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헌법 생활에 독일 헌법이론이 끼친 영향은?


김효전 동아대 명예교수( 『독일 헌법학의 원천』(산지니, 2018.5) 저자



정치권에서는 지난 해 봄부터 올해 봄에 이르기까지 헌법개정이 논란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의 권력이 너무 비대해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여 권력을 축소 내지 제한하자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선거 공약이었고 대부분의 국민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안은 헌법 전반에 걸쳐 손질한 것이며, 이에 대해서 국회는 심의조차 하지 않았고 더구나 국민투표법 개정이 무산돼 6월의 지방선거에서는 개헌 국민투표를 할 수 없다. 헌법개정과 관련해 정치계와 학계에서는 논의 할 때마다 독일의 헌법을 참고로 하는데 그 전통은 이미 제헌 헌법의 기초자인 유진오 박사가 바이마르 헌법을 모델로 삼은 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에 필자가 펴낸 『독일 헌법학의 원천』에 대해서 편집자가 요구한대로 기획의 동기나 문제의식, 이 책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와 가치, 그리고 독일의 헌법이론은 한국인의 헌법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간단히 적어보기로 한다.             




불행한 우리의 헌법생활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래 올해로써 만 70년이 된다. 이 기간은 전쟁, 혁명, 쿠데타, 군사독재, 산업화, 민주화 등으로 요약되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9차례의 헌법개정이 있었고 아직도 헌법개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혼란한 시대의 한 가운데인 1968년에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헌법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금년으로 만 50년을 헤아린다. 그러나 정치가 불안정하고 소용돌이치는 현실에서 가장 정치적인 법인 헌법을 연구하는 것은 마치 배를 탄 것처럼 그 기초가 흔들리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규범으로서의 헌법은 재판규범으로서 실제로 적용돼야 하는데 사법부는 헌법문제를 주장해도 이를 회피하거나 외면하기 일쑤였다. 또 국가긴급권이나 저항권과 같은 문제를 다루면 정당성의 문제에 자신이 없는 정치권에서 좋지 않게 여기거나 압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또 연구자 자신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테마는 스스로 자제하기도 하는 그런 풍조가 학계를 지배하는 실정이었다.


결국 남는 것은 외국 헌법과 순수하게 이론적인 것에 한정될 수밖에 없고 불행한 헌법생활은 불행한 연구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번에 나온 책자는 필자 개인의 연구 성과를 한데 모은 것이며 동시에 우리 헌법학설사의 일단이기도 하다.   




왜 독일 헌법이론인가?


영국은 입헌주의의 모국으로서 1215년 마그나 카르타를 비롯하여 오랜 전통과 역사 속에서 불문헌법을 가진 나라이다. 미합중국은 가장 오래된 성문 헌법을 가진 나라이며 연방대법원은 판례로써 헌법의 해석을 풍부하게 해 주고 있다. 또 프랑스는 1789년의 인권선언과 그 후의 수많은 헌법을 통해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 비해 가장 후진국가인 독일은 이들의 입헌주의를 모방하고 수용하기에 급급했다. 독일보다 뒤떨어진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일본은 다시 독일을 모델로 삼아 입헌정치를 연습하게 된 것이다. 일본 메이지 시대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오스트리아의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에게 헌법을 배우고 『헌법의해』라는 책자까지 펴내었고, 이것은 ‘半官的’인 권위를 오랫동안 누리기도 했다. 이처럼 독일 법학의 절대적인 지배 아래 있던 일본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독일 헌법학의 주요 인물과 테마


독일 헌법학을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인물 중심으로 본다면 게오르크 옐리네크, 한스 켈젠, 카를 슈미트, 루돌프 스멘트, 헤르만 헬러 등 대가들의 학설과 이론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 밖에 테마 위주로, 예컨대 헌법 일반이론, 국가이론, 헌법사, 기본권이론, 통치구조론, 헌법재판론, 비교헌법론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독일 헌법학의 원천』은 테마별로 수록하면서도 고전적인 대가로부터 현대의 대표적인 학자로 확대한 것이다. 여기에 수록한 31편의 논문들은 필자가 지난 50년 동안에 발표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미친 것들이며, 다음에 관련된 학자와 테마 중심으로 몇 가지만 예시하기로 한다.




카를 슈미트의 헌법개념


카를 슈미트는 20세기 독일의 저명한 헌법학자이며 정치학자다. 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린다. 그는 헌법과 헌법률을 구별하며 헌법은 헌법개정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헌법개정절차에만 적합하면 어떠한 헌법도 개정할 수 있다는 법실증주의의 통설을 정면에서 반박하고 헌법에는 개정할 수 있는 것과 개정할 수 없는 조항이 있다고 헌법개정의 한계를 주장했다. 예컨대 영국은 의회의 단순다수결로써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변경할 수 없듯이(『원천』102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대한민국은 인민공화국이다」로 개정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슈미트의 이론은 1960년의 4·19 혁명과 1961년의 5·16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혁명이나 쿠데타 그리고 구 헌법과 신 헌법과의 관계, 새로운 헌법의 제정이냐 개정이냐 하는 문제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됐을 때에 슈미트의 헌법제정권력의 이론은 크게 도움이 됐다. 그의 헌법의 개념은 지금의 우리나라 헌법 교과서에 대부분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그는 헌법학자로서 정치학자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지만 나치스당에 가입했고 유대인 차별을 공공연하게 주장한 죄과로 전후 강단에서 추방당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했으며, 제4조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독일 기본법 제21조 2항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 또는 폐제하려거나 또는 독일연방공화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정당은 위헌이다’라는 규정을 모범으로 한 것이다.


최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마련한 중ㆍ고교 한국사 집필기준 최종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모두 ‘민주주의’로 바뀌어 논란이 일고 있다. 다 알다시피 민주주의란 말은 여러 가지 형용사를 붙여서 사람을 혼란케 하는 이념적인 용어로서 크게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로 나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를 중시하는 서구 민주주의를 말하며, 사회민주주의는 평등을 중시하며 과거의 동구권, 특히 인민민주주의를 그 대표로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만을 고집하는 것은 사회 내지 인민민주주의로 대체하려 한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으며,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행 헌법의 기본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다. (카를 뢰벤슈타인)


지난 60년대와 70년대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헌법학계에 영향을 미친 학자로서 카를 뢰벤슈타인을 들 수 있다. 그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뮌헨 대학 강사 시절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겸 망명하여 앰허스트대의 정치학 교수로 변신한 사람이다. 종래의 조문 중심의 정태적인 헌법해석을 벗어나서 비교정치기구론과 동태적인 어프로치를 도입해 헌법연구의 새로운 차원을 연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는 일본 교토대학에 교환 교수로 와 있을 당시 우리 제3공화국을 제정할 때에 자문 역할을 부탁했으나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다. 여하튼 그의 이론으로서 수평적 통제와 수직적 통제의 이론은 우리나라 사법시험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대통령제에 관한 논문(『원천』851면 이하)은 이제는 고전이 되고 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뢰벤슈타인은 연합국 군정의 법률고문이며 미국 대표로서 왕년의 동료였던 카를 슈미트를 전쟁범죄자로서 처벌하려고 감정서를 작성했으나 무위로 끝나기도 했다(『뉘른베르크에서의 슈미트의 답변』, 2000).                 

        



기본권 보호의무


우리 헌법 제10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입법, 행정 그리고 재판소의 판결 등의 형태로 등장한다. 그 법학적인 규제의 기술로서는 권력분립·권리의 보장·국가목적·헌법재판권을 통한 헌법국가의 실현이 각국에서의 공통된 경험이다. 특히 요제프 이젠제의 장문의 논문인 ‘방어권과 국가의 보호의무로서의 기본권’은 자유권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국가의 보호의무를 강조하고 있다(『원천』701면 이하).




헌법의 수호자 논쟁


우리 헌법 제66조 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 바이마르 헌법은 취임 선서에서 헌법과 법률의 준수를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당시 카를 슈미트는 공화국 헌법의 수호자는 중립적 권력을 가진 라이히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데 대해서, 한스 켈젠은 공화국 대통령뿐만 아니라 라이히 의회, 정부 그리고 법원 모두가 헌법의 수호자라고 반박하였다. 이 논쟁은 바이마르 헌법의 운명과 함께 끝나고 그 결과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된다(제6편). 




헌법개정과 헌법변천


헌법개정은 의도적인 의사행위로 행하는 성문헌법의 변경을 의미하며, 헌법변천은 헌법성문을 형식상 변경하지 않고 존치하며 반드시 변경의 의도나 의식 없이 사실상 행하는 헌법의 변경이라고 게오르크 옐리네크는 말한다. 특히 헌법변천의 이론은 1946년 제정된 이래 한 번도 개정하지 아니한 일본의 경우, 제9조의 자위대 관련 조항의 해석에서 일본 정부가 항상 즐겨 내세우는 것이다. 성문 헌법의 의도적인 변경만을 강조하는 우리 나라에서는 헌법변천에 의한 사실상의 헌법개정의 문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원천』235면 이하).   


독일의 헌법이론은 처음에는 <한성순보>나 <독립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와 같은 일간지를 통해서, 다음에는 각종 계몽 단체의 잡지를 통해서 단편적으로 소개되다가 1905년을 전후해서는 교과서의 형태로 체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예컨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헌법 교과서는 유치형(유진오 박사의 부친) 강술의 『헌법』(1908년)이며, 이 책은 일본인 호즈미 야스카(穗積八束)의 헌법대의를 「준거채용」한 것이다. 또 김상연의 『헌법』(1908년)도 일본인 소에지마 기이치(副島義一)의 헌법책을 요약한 것이며, 조성구의 『헌법』(1908년)도 텍스트틀 밝히고 있지 않으나 일본인의 저술을 모델로 삼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저술을 살펴보면 대부분 독일 교과서를 토대로 집필한 것임을 곧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법학통론을 비롯하여 민법, 형법 등 각종 법학 교과서가 발간되고 이것들은 법관양성소, 양정의숙 그리고 보성전문학교 등에서 교과서로 채택되었다. 법학교육과 관련해서는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법률 지식이 있어야 된다는 사상이 고조돼 법학 공부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독일 학설과 이론의 도입과 수용에서 시작해 광복 후에는 바이마르 헌법의 참고에서 보듯이 입법의 계수로 바뀐다. 이제 자신의 독자적인 헌법생활 70년을 맞이해 우리는 외국 헌법이론의 도입과 소개에 만족하고 머무를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헌정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독자적인 헌법이론의 체계화를 힘쓸 때라고 생각한다. 강조할 것은 독일의 헌법이론이나 미국의 판례이론이 가장 우수한 것도 아니고 또 헌법학 연구의 전부도 아니다. 외래 사상의 침략과 범람에 대해서 자기 고유의 존엄과 힘을 자각하고 이를 지킬 줄 아는 국민만이 헌법생활의 진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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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헌법학의 원천

 

카를 슈미트 외 지음 | 김효전 번역 | 1184쪽 | 80,000원 | 2018년 4월 25일 출간

 

 책은 총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 헌법이론, 국가이론, 헌법사, 비교헌법론, 헌법의 보장 등을 다룬다. 바이마르공화국 헌법부터 현재 독일의 실정헌법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헌법학 관련 이론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헌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책은 본격적인 학술 논문에서부터 강연 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헌들을 수록하고 있으며, 독일 헌법학의 시기 또한 바이마르 헌법 시대에서부터 통일된 독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독일 헌법학의 원천 - 10점
카를 슈미트 외 지음, 김효전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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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