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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조혜원 지음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먹방인 듯 먹방 아닌 먹방 같은 방송이 있다. 시즌을 거듭하며 인기리에 방송했던 '삼시세끼'다. 전문가가 요리하는 식당은 나오지 않는다. 가능한 한 식재료의 생산부터 요리, 식사까지 오직 출연진들의 손으로 직접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속도는 느릴 수밖에. 그런데 참 묘한 것이, 삼시세끼 차려 먹는 데만 하루 종일 걸리는 게 왜 그리 재밌는지, 한 번 틀면 푹 빠져들어 채널을 돌릴 수가 없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도 비슷한 정서를 느꼈다. 요리하고 먹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영화인 것 또한 사실이다. 주인공 '혜원'이 계절에 맞는 제철 재료들로 맛깔스럽게 요리하는데 몇 번이고 내 입에도 군침이 돌았다. 그리고 그 과정들 속에서 혜원과 나는 동시에 치유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를 보살피는 건, 약이 아닌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리틀 포레스트>와 닮은 꼴 책을 만났다. 사시사철 먹거리 이야기를 하는데 내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러고 보니, 저자의 이름도 같다. 조혜원의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다. 



책 말미의 추천사를 통해 그녀가 출판사에서 일했고, "갑의 횡포에 부당해고를 당한 서민들을 위해 목청 높이며 밤을 지새웠고,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항변으로 밤을 불태우는 정의의 사도"(p254)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순 있지만, 본문엔 그런 내용일랑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순 먹거리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함께 웃음 짓게 만든다. 자연과 함께 하는 그녀의 사계절은 시종일관 푸릇푸릇, 생동감이 가득하다. 

주말농장 한 번 해보지 않은 부부가 깊은 산골짜기로 내려갔단다. 오랫동안 꿈꿔온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기 위하여. 이들을 도운 건 책이다. 산과 가까워지기 위해 서울에서 잔뜩 싸 간 도감과 생태 책들을 길잡이 삼았다고 하니, 왠지 속없는 웃음이 나왔다. 

산골에 내려간 뒤 맞은 생일엔, 어릴 때도 시시한 것 같아 하지 않았던 꽃 왕관을 만들어 썼단다. 때 되면 봄나물도 뜯고, 앞산에서 밤을 주워다 먹기도 하는 날들이다. 


"자연놀이는 아이들한테만 어울리는 게 아니다. 삶이 팍팍한 어른들도 마음을 어루만지고 활짝 열게도 해주는 자연놀이가 필요하다. 어른들을 위한 행복한 자연놀이, 앞으로 하나둘 더 찾아봐야겠다. 나를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어른들을 위해."(p83)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산골살이가 그리 낭만적이기만 할 리 없다. 부추와 풀이 헷갈릴 땐 입으로 씹어가며 원시적으로 확인하고, 벌레와 뱀, 쥐와도 마주치는 삶이다. 농사에 실패하는 것은 한두 번도 아니다. 

정성들인 배추농사는 완전히, 쫄딱 망했단다. 상추인지 배추인지 헷갈릴 지경인 것도 모자라, 벌레가 실컷 먹어버린 덕분에 '망사배추'라고 불러야 할 정도였다고. 그 배추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정말이다. 그야말로 망사다! 그런데 그녀, 마냥 기죽진 않는다. 


"제대로 된 농부라면 망사배추를 보면서 애가 타야 맞을 텐데. 이걸 어째, 난 저 모습이 꽃처럼 아름답고 꽃보다 더 멋지게 보이니.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 아니겠나! 저렇게 작은 구멍 가득한 배추는 처음 보는지라 저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싶기까지."(p184)


망한 농사 앞에서도 여유 부릴 수 있는 그녀지만, 완전히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까지 힘든 일도 많았을 터다. 드러내놓고 앓는 소리를 내지 않지만, 그 마음을 엿볼 수 있어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령 무 농사 이야기를 할 때다. 뿌리작물은 옮기는 게 아니라더니, 아니나 다를까. 옮겨 심은 무가 폭삭 시들었단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삶터를 옮기고 어김없이 몸살을 앓는 건 무 같은 농작물만은 아닐 테다. 사람도 그렇다. 그게 바로 나고. 도시에서 산골로 삶터를 옮긴 지 어느덧 사 년이 넘었다. 그동안 숱한 마음 몸살을 앓았고 그 몸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조금씩 옅어지고는 있으나."(pp189-190)


세상만물을 친구 삼고 스승 삼을 수 있는 그녀에게 나는 한 수 배운다. 어쩌다 떨어진 씨앗이 뿌리를 내렸는지 당근이 열린 적도 있단다. 그러나 거저 먹을 생각 말라는 가르침인지, 그 당근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고. 대신 그 자리에 피어난 당근 꽃이 환하게 아름다웠다고 한다. 


"사람 먹을거리로 쓸모없게 된 덕에 저리도 환하게 피어난 당근꽃. 살아가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의미가 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모자람이 있기에 다른 무엇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는 거라고, 모자란 나를 다독여주는 것만 같다."(p97)


돈 되는 농사는 하지 않고 있다는 그녀. "도시농업 하는 분들, 토종 종자 지키는 분들, 그리고 오로지 농사로 먹고사는 분들"(p8)께 민폐가 될 것 같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단다. 그러나 그녀 덕분에 나는 자취를 감춰가는 토종 종자를 안타깝게 여기게 됐고, 공산품에만 의존하게 되어 버린 우리 장(된장, 간장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녀 역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또한 시골 살이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엿볼 수 있게 되어 고맙기도 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에 환상을 품고 싶지 않지만, 무턱대고 겁을 내고 싶지만도 않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도시를 떠날 생각이 없지만, 선택지와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건 내 마음을 조금 더 여유롭게 해준다.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하는 말에, 이 독자는 힘주어 대답하고 싶다. 암요, 되고말고요. 어느 곳에서 살든, 나의 터전을 사랑하고 내 삶을, 자연을, 이웃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모두 웃고 살 기본 자격을 갖춘 것 아닐까. '산골 혜원 작은 행복 이야기(부제)'는 내게도 행복을 전달했다. 

그녀가 전달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냉이국수다. 이제 막 여름이니 봄을 그리워하긴 너무 이르지만, 아무래도 난 다음 봄을 손꼽아 기다릴 듯하다. 냉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가 냉이국수를 해먹을 생각을 한 번도 못해봤다니, 억울할 정도다. 냉이를 잘게 썰어 양념장에 넣기만 하면 끝이란다. 그 향긋함, 상상만 해도 침이 고인다. 

책으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땀 흘리며 일한 이야기도 적잖은데 나는 휴식을 취한다니 어째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읽다 보면 어느 새 풀냄새와 흙냄새가 이곳까지 날아든 기분이 든다. 역시 음식이, 그리고 자연이 우리를 위로하는 듯하다.


양성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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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 10점
조혜원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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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