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6월 29일]


토마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이종민 번역, 산지니)는 그의 영국 옥스퍼드대 로마니스 강연 원고집이다.(로마니스 강연은 진화론자 로마니스가 1892년 만든 연례 강좌로 헉슬리는 두 번째 강연자였다.) 책에는 ‘19세기 자유주의 과학인의 멘토 토마스 헉슬리의 윤리 선언’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번역자인 경성대 이종민 교수는 해제에서 왜 그를 ‘멘토’라 했는지 설명했다.

“19세기는 흔히 과학의 세기로 불리지만 사회 정치 교육 법률 그리고 종교 분야의 논의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사고되어야 하고,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통해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한 과학인 헉슬리의 존재가 없었다면, 아마도 진정한 과학의 시대는 다음 세기로 연기되었을지 모른다.(…) 헉슬리의 정력적인 활동 덕분에 과학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인정을 받는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었고, 후배 과학인들은 이러한 지적 풍토의 전환 속에서 과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리게 되었다.”

과연 헉슬리는 중세의 신앙적 열정으로 과학(적 방법론)을 믿었고, 또 맹렬하게 전도했던 과학자였다. 진화론 옹호는 특히 유별나 스스로를 ‘찰스 다윈의 불독’이라 부를 정도였다. 1860년 옥스퍼드대에서 열린 영국과학진흥회 학술대회에서 ‘진화론의 적(敵)’ 윌리엄 윌버포스(성공회 주교이자 조류학자, 당시 진흥회 부회장)와 맞선 일화는 유명하다. 논쟁이 격해지면서 윌버포스가 “당신 조부모 중 어느 쪽이 유인원과 친척이냐”며 조롱했고, 헉슬리는 “과학적 토론을 하면서 상대를 조롱하는 데 자신의 재능과 영향력을 사용하는 인간보다는 차라리 유인원을 조부모로 택하겠다”고 대꾸했다는 이야기. 기록된 바 없어 진위를 의심받는 얘기지만, 당시 논쟁의 양상과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토머스 헨리 헉슬리(1825~1895)는 해양동물 형태학, 비교해부학 등을 연구한 생물학자였다. 51년 26세에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 회원이 됐고, 이듬해 ‘왕립학회 메달’을 받았다. 그는 당대의 자유주의 과학자들과 더불어 과학과 이성의 미래를 신뢰했고, 신의 존재처럼 증명될 수 없어 과학적 지식으로 수용될 수 없는 주장들을 불신했다. ‘불가지론(Agnosticism)’이란 말을 처음 쓴 학자로, 또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세상에는 진위를 알 수 없는 명제들도 존재한다고 여긴 선구적 불가지론자로서, 그는 절대적이며 완벽한 진실을 믿는 교조주의에 맞섰다.

‘진화와 윤리’는 그의 말년(1893년), 즉 자본의 탐욕으로 진보의 이상이 흔들리던 시기에 적자생존의 우주 진화에 맞서 윤리의 진화를 옹호하고 촉구한 강연(책)이었다. 그는 “윤리(적 진화)과정의 목표는 주어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생존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주장은 물론 ‘과학’이 아니었다.

그가 100년을 더 살았다면, 아마도 맹렬한 비관론자가 됐을 것이다. 그가 1895년 6월 29일 별세했다.


최윤필| 한국일보ㅣ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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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와 윤리 - 10점
토마스 헉슬리 지음, 이종민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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