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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시(詩)에 울컥, 하는 가을입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10. 13.

며칠 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 가운데는 여성들의 얼굴이 유난히 눈에 띕니다. 글릭뿐만 아니라 물리학(앤드리아 게즈)과 화학상(에마뉘엘 샤르팡티에, 제니퍼 다우드나)의 주인공까지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공동 수상한 것은 노벨상 제정 이래 최초라고 하니, 가히 큰 박수받을 만하죠.

,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영향으로 올해 시상식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지 않고, 수상자들이 자국에서 상을 받고 모습이 TV 중계로 대체될 거라고 하는군요(그야말로 세계 최고 권위의 상마저도 피해가지 못하는 언택트 2020입니다).

 

그나저나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적절한 때 적절하게 행하는 것이 중요한데... 마음속에 새긴 시 모음집을 무려 십여 년 만에 다시 선보인 류시화 시인은, 출간 한 달도 되지 않아 책에서 소개한 시인이 노벨상을 받을지 알았을까요. ^^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도 있는데, 역시 무엇을 하든 나태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습니다.

 

다음 시는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눈풀꽃’과 루이즈 글릭의 'Snowdrops' 전문입니다.

눈풀꽃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Snowdrops

 

Do you know what I was, how I lived? You know

what despair is; then

winter should have meaning for you.

 

I did not expect to survive,

earth suppressing me. I didn't expect

to waken again, to feel

in damp earth my body

able to respond again, remembering

after so long how to open again

in the cold light

of earliest spring--

 

afraid, yes, but among you again

crying yes risk joy

 

in the raw wind of the new world.

 

* 눈 내린 땅에서 꽃을 피운다하여 설강화라고도 불리는 눈풀꽃은 이른 봄에 긴 꽃대 끝에 하나씩 피어나는 작고 흰 꽃으로, 글릭의 시 ‘Snowdrops’는 고통을 극복하고 삶을 회복하는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떠세요? 시인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느껴지시나요? 한 번 보면 어렵고, 다시 보면 의아하다가도 여러 번 볼 때 비로소 깊이 새겨지는 글들이 있죠. 특히 '시'를 읽을 때, 길지 않은 글에 깊은 감성과 남다른 이성을 눌러 담아서 그런지 여러 번 새기다 보면 울컥, 하는 문장에 매료되곤 하는데요. 올 가을에는 누구의 시라도 읽고 다시 울컥, 해봐야겠습니다.

 

** 산지니도 깊은 가을, 시인선을 깜짝 선보일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시인이 미국에 살고 있는 여성이라는 점은 미리 살짝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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