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북투어 여행기]

 

 

2018년 2월 8일(목)~ 2월 11일(일) 진행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북투어

비 오는 타이베이를 걸으며

산지니 어둠 여행단을 보고 느끼고 나눴던

그 시간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2화 
반민들이 스쳐 지나간 장소를
감각하고 실감하다

by. 곽규환『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역자

 

 

 

 

# 어둠

 

지난 삼천년의 세월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도 없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리 
-

괴테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원제: 『叛民城市』臺北暗黑旅誌, 이하 반민성시) 는 읽기 어려운 책이다. 오로지 비명만이 쓰였기 때문이다. 스타일도, 환호도, 침묵도 건너뛴 그야말로 ‘합목적적’인 책. 심지어 불친절하다. 해당 시점의 그 장소를 돌출시키기 위해 배경과 맥락이 생략됐다. 개발, 민주화, 노동운동, 반핵, 생태운동, 그리고... 모든 주제가 어둠을 겨냥한다. 타이완과 타이베이가 관광지로 부상한 한국의 정서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이 책은 친절하진 않지만 다정한 책이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이들과 장소들의 손을 잡아 끌어올려 가시可視할 수 있게 해줬다. 그 마음이 다정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이 책의 번역을 제안했다. 산지니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이 제안을 수용했을 것이다.


 또한 생각한다. 불친절과 다정함에 주목하게 되는 건 아마도 ‘지나친 밝음’에 대한 의심이 아니었을까. 혹은, 빛과 어둠이 서로 스며지지 않는 곳은 없을진대 너무 많은 이들이 밝은 곳에서만 북적거리는 세태에 대한 불만일지도 모른다. 의심과 불만이 잉태한 이 ‘친절하지 않지만 다정한’ 책은 작년 늦가을 번역출판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전하게 읽어 내기도 힘든 이 책의 내용을 몸으로 걷겠다는 산지니의 연락을 받았다. 북투어를 진행하니 기획과 안내에 참여하라는 이야기. 온갖 이유를 들어 번역을 제안했던 원죄가 있으니 도무지 거절할 방도가 없었다. 기꺼운 마음으로 북투어의 일행이 됐다.

 

# 준비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보고 느끼는 사진 속에서 사진의 내용이 되는

질감과 명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사진가의 섬세함을 기르는 일이다.
음악의 음색, 목소리의 어조, 감정의 느낌, 시의 가락, 떨림의 장단, 동작의 선. 
-

필립 퍼키스, 『사진학 강의』

 

 

 아직 대만에 체류하던 공역자 이제만과 함께 준비를 시작했다. 타이완 역사와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에 소개된 52곳의 장소와 관련 주제 등을 다시 정리하고 여행자들의 기본 정보와 타이베이의 기후 등을 고려해서 주요 동선과 후보 동선을 만들어 나갔다. 여행단보다 며칠 일찍 타이베이에 도착해 이제만과 함께 자료 보충과 사전답사를 진행했다. 준비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안심할 수 없었다. 일정은 짧고 여행단 구성은 다채롭다.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과 기조를 잡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세차게 내려치던 빗줄기 사이로 선명하게 번져가던 도시의 원색들을 보며 우리는 이 답사의 기조와 목표를 가늠해냈다. 이른 아침부터 깊은 밤까지, 달라지는 도시의 색감은 변주하는 많은 장소들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색감이/을 자아내는 정서, 여기에 이번 여행의 중심을 두기로 했다. 하고픈 이야기를 정리해 보니 두 단어가 남았다. ‘감각과 실감’. 반민들이 이미 스쳐 지나간 장소를 감각하고 실감하는 일. 그렇다면 남은 준비는 단 하나였다. 유튜브에서 여행사 가이드들의 음성과 제스처를 배우는 일. 그렇게 산지니 북투어 일행을 기다렸다.


# 진행

 

스타일이란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왔는지에 대한 족적이다.
-

르네 도말

 

 

 ‘그들’이 왔다. 공항에서 숙소로, 숙소에서 거리로. 타이완에 도착한지 채 3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은 공간과 장소의 변화를 걷게 됐다. 나는 장소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생략하고 그 장소를 일구어 낸 공간의 흐름과 사람의 표정에 대해 초점을 넓히고 좁혀가며 이야기했다. 타이베이의 스타일을, 타이베이가 굴러온 궤적의 그 선線을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그 선이 가로지를 때 울렸던 비명과 함성의 주인공들이 반민이므로. 항상 주목받는 환호의 주인공들로 가득 찬 역사는 가급적 외면했다. 3박 4일 내내 타이베이의 스타일을, 유튜브에서 일러준 가이드 스타일대로 목청 높여 외쳤다. 다만 비명과 환호 사이의 침묵을 말할 여유가 없어 아쉬웠다.

 

# 동행

 

무언가를 경험할 때는 그것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아야 한다. 이때는 관찰하지 말아야 한다. 관찰하려 들면 지혜를 얻기는커녕 소화불량에 걸린다. 
 -

니체, 『방랑자와 그 그림자』

 

 

 먼저 이번 북투어 일행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감사를 전하고 싶다. 타이완과 타이베이가 걸어온 시간의 맥락이란 등불이 없었을 다수 북투어 일행들에게 이번 ‘어둠 여행’은 그야말로 어둠 속을 헤매는 일과 같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 어둠 속을 안내하는 가이드들은 ‘청사초롱’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장소들의 어둠, 그 뒤편의 더 넓은 어둠을 그리는 해설을 쏟아냈다. 또한 그들(가이드)은 뻐근하고 피로했을 반민들의 정서를 몸으로 체각體刻하길 바란다는 명목으로 일정 내내 무수한 도보를 곁들이며 걸어라! 더 걸어라!를 외쳐댔다. 결국 ‘어둠 여행단’은 진정한 ‘다크 투어리즘’을 실천당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어둠에서 빛을 찾아 나아가는 것보다 환한 세상에서 어두운 흔적을 찾아 헤매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때때로, 빛은 눈을 멀게 하니까.

 

# 후기

 

질료의 저 깊숙한 속에까지 사무치는 스침,
그것이 애무다.
-

미셀 투르니에(Michel Tournier), 『예찬』

 

 

 사랑의 대상은 무제한이다. 사람, 공간, 시점, 그리고 또 무언가들. 우리는 무수한 ‘존재’들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의 횡적 확장, 이 무한정한 팽창의 힘이 세상을 움직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무엇 사이, 무엇과 무엇 사이. 이 사이에 다리가 놓이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세계가 탄생한다. 반면 사랑의 심화는 제한적이다. 하나의 존재를 깊숙하게 사랑할 때는 인내와 근육과 몰입이 요구된다. 사랑의 대상을 늘려나가는 일과 그 사랑을 진하게 물들이는 것은 교집합과 여집합이 난무하는, ‘선명하지 않은 세계’다. 그래서 팽창과 심화, 이 두 축을 모두 갖고 싶을 때는 ‘애무의 기술’이 필요하다. 질료의 저 깊숙한 곳에까지 사무치면서 스쳐버리는 것. 이번 북투어에 이 '애무의 기술'이 필요했다. '타이베이의 이면'이라는 사랑의 확장이 심화의 과정을 만나 진통했으므로. 심화에는 '쉽게'가 없다. 어려운 일은 어려운 것이다.  깊숙한 곳에 닿기 위해서는 깊은 진통의 뿌리를 가진 근육이 필요하다. 이번 북투어가 홀가분하지 않고 뻐근했을 이유다. 애무의 관점으로는 괜찮은 뻐근함인 셈이다.  아울러 이 후기는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의 문체와 스타일과 정서를 빌려 작성했음을 밝힌다.

 

 

 

 

 

―완결(完)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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