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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걸의 글방

책으로 지역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3. 24.

ISSUE 지역출판이 살아가는 법

책으로 지역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강수걸(산지니 대표)


‘산지니’는 산에서 자라 오랜 해를 묵은 매를 말합니다. 수지니가 사람 손으로 기른 매라면 산지니는 야생의 매이고, 보라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매라면 산지니는 다 자란 매로, 가장 높이 날고 가장 오래 버티는 우리나라의 전통 매입니다.

오래 버티자는 바람을 담아 ‘산지니’라는 이름으로 2005년 2월 부산에 출판사를 설립한 이후 340여 종의 단행본을 발간하였습니다. 2015년에는 한국출판학회로부터 경영·영업 부문 대상을 수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역사를 담아 작년에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산지니 직원들이 함께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를 집필하여 펴내었습니다. 지역의 차별화된 콘텐츠가 출판으로 이어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기에 저희 출판사의 주요 저자가 부산·경남에서 활동하는 작가, 연구자, 언론인이라는 사실은 출판활동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가장 큰 경쟁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산지니는 지역문화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종합출판사입니다. 지역에 발을 딛고 인류 공동의 질문들을 파고들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산지니는 대표인 저와 5명의 편집자, 2명의 디자이너 등 모두 8명이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매출 규모로 보면 서울의 출판사 기준으로는 4~5명이 최적이겠지만 다양한 책을 기획하고 외주 없이 내부에서 모든 작업을 하기 때문에 조금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경영은 항상 어렵습니다. 급여가 나가는 25일과 제작비를 지불하는 월말에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물론 경영은 대표인 저의 몫입니다. 하지만 8명의 내부구성원이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산지니는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기를 넘기기 위한 10년의 실험은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에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생략하고 앞으로 나아갈 고민의 단상을 조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3월 8일, 아마존과 부산시가 아마존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부산시 강서구에 유치하기로 협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아마존의 한국 상륙은 하나씩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SK그룹과 국내 파트너로 결합하는 2015년 12월 협약 이후의 행보입니다. 

아마존이 영업을 시작하면 저의 출판사도 직거래를 비롯한 숙제에 직면하겠지요. YES24와 공급률 조정도 해결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엄청난 공룡 상륙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좋은 사례를 『지적 자본론』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츠타야서점은 고객의 가치를 우선에 두고 모든 기획과 실행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존이 말하는 독자중심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불과 10년 사이에 만여 곳의 서점이 문을 닫았는데도, 기존 대형 서점들이 투자를 축소하며 맥을 못 추는데도 승승장구하는 츠타야서점. 또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인터넷 플랫폼이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교통이 불편한 도심 외곽과 지방 도시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츠타야서점. 

만 명에 이르는 회원을 거느리고 1,4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고객 가치의 창출’과 ‘라이프 스타일 제안’으로 지적자본의 시대에 ‘제안력’이 지닌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교보문고가 고객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든지, 어음결재를 현금으로 바꾸고, 인문출판사 응원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등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도 츠타야서점의 한국판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교보문고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 저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지역출판을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이세돌과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의 세기적 대결로 인공지능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2016 CES(국제가전박람회) 기조연설을 맡은 IBM 지니 로메티 회장은 IBM의 인공지능(AI) 시스템 ‘왓슨’이 장착된 로봇 페퍼와 함께 등장해 인공지능 기계가 IT산업의 미래를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또한 ‘제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한 다보스 포럼(Davos Forum)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 생명과학 등의 기술 발전으로 2020년까지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미래 보고서가 공개됐습니다.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똑똑한 로봇이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기술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새로운 시장을 열어 그보다 더 많은 노동자 수요를 창출해왔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로 촉발되는 기술혁명은 인간의 삶과 생계수단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면서 노동자에게는 큰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우리 일상 속에 숨어들어 있습니다. 구글의 검색 엔진, 아마존의 도서추천, 페이스북의 얼굴인식 등은 사실 익숙한 것들입니다. 그 밖에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영역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응용되고 있고, 그 가치를 먼저 알아챈 소수의 사람들은 이제 미래의 부까지 거머쥐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필요 없다』는 인공지능 기술 시대의 빅뱅을 앞둔 지금, 갈수록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생활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예측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미래사회가 ‘자산 대 사람의 투쟁’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속화하는 기술 발전은 자본이 있는 소수에게 돈을 벌 수 있는 더 큰 기회를 주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가진 것이 노동력뿐인 사람은 점차 일자리를 잃게 되고 풍요와 번영은 과거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더 큰 위험은 우리가 그 위기를 인식하기도 힘들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한국출판은 글로벌 기업 구글, 아마존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는 서울에 있는 출판사든 부산에 있는 출판사든 마찬가지이고, 상당히 버거운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문제는 해결가능하다고 봅니다.


지난 3월 4일, 부산 남산동의 금샘마을도서관에서 지역출판사 대표로서 지역출판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2월 24일 열린 ‘2016 한국출판콘퍼런스’ 자료집에 나오는 2013년 OECD 가입국의 독서율 및 독서 빈도에 대한 통계자료를 가지고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한국인의 연간독서율(74.4%)은 OECD 평균치(76.5%)와 비슷하지만 16~24세 독서율(87.43%)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55~64세 독서율(51%)로 가장 낮았습니다. 이는 청소년기는 책을 읽지만 노년으로 갈수록 급격히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시험을 위해, 성적을 위해 책을 읽다 보니 읽는다는 행위가 너무 괴롭습니다. 즐거운 책읽기의 경험 부재는 사회에 진출하면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책 읽을 시간 확보의 어려움과 맞물려 55~64세의 독서율은 최저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지역에서 출판하는 저는 지역의 공공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면서 은퇴한 세대가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큰글씨책, 오디오북 생산)과 함께 독서생태계 확장을 위한 노력을 할 생각입니다. 인공지능도 자기학습을 통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확장하듯이 우리도 읽기와 토론하기로 세상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올해는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17~2021)>이 수립되는 해입니다. 지난번 5개년 계획(2012~2016)은 지역출판육성 부분이 처음으로 제시되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었지만, 동시에 대구출판산업단지 조성에 예산이 집중되었다는 문제점도 있었다고 봅니다.


지역출판이 지역에 관계없이 골고루 육성되면 좋겠고, 지역 서점이나 출판사에 임대료 지원 등의 직접지원도 검토하면 좋겠습니다. 도서정가제 개정 이후 지역서점이 살아나는 모습은 지역출판사로서 매우 좋은 소식입니다. 또한 지역출판사는 유통 문제가 큰 부담입니다. 출판유통이 주로 파주나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도서 주문은 소량인데 책값보다 물류 유통비가 더 큰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신문처럼 지역에서만 판매되는 구조가 아니라 전국의 독자에게 책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물류비 지원이 필요합니다.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을 계획할 때 출판사의 자생적 노력과 지원시스템의 정비가 함께 논의되기를 기대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 이 글은 <기획회의> 412호에 실린 글입니다.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 10점
강수걸 외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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