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북양어장에서 살아남은 저자는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을까, 참 많이 궁금했었습니다. 무언가 남달리 투박한 면이 있을 것도 같고, 또 그러면서도 어딘가 부드러운 구석이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 산지니의 도움으로 『북양어장 가는 길』의 저자, 최희철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뱃사람의 이미지는 강인한가요, 부드러운가요?
『북양어장 가는 길』이 출간되고부터 지금까지 한 3개월쯤 흘렀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책이 나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오룡호 사건이 일어나서……. 세월호도 그렇고 최근에 배나 바다와 관련한 사건사고가 많아서인지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편 책이 나오고 나서 출판사에서 많이 소개해준 덕분인지 한겨례 신문, 국제 신문, 중앙일보, 시사인, KNN 등 언론에서 책을 많이 다루어줘 고마웠습니다.
확실히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는 이 책을 두고 원양어업을 미시적인 측면에서 관조한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요?
외부의 평가와 비슷하기는 한데, 저는 북양어장뿐만 아니라 그 당시 원양어업이 우리나라 사회 전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있었던 사람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관련 자료는 있습니다만, 단순히 몇 년도에 어떤 배가 출항했다 이런 식이거든요. 그것은 역사라기보다는 거대한 틀밖에 안 됩니다. 그곳에서 실제로 근무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경우는 그렇지 못하죠.
저는 그걸 거대역사라고 부릅니다. 그런 거대역사는 이데올로기를 포함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험하죠. 몇 년도에 어떤 배가 출행했다, 면밀하게 몇 년도에 어떤 자본이 어떤 배를 출항시켰다 이런 식의 진술은 실제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과는 별 관계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 사람들을 너무 쉽게 이데올로기에 편입시켜 버리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생생한 증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것들을 이 책을 통해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소재가 낯설어서인지 이 책을 읽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원양어업에 뛰어들지 말지에 대한 선택은 자유롭다고들 말하지만, 우리가 졸업할 무렵에는 보통 병역 제도라던가, 집안형편이라던가 하는 여러 가지 일이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자신의 적성에 맞아서 뛰어드는 경우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상황에 밀려나갔던 거죠.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의 직업이 사회적인 배경으로만 형성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의과대학을 갈 수 있는 건 아니죠. 성적이라는 벽이 있으니까. 그런데 사실 적성이 성적보다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또 다른 예로, 인문학에 적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돈이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기피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왜곡을 가져오는 것인데도, 적성보다는 다른 사회적 요인들이 중요하고 그것으로 직업이 생겨버려요.
당시의 수산대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적성과는 관계없이 다른 사회적 요인들을 이유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죠. 물론 일을 하다 보니 점차 적성에 맞추어지기는 했지만. 당장에 일을 해야 하는데 이래서 못하겠다, 저래서 못하겠다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느 시대나 그 나름의 고충을 안고 있군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책의 앞에 수록된 <잡어>라는 시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시의 이름이기도 하면서 문학동인의 이름이기도 한 ‘잡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배를 타면서 느낀 건데 어업에서도 규정된 것, 그러니까 자본주의 속에서 상품가치가 있는 것만 대우를 받거든요. 어선 같은 곳에는 몇 가지 돈이 되는 어종, 돔 갑오징어 갈치 명태 등외에는 다 잡어라고 부릅니다. 더 엄밀하게는 고급어종만 이름을 붙여 부르고, 나머지는 모두 잡어라고 해요. 물론 배마다 조금 다르게 부르긴 하겠지만, 하여튼 잡어란 상품가치가 없는 어종들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상품가치는 없지만 그 나름의 가치는 원래 있거든요. 비록 어선에서는 상품이 되지 못하고 어창에 버려지곤 하지만 말입니다. 저는 어쩌면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그 모습과 같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여러 사회적 요인들로 떠밀려 나와, 그리고 누구에게도 기록되지 못하는……. 이 모든 것을 ‘잡어적’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잡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사실 이 잡어적인 것들이 사회의 전반을 이루거든요. 여성, 노동자, 자연 등 사회적으로 주변이 된 것들이 실제로는 우리나라의 중심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책 역시 그런 잡어적 관점에서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잡어적이지 않은 것은 없고, 잡어적인 것이야말로 전체고, 중심이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죠.
이야기를 들을수록 좋은 책을 읽었다는 확신이 섭니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데 혹 준비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북양으로 가기 전에 오만이라는 인도양에서 30개월 정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도 쓸 생각인데, 초록은 거의 완성된 상태입니다. 집필하는 동기는 『북양어장 가는 길』과 비슷합니다. 당시에 항해사들은 청춘을 팔아서 돈을 벌었는데, 또 저 역시 청춘을 거의 배에서 보냈는데 그와 관련한 기록이 없다는 건 정말 말이 안타까운 일이죠.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젊은 시절을 다 바친 곳인데, 기록이 전무하다라……. 그래서 이 기록도 반드시 책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북양어장 가는 길』과 같은 유형의 책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원양어업을 다루는 책이 하나 더 나올 예정이군요. 그러면 시는 어떤가요?
시도 가끔 쓰고는 있는데, 시집이 나오려면 일단 분량이 되어야 하니까……. 그리고 시집이라고 하는 게 우리나라의 출판문화에 별로 부합하지 않거든요. 개인이 돈을 내서 만들기는 쉽지만, 출판사에서 기획을 잘 해주지 않는 것도 있고. 그렇지만 무엇보다 첫 시집을 통해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다 말한 것 같은 느낌이라 필요성을 잘 못 느끼겠어요. 세상이라든지, 삶이라든지, 또 거창하게 우주라든지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말한 건 아닐까 싶어요. 더 세련되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언제나 장르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 저는 제 나름의 글을 쓰는 것이지 어떤 장르의 글을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책을 낸다면 시집도 되고 수필집도 되고 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하여튼 특정 장르를 정하고 글을 쓴다는 게 저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어쩌면 한 사람의 생각을 어떤 장르로 쓴다는 것이 그 사람의 생각을 많이 왜곡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럼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저도 즐거웠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흔쾌히 사인을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북양어장에서 살아남은 저자는 남달리 투박한 면이 있는 것도, 어딘가 부드러운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 주변에서 언제나 만나는 사람들과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주장하는 '잡어 이론'이 꽤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 모든 것은 사실 잡어에 가까운 지도, 그렇게 그도, 우리도 잡어를 닮았는 지도 모릅니다.
북양어장 가는 길 - 최희철 지음/해피북미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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