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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생태계 변화 맞물린 ‘책값 논쟁’…“시장 논리로만 접근하면 안 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9. 7.

출판생태계 변화 맞물린 ‘책값 논쟁’…“시장 논리로만 접근하면 안 돼”
[경향신문 기사 원문]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문화 공공재’이다. 책은 ‘저렴한’ 가격이 아닌 ‘적정한’ 가격에 공급되어야 한다.”

개악인가, 개선인가. 오는 11월20일 일몰을 앞둔 ‘도서정가제 개정’을 앞두고 출판계와 정부의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 업계 이해당사자로 구성된 민관협의체는 지난해 7월부터 16차례 협의 끝에 일부 합의안(재정가 기한 18개월→12개월로 단축, 공공기관 구매도서 할인율 10% 허용 등)을 마련하고 지난 7월15일 공개토론회를 열며 이견을 좁혀갔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에선 7월 말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겠다며 발 뺐고, 출판계에선 “합의 내용을 파기하고 전면 재검토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반발했다. 지난달 31일 한국작가회의까지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성명서’를 내며 논란은 커지고 있다.

■ 도서정가제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책을 출판사 정가대로 서점에서 팔도록 한 제도이다. 지나친 가격 경쟁으로 출판생태계가 흔들리는 걸 막기 위해 2003년 법제화됐다.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부터 정가의 15%(10% 가격 할인+5% 마일리지 적립. 개정 이전에는 신간 19%, 구간 무제한 할인 가능) 안에서만 할인하도록 정해놨으며, 3년마다 재검토 절차를 거치도록 되어있다.

도서정가제 논란은 지난해 11월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완반모)’이라는 단체에서 기존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20만명을 채운 이 청원에선 지역서점 수 감소, 독서인구 감소, 평균 책값 상승 등을 근거로 독서출판 시장이 망가졌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를 위한다면 저렴한 가격에 책이 공급될 수 있도록 이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판계에선 왜곡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실제 통계를 보면 관련 지표들이 대체로 개선됐고, 무엇보다 1인 출판사나 독립서점이 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제도적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서 인구가 해마다 줄고 있지만, 이 역시 책값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 2018년 책의해 연구보고서 ‘읽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에서 가장 큰 독서 장애 요인은 ‘시간이 없어서’(19.4%)였다. ‘책을 사는 비용이 부담스러워서’는 1.4%에 불과했다. 애초에 응답자 중 ‘책을 전혀 안 읽는다’가 23.0%, ‘일년에 한 번’은 15.4%였다.

근본적으로 이번 논란은 출판 생태계의 변화와 맞물려있다. 완반모를 이끄는 배재광 대표는 도서 뒷면 ISBN(국제표준 도서번호) 바코드를 찍으면 도서 구매가 가능한 플랫폼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가격 정책이 더욱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논의 중단 배경으로도 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콘텐츠업체의 거부가 지목되고 있다. 현재 웹툰·웹소설 등 전자출판물은 일반콘텐츠나 도서로 출간할 수 있다. ISBN을 받아 출간하면 부가가치세 10% 면세 혜택을 받는 대신 도서정가제 규제가 적용된다. 웹툰·웹소설에도 적용되면 ‘기다리면 무료’ ‘첫회 무료보기’ 등의 서비스가 사라지게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송성호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는 “앞서 ‘캐시’나 ‘코인’ 등 각 유통업체의 교환 화폐를 원화 가치로 환산해 정가로 매기는 합의안에 이르렀고, 무료 연재의 경우 마케팅 수단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혜택을 줄 수도 있다”며 “전자책이 도서정가제 적용을 피하고 싶다면 ISBN을 받지 않으면 되는 ‘선택의 문제’인데 혜택은 누리면서 가격 규제는 받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책값이 싸다고 더 많이 읽을까

‘할인율’을 어떻게 정할지도 논란거리다. 출판계에선 현행 15% 할인을 마지노선으로 본다. “도서정가제가 흔들리면 서점과 출판사들의 존립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상품이지만 그 가치가 가격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는 지난달 경향신문 칼럼에 “좋은 책들이 몽땅 사라지는 게 보고 싶다면 도서정가제를 폐지하자. 얄팍한 싸구려 책이나 만들면 되지 뭐”라고 자조적인 글을 썼다. 안 대표는 전화 통화에서 “책 가격이 싸면 많이 팔릴 것처럼 얘기하지만 한 사람이 소화하는 책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가격도 책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책의 내용과 품질이 1차 조건이 되도록 도서정가제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밀어내기로 구간·할인도서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점령하던 2014년 이전으로 돌아갈 거란 전망도 나온다. 학술서나 교양서는 수요는 적어도 꾸준하게 팔리는데, 구간 할인이 이어지면 몇몇 팔리는 책만 계속 팔리게 돼 신간을 낼 유인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할인율 5%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연매출 5%로 생각하면 크다”며 “그 늘어난 수익으로 손해가 나도 과감한 기획을 할 수 있던 것인데, 다시 할인 경쟁이 심화되면 책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독자들의 선택지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송성호 이사도 “서점은 교보문고 정도, 출판사도 대형 10곳 정도만 남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이선주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은 “현재 소비자들의 후생만이 아니라 출판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조만간 출판계와 협의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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