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을 거슬러
정미형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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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중반에 서서 펼치는 감정의 파노라마
“눈물 사이로 다시 살아갈 다음 파도를 기다리는 일”
2019년 현진건문학상 우수상 수상작가인 정미형 소설가의 신작 소설집. 2017년 첫 소설집 『당신의 일곱 개 가방』을 펴낸 후 작가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다. 2018년 경북일보 문학대전에서 단편 「고무나무 이야기」로 소설 부문 금상을, 2019년 「봄밤을 거슬러」로 2019년 현진건문학상 공동우수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 한 뼘 더 성장했다. 당시 「봄밤을 거슬러」는 “생의 후반기를 걷고 있는 노시인을 통해 삶의 관계성과 죽음에의 접근, 꿈과 욕구의 산화(散華)를 섬세하고도 서정적인 문체에 담아낸 수작”이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수상작품을 포함해 7편을 수록한 이번 소설집에서는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나이 듦과 죽음의 불안, 불편한 인간관계와 불확실한 인생을 다뤘다.
정미형 작가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삶의 파도에 씻기어 닳아가는 우리의 삶이 있을 때, 말끔하게 닦여진 그 눈물 사이로 다시 살아갈 다음 파도를 기다리는 일”이 소설을 읽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소설집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와 경이로움 속에서 줄타기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가의 내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불화, 늙음, 불안… 내 인생에 초대하지 않는 손님이 찾아온다
「봄밤을 거슬러」는 단조로울 것 같은 노년의 하루가 생활감과 함께 밀도 있는 언어로 짜여졌다. 무엇보다 이 단편의 문학성은 조용히 놓여 있는 낡은 찻잔에도 미세한 금이 가듯 죽는 날까지 우리 삶을 잠식시키는 불안이라는 복병을 통찰한 점에 있다. 삶이란 무심한 파도는 자비를 모르는 법이다. ―강석경(소설가)
「벽 속으로 사라진 남자」는 아내인 내가, 남편이 벽으로 사라졌다고 믿으며, 불편하고 수상했던 결혼생활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케이라는 인물과 정신적으로 얽혀 있는 남편은 케이의 대리자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 남편은 케이에게 고양이 무늬 벽지를 받아온다. 그리고 남편은 그 벽지를 바른 벽 속으로 사라진다.
표제작 「봄밤을 거슬러」에서 이제는 노인이 된 시인은 봄날의 오후를 담담하게 그린다. 어느 날 노시인의 옆집에 사는 이웃이 정원을 새로 단장한다. 이웃은 노시인에게 담장을 허물자고 제안하며 구덩이를 판다. 특별할 것 없던 시인의 일상에 소음이 생기고 시인은 그 풍경을 지켜보며 자신의 삶과 다가올 죽음을 관조한다.
「당신 곁에 언제나」는 사고로 죽은 아내가 남긴 글을 읽으며 세상의 무의미함과 살아나가는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상처로 얼룩진 인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과 닮은 낯선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열고 조금씩 소통하려고 한다.
「수박의 맛」은 여름철 수박으로 겪게 되는 부부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신혼시절 육촌 부부가 수박을 들고 찾아와 연대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하는데 마침 달고 시원한 수박을 먹고 싶어 하던 남편은 수박을 먹은 뒤 스스럼없이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이 중첩되면서 수박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지금까지 삶을 지탱해준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언젠가 그녀도 외로운 밤 고무나무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고무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순하게 귀를 기울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고무나무 이야기」중에서
노란 등」은 부산 북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나는 어린 시절 그 부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 그곳에서 자란 나는 바다와 배에 향수를 가지고 있다. 평생 뱃사람이었던 아버지는 배에서 얻은 병으로 생을 마감하고 사회복지사가 된 나는 우울증으로 세상과 단절한 친척의 집을 방문한다. 그곳 부두에서 ‘나’는 과거의 나를 지탱해준 노란 불빛을 본다.
「고무나무 이야기」에서 나는 삶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동생을 안타까워한다. 어느 날 폐건물에 버려진 고무나무를 보고, 고무나무를 키우며 지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은 연락도 닿지 않는 동생을 생각하며 지나간 시간을 회상한다. 고무나무로 압축된 삶의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못 자국」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아파트의 벽을 도배하는 남자는 어머니가 살아온 억척같은 날들을 기억한다. 남자는 어머니의 집을 차마 팔지 못하고 여러 차례 세입자를 들이면서 그들이 이사 가고 난 뒤 남긴 못을 뽑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첫 문장
계절이 몇 번 바뀌고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P.18 남편이 스르르 벽 속으로 사라졌다. 그에게서는 그때 한 점 불안한 떨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다니던 산책의 마지막 코스라도 되는 듯 걸어들어 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남편이 벽 속으로 사라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은 그 벽 외에는 더 이상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남편이 사라진 것을 그의 친구 케이는 알고 있을까?
P.94 남자는 밖으로 나와 잠시 쉬면서 오한준이라는 이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도 읽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어디 아픈 것일까. 아니 어쩌면 문자를 보내준 사람의 호의를 무시하는지도 모른다.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빨리 이 짐을 덜고 싶었다.
P.151 그래도 이 녀석이 학교 다닐 적에는 공부도 곧잘 하고 좋은 대학도 들어갔는데 그 이상한 연애만 하지 않았어도 저 꼴이 되지 않았을 거라며 훌쩍거렸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벌써 이십오 년도 지나 삼십 년에 가까운 옛이야기였다. 또 그 이야기는 오래전 친척모임 때마다 마지막 단계에 숙모가 술에 취해 울며불며 해오던 얘기였다.
정미형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고 부산에 살고 있다. 2009년 봄 상반기 <한국소설> 신인상에 단편 「당신의 일곱 개 가방」이 당선되어 등단,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7년에 소설집 『당신의 일곱 개 가방』을 펴냈다. 2018년 경북문학대전에서 단편 「고무나무 이야기」로 소설 부분 금상을 받았고, 2019년 현진건 문학상에서 단편 「봄밤을 거슬러」로 우수상을 받았다. KBS 라디오 문학관에 「나의 펄 시스터즈」, 「봄밤을 거슬러」가 극화되어 방송되었다. 계간지 『작가와사회』, 『좋은소설』 등에 다수의 단편을 발표했다.
차례
봄밤을 거슬러
정미형 소설집
정미형 지음|204쪽| 국판 변형(125*205)|15,000원
2020년 10월 15일
978-89-6545-674-2 03810
수상작품을 포함해 7편을 수록한 이번 소설집에서는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나이 듦과 죽음의 불안, 불편한 인간관계와 불확실한 인생을 다뤘다.
이번 소설집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와 경이로움 속에서 줄타기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가의 내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봄밤을 거슬러 - 정미형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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