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홍콩의 전설적인 감독 ‘왕가위’의 영화들이 일부 리마스터링되어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화양연화를 보고 왔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잠식 시킨 매력적인 홍콩의 냄새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잊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같이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비좁은 복도와 가파르고 좁은 계단이 인상적인 홍콩식 아파트라던지, 콘크리트로 가득한 도시의 풍경이랄지, 그런데도 멋들어지게 반짝이는 야경까지…, 그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화면에 짙게 물든 홍콩의 색이 궁금해진다. 책 <홍콩 산책>은 그런 홍콩이라는 도시를 더 알고 싶어 하는 나의 갈증을 해소해준다.
<홍콩 산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있다. 작가가 오랜 시간 홍콩에서 생활하며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알기 쉽게 풀어낸 책인데, ‘걷기’, ‘타기’, ‘먹기’, ‘보기’, ‘알기’로 나누어져 홍콩의 생활상과 역사를 재미있게 엮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비단 문화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정세가 어지러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 홍콩과 중국의 묘한 관계를 설명하며 ‘홍콩인’에 대한 정체성과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지 깊게 침음하게 한다.
학계에서는 ‘소년 홍콩’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인생으로 볼 때 홍콩은 ‘소년기’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홍콩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홍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14p.
홍콩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왔다.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대다수가 ‘중국인’의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홍콩인’과 ‘중국인’은 생각이 크게 다르다. 중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밤낮으로 ‘국가’와 ‘민족’을 중시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지만, 홍콩인들은 법과 제도, 자유가 소중하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189p.
‘홍콩인’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고 있다는 지금, 나는 의문이 든다. 민족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정체성은 민족성과 같은 말일까? 나는 홍콩인들의 정체성을 민족성이라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한 나라였지만 지나치게 자유로움에 어렵고,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타개하는 홍콩이기에 더욱이 어렵다. 그리하여 그들을 다른 게 아닌 자본주의와 본토주의로 중국과 맞서기를 원하는 것이리라.
빽빽한 홍콩 콘크리트 숲 사이에 오아시스처럼 존재하는 공원에서 중국 태극권을 수행하는 홍콩 사람들, 중국적인 특징이 드러나는 홍콩의 종교와 이름과 달리 홍콩의 역사는 없고 중국의 역사만 가득한 홍콩역사박물관 등…, 자유와 민주를 원하지만, 그 정서와 문화는 본토에 한없이 가까운 홍콩. 홍콩인들은 과연 그들의 정체성을 완성할 수 있을까.
<홍콩 산책>은 홍콩이라는 나라와 홍콩인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하면서도 사이사이에 홍콩 문화를 소개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홍콩 교통의 선진적인 편리함을 이야기 하는 동시에 지친 생활 속에서 감성을 젖게 하는 전차나 풍경을 소개하며 홍콩 여행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미식의 도시인 만큼 여러 음식과 음식점을 소개하는 것도 빼먹지 않아 읽는 이에게 여행의 욕구를 안겨준다.
딤섬은 홍콩의 포용적인 문화를, 전차는 각박한 환경이지만 여유를 지향하겠다는 다짐을, 옥토퍼스 카드는 최대한 편리성을 추구하는 마인드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 인생의 여유도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믿음’이 홍콩을 정의하지 않을까?
-109p.
날카로운 시선으로 홍콩을 탐색하고 탐미하지만 이내 매력적으로 묘사되는 홍콩이, 작가의 필력을 가늠케 한다. 우리에게 인상적으로 새겨지는 홍콩에 대한 이미지로 말미암아 홍콩의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홍콩의 구석구석을 알아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알라딘: 홍콩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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