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가 구모룡 교수 평론집 '폐허의 푸른빛' 펴내
"모옌처럼 상상력 있는 지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문학론은 '지역 소외'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는 그런 부정적 생각에서 벗어나 오히려 '지역'을 통해서 아시아와 세계 문학으로 나가자는 쪽으로 긍정적 논의가 진행 중이다. 지역문학론은 민족문학론에 갇힌 한국문학을 풀어내는 창작방법론이 될 수 있다."
부산 해운대 청사포를 찾은 문학비평가 구모룡은 "부산 문학이 지방 문학에 머물지 말고 동아시아 차원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지역 문학이 돼야 세계문학으로 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동환 기자
구 교수는 지역문학의 활로를 제시하기 위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 작가 모옌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많은 이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와 모옌을 비교한다. 모옌이 구체적인 장소에 바탕을 두면서 그 장소에 개입하는 국가와 세계의 힘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면, 하루키는 무국적성 혹은 미국에 연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감성공간으로 달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이 준거는 아니지만 하루키를 제치고 모옌이 그 상을 받은 데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문학의 공간이 막연한 보편성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특수한 장소에서 형성되는 인간의 삶에 관한 수준 높은 해석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구 교수는 '지방' 대신 '지역'을 강조하면서도 비평 용어로는 '로컬(Local)' 문학을 사용한다. 그는 "부산이 지역이라고 하면 동아시아도 지역이 되니까, 차이를 두기 위해 부산을 '로컬'로 부르자는 것"이라며 "로컬은 그 위에 놓인 민족, (지정학적) 지역, 글로벌과도 연동되면서 다층화되는 개념"이라고 풀이했다. 세계화 시대에 지역문학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디지털 시대를 맞아 지역문학이 곧 세계문학이 되는 문학 환경 변화도 강조했다. '토박이' 문학의 구체성에 바탕을 두면서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글로벌 문학을 실현하자는 것.
구 교 수는 지역 문학을 '반딧불이'에 비유했다. 세계화 시대의 정치와 신자유주의, 대중문화의 서치라이트 때문에 반딧불은 미약해 보이지만, '시인은 깊은 어둠 속에서 미미한 빛의 흔적을 찾아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21세기 지역문학은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의 산물"이라며 "지역문학이 시대정신과 맞물려 운동성을 얻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선일보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신간 200자 읽기] 폐허의 푸른빛
구모룡 지음/ 산지니/ 2만5천원
오랫동안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온 구모룡 평론가의 평론집이다. 1부 ‘성찰과 전망’에서는 문학에 관한 원론적 질문부터 몸담고 있는 문단에 대한 평론가로서의 성찰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2부 ‘묵시록의 시인들’과 3부 ‘폐허의 작가들’은 시인의 시집과 소설가의 소설을 매개로 대화를 나눈 장이다. ‘나의 비평적 행보에 대한 회고’는 저자가 문학 평론가로서 걸어온 길을 회고하며, 비평집을 읽는 이에게 지역문학과 주변부 문학에 대한 지식을 전한다.
영남일보 노진실기자
폐허의 푸른빛
구모룡 지음 | 472쪽 | 25,000원 | 2019년 9월 30일
978-89-6545-629-2 03810 | 신국판(152*225)
여러 권의 비평서를 출간하며 ‘지방-지역-세계’라는 중층적 인식 아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온 구모룡 평론가의 새로운 평론집이다. 저자는 “문학도 비평도 이미 자본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물에 불과하고, 한갓 유희로 빠지지 않고 여린 진정성에 기대면서 폐허의 시간을 버텨내는 일이 시가 된 지 오래”라고 말한다. 오늘의 문학과 비평은 이와 같은 역설의 시간에 처했지만, 저자는 결코 ‘평론’하는 것에 대한 좌절과 무너짐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의 가치를 품고 키웠던 건 폐허의 시간이었다고 말하며, ‘푸른빛’을 띤 문학과 비평의 희망과 가능성을 주지한다.
폐허의 푸른빛 - 구모룡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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