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자본에 맞선 골목상인 연대…현실 인식 없인 실패”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이정식 회장
- 중소상공인들 투쟁기 책 펴내
- 힘 합친 상인도 서로 경쟁자
- 대기업 상생점포는 갈등 초래
- 거대 권력에 이리저리 휘둘려
- 허울에 현혹되지 말고 뭉쳐야
“사람과 업체 이름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회한을 담은 자서전이 아니라 상인의 발자취를 담은 기록물로 읽혀지길 바랍니다.” 이정식(54)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회장은 최근 자신이 출간한 책을 꺼내 보이며 이렇게 소개했다. 책 표지엔 ‘골목상인 분투기’라고 쓰인 제목 아래 ‘거대 자본에 맞서 지역 상권을 지킨 중소상공인살리기 운동, 그 13년의 기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최근 ‘골목상인분투기’를 출간한 이정식 ㈔중소상인살리기협회 회장은 “상인의 발자취를 담은 기록물로 읽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효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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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이 책을 낸 이유는 단순하다. 중소상공인의 실상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단다. 이 회장은 “그래야 주변에 도움도 요청하고, 자영업자 스스로 앞으로 제대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운전을 하면서 자동차 룸미러를 보는 이유는 뒤로 가려는 게 아니라 앞으로 가려는 것인데 이와 같은 이치다.
이 회장은 2008년 한 슈퍼마켓 점주를 통해 중소상공인의 실상을 처음 목격하고, 집필을 결심했다. 당시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한 상가의 슈퍼마켓 주인이 같은 건물에 기업형슈퍼마켓(SSM)이 입점을 추진한다며 이를 막고자 도움을 요청했다. 이 회장은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에 SSM 입점 제한을 위한 사업조정신청을 하려 주변 점포 20곳의 동의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조정 신청을 마쳤을 때 그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슈퍼마켓 주인이 수억 원의 권리금을 받고 점포 자리를 또 다른 SSM에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투쟁에 동참한 상인 모두 허탈감을 느꼈다. 배신감과 회의감이 밀려와 한동안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자본 권력 앞에선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중소상공인의 현실을 알게 됐다. 현실에 발을 디딘 중소상공인 투쟁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이후 이 회장의 ‘중소상공인 살리기 운동’은 막연하지 않았다. 투쟁 대상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쳤고, 목적도 확실했다. 그가 최근 벌인 부산지역 이마트타운 입점 저지 운동도 마찬가지다. 이 회장은 관련 영업등록 인가 과정에서 음성적인 기금과 합의서가 오갔다고 주장하며 두 차례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해당 사건을 검찰에 고발도 했다. 1·2심 행정소송 모두 증거 부족과 영업 허가에 대한 구청장의 재량권 등을 이유로 패소하고 형사 고발 건도 무혐의 처분됐지만, 이 회장은 청탁금지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관련 기업을 재차 고발했다. 이 회장은 이달 초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이 사태를 알렸다. 당시 그는 ‘민생 경제 분야 수사는 공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검찰 개혁’을 언급했다가 국회의원에게 욕설에 가까운 말을 들었다. 이 회장은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하소연이 무참히 걷어 차였다”며 격앙된 감정을 보였다.
이 회장은 ‘힘없는 중소상공인’이 살길은 현실에 기반한 ‘연대’라고 강조한다. 각기 다른 영업 규모와 형태를 고려하지 않은 연대는 구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013년 울산에서 대기업 점포 입점 반대에 동참했던 도매업자들이 신생 중대형 소매점에 물건을 납품하면서 동지였던 중소 소매점과 반목하는 것을 봤다”며 “상인은 서로 경쟁자인데, 이런 현실을 간과한 채 우산만 같이 들자고 했으니 함께 비 맞을 마음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회장이 책의 첫머리부터 마지막 기록까지 강조한 것은 명확한 현실 인식이다. 그는 “유통 대기업이 전통시장에 매장을 차리고 ‘상생 점포’를 내세우는 바람에 이를 받아들인 시장 상인과 반대하는 골목 상인 간에 입장이 달라졌다”며 “상인 간 연대를 공고히 하려면 허울에 현혹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
골목상인 분투기 - 이정식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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