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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기

친일파 청산에 대한 통렬한 성찰 ― 박정선, 『유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9. 25.

안녕하세요. 

편집자 열무입니다. 

민족 고유명절 추석이 벌써 코앞으로 다가왔어요.

오랜만에 맞게 될 휴가의 설렘에 앞서, 

보내야 하는 택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까지 꼭 발송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발을 동동 구르는 저는 명실상부 물류담당인거죠...



다문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민족 고유명절이라는 수사를 굳이 사용한 것은,

오늘 소개할 소설인 『유산』 때문입니다. 


『유산』은 박정선 작가의 장편소설로, 친일파 후손인 주인공이 자기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분투하며 고뇌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 민족의 수난사, 윤리적 선택을 가로막는 현실적 문제와 공포, 역사의 줄기와 개인의 삶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등 친일 청산을 둘러싼 다양한 각도의 복잡한 질문들이 배어 나옵니다.



친일파 청산은, 그 자체의 문제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군부독재나 좌우 이데올로기 등 한국사회가 여전히 마주하고 있는 여러 모순들과 중첩되는 부분이 깊은 문제입니다. 작가 박정선 선생님은 사회를 분열시키는 이데올로기와 비합리적이고 정치 감정적인 좌, 우 대립이 아직도 존재하는 한국사회의 지독한 악습의 출발점을 드러내기 위해 일제강점기를 불러냈다고 합니다. 

명절 모임마다 가족들이 좌우로 나뉘어(사실은 위,아래가 아닌지..) 대립하는 모습을 자주 목도해온 사람으로서, 이 지겨운 풍습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지 『유산』을 읽고 고민해보게 되네요....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식민지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가 의미하듯이, 친일 문제는 여전히 현재적이며 우리 사회의 중요한 어젠다라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암살>(2015)이나 <밀정>(2016), <군함도>(2017), <아이 캔 스피크>(2017) 등의 작품들이 일제강점기를 친일과 반일의 구도로 놓고, 우리 민족의 수난사나 윤리적 선택의 문제, 단죄 등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박정선의 유산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개인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의 경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친일 청산이라는 문제에 대해 매우 섬세하고도 치열한 통찰을 보여준다. 특히, 이는 식민지시대에 연원을 두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그 해결이 요원한 이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데 있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느 점에서 주목받아 마땅하다.

친일과 반일의 프레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이와 동시에 '민족'의 의무와 책임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한국 근현대문학이 거듭 다루어 온 중요한 테마이다. '유산'이라는 이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 작품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떤 시대의 '이후'이다. 


박윤영 해설 「선택의 선택―'남긴' 것과 '받은' 것, 그리고 '버린' 것에 대하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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