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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밤의 눈』과『병산읍지 편찬약사』- 작가 조갑상과 보도연맹 학살사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7. 7. 28.

『밤의 눈』과 『병산읍지 편찬약사』

- 작가 조갑상과 보도연맹 학살사건

 

 

조갑상 작가에게,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어느덧 하나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화두가 된 듯하다. 2009년 발간된 소설집 『테하차피의 달』(산지니)에 수록된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에서 보도연맹 사건을 언급했을 때만 해도, 수록작 하나를 가지고 그가 보도연맹에 아주 깊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이기에 더더욱, 보도연맹 사건은 마주보고 소설화하기에는 부담이 큰 소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12년 그에게 만해문학상이라는 큰 영예를 안겨 준 장편 『밤의 눈』(산지니)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작품이었다. 달은 밤의 눈을 하고 세상을 내려다볼 뿐이고 인간들은 아무 죄 없는 사람인 줄을 알면서도 이웃을 쏘았고 더러는 산 채로 묻었다. 그 지옥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어렵게 꾸린 유족회 활동은 시대의 족쇄에 매여 오히려 그들을 두 번 죽인 셈이 되었고,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나서지 못하게 했다. 바뀌어 가는 시대를 바라보며 ‘이제는 회한의 눈물이 아닌 내일을 위한 눈물을 흘리겠다’고 다짐하며 소설은 끝나지만, 그들이 살아왔던 굴종의 세월은 그들을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고 있다.

 

 

2017년, 그가 신작 소설집 『병산읍지 편찬약사』(창비)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작품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병산읍지 편찬약사>를 비롯해 <해후>, <물구나무서는 아이>까지, 모두 세 작품. 첫 페이지부터 연달아 세 작품이 이어진다.

 

<해후>에는 경찰 사위의 기지로 구출될 뻔했으나 마을 사람들의 눈을 꺼려 다시 창고로 돌아온 ‘장인’과 그를 돌려보내지 못하고 다른 이웃들과 함께 트럭에 실어 보내야 했던 경찰 출신 사위의 아픈 역사가 있다. 집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을 뿐인데 온 몸에 부상을 입을 만큼 나이가 든 박 영감은 온 몸에 깁스를 하고서도 유골 발굴 현장에 찾아간다.

 

<물구나무서는 아이>에서 김영호는 창고 앞에서 아버지를 날마다 불러대 아버지를 구할 뻔했으나 아버지를 자처하고 나선 낯선 남자가 아버지 대신 살아남게 되고 아버지는 죽고 만다. 훗날 그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던 사장에게서 그 낯선 남자의 냄새를 맡고, 그를 간첩으로 신고한 자신을 정당화하며 열성 극우파로 살아가다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

 

<병산읍지 편찬약사>에서는 병산읍 승격 기념 읍지에 보도연맹 사건이 너무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을 ‘좌빨 글 싣는’ 것으로 간주하는 여론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원고를 썼던 이 교수는 피드백대로 고쳐보려고 애를 쓰지만, 도저히 지울 수 없는 부분을 지우라는 요구에 필자 교체를 요구한다. 결국 읍지는 보도연맹 관련 내용이 한 줄만 실린 채 발간된다.

 

요약하자면 <해후>가 『밤의 눈』처럼 보도연맹의 현장에 서 있다면, <물구나무서는 아이>는 유족회에 들지도 못하는 피해자의 인생 궤적을 간단하지만 충실히 따라간다. 인물들의 비극을 개인사적 비극으로 그리고 있지만 작가의 시선은 사회를 향한다. 그리고 묻는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 답을 <병산읍지 편찬약사>에 꾹꾹 눌러 담았다. 모두가 터부시하고 지워내기 급급한 역사, 그 아래에서 신음소리 한 번 제대로 내 보지 못한 채 숨죽여 살다 간 피해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의 시선은 가해자들의 시선과 정말 다른가. 아니 우리 자신이 가해자가 아닌가.

 

작가는 『밤의 눈』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번 단편들을 통해 정리한 듯하다. 어찌 보면 『밤의 눈』의 후일담처럼 느껴질 정도로 반복되는 이야기임에도 서사에는 지루함이 보이지 않는다. 『병산읍지 편찬약사』를 통해 또 다시 역사를 향한 이야기를 쏟아 낸 작가의 집념에 경의를 표한다.

 

 

 

 

*소개된 책

 

병산읍지 편찬약사 - 10점
조갑상 지음/창비

 

 

 

 

 

 

*같이 읽으면 좋을 산지니 책

 

밤의 눈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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