 음식이 곧 치료(therapy)다.


『규슈 백년의 맛』은 이웃 규슈 지역의 향토 요리에 대한 정밀한 탐사로 음식의 근원까지 추적함으로써, 마치 음식을 먹고 있는 듯하다. 탄탄한 이야기와 질감이 풍부한 책이다. 일본 요리의 재구성 능력은 세계적으로 탁월하다. 돈가스, 카스텔라, 단팥빵, 고로케 등은 외국의 먹거리를 일본에 수입, 자국 음식으로 새롭게 창조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지금 그 원조가 바로 일본이다. 특히 부산에서 가까운 규슈 향토 요리 중 명란젓, 곱창전골, 호두과자, 두부 등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것이다.


일본 후쿠오카 TNC 방송국의 창사 55주년 기념드라마 '멘타이 삐리리'는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특산물 멘타이코를 개발한 후쿠야의 창업자 가와하라 토시오와 부인 치즈코 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멘타이코는 부산과 인연이 깊다. 토시오 씨가 명란젓 제조의 힌트를 얻은 것도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의 초량시장이었다.


후쿠오카 3대 향토 요리 중 하나인 ‘후쿠야’(1948년 창업)라는 명란젓(일명, 멘타이코) 가게는 창업자 부부가 부산 태생으로, 부산 초량 시장에서 명란 제조의 성공 사례를 직접 목격하였다. 한국말 명태를 그대로 차용한 ‘멘타이’와 알이란 의미의 ‘코’를 합성해 ‘멘타이코’라고 부른다. 한국 사람은 명란을 반찬으로 먹지만, 일본인은 명란을 이용하여 다양한 요리를 만든다. 역시 3대 향토 요리인 모쯔나베, 즉 곱창전골 가게인 ‘만주야’(1944년 창업)는 부산 사람이 전해준 돌솥으로 유명하다. 모츠(내장)을 건져 먹고 나서는 남은 육수에 짬뽕 면을 넣어서 먹는다. 그 다음에는 남은 육수에다 밥과 계란 노른자를 넣고 볶는데, 이를 ‘야키메시’라고 부른다. 한국의 호두과자가 일본에 전해져 1850년 창업한 ‘오하라 시니세’(사가현 가라츠 시)는 음식의 격이 높다. ‘시니세’(老鋪, 노포)란 일본에서 아주 오래된 전통을 가진 기업이나 상점을 말한다. 음식의 격을 높여서 그 격에 맞게끔 좋은 재료와 정성을 다하면 그 요리의 명성은 저절로 소문이 난다. 1803년 창업, 10대째 가업 계승으로 특허까지 획득한 ‘가와시마 두부점’(가라츠 시)은 3천 개나 되는 다른 두부 가게들이 이를 모방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비지, 두유, 참깨 두부, 두부 튀김, 두부 된장국, 두부 푸딩 등 다양한 요리를 줄기차게 창조한다. 재일한국인의 한이 서린 양념 고기 가게인 ‘야키니쿠 겐푸칸’(후쿠오카 시)은 1956년 창업, 메뉴판이 없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내부 수리를 한 적이 없다. 더욱이 대부분 손님이 일본인으로서, 고기뿐만 아니라 내장도 함께 먹는다.


마츠우라츠케혼포 공장 옆 판매장. 통조림 캔에 숙성된 고래 코뼈의 연골을 집어넣는 것도 현대식 장비를 이용한 공정은 거의 없다.


1892년 창업한 ‘마츠우라츠케혼포’(가라츠 시)는 고래 코뼈 연골의 술지게미 절임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5대 진미 중 하나다. 1681년 창업, 규슈만의 장어구이로 유명한 ‘모토요시야’(후쿠오카 야나가와 시)는 야나가와만의 특별한 요리인 ‘세이로무시’(나무찜통) 덕분에 명성을 얻고 있다. 9대 대표인 모토요시 씨는 “다른 집 것을 먹어본 적이 없다. 에도시대부터 우리 가게만의 양념 맛을 변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업 계승의 의지가 강력하다. 1905년 창업한 빵집 ‘만세이도’(하카다 시)의 창업자 철학은 “다른 과자와 경쟁하지 말고 대신 공부해라. 그리고 공생해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화와 관련된 3 가지 음식은 ‘키에란’, ‘마츠바라오코시’, ‘다이노시오가마야키’다. ‘다이’는 도미다. 소금으로 도미 전체를 두껍게 바른 후 굽는다. 그냥 ‘도미 시오가마야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요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앞두고 가라츠 앞바다의 도미 맛에 반하여, 오사카의 어머니에게 맛보이고 싶은데서 유래한 것이다.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로 알려진 ‘시카이로’(나가사키 시)는 1899년 중국인 천핑순이 문을 연 것으로, 전국에 포장 상품을 판매하지만 분점은 내지 않는다.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 시카이로. 눈앞에 펼쳐지는 나가사키 항이 창가에 펼쳐져 있다.


에도(현 동경) 시대(1603-1867)의 스시, 장어구이, 덴뿌라, 메밀국수 등과 같은 포장마차 요리가 향토 요리로, 이후 일본 대표 요리, 세계적 요리로 등장하는데 성공한다. 일본 요리는 맛과 질감, 색깔, 모양이나 크기, 음식을 담아내는 도자기 그릇, 청결과 서비스 정신 등이 절묘하게 버무려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미각을 충동질한다.


따라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수군이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소박한 이순신 밥상과 낙안읍성의 팔진미 백반의 존재 가치를 국민에게 널리 알림으로써, 스토리텔링이 풍부한 이순신 요리의 대중화, 곧 한국 요리의 세계화를 이룩하자.


규슈, 백년의 맛 - 10점
박종호.김종열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