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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기

가을에 읽는 모니카 마론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9. 11.


안녕하세요. 

편집자 열무입니다. 


땀 훔치며 걸어다녔던 게 바로 지난주인데 가을은 가을이라고 하늘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하죠.

저는 가을만 되면 어쩐지 해외문학을 읽고 싶어져요. 

괜히 쓸쓸해지고 싶어서 그런가 봐요. ㅋㅋ

그래서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모니카 마론『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입니다.


모니카 마론은 국내에선 『슬픈 짐승』으로 잘 알려진 독일 작가 입니다. 

사회주의나 분단 등 독일 역사의 큰 흐름들이 모니카 마론 작품 세계의 중요한 토대로 자리하고 있는데요. 구동독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도 작가의 중요한 테마이지만, 사실 저는 모니카 마론하면 사랑의 상실과 그 끔찍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신형철 평론가는 이런 모니카 마론을 두고 "최상의 산문 문장은 고통도 적확하게 묘파되면 달콤해진다는 것을 입증하는 문장이다."는 표현을 썼는데요, 책을 읽다보면 마론이 묘사하는 상실의 아픔에 완전히 매료돼서 정말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정확하게 묘사된 고통을 읽으며 달콤해하는 일은 가을이 되었다고 굳이 쓸쓸해지고 싶어 하는 일과 비슷하지 않나요? ㅎㅎ

그럼, 책을 읽으며 제가 밑줄 그은 문장을 소개할게요. 함께 읽어보아요. 


그가 이사를 나간 후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울부짖었다. 얼마나 오랫동안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총에 맞은 동물처럼 아팠다. 그를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 금지될 때까지 그랬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생각할 수밖에 없을 때에는 나에게 다른 것을 생각하라고 명령했다. 파니나 그림, 혹은 아직 나오지 않은 세금 명세서 등 그가 아니면 어떤 것도 좋았다. 극복 치료나 소위 슬픈 작업에 대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고 마모된 사랑같이 일상적으로 나쁜 일인 경우에도 그러지 않았다. 헨드리크가 나를 떠난 것은 사실 그 이상으로는 이해될 수 없었다. 그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를 죽이는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었다. 누군가를 강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누군가는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몸이 가벼워지고 변신할 수 있다. 내가 헨드리크를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아 그가 미라로 쪼그라들었을 때 비로소 그와 함께했던 몇 년을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나 뉴욕으로의 여행, 처음 몇 년 쇠네베르크에서의 삶, 헨드리크의 말없고 형체 없는 미라는 늘 곁에 있었다. 

모니카 마론,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산지니,  p.72



어떤가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총에 맞은 동물처럼 아팠다가, 오랫동안 그를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미라로 만들어버렸다는. 그러면서도 그 미라를 늘 곁에 데리고 다녔다는 화자의 고백을 읽을 때마다 왠지 짜릿해져요.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은 전남편의 어머니, 그러니까 전시어머니(?) 올가의 장례식에 찾아가던 주인공 루트가 유령들을 마주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입니다. 

대화의 나열이 내용 전개의 큰 축이다보니, 굉장히 사색적인 작품이 된 것 같아요. 이런 소설은 응당 가을에 읽어줘야죠. 



삶은 순전히 우연이랍니다. 우리의 확신조차 하나의 위트랍니다 ♪

저는 모니카 마론의 이런 울적한 경쾌함이 참 좋아요. 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미처 말로 변환해내지 못했지만 살면서 분명히 느껴왔던 어떤 정서나 기분을 구체적인 언어로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려운 데가 드디어 만져지는 기분.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재미는 이런 게 아닐까요? 




선선해진 날씨와 함께 찾아온 이유 모를 멜랑콜리에 발을 동동 구르고 계신 분들께

모니카 마론의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을 추천할게요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 10점
모니카 마론 지음, 정인모 옮김/산지니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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