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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가 아니라 ‘이야기’여야 (경향신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6. 30.

[한기호의 다독다독]

정말 앞날이 캄캄합니다. 작년의 ‘세월호 참사’는 국제적인 동정이나마 살 수 있었지만 올해의 ‘메

르스 참사’는 국제적 외면을 자초했습니다. 거리나 상가는 한산해지고 소비시장은 잔뜩 얼어붙었습니다. 상황이 이럼에도 국민통합과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양파 껍질을 벗기듯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당의 원내대표마저 ‘벗겨’ 낼 태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삶의 안전망을 완전히 잃어버려서 불안을 넘어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심각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 공포의 대상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다 강한 존재, 악마 같은 존재에 기대려고 한다지요. 공포가 강할수록 사회가 보수화되는 것이 이런 이치라고 하는군요.

이럴 때 인간은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갈구합니다. 하지만 한국 소설은 이야기보다 유려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바람에 독자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표절’이나 ‘자기복제’의 위험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신경숙은 그만의 고유한 문체로 지난 시절 대중을 압도한 작가입니다. 오길영이 <힘의 포획>(산지니)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신경숙의 문체는 “서정적이고 섬세”하기에 때로는 “감상성의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표절 파동’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오길영은 좋은 문체는 “아름다운 문체(美文)”가 아니라 “대상의 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문체”라고 말합니다.

올해 여름 독서시장에서도 대중은 ‘이야기’를 찾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 출판시장을 달굴 외국 소설 세 권이 그걸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 다산책방)는 59세입니다. 열여섯에 고아가 된 그는 열심히 일해서 모기지도 갚고 세금도 내고 의무도 다했습니다. 소냐와 결혼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자고, 서로 그렇게 동의했습니다. 40년 동안 한 집에서 살고, 같은 일과를 보내고,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젊은 관리자들이 “이제 집에 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늘 똑같은 일만 한 것이 직장에서 쫓겨난 이유가 됐습니다.

반년 전에 소냐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자 그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자살을 결행하려는 순간 이웃집에 이사온 젊은 부부와 어린 두 딸이 찾아옵니다. 오베는 자신의 자살을 막은 그들에게 처음에는 까칠하게 대하지만 점점 마음을 열어가며 무심한 듯 열심히 챙겨줍니다. 오베는 근면과 성실을 최고 덕목으로 알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은퇴의 압박을 받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입니다.


<나오미와 가나코>(오쿠다 히데오, 예담)는 가정폭력에 저항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가나코 남편의 폭력은 결혼하고 3개월이 지난 무렵부터 시작됐습니다.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갑자기 흥분해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두 손을 싹싹 빌며 사과했지만 폭력은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갔습니다. 백화점 외판사원 나오미는 가나코가 ‘유일한’ 대학 동창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맞는 걸 보며 자란 나오미는 가정폭력이 주변 사람들마저 지옥에 빠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친구의 아픔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나오미는 가나코를 설득해 가나코의 남편 다쓰로 ‘클리어런스 플랜’(남편 제거 계획)을 함께 세웁니다. 처음에는 겁에 질려 떨던 가나코도 점점 용기를 얻고, 자신을 구하겠다는 각오로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는 두 주인공이 그랜드캐니언의 벼랑 끝을 질주해 장렬하게 자살해 해방된 세계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당당하게 맞섭니다. ‘데이트 폭력’이 소셜미디어를 달구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늘 마주하는 일상의 작은 폭력이 실은 세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의 씨앗임을 예리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가르치려 한다>(창비)의 문제의식과도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황금방울새>(도나 다트, 은행나무)에서 열세 살 소년 시오는 엄마와 함께 북유럽 황금기의 명작들을 전시한 미술관에 들어갑니다. 엄마는 시오에게 렘브란트의 제자이자 페르메이르의 스승인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가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이자 “내가 정말로 사랑한 첫 번째 그림”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때 미술관에서 테러가 발생해 전시회장은 아수라장에 빠집니다. 

엄마는 즉사하고 시오는 사고 현장에서 만난 기묘한 노인 웰티의 청으로 반지와 작은 그림을 갖고 미술관을 빠져나옵니다. 사실상 고아가 된 시오는 엄마와의 마지막 추억이 살아있는 ‘황금방울새’ 그림을 품에 안고 웰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지 주인을 찾아 나섭니다. 시오의 인생유전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상실과 집착, 운명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있습니다.

이야기성이 강한 세 소설의 공통점은 모두 ‘죽음’을 화두로 하고 있습니다. 한없이 지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부키)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즉 존엄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를 갖고자 합니다. 그런 용기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소설들이 품은 이야기에서 위로와 구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기호 | 경향신문ㅣ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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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포획 - 10점
오길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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