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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기

'시'를 쓸 운명

by 산지니북 2010. 11. 29.

지난 금요일 국제신문사 강당에서 열린 제10회 최계락문학상 시상식에 갔다왔습니다. 수상의 주인공은 얼마전 블로그에 소개해 드린 시집 '찔러본다'(링크)와 최영철 시인. 그날 모처럼 저희 출판사에 놀러오셨는데요, 점심때 따끈한 대구탕도 사주시고, 시상식에 안가볼 수 없었답니다.^^;

사실 문학에 문외한인 저는 최계락 시인을 잘 몰랐습니다. 작년에 출간된 동길산 산문집 <길에게 묻다>를 작업하면서 최계락 시인을 처음 알게되었고, 이번 문학상 시상식 덕분에 조금 더 알게되었습니다.

최계락 시인(1930~1970)은  일찍이 20대 초반에 등단하여 경남과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문학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전쟁기 임시수도였던 부산에 몰려들었던 많은 문인들이 제 각기 서울 등지로 떠나간 뒤에 고석규, 김성욱, 김재섭, 김춘수, 손경하, 송영택, 유병근, 조영서, 천상병, 하연승이 참여한 <신작품> 동인들과 함께 경향 각처의 시인들이 교류하는 장을 여는 데 힘을 썼습니다. 맑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면서 행복하고 조화로운 세계를 꿈꾸어온 그가 돌연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문학을 기념하는 문학상이 제정된 지도 해를 거듭하여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최계락 시인의 대표시 <꽃씨>와 <외갓길>을 낭송했고, 생전의 최계락 시인과 함께 활동한 하연승(77) 손경하(81) 원로 두 분이 특별상을 받으셨습니다. "오래 사니 상을 주네. 더 오래 살아야겠다"고 하연승 님께서 수상소감을 밝혀 모두에게 큰웃음을 주었습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께서
"3명의 평론가가 이구동성으로 최영철 시집 <찔러본다>를 선정하여 비교적 수월한 심사였다"고 심사평을 말하셨습니다.


최영철 시인께 수상 소감을 묻자 "딴 짓 안하고 꾸역꾸역 시를 쓴 것을 잘 봐주신 것 같습니다. 문학상은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았고, 시를 쓸 운명이었는지 이나이 먹도록 시를 쓰며 살았고 시에게서 보상을 받았는데 이런 '큰 시인'을 기리는 상을 받아 기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학창시절 얘기도 해주셨는데, 어렸을때 자신은 지각생에 열등생이었다고 자백하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내백일장에서 첫 상을 받던 날 아침에도 지각하여 벌을 서고 있었는데,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인 조례 시간에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래 얼른 뛰어가서 상을 받고 다시 돌아와 벌을 마저 섰습니다."(모두 웃음) 최계락 시인의 <달>이라는 시를 읽고 받은 충격 이야기 등 선생님의 특기이신 느리지만 재밌는 입담으로 좌중을 흔드셨습니다.


노을 / 최영철

한 열흘 대장장이가 두드려 만든
초승달 칼날이
만사 다 빗장 지르고 터벅터벅 돌아가는
내 가슴살을 스윽 벤다
누구든 함부로 기울면 이렇게 된다고
피 닦은 수건을 우리 집 뒷산에 걸었다


- <찔러본다> 중에서


최계락 시인 외가로 가는 길. 길은 어느 길이든 다감하고 어느 길이든 누군가에게는 외가로 가는 길이다 - 산문집 '길에게 묻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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